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974화 (974/1,018)

< 05. 바로잡아야 합니다(3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04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38)

“그게 어떻게 자네 탓이야. 부대는 계급이 깡패인데. 물론 짬도 무시는 못 하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 아무리 짬이 많다고 해도 군대는 계급이 우선이야. 전혀 쫄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홍민우 소령이 함승희 중위를 위로했다. 이재식 대위가 바로 맥주를 들었다.

“함 중위. 내 술잔도 받아.”

“네.”

“술 그만 줘.”

홍민우 소령이 바로 말렸다. 이재식 대위가 움찔하며 그런 홍민우 소령을 바라봤다.

“네?”

“자네는 눈이 있으면 봐봐. 함 중위 얼굴 벌써 붉게 변했잖아. 술도 잘 못 마시는 사람에게 자꾸 술을 권하면 어떻게 하나. 아니면 이 대위 함 중위에게 딴마음 있어?”

이재식 대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니 왜, 말이 또 그렇게 흘러갑니까. 딴마음이 있기는 뭐가 있습니까. 그리고 저 결혼할 사람 있습니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다른 여자 챙기지 말고 제수씨나 장 챙겨.”

홍민우 소령의 구박에 이재식 대위는 괜히 서운한 얼굴이 되었다.

“에이. 과장님은 괜히 또 분위기를 다운되게 만드십니다. 김 중위 안 그래?”

이재식 대위는 가만히 술을 마시고 있는 김윤식 중위를 끌어드렸다.

“하하, 네에······.”

김윤식 중위가 멋쩍게 웃었다. 함승희 중위는 그때 살짝 감동을 받았다. 그렇지만 아침에 홍민우 소령에게 한 소리 들은 것이 다 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홍민우 소령이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신경을 많이 써 준다는 것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함 중위는 이제부터 술 마시지 마.”

“네. 과장님.”

“아니다. 이것도 강요일 수도 있겠네. 그냥 마시고 싶으면 마셔도 돼. 그런데 남의 술은 받지 말고 함 중위 스스로 조절해서 마셔.”

“알겠습니다.”

함승희 중위의 대답을 들은 홍민우 소령의 시선이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김윤식 중위에게 향했다.

“그리고 김 중위.”

“네?”

“너는 안주빨 좀 그만 세워!”

“다들 술만 드시고 안주는 안 드시기에······. 그리고 배도 좀 고프기도 하고 말입니다.”

“아까 저녁 먹었잖아.”

“그래도 배가 고픈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과장님 여기 안주 엄청 맛있습니다.”

“핑계도 좋다. 진짜······. 너도 술 좀 마셔라. 너 때문에 술 마시러 오면 술값이 너무 많이 나와. 차라리 술을 많이 마셔서 술값이 많이 나오면 아깝지도 않지. 이건 뭐······. 나중에 영수증을 확인해 보면 안줏값이 더 많아. 알고 보면 다 네가 먹은 것들이야.”

“너무 하십니다. 왜 또 불똥이 저에게 튑니까.”

“됐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

홍민우 소령의 구박에 김윤식 중위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홍민우 소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입을 열었다.

“아무튼 다들 이번에 전수조사 건으로 이리저리 고생하고 힘든 것은 알고 있다. 그래도 조금만 힘내자. 우리 작전과가 그런 일을 하는 부서가 아니지만 어쩌겠어. 작전과가 부대의 브레인인데. 또 뭔 일만 있으면 우리 부서부터 찾잖아. 안 그래?”

“그렇습니다.”

“그래. 또한 대대장님은 우리가 없으면 또 아무것도 못 하시잖아. 그러니 조금만 더 고생하자.”

“네. 과장님.”

이재식 대위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게 술이 돌고 이런저런 얘기가 돌았다. 그러다가 이재식 대위가 김윤식 중위를 툭 치며 말했다.

“김 중위.”

“네.”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지.”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우자 홍민우 소령이 함승희 중위에게 말했다.

“함 중위.”

“네.”

“나한테 서운한 거 없지?”

“네 없습니다.”

“그럼에도 서운한 것이 있다면 참아. 참고 이겨내. 군 생활에서 억울한 거 하나 없는 사람이 없어. 서러운 사람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걸 겉으로 다 드러내고 그러면 위로 못 올라가. 알았지?”

“네.”

“굳이 함 중위에게 나 때는 어땠는지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 함 중위도 이제 느끼는 것이 있을 거야. 그 시기를 이기고 잘 넘겨야 해. 버텨야 한단 말이야.”

“네.”

“그리고 함 중위는 여자잖아. 군대 특성상 여자가 버티기에 얼마나 힘든 곳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 중위가 처음 작전과 와서 나에게 뭐라고 그랬어. 최소한 별은 달고 전역하고 싶다고 했잖아.”

“······.”

“그 생각 아직 유효한 거야?”

“네.”

“그래. 여성 장군이 되려면 이 정도로 무너져서는 안 돼. 알았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낮에 박지영 중사에게 받았다던 녹음 파일 있지.”

“네.”

“들어봤는데 그걸 가지고 주임원사를 엮기에는 좀 애매해.”

“그게 무슨······.”

“물론 정황 증거는 될 수 있지. 우리가 직접 나서서 주임원사와 척을 지기에는 쉽지가 않아. 자네도 잘 생각을 해봐. 주임원사는 자네가 대성식당을 간 것도 알고 있는데 여기에 박지영 중사까지 엮어봐. 주임원사는 분명 자신을 음해하고 있다고 할 텐데······. 그런 식으로 물타기가 되어버리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인정을 받지 못해.”

“아, 그런 겁니까?”

함승희 중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들키지만 않았어도······.”

“아니! 자네 잘못은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주임원사 짬이라면 어떻게든 알아냈을 거야. 내가 화가 나는 것은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 때문에 화가 났던 거야. 물론 자네가 경험도 없고 그래서 그랬던 거겠지만. 굽힐 때는 굽히고, 인정할 때는 인정을 해. 그 과정에서 눈을 딱 감아야 하면 감고. 상대가 주임원사라고 생각을 하니 오기로 버티고 그랬던 것 아니야?”

“······네에.”

“나 정도 되니까 주임원사와 상대를 하지. 자네는 주임원사 같은 능구렁이를 아직 당해내지 못해. 아무리 자네가 계급이 높다고 해도 주임원사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야. 그런데 그런 식으로 버티면 오히려 더 상대가 파고드는 거야.”

“······.”

“그렇다고 해서 자네가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융통성 있게 행동을 하란 말이야.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어쨌든 자네가 고생해서 얻었는데 이걸 없앨 수는 없지. 4중대장 알지?”

“오상진 대위 말입니까?”

“어. 거기로 던져.”

“네?”

“자네가 가서 직접 던져.”

“4중대장이 이걸 받겠습니까?”

“받을 거야. 그런데 자네가 말을 잘해야 해.”

“제가 말입니까?”

“핑곗거리를 생각해 봐. 어떻게 얘기를 해야 4중대장이 외면하지 못할까? 그것에 대해서 말이야. 물론 내가 갖다 줬다고 말해도 상관은 없어. 그렇게 해도 4중대장은 받을 거야. 하지만 그것보다는 자네가 자의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어?”

“네.”

“솔직히 박지영 중사가 자네를 어느 정도 믿고 이렇듯 다 털어놓고 그랬는데. 이것이 터지면 박지영 중사도 군 생활에 있어서 타격을 입을 것은 불 보듯 뻔해. 그래도 자네가 녹음 파일을 가지고 왔다면 어느 정도는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어? 그래야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박 중사에게 원망은 듣지 말아야지. 안 그래?”

“네.”

“자네가 4중대장을 만나봐.”

“알겠습니다.”

그 이후 함승희 중위는 고민을 했다. 자신의 관사 책상에 앉아 USB를 바라봤다.

“뭐라고 하지? 뭐라고 할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결론은 딱 하나였다. 그냥 솔직히 말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걸 왜 나에게 가져왔지?”

오상진이 물었다. 함승희 중위가 굳은 의지를 보이는 눈으로 얘기했다.

“저는 주임원사가 싫습니다.”

“뭐?”

“만날 뒤에서 여자들을 깔보고 무시하고, 어떻게 하면 몸을 한 번 만질 수 있을까 그러는 것들이 정말 싫습니다.”

“함 중위도 뭔 일 있었어?”

“저뿐만이 아니라 대대에 있는 모든 여자 장교들과 부사관들은 한 번씩 당했을 것입니다. 그냥 더러워서 무시하고 넘어갔던 것뿐이지 주임원사가 손대지 않은 여자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 정도였어?”

“네. 보십시오. 4중대장님께서도 모르시지 않습니까.”

“내가 부대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그 핑계 대지 않을게. 내가 무심했고, 관심이 없었다. 미안하다.”

함승희 중위가 말했다.

“사실 이거 제가 몰래 조사를 했었습니다.”

“무슨 조사?”

“최윤희 건도 있고, 박지영 중사도 조사를 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전수조사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임원사 제대로 조사를 받게 하려고 했는데 알아버렸습니다.”

“자네가 뒷조사를 하는 것을?”

“네. 제가 대성식당을 갔는데 하필이면 그때 주임원사가 그곳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걸 가지고 난리를 치는데······. 작전과장님은 괜히 저 때문에 일이 어려워졌다고, 작전과에서 해결이 안 될 것 같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만일 함승희 중위를 100% 믿는다면 맞는 말이었다. 작전과에서도 전수조사 때문에 따로 조사를 했더라도 함승희 중위가 이렇듯 표적 조사를 하듯이 주임원사 뒤를 대놓고 파버렸기 때문에 이 일로 인해 부대가 시끄러워질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 때문에 모든 일은 홍민우 소령, 더 나아가 대대장까지 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대대 분위기는 완전 개판이 되어버린다. 결과적으로 장교와 부사관들 사이에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그래서 나보고 이 일을 처리해 달라는 거야?”

“그것까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박 중사가 어렵게 증거를 가지고 왔는데 제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아, 이것 참······.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네.”

오상진이 뜸을 들였다. 함승희 중위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함승희 중위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거 받으시고 중대장님이 파기를 하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중대장님. 솔직히 윤 소위 사건도 해결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믿고 여기에 온 것입니다. 4중대장님께 무거운 짐을 억지로 떠넘기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부하가 힘들어하는 것을 상관이 나눠 지는 것 역시 전우애라고 배웠습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걸 여기다가 갖다 쓰는 거야?”

“4중대장님. 좀 도와주십시오.”

함승희 중위가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저런 식으로 나오니 오상진은 할 말이 없었다.

“그래. 알았어. 일단 나가봐.”

“네. 알겠습니다.”

함승희 중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그걸 본 오상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거 왠지 작전과장님 생각인 것 같은데······.”

오상진은 바보가 아니었다. 분명 100% 함승희 중위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딱 봐도 일을 자신에게 떠넘긴다는 기분이 물씬 들었다. 그런데 오상진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사실 최윤희 사건이 3년 전 일이라 여차하면 부대에서 묻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박지영 중사는 현재 진행형이고 새로 증거가 나왔다. 이것까지 임규태 중령에게 넘기면 그 역시도 조사하기 수월해질지도 몰랐다.

“그래. 받자. 몰랐다면 모를까. 나한테 증거를 가지고 왔는데 어떻게든 써 먹어봐야지.”

오상진은 USB를 챙겨서 자신의 책상으로 갔다. 노트북에 꽂아 활성화시킨 후 그곳에 있는 녹음 파일을 재생시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