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3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00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34)
그런데 함승희 중위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군 생활을 열심히 하려는 스타일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그런 여자였다.
게다가 함승희 중위는 작전과인 데다, 그 위 직속상관이 바로 작전과장인 홍민우 소령이다. 그리고 그 홍민우 소령은 대대에서 유일하게 박지영 중사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박지영 중사는 결심을 한 듯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증거를 가지고 있어요?
“증거는······.”
-그럼 앞으로 전수조사가 진행될 거예요. 그러니 녹음이라든지,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수집하세요.
“증거······ 녹음 말입니까?”
-그렇죠. 녹음이라면 뭐, 확실하겠죠.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녹음기는 부대에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 몰래는 가능하지만 부대 자체가 허가받지 않은 기기는 반입이 금지되어 있다. 다행스럽게도 휴대폰에 녹음기 기능이 존재했다.
“후, 할 수 있다.”
박지영 중사는 다시 한번 다짐을 한 후 주임원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어이구 박 중사.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밖에서 작업 중이라 세수 좀 하고 왔습니다.”
“무슨 세수까지 하고 왔어. 왜? 나에게 잘 보이고 싶었어?”
“네?”
“아무튼 우리 부대 부사관들은 왜 그렇게 나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는지 몰라.”
“······.”
“자자, 어서 이리 와서 앉아.”
방대철 주임원사가 다리를 빼며 자신의 무릎을 툭툭 쳤다. 박지영 중사가 멋쩍게 웃으며 빈자리로 가서 앉으려고 했다. 그런데 방대철 주임원사가 자리에 앉으려는 박지영 중사의 팔을 잡고는 억지로 끌어당겼다.
“앗!”
박지영 중사는 힘에 밀려 방대철 주임원사의 무릎에 앉는 꼴이 되었다.
“왜 이래. 우리 사이에 말이야. 정 없게 말이야.”
순간 박지영 중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방대철 주임원사의 못된 손이 움직였다.
“어디 보자. 우리 박 중사 살 좀 쪘나? 엉덩이에 살이 많이 붙은 것 같아. 아무래도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박지영 중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러지 마십시오. 주임원사님.”
“내가 뭘?”
“만지지 마십시오.”
“뭐?”
“그래도 엉덩이를 만지는 것은 좀······.”
“이 친구가······. 주임원사가 자네 예뻐서 그러는 거지. 딸처럼 생각해서 엉덩이를 토닥여 주는 건데.”
“주임원사님이 제 아버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쓰읍! 박 중사 또 이러네. 내가 누차 말했지. 나 주임원사는 대대에 있는 모든 부사관의 아버지라고. 언제까지 그럴 거야!”
“······.”
박지영 중사가 굳은 얼굴로 있자. 방대철 주임원사가 선심 쓴다는 듯 말했다.
“그래, 알았어. 내가 딱 한 번 끌어안아 보고 놔줄 테니까. 이리 와.”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진짜 한 번만! 아빠라 생각하고 안겨. 자!”
방대철 주임원사가 두 팔을 벌렸다. 박지영 중사는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한 번의 안김으로 무릎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박지영 중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천천히 방대철 주임원사에게 안겼다. 그런데 방대철 주임원사의 못된 손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만지지 마십시오.”
“가만히 있어 봐. 안기까지 했는데 정 없이 목석처럼 있나. 서로 쓰다듬고 그래야지.”
방대철 주임원사의 못된 손 중 하나는 옆구리로 가고 다른 한 손은 슬그머니 가슴 쪽으로 향했다. 순간 움찔한 박지영 중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슴 쪽 주머니에 휴대폰으로 녹음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대철 주임원사는 오늘따라 박지영 중사가 예민하게 구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허. 오늘 처음이야? 전에도 똑같이 했는데 왜 이래. 유부녀면서 처녀처럼 움찔하고 그래. 남편의 손길보다 내 손길이 좋아서 그래?”
방대철 주임원사가 음침한 미소를 흘렸다. 그럴 때마다 박지영 중사의 온몸에는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손길이 웃음이 치가 떨렸다. 그녀는 빨리 이 시간이 지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박지영 중사가 주임원사실에서 나온 시각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주임원사실을 나온 박지영 중사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어깨가 축 처져 있고, 더러운 손길이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고 생각하자 불결한 기분마저 들었다.
“흐흑······.”
이곳은 부대라 소리 크게 울 수는 없었다. 억지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화장실로 뛰어갔다. 이곳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흐흐흑······.”
박지영 중사는 화장실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않았다. 그리고 힘겹게 눈물을 삼키고는 가슴 쪽 주머니에 넣어 뒀던 휴대폰을 꺼냈다. 그때까지 녹음기능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종료 버튼을 누른 후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혹시라도 녹음이 안 되어 있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녹음이 잘 되어 있었다.
“진짜 내가 이번에는 가만있지 않을 거야. 당신 부숴 버릴 거야.”
거울을 바라보는 박지영 중사의 눈매가 매섭게 바뀌었다.
곽종윤 준장은 평택 17연대장이며 85사단 소속이다. 그는 자신의 자리로 오자마자 짜증을 냈다.
“에이씨! 일 처리를 그렇게 하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뒤따라 들어온 작전참모 배운역 중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대장님. 가셨던 일은 잘 안되었습니까?”
“말도 마! 우리 연대를 저쪽에서 조사를 한대.”
“네? 저쪽이라면······.”
“저쪽 몰라? 저쪽!”
곽종윤 준장은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배운역 중력은 대번에 깨달았다. 그 역시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 연대장님. 그럼 육군참모총장 라인에서 저희를 조사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그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매우 곤란하지 말입니다. 저희 연대에서 문제가 될 것이 많을 텐데 말입니다.”
배운역 중령 역시 걱정이 되었다. 곽종윤 준장이 하려던 말이 그것이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상대방에서 우리를 조사를 해. 이건 완전히 우리 쪽을 다 털 생각인 거야. 안 그래?”
곽종윤 준장이 인상을 쓰며 버럭 했다. 배운역 중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85사단은 경기도 남부를 지키는 사단이다. 향토사단이다 보니 군기 위반이나 비리 관련 사건들이 많았다.
특히 성 군기 위반이 군기가 강한 전방보다는 상대적으로 좀 많은 편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일심회 라인에서 조사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거기까지 커버할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17연대 쪽은 포기를 한 상태였다.
“감찰부장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배운역 중령이 다급하게 물었다. 곽종윤 준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양반 말이 그래. 우리 연대에서 터진 문제기 때문에 이 일을 덮을 수는 없다고 했네.”
“아······. 3대대 말씀이시죠?”
“그래.”
배운역 중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곽종윤 준장이 3대대장 송일중 중령의 일 처리 방식에 대해서 말을 했다.
“아무튼 송 중령은 일 처리를 어떻게 했기에 일이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거야.”
“그게 말입니다. 제가 슬쩍 알아봤는데 송 중령의 기분이 좀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난번 일심회 모임 때 감찰부장님께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위로 끌어올려 주겠다고······. 아마 그 얘기를 듣고 들떠 있는 모양입니다.”
“뭐라고? 에라이······ 송 중령아.”
곽종윤 준장이 바로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배운역 중령을 보며 얘기했다.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감찰부장님 자기가 기분 좋으면 그런 말을 남발한다는 것을 말이야. 그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개나 소나 다 올라가야지. 그리고 올라가면 내가 먼저 올라가야지. 지가 왜 먼저 올라가!”
“그러게나 말입니다.”
송일중 중령은 자신이 육본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는 최우일 감찰부장의 눈에 들었다고 어깨를 으쓱하며 좋아했다. 하지만 곽종윤 준장은 누구보다도 최우일 감찰부장을 잘 알고 있다.
오랫동안 같이 일하며 봐온 최우일 감찰부장은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판단하면 저런 식으로 위로 끌어올려 주겠다며 사탕발림을 한 후 충성심을 이끈다.
그걸 모르고 송일중 중령은 더욱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가 되었다. 그냥 조용히 사고 치지 않고 부를 때만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니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송일중 중령이 한심하게만 느껴지는 곽종윤 준장이었다.
“송 중령, 이 자식은 위로 올라가려면 날 거치고 올라갈 생각을 해야지. 자기 혼자 올라갈 생각을 해?”
배운역 중령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 그것이······.”
“뭐? 자네 무슨 들은 얘기라도 있어?”
“그냥 송 중령이 하는 말이지만 아무래도 원스타부터는 진급 정체가 있지 않습니까?”
그 순간 곽종윤 준장이 대번에 깨달았다.
“아하! 난 올라가려면 한참 걸릴 것 같고, 내 밑에 줄을 섰다간 자네 다음으로 밀릴 것 같으니 다른 줄을 잡겠다는 이 소리네.”
“송 중령이 그렇게까지 얘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런 뉘앙스는 풍겼다는 소리 아니야.”
배운역 중령이 미소로 답을 보냈다. 곽종윤 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이구, 송 중령 이 자식은 그 주제에 중령 달고 대대장을 하고 있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지낼 것이지. 쯧쯧쯧.”
“그래도 뭐. 송 중령이 크게 사고 친 것은 없지 않습니까. 내심 별은 달고 싶은 모양이죠.”
“별은 아무나 다나? 내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얼마나 고생을 했나.”
“알죠. 제가 연대장님 모신 지가 몇 년인데 말입니다.”
“그래! 자네처럼 똑똑해도 닿을까 말까 하는 것이 장군의 자리야. 그런데 어떻게 송 중령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전혀 말이 안 됩니다.”
배운역 중령이 대답을 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역시도 과연 별을 달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위로 향할수록 워낙에 경쟁이 치열했다. 자리는 한정적이고 그곳으로 향하려는 사람이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로비나 실적이 필요한 것이다.
자신 역시도 오랫동안 곽종윤 준장을 믿고 따라오긴 했지만 그가 소장 진급에서 살짝 밀리는 느낌이라 솔직히 다른 줄로 갈아타야 하나 고민이 드는 참이었다.
배운역 중령이 이렇게 흔들리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 관심을 보이며 스카우트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송일중 중령이 자신을 제끼고, 곽종윤 준장마저 건너뛴 후 위로 올라갈 생각을 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아무튼 안 되겠어.”
“그럼 이 일은 어떻게 합니까?”
“뭘 어쩌겠나. 위에서 우리 연대를 넘겼으니 어쩔 수 없지.”
“그럼 연대장님. 기왕 이렇게 된 거 하나를 버리죠.”
“버려?”
“네. 타깃을 3대대 쪽으로 잡죠. 그쪽을 정리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송 중령도 정리해야 할 것 같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