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3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99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33)
자신이 이곳에 있는 동안 한 번도 말을 붙이지 않았던 그다.
“네.”
퉁명스럽게 답했다. 홍민우 소령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가세요.”
그 말이, 웃는 그 얼굴이 얼마나 얄미운지 몰랐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고개를 홱 돌려 헛기침을 했다.
“크흠. 함 중위 오면 얘기해 주십시오.”
그 말만 남기고 자신의 사무실로 와버렸다. 등 뒤가 매우 간지러웠다. 홍민우 소령이 자신을 보며 비웃음을 날리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제기랄······.”
자신의 사무실에서 분을 삼키고 있을 때 이정명 중사가 슬쩍 들어왔다.
“주임원사님.”
“왜?”
짜증이 있는 대로 나 있는 방대철 주임원사였다. 그러니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이정명 중사가 움찔했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왜? 알아서 뭐 하게.”
“아니. 아까 왔는데 안 계셔서 말입니다.”
“왜 왔어?”
“그게 뭐······.”
이정명 중사가 우물쭈물거렸다. 그 모습에 방대철 주임원사는 더욱 짜증이 났다.
“아니 내가 뭘 하는지 다들 뭐가 그렇게 궁금해!”
“완전 저기압입니다. 무슨 일 있는 겁니까?”
이정면 중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말도 마라. 내가 잠깐 볼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갔다. 그 길에 대성식당에 들렀는데······.”
“네? 대성식당에 말입니까? 거긴 왜······.”
“지나가던 길에 들른 거야. 별 뜻 없어. 우리 옛날에 많이 팔아 줬잖아.”
“그거야.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이었죠.”
이정명 중사가 낮게 중얼거렸다. 방대철 주임원사의 눈이 커졌다.
“뭐?”
“아, 아닙니다. 그보다 거기서 밥 먹었습니까?”
“야이씨! 무슨 식사를 해. 가던 길이었다니까. 아무튼 가는 길에 주차장을 보니 많이 보던 차가 있더라고.”
“차 말입니까?”
“그래.”
“누구 차였습니까.”
“함 중위 차더라.”
“함 중위면······. 작전과의 함 중위 말입니까?”
“그래.”
“아니 그 싸가지 없는 년이······. 아니, 함 중위가 거긴 무슨 일이랍니까?”
“······.”
방대철 주임원사가 답을 하지 않고 얼굴을 굳혔다.
“설마. 주임원사님 뒷조사를 한 겁니까?”
“그런 것 같아. 그래서 내가 한바탕 뒤집어 놓고 왔는데······. 함 중위가 끝까지 안 나타나더라.”
“당연하죠. 주임원사님이 거기 있다는데 누가 나타나겠습니까. 당연히 째죠.”
“내 말이! 그러니까 더 의심이 되잖아. 사람 짜증 나게······.”
“솔직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함 중위면 입단속 안 될 겁니다. 그냥 못 만나게 하는 것이 최선이지.”
“와, 어떻게 홍 소령이 나에게 이럴 수 있냐.”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전쟁 중이 아니라고 해도 피아식별은 확실하게 해야지. 아군에게 총구를 들이밀고 있으니······. 미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대로는 안 되겠다. 우리도 홍 소령 뒤 좀 파자.”
“홍 소령 말입니까? 그 사람 뒷조사 해봐도 별것 없을 텐데 말입니다.”
“새끼야.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리고 홍 소령이 안 된다면 대대장이라도 파.”
“네에?”
이정면 중사의 눈이 커졌다.
“주임원사님. 정말 대대장님 말입니까?”
“그래!”
방대철 주임원사의 눈빛이 완고했다. 이정명 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너 대대장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어?”
“뭐, 정확하지는 않는데. 이리저리 들은 것은 있습니다.”
“들은 거?”
“네. 전 부대에서 유부녀 장교를 건드려 임신을 시켰다. 뭐 이런 얘기가 돌았습니다.”
“뭐? 진짜? 세상에 그렇게 쓰레기 같은 짓을 했데.”
“정확한 것은 아니고 소문입니다. 소문.”
“그래놓고 내 뒤를 판 거야?”
“뭐. 대대장님께서 지시를 내렸겠습니까.”
“이 중사. 홍 소령이 대대장 지시도 없이 혼자 그런 짓을 했다고? 대대장 따까리인 홍 소령이?”
“으음, 생각해 보니 주임원사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 분명 대대장이 내 뒤를 캐보라고 했을 거야.”
“와······.”
“지금 부대 돌아가는 꼴이 아무래도 뭔 일이 생기면 전부 나에게 뒤집어씌울 생각인 것 같다.”
“그게 정말이면 진짜 큰일이지 않습니까.”
“됐어. 내가 이대로 그냥 당할 것 같아? 내가 누구야? 방대철이야. 내가 그냥 당할 사람을 보여?”
“그렇죠. 대대장님 사람 잘못 건드렸네.”
“두고 봐. 내가 이대로 가만히 당할 사람은 아니니까.”
“참! 4중대장은 뭐라고 합니까?”
이정명 중사가 바로 화제를 돌렸다.
“4중대장? 거긴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다.”
“네?”
“4중대장이 그랬거든. 자기는 일도 많은데 무슨 그런 일까지 맡아서 하겠냐고. 그냥 돌려보낸단다.”
“에이. 그 말을 믿으십니까?”
“김태호도 그런 비슷한 말을 하더라. 그래서 내가 대성식당에 간 것이거든.”
“네? 아까는 그냥 가던 길에 들른 거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야, 이 중사. 말꼬리를······.”
방대철 주임원사가 눈을 부라리며 노려봤다. 그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죄송합니다.”
“어쨌든 함 중위가 말도 못 하고 쫓겨나더라.”
“오호, 별로 감정이 좋지 않았나 봅니다.”
“그렇지. 왜 감정이 좋지 않겠어. 4중대장이 안 받아주니 그렇겠지.”
“하긴. 4중대장 입장에서도 쉽지 않겠죠. 분명 주임원사님하고 관련된 일이라고 말했을 것인데. 4중대장이 생각이 있다면 주임원사님과 척을 지고 싶진 않겠죠.”
“······그런 거지?”
“네.”
하지만 방대철 주임원사는 오상진과 만났을 때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전혀 상관이 없다고 했는데도 기분이 찜찜하다는 것이다.
‘에이. 나의 착각이겠지. 어쨌든 지금은 대대장과 홍 소령이야.’
방대철 주임원사의 눈빛이 깊어졌다.
“어쨌든 잘된 일입니다. 4중대장도 윤 소위 건이 끝난 지 얼마 되었다고 또 사고를 일으키겠습니까.”
“그렇겠지.”
“네.”
“아무튼 너 대대장 뒷조사 신중하게 해.”
“알겠습니다.”
이정명 중사가 경례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잠깐 있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그는 박지영 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충성.
“어디냐?”
-지금 밖에서 일과 중입니다.
“무슨······. 부사관이 밖에서 일이야. 나에게 와. 와서 커피나 한잔하자.”
-네? 아, 아닙니다. 일과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에헤이. 주임원사가 오라면 와야지. 왜 이리 말이 많을까? 군 생활 힘들게 하고 싶어?”
-······아닙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빨리 와.”
방대철 주임원사가 휴대폰을 끊고 음흉한 얼굴이 되었다.
“짜증 나는 이 기분. 우리 박 중사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풀어야겠어.”
방대철 주임원사가 징그럽게 웃었다.
박지영 중사가 전화를 끊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옆에 있던 이명중 상사가 물었다.
“누군데?”
“주임원사님입니다.”
“왜? 오래?”
“네.”
순간 이명중 상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아, 알았다. 바쁜 우리 박 중사는 가야지. 여기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이명중 상사가 고개를 돌려 손짓으로 가라고 했다. 박지영 중사가 경례를 한 후 움직였다. 같이 일하던 다른 부사관이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어? 박 중사님 어디 가십니까?”
“말도 마라. 말도 마. 아주 그냥 이곳저곳에서 어찌나 찾는 사람이 많은지.”
“아, 또 주임원사님이 찾으십니까?”
“어.”
“그런데 박 중사님 결혼하지 않았습니까?”
“했지.”
“그럼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뭘, 안 돼. 뭐가 안 되냐고.”
“에이, 저도 들리는 소문은 알지 말입니다.”
잠깐 화장실을 갔다 왔던 김경석 하사가 말했다. 이명중 상사가 바로 말했다.
“됐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너는 박 중사가 뭐 좋아서 그러겠냐.”
“그러면 말입니까?”
“너는 모르나 본데. 박 중사 처음 왔을 때 부대 한 번 뒤집어졌잖아. 주임원사한테 실수를 한번 해가지고.”
“그렇습니까? 그런데 왜?”
“왜긴 왜겠어? 주임원사가 온갖 방법으로 괴롭히니까. 어쩔 수 없어서 저러는 거지.”
“그럼 다른 부대로 전출 보내달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딴 부대로 전출 가면 해결이 되냐? 그리고 박 중사도 주임원사 덕분에 좋은 보직으로 빠지고······. 뭐 그러니 꾹 참고 있는 거지.”
김경석 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는 제 마누라가 저런 꼴을 당하고 있다면 엄청 짜증 날 것 같습니다.”
“그럼 그것을 왜 박 중사에게 뭐라고 그래. 저런 짓을 하고 있는 주임원사에게 뭐라고 해야지. 아후, 나도 진짜 이 부대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어.”
“이 상사님 가실 때 저도 함께······.”
“야이씨! 너 같이 뺀질거리는 녀석을 왜 데리고 가.”
“이 상사님······.”
“징그러워. 어서 작업이나 하자.”
“네에.”
박지영 중사는 화장실로 가서 손과 얼굴을 씻고 거울을 봤다.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한 후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리고 화장실을 나가 주임원사 사무실로 갔다. 그 앞에서 다시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가슴 쪽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녹음기 기능을 활성화시킨 후 도로 그곳에 넣었다. 그러면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영아, 할 수 있어. 후우······. 할 수 있어.”
몇 번 심호흡을 했다.
사실 박지영 중사는 함승희 중위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박지영 중사는 함승희 중위와 딱히 친하지도 않았다. 장교와 부사관이라는 사이가 알게 모르게 거리감을 만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사이이기에 함승희 중위가 하는 말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박 중사. 함 중위닙니다.
“아, 네. 함 중위님. 어쩐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뉴스 보셨죠?
“뉴스 말입니까?”
-그래요. 사실 성 군기 때문에 전수조사가 실시될 겁니다.
“그걸 왜······.”
-으음······. 사실 자체 조사를 조금 진행했는데요. 박 중사가 이곳 부대에 온 후 힘든 일을 겪었다고 해서 말이죠.
“아, 그건······. 그때 다 끝난 걸로 압니다.”
-아뇨. 아직 안 끝났습니다. 전수조사가 실시되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겁니다. 그래서 저희가 자체적으로 재조사를 통해 정리 중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아아······. 그때도 별일 없이 그냥 끝났지 말입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전 부대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주임원사는 이 건 말고도 걸릴 것이 많아요.
“정말요?”
-그래요. 그러니 도움을 줬으면 좋겠네요. 같은 여자로서 이런 일이 있다는 자체가 너무 가슴이 아파요.
만약 함승희 중위가 여자 부사관들과 친하고 군 생활 잘하고 그런 스타일이었다면 절대 얘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소문이 돌고 돌아 결국 방대철 주임원사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미 예전에 한 번 겪었던 일이다.
처음 왔을 때 도움을 줬던 부사관 언니가 있었다. 당시 힘든 일을 전부 얘기했는데 그 얘기가 고스란히 방대철 주임원사 귀에 들어갔다.
그때 엄청난 배신감이 들었다. 그 이후로 군 생활이 더욱 힘들어졌다. 게다가 그렇게 털어놨던 여자는 주변 눈치가 보이자 결혼하고 나서 전역을 해버렸다. 말 그대로 혼자 내빼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