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95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9)
“작전과에 저희끼리만 있으니 그러는 거죠.”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작전장교라는 사람이 말이야. 그런 얘기를 함부로 누설해서야 되겠나.”
홍민우 소령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홍민우 소령의 말은 우리 작전과 내부에서 끝내야지, 자꾸 외부로 흘리지 말라는 농담 같은 말이었다.
“죄송합니다. 작전장교로서 주의가 부족했습니다.”
“그래. 앞으로 말조심하고. 대대장님 육본에 안 가더라도 임기가 거의 끝나가잖아. 아마 다른 부대로 옮겨 가실지도 몰라.”
“그럼 과장님께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같이 옮기시는 겁니까?”
“왜? 내가 갔으면 좋겠어?”
“아닙니다. 같이 계속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재식 대위의 말에 홍민우 소령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나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우리 대대장님 따라서 옮겨 다닐 거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요즘에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일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네.”
홍민우 소령이 한쪽 책상에 앉아 있는 김윤식 중위를 봤다.
“김 중위.”
“네. 과장님.”
“윤태민 소위 건에 대한 조사 자료 잘 보관해 놔.”
“윤 소위 건 말입니까? 그 건은 이미 처리가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처리가 되었더라도 우리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처리를 했는지에 대한 자료가 있어야 할 것 아니야. 윤 소위 건 처리되었다고 해서 그냥 둬? 나중에 따지고 들면 그때는 어떻게 하려고?”
“네, 알겠습니다.”
김윤식 중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홍민우 소령의 시선이 이번에는 그 옆자리에 있는 함승희 중위에게 향했다.
“그리고 함 중위.”
“네. 과장님.”
작전과의 유일한 여성 장교인 함승희 중위였다. 그녀 역시 제법 강단 있어 보였다.
“자네는 누구 좀 만나봐야 할 것 같은데······.”
“네. 누굴 만납니까?”
그녀의 물음에 홍민우 소령이 다이어리를 열어 확인했다.
“한 명은 지금 우리 대대에 있고, 다른 한 명은 없어.”
“네?”
“일단 한 명은 박지영 중사라고······ 자네 혹시 아나?”
“박 중사. 네. 알고 있습니다. 결혼식 때 저도 갔었습니다.”
“맞다. 박 중사 결혼했지.”
“네네.”
“박지영 중사가 대대장님 부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추행 사건이 있었거든.”
“그랬습니까?”
함승희 중위도 처음 들어 보는 얘기였다. 그녀 역시 이곳에 온 지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았다.
“함 중위는 모르나?”
“저는 이곳 대대에 온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 참 그렇지. 아무튼 피의자로 지목된 사람이 주임원사야. 일단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어. 결혼을 했으니까,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네.”
함승희 중위가 다이어리에 적어갔다. 홍민우 소령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본인은 덮고 가려고 해도 전수조사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들춰질 수밖에 없는 것이거든.”
“네.”
“기왕이면 우리들도 미리 자료 조사를 해 둬야 나중에 일을 시끄럽지 않게 처리할 수 있잖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최윤희 하사라고 있어. 지금은 전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윤희 하사······.”
“그래.”
“인사과에서 확인을 해보든지 해서 인적사항 확인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해봐.”
“네. 알겠습니다.”
함승희 중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이어리에 적었다. 가만히 듣던 이재식 대위가 물었다.
“최윤희 하사의 피의자는 누굽니까?”
홍민우 소령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거기도 주임원사.”
“하아······. 대단하시네. 그 소문이 맞았나 봅니다.”
“소문? 무슨 소문?”
“모르셨습니까?”
“말 돌리지 말고. 제대로 말해봐.”
“괜히 불똥이 튀지는 않을지······.”
“뭐야. 말해봐.”
홍민우 소령이 재촉했다. 이재식 대위는 잠깐 고민을 하더니 말했다.
“주임원사님 주특기가 젊은 여자 부사관들을 후리는 거랍니다.”
“정말? 누가 그래?”
“누가 그러는 것이 아니라. 회식할 때마다 좌우로 의자왕 놀이하시는 거로 말이 많지 말입니다.”
“그래? 이 양반이 정말 미쳤나. 나잇살도 그렇게 처먹고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그런데 지금까지 별일 없는 거야?”
“아시지 않습니까. 주임원사입니다. 게다가 술 먹고 실수했다고 말을 해버리니······. 또한 보직 이동할 때 추천서를 써주는 것도 잊지 않고 말입니다. 아무래도 주임원사 눈 밖에 나면 그다지 좋지는 않죠.”
“와, 이 인간이 도대체 부대에 오래 있으면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홍민우 소령이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이재식 대위에게 말했다.
“이 대위.”
“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자네가 주임원사 뒤를 좀 캐봐야겠어.”
“네에?”
이재식 대위의 눈이 커졌다.
“제가 말입니까? 하아······.”
이재식 대위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나름 마당발이지 않나. 슬쩍 한번 뒤를 파봐. 아니면 내가 할까?”
“······알겠습니다.”
이재식 대위가 마지못해 승낙했다.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네. 과장님.”
“자, 그럼 이제 움직여보자고.”
홍민우 소령의 지시에 각자 빠르게 움직였다. 그 시각 방대철 주임원사는 오상진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방대철 주임원사는 오상진을 만났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오상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오, 4중대장님. 좋은 거 드시는지 얼굴이 매우 좋아 보입니다.”
“주임원사도 참······ 제가 좋은 것을 먹을 리가 있겠어요. 골칫거리였던 사람이 없어서 마음이 좀 편안한 것뿐이죠.”
“하하, 그래요. 그건 그렇고 새로운 2소대장은 언제 온다고 합니까?”
“그러게요. 저도 언제 올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네요.”
“그렇군요. 유 하사가 당분간 고생을 좀 하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내가 따로 2소대를 챙기고 있어요. 그리고 1소대장이 함께 관리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아, 그보다······. 1소대장 말입니다.”
“네.”
“원래 그렇게 위아래가 없는 겁니까?”
“네에?”
그 말에 오상진의 얼굴이 처음으로 살짝 찌푸려졌다.
“1소대장이 위아래가 없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죠? 그럴 1소대장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까지 겪은 사람들 중에서 윗사람에게 잘하고,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오상진은 당연히 1소대장을 두둔했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바로 손을 흔들었다.
“에이. 아니던데요. 내가 어제 잠깐 중대장실에 들어왔다고 난리, 난리 그 난리를 피우는데······.”
방대철 주임원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말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일을 보고로 듣고 한마디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자신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만약 여기서 김진수 1소대장을 챙기면 같은 육사 출신이니 뭐나, 아무리 그래도 자신은 주임원사인데 존중이 없다느니 그런 말들을 내뱉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면 자기가 짬에서 이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 방법이든 좋은 것은 아니지만 오상진은 항상 정도를 걸어왔다.
“주임원사요.”
“네?”
“원래 말입니다. 주인 없는 방에 그렇게 무작정 들어가고 그러십니까?”
“아니, 또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 우리 사이에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저희 사이가 어떤 사이입니까?”
“네?”
방대철 주임원사가 처음으로 당황했는지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주임원사와 저, 어떤 사이냐고 물었습니다.”
“······.”
방대철 주임원사는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오상진이 확실하게 정의를 내려줬다.
“난 대위에 중대장입니다. 특히나 4중대는 대대에 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는 독립중대입니다. 독립중대 안에서 모든 책임은 제가 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제 방 안에는 온갖 보안 문서들이 많겠죠.”
“······네?”
“그런데 허락도 없이 제 방을 뒤지면 어떻게 합니까? 그건 저에 대한 실례입니다. 아니, 엄청난 무례죠. 아닙니까?”
“······.”
“게다가 그 보안 문건을 보고 유출이 되면 누가 책임을 지죠?”
“에헤이. 아무리 제가 그래도 짬이 몇 년인데 중요한 문서인지 아닌지 다 알고 있죠. 그리고 그걸 함부로 유출하겠습니까? 그렇게 절 봤다면 조금 서운합니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바로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만에 하나를 말하는 겁니다. 애당초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하셔야죠. 주임원사까지 달았으면서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시지 않을 텐데요. 내가 어제 듣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대대장님께 보고를 해야 하나, 아니면 연대장님께 보고를 해야 하나 심각하게 지금 고민 중입니다.”
“아니, 무슨 그런 일을 가지고 보고까지 하고 그러십니까. 내가 실수를 한 것 가지고 말입니다.”
“방금 말씀하셨네요. 실수했다고······. 막말로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죠. 좋아요, 반대로 물어보죠. 제가 주임원사님 방에 무조건 들어가서 이것저것 서류를 살펴보고 뒤지고 그러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무슨 얘기가 그런 쪽으로 흘러갑니까. 알았어요, 알았어. 내가 미안합니다. 사과했으니까, 됐죠?”
방대철 주임원사는 오상진을 노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이 새끼.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네. 아무튼 까다로워······.’
하지만 오상진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아무튼 어제 일에 대해서는 1소대장에게 사과하십시오.”
“네? 무슨 1소대장에게······.”
“어제 1소대장에게 소리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따지고 보면 1소대장이 주임원사님보다 상사입니다. 아무리 짬이 높다고 해도 군대는 계급입니다. 그걸 모르시지는 않죠. 어제 주임원사의 행동은 상명하복을 어긴 명령 불복종입니다.”
“네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상명하복을 어긴 명령 불복종이라니요? 무슨 그런 말입니까?”
“제가 하나하나 짚어 드려요? 첫째 상명하복이란 윗사람의 명령에 아랫사람이 따르지 않은 것을 뜻합니다. 분명 어제 1소대장이 정중하게 내 방에서 나가라고 했죠.”
“······.”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오상진이 강한 눈빛으로 물었다. 방대철 주임원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런데 주임원사는 그 말을 듣지도 않았죠. 둘째 명령 불복종. 분명 1소대장이 강한 어조로 명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임 원사는 듣지 않았습니다. 이는 항명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하, 항명죄······. 이봐요. 중대장님. 너무 말이 심하지 않습니까.”
“말이 심해요? 정말 그런 겁니까? 아니면 주임원사는 이곳이 어디인지 잊으신 겁니까? 그것도 아니면 주임원사가 너무 오랫동안 군 생활을 해서 계급에 대해서 잊으신 겁니까?”
“네?”
“중위와 주임원사 중 계급이 어느 쪽이 높습니까?”
“······.”
“두 계급 중에 명령권자가 누구냐 말입니다.”
오상진은 따박따박 원리를 가지고 묻고 따지고 들었다. 그러자 방대철 주임원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후우······. 알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여기서 그만 끝내도록 하죠.”
“사과하세요.”
“방금 사과하지 않았습니까.”
“저 말고, 1소대장에게 말입니다.”
“······.”
“못하십니까?”
“중대장님. 그만 여기서 끝내시죠. 정말 이러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