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7)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93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7)
김진수 1소대장이 일단 정중하게 얘기를 했다.
“네? 방금 뭐라고요?”
방대철 주임원사가 인상을 썼다.
“일단 나가 달라는 말씀입니다.”
“방금 내가 하는 말 못 들었습니까?”
“중대장님 지금 사단에 계셔서 오늘 늦게 오신다고 제가 분명 말해드렸는데요.”
김진수 1소대장도 지지 않고 말했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가 지금 몰라서 그래요?”
“정 궁금하면 직접 연락하시면 되잖아요. 내가 주임원사 부하입니까? 부하에요. 왜 나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어요.”
김진수 1소대장도 참지 못했는지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그리고 왜 주인 없는 방에 계속 계세요. 빨리 나오세요.”
“와아······.”
방대철 주임원사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김진수 1소대장을 보며 말했다.
“1소대장님. 아니, 김 중위요. 진짜 나에게 이러깁니까?”
“주임원사님이나 제발 예의 좀 지키시죠. 따지고 보면 제가 주임원사님보다 상관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 말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
“아. 김 중위님이 지금 절 계급으로 누르시겠다?”
“제가 처음부터 그랬습니까? 정중히 부탁을 했습니다. 그걸 거부한 것은 주임원사죠. 그리고 지금 주임원사의 행동을 보면 이제 그래야 할 것 같네요.”
“······.”
김진수 1소대장의 말에 방대철 주임원사가 그를 노려봤다. 김진수 1소대장 역시 똑바로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방대철 주임원사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나참, 어이가 없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전화 한 통화만 하고 나갈 테니 그만 나가봐요.”
“빨리 나오세요.”
김진수 1소대장도 일단 여기까지만 했다. 어쨌거나 주임원사와 싸워 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것쯤은 자신도 알고 있다. 하지만 자꾸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는 것도 알았다.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김진수 1소대장이 행정실 쪽으로 갔다.
그사이 방대철 주임원사는 소파에 앉아 머리를 굴렸다. 왜 오상진이 사단에 갔는지 생각했다.
“사단이라······. 설마 헌병대에 직접 보고를 하려고 그러나? 아무리 절차를 무시하는 인간이라지만 그건 아니겠지.”
방대철 주임원사는 괜히 불안해진 마음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휴대폰을 지잉 하고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이정명 중사였다.
“나다.”
-주임원사님 어디십니까?
“왜?”
-보고 드릴 것이 있는데 자리에 안 계시지 않아서 말입니다. 바쁘시면 제가 다음에 오겠습니다.
“무슨 일인데? 나 지금 4중대에 있다.”
-4중대 말씀입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방대철 주임원사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 이 중사.”
-네.
“자네 아까 오전에 최대성을 봤다고 그랬잖아.”
-네. 그랬죠.
“최대성 씨 그냥 왔어?”
-그냥요? 그냥 왔죠.
“아니, 뭔가 들고 왔다거나······.”
-아! 무슨 상자를 들고 갔습니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상자? 확실해?”
-네. 확실합니다.
“상자면 어느 정도였지?”
-으음······. 큰 라면 박스 정도였습니다.
“라면 박스? 알았어. 끊어.”
방대철 주임원사가 황급히 전화를 끊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 주변을 뒤졌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없네? 설마 가져갔나?”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김진수 1소대장이 들어왔다.
“주임원사.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김진수 1소대장의 목소리가 강하게 들려왔다. 순간 당황한 방대철 주임원사가 말을 더듬었다.
“아, 1소대장······. 그, 그게 말입니다. 내가 찾을 것이 있어서 말이죠.”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희 중대장님 방입니다. 허락도 없이 그렇게 뒤지면 어떻게 합니까!”
김진수 1소대장이 강하게 말했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지금 당장 나가십시오. 아니면 바로 대대에 보고 올리겠습니다.”
김진수 1소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그러면서도 눈을 빠르게 굴리며 확인했다.
“빨리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김진수 1소대장은 방대철 주임원사의 등을 떠밀었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억울하다는 듯 소리를 질렀지만 김진수 1소대장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 시각 오상진은 사단에 올라가 임규태 헌병대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오 대위는 아주 그냥 나 부려먹을 줄만 알지? 연락도 제대로 안 해주고.”
“헌병대대장님. 전에 같이 술 먹었지 않습니까.”
“이 사람아. 그건 내가 겨우 조르고 졸라서 겨우 먹은 거 아니야? 내가 살다 살다 자네처럼 만나기 어려운 후배는 처음이네.”
“죄송합니다. 그보다 지난번 전수조사 진행된다고 하던데 그거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아, 그거······.”
임규태 헌병대대장이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일단 협의체를 만들어서 진행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아마 나도 거기에 참여할 것 같다.”
“대대장님께서 말입니까?”
“어. 아무튼 위에서 나를 꼭 찍어서 합류하라고 하더라고.”
“어우. 잘되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일 때문에 왔는데······.”
“자네 설마 제보할 것이 있어서 찾아온 것인가?”
“네.”
오상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임규태 헌병대대장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말했다.
“뭔데? 말해봐.”
“저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건은 3년 전 겁니다.”
“3년 전?”
“네. 그때 안 좋은 일로 성추행을 당해서 군대를 떠난 여자 부사관이 있는데 현재는 실어증으로 말을 못 한다고 합니다.”
“이런······. 그래서? 조사는 어떻게 진행이 되었지?”
임규태 헌병대대장은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그게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말입니다. 거의 덮어버린 모양입니다.”
“아이고······. 아무튼 그때는 여러 가지가 문제지만 연대가 제일 큰 문제야. 아니지, 연대장님이 문제야. 그 양반도 만날 위에 줄 댈 생각만 하고. 연대와 부대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만날 골프만 치러 다니고······.”
임규태 헌병대대장은 연신 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저게 증거야?”
“네.”
“일단 알았어. 피해자는 누군데?”
“최윤희라고 당시에는 하사였습니다.”
“최윤희 하사······.”
임규태 헌병대대장이 자신의 다이어리에 적었다.
“가해자는?”
“가해자는, 제가 보기에 당시에 최윤희 하사에게 호감을 품고 어느 정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그중 직접적인 원인 제공은 아무래도 주임원사 같습니다.”
“주임원사? 설마 3대대 주임원사?”
“네.”
“오호, 그 양반이 또 이렇게 걸리네.”
임규태 헌병대대장이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을 본 오상진이 물었다.
“네?”
“아니야. 그보다 대대 주임원사가 이 일에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오상진은 들었던 얘기를 적당히 전했다. 그러자 임규태 헌병대대장이 코웃음을 쳤다.
“어, 그런 인간들 많아. 며느리 삼겠다는 둥, 딸 같다는 둥 하며 접근해서는 자기 사리사욕을 챙기는 놈들 말이야.”
“그렇습니까?”
“내가 헌병대에서 하루 이틀 일한 것도 아니고. 그런 인간들 볼 때마다 치가 떨린다. 아무튼 군 생활 하면서 그렇게 아랫도리를 관리를 못 해서야······.”
임규태 헌병대대장이 혀를 쯧쯧 찼다. 그러면서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그래. 이것은 그냥 별도로 조사하면 되는 거지?”
“네. 아무래도 부대 전수조사 때 언급을 하기에는 시간도 지났고. 또 내부적으로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아서 말입니다.”
“잘했어. 덕분에 우리도 실적 좀 쌓고 좋네.”
“그렇습니까.”
“그래. 솔직히 말해 전수조사를 한다고 위원회를 설치하면 모든 공은 그쪽으로 가버리잖아. 그런데 자네가 이렇듯 헌병대에 직접 가지고 오니 우리 실적 챙기고 좋은 거지.”
“아, 또 그렇게 되는 겁니까?”
“물론 거기서도 고생을 하겠지만 거기서 일한다고 해서 내 실적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다 윗분들이 가져가겠지. 그래도 오 대위 덕분에 나도 한 건 하게 생겼네.”
“그러시면 잘 좀 조사해 주십시오. 이거 많이 억울한 사건 같습니다.”
“알았어. 그리고 우리도 조만간 술 한잔해야지.”
“또 말입니까?”
“또는 무슨 또 야. 우리 지난번에 술 마신 지 한참이나 지났잖아.”
“한 달도 안 되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오 대위. 많이 약해졌네.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달린 것 같은데······.”
“그런 적 거의 없습니다. 자주 만나봐야 한 달에 한 번이죠.”
“자주 만나면 좋지. 그렇지 않아도 의원님이 전수조사 들어갈 수 있게 힘썼는데 뭐 없냐며 난리도 아니야. 자기가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술 한잔해야 한다며 말이야.”
“의원님께서 그러십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그럼 시간 한번 맞춰보겠습니다.”
“진즉에 그리 나와야지. 알았어. 조만간 술 한잔하자고.”
“네. 헌병대대장님.”
오상진이 환하게 웃었다.
임규태 헌병대대장은 오상진을 보내고 홀로 자신의 사무실에서 상자를 열어 확인했다. 상자 안에는 수많은 쪽지와 편지들, 그리고 일기로 보이는 다이어리가 들어가 있었다. 그중 편지 하나를 들어서 확인했다.
-애정하는 최 하사에게······.
출근하는 길에 아름답게 핀 코스모스를 봤네. 그것을 보자 그대, 최 하사가 떠오르더군. 봄날에 핀 코스모스는 아무래도 그대를 닮은 것 같아.
어쩜 이처럼 싱그럽고······.
그 부분을 읽다가 와락 덮어버리는 임규태 헌병대대장이었다.
“뭐야, 이 새끼는······.”
그러면서 다른 것들도 확인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대부분 최윤희에게 고백하는 내용과 한번 만나보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편지를 쓴 당사자들이 다 달랐다.
“도대체 몇 명이야. 하나, 둘, 셋······.”
임규태 헌병대대장이 센 숫자만 해도 5명이 넘었다.
“으음, 편지 내용은 이랬고······. 그럼 당사자는?”
임규태 헌병대대장의 시선이 다이어리로 향했다. 그것을 든 임규태 헌병대대장이 그 내용을 살폈다. 그러다가 중간쯤을 펼쳤다.
-○○○○년 ○○월 ○○일.
오늘은 병사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김 하사님하고 최 하사님이 쉬라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행정실에 있는 것보다는 이렇듯 몸을 쓰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런데 최 상사님이 나왔다. 최 상사님은 내 곁에 서서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피식 웃고는 내 엉덩이를 손으로 툭 치며 ‘열심히 해.’라고 말을 했다.
순간 흠칫하며 몸이 경직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 상사님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지나갔다. 거기에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던 나는 그냥 웃어야 했다.
오빠는 군 생활을 하면 몸이 힘들 거라고 했는데······. 차라리 몸이 힘들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부대에 출근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하아······.
이렇게 몇 개의 일기를 쭉 읽던 임규태 헌병대대장이 다이어리를 덮었다. 그러곤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혔다. 여자라고 주변에서 챙겨주고 관심을 주고 하는 것이 호의가 아니라 사심을 가지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기장 속 최윤희는 맹수들 사이에 갇힌 초식동물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