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6)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92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6)
“그런데 이 일기는 제출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그 당시 증거로 내려고 가져갔었죠. 그런데 군대에서 어떻게든 덮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증인을 내세워도 하루 만에 말을 바꿔 버리고······. 그때 이걸 냈으면 아마 이 일기도 그냥 소각되었거나 사라졌을 거예요. 그래서 내지 않았어요.”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이 답답하셨겠습니다.”
“사실 이걸 들고 청와대까지 찾아가려고 했어요. 내 딸자식의 억울한 얘기를 들어달라며 시위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최대성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보고 오상진이 말했다.
“아버님 고개 드십시오. 이건 아버님 잘못도 아니고 최윤희 씨 잘못도 아닙니다. 그러니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오상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최대성의 고개가 천천히 들려졌다.
“그래도 이걸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대단하십니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이었을 텐데······.”
“저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딸아이는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더라고요. 아마도 제 딸아이도······.”
최대성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오히려 화제를 전환했다.
“저는요. 딸아이가 좀 괜찮아지면 몰래 이것을 없애버릴 생각이었어요. 가지고 있어봐야 아픈 상처고······.”
“이해합니다. 그보다 최윤희 씨는 뭐라고 합니까?”
“어제 딸하고 얘기를 했어요. 사실 제 딸아이가 실어증에 걸려 말을 못합니다. 그래서 주로 대화는 글로 하는데······. 내 얘기를 듣고는 손을 꼭 잡아줬어요. 끝까지 싸워보겠다고 하니 눈물을 보이더라고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오상진이 바로 답했다. 다이어리를 도로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저, 그런데 어떻게 일을 진행하실 것인지 제가 좀 알아도 되겠습니까?”
최대성은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일단은 두 가지를 다 진행시킬 예정입니다.”
“두 가지라면······.”
“하나는 부대에 오는 조사관을 통해 조사를 할 예정입니다.”
“아······.”
“아마 제 생각에는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많은 은폐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네에, 아마 그렇겠죠. 바로 며칠 전 일도 아니고 3년 전에 일어난 일이니까요. 그걸 덮기로 했는데, 다시 들춘다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최대성도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렇죠. 그러니 그 조사는 그 조사대로 내버려 두고 저는 또 다른 루트를 통해 조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다른 루트요?”
그러자 오상진이 미소를 보였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그것까지는 제가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장담드릴 수는 있습니다. 절대 허투루 조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제 이름을 걸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상진의 확신에 찬 눈빛을 본 최대성이 바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중대장님을 믿겠습니다.”
“그리고 아마 조사가 시작되면 최윤희 씨가 많이 힘들 겁니다. 그러나 그 조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만 꼭 말씀해 주십시오. 그 조사를 통해서 최윤희 씨가 힘들어하고 낙담하는 모습을 보이면 저쪽에서는 방심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오상진은 이번에도 유선영 하사 사건처럼 두 가지의 방법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유선영 하사 때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먼저 말도 안 되는 조사를 받은 다음에 임규태 헌병대대장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대성이 건넨 증거를 가지고 임규태 헌병대대장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자체조사를 받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자체조사야 형식상으로 조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거기에 이 자료를 줘봐야 의미가 없다.
그래서 임규태 헌병대대장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최대성은 오상진의 얘기를 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상진이 하는 말 한마디에 믿음이 생겼다.
‘오늘 처음 봤지만 목소리에서 강한 믿음이 느껴지네. 그래. 그 당시 이렇듯 해주는 장교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최대성이 아쉬워했지만 지금이라도 나타나준 것에 매우 감사함을 느꼈다.
“저희는 그럼 중대장님만 믿고 버티면 되는 거죠?”
“정말 힘든 싸움이 될 겁니다. 최윤희 씨 가슴에 또 상처를 입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버텨주십시오. 버텨주시면 꼭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네. 그 말씀이라도 정말 감사합니다.”
최대성이 고개를 끄덕였고 빨개진 눈으로 중대장실을 나섰다.
점심을 먹은 방대철 주임원사는 4중대로 향했다. 위병소를 통과해 차에서 내리자 밖에서 볼일을 보던 부사관들이 일제히 인사를 했다.
“충성. 주임원사님. 어쩐 일이십니까?”
“어어. 하던 일 해. 잠깐 중대장님 좀 보러 왔으니까.”
“아, 네에······.”
방대철 주임원사는 곧장 중대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많이 좋지 않았다.
“주임원사님 표정이 좋지 않은데······.”
“무슨 일 있는 겁니까?”
“그거야 모르지.”
두 부사관이 얘기를 나누다가 하던 일을 서둘렀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중앙현관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틀었다. 그곳에는 바로 4중대 행정실이 있었다.
행정실 문이 열리더니 김진수 1소대장이 나왔다. 그는 방대철 주임원사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 주임원사님. 어쩐 일이십니까?”
“아, 1소대장님. 내가 4중대장님 좀 뵈러 왔습니다.”
“저희 중대장님요? 잠깐 자리 비우셨는데······.”
“그렇습니까? 언제 오십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점심을 무슨 멀리 먹으러 갔나?”
방대철 주임원사가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김진수 1소대장이 답했다.
“그건 잘 모르겠네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방대철 주임원사는 다시 중대장실로 향했다. 그 모습에 김진수 1소대장이 물었다.
“주임원사님.”
“네?”
“지금 중대장님 자리에 안 계신다고 했잖아요.”
“그래서요? 내가 중대장실에서 좀 기다리면 안 됩니까?”
“지금 중대장님이 자리에 안 계시니까요. 그러지 말고 행정실에서 기다리시는 건 어떻습니까?”
김진수 1소대장이 환한 미소로 말했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슬쩍 행정실을 보며 입을 열었다.
“1소대장님. 제가 행정실에 있으면 좀 불편해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래도 주인도 없는 방에 간다는 것이 더 그렇지 않습니까?”
방대철 주임원사는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김진수 1소대장을 빤히 바라봤다.
“1소대장님. 나 대대 주임원사입니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보는데요. 안 그렇습니까? 그리고 제가 어디 남입니까? 대대 주임원사입니다. 나 정도면 중대장실에서 기다려도 되는 겁니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조금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1소대장님 내가 정말 남입니까? 이해가 안 되네.”
방대철 주임원사가 김진수 1소대장을 몰아붙였다. 마치 김진수 1소대장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몸을 돌려 중대장실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갔다.
김진수 1소대장은 그런 방대철 주임원사를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김진수 1소대장은 잠깐 생각을 하더니 곧장 휴대폰을 꺼내 오상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오상진이 전화를 받았다.
-어, 그래. 1소대장. 왜?
“충성. 중대장님. 혹시 어디 계십니까?”
-나? 나 지금 사단에 올라와 있는데. 무슨 일 있어?
“지금 중대에 주임원사가 와 있습니다.”
-주임원사가? 으음······. 그래? 무슨 일이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나 오늘 늦을 것 같으니까. 다음에 보자고 그래.
“그런데 멋대로 중대장실에 들어가 있습니다.”
-뭐? 내 사무실에? 아무리 주임원사라고 해도 멋대로 내 사무실에 들어가도 되나. 주임원사 군 생활을 한두 해 한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네.
오상진은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냈다. 그러자 김진수 1소대장이 충성심이 발동되었다.
“중대장님. 그럼 제가 빨리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어. 그래.
“네. 알겠습니다.”
-내가 1소대장이 있어서 마음이 참 든든해.
“아닙니다.”
-알았어. 부탁해.
“네. 중대장님. 충성.”
김진수 1소대장이 전화를 끊고는 중대장실로 갔다. 그는 표정을 굳히고 기필코 내쫓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채 문을 확 열었다.
그런데 방대철 주임원사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마치 자기 방인 것처럼 편안한 자세였다.
“주임원사요.”
“아, 네.”
“방금 저희 중대장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그래요? 뭐랍니까?”
“오늘 늦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다음에 오시라고 합니다.”
“네? 아니, 도대체 중대장이 자리를 지키지 않고 어딜 돌아다니는 겁니까. 도대체 누구랑 점심을 먹기에 그래요.”
방대철 주임원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 마저 김진수 1소대장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희 중대장님이 누구랑 점심을 먹든 그걸 주임원사가 알아야 합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만······. 도대체 누굴 만나는 겁니까?”
“중대장님. 지금 사단에 가 계십니다.”
“지금 사단에 가 계신다고요?”
“네. 그래요.”
“사단에는 왜?”
그 순간 방대철 주임원사의 머릿속으로 뭔가가 확 지나갔다. 사실 방대철 주임원사는 최대성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슬쩍 간이나 보려고 왔다. 그런데 자신에게 말도 없이 사단으로 갈 줄은 몰랐다.
“사단은 왜 갔답니까?”
“그건 저도 모르죠. 중대장님이 저희에게까지 보고하고 움직이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럼 전화 좀 해서 알아봐 주시죠.”
“네?”
“무슨 일로 갔는지 알아봐 달란 말입니다.”
“방금 중대장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전화를 받지 못할 것 같으니까 연락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김진수 1소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어쨌든 오상진이 잘 부탁한다고 말을 했다. 여기서 괜히 전화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김진수 1소대장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
“1소대장. 내가 지금 궁금해서 그러지 않습니까. 그걸 하나 못 알아봐 줍니까?”
“그러니까. 제가 왜 그걸 해야 합니까? 중대장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현재 전화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입니다. 궁금하면 주임원사가 직접 연락해 보시든가요.”
“크흠······.”
방대철 주임원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연신 불쾌한 표정으로 콧김만 뿜어댔다.
물론 주임원사가 부사관들 중에서는 큰 어른이다. 하지만 계급으로 따지면 김진수 1소대장보다는 낮았다. 그래서 김진수 1소대장은 방대철 주임원사를 최대한 그를 존중했다.
이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상호존중이 필요하다. 이렇듯 막무가내로 찾아와 허락도 없이 중대장실로 들어가 저렇듯 앉아 있고 장교를 마치 부하직원 다루듯이 저런 식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일단 나와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