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91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5)
최윤희는 그 일이 있고 난 후 당연히 한용수가 자신을 떠날 줄 알았다. 하지만 한용수는 끝까지 자신의 곁에 있어줬다. 군복도 벗고,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지만 혼인신고는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한용수의 집안과는 연을 끊게 되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한용수는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더 미안해하고 있었다.
한용수도 나중에 좀 더 시간이 지났을 때 다시 부모님을 찾아가 허락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런 한용수를 알기에 최윤희도 남편을 믿고 지금껏 의지를 했던 것이다.
최윤희는 밤새 방에서 자료들을 정리했다. 자료를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예전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마음을 다잡으며 하나씩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료가 될 만한 것들을 따로 정리한 후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날은 우습게도 최윤희는 수면제를 먹지 않았는데도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최대성은 최윤희가 준 자료를 들고 4중대로 향했다.
원래 자신의 딸인 최윤희의 사건이 있던 그 이후로 11연대 3대대 쪽으로는 쳐다보지 않았다. 그때의 상처가 너무 커서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이사를 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만 오랫동안 장사를 해왔고, 이런저런 이해관계들로 인해 발이 묶여 있던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1연대 3대대와 다소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 조금의 위안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다시 3대대를 방문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끔찍하게만 여겨졌던 3대대가 이번에는 생각만큼 그렇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대가 아닌 따로 떨어진 4중대를 방문해서 그런 것 같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4중대 위병소에서 근무하던 병사가 있었다. 최대성을 막았다.
“아, 저어······. 최대성이라고 합니다. 중대장님과 약속을······.”
“아! 최대성님. 통보받았습니다. 이곳에 인적사항 적으시고요. 신분증을 제출해 주시겠습니까.”
“아, 네.”
최대성은 지갑을 꺼내 자신의 신분증을 줬다. 위병소 근무자가 확인을 한 후 말했다.
“네, 확인했습니다. 신분증은 나가실 때 찾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최대성이 환하게 웃으며 4중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4중대 건물을 보며 걸어갔다. 그와 동시에 4중대 위병소를 빠져나가는 차량 한 대가 있었다. 그 안에는 3대대 이정명 중사가 타고 있었다. 최대성이 박스를 들고 들어가는 모습을 본 후 고개를 갸웃했다.
“어? 민간인이 왜······.”
그러던 중 최대성의 얼굴을 확인한 이정명 중사.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그 순간 어떤 장면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 가만······. 맞아, 저 사람 최윤희 아버지잖아.”
그랬다. 이정명 중사는 방대철 주임원사의 멱살을 잡고 소리치던 그 사람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때 자신이 말리다가 최대성을 밀쳐서 쓰러졌었다. 그러자 자신을 고소하니 마니 난리를 피웠다.
“하아, 그때 진짜 장난 아니었지. 그런데 저 양반이 여긴 무슨 일이지? 게다가 웬 박스?”
이정명 중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위병소에 왔다.
“충성.”
“그래, 고생이 많다. 그런데 지금 들어간 민간인은 뭐냐.”
“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중대장님께서 직접 만나겠다고 하신 분입니다.”
“그래? 알았다.”
이정명 중사는 고개를 끄덕인 후 차를 몰고 3대대로 향했다.
한편, 방대철 주임원사는 박지영 여자 부사관을 불러서 얘기 중이었다.
“박 중사. 자주 좀 와. 얼굴 잊어버리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보다 요즘 어때?”
“네?”
“아니, 잘 지내고 있냐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남편이랑 주말부부라고 했던가?”
“네? 아, 네에······.”
“남편과는 자주 만나?”
“그렇죠.”
“어떻게 만나는데? 박 중사가 직접 가? 아니면 남편이 오나?”
“뭐, 제가 가기고 하도 남편이 오기도 하고 그렇죠.”
“어이구, 부부 금실이 좋은가 봐.”
“······.”
“그런데 어떻게 아직까지 애가 없데.”
“네?”
“박 중사 이제 애 가질 때 되었잖아. 나이가 지금 어떻게 되지?”
방대철 주임원사의 질문이 이어질수록 박지영 중사의 표정은 점점 안 좋아졌다.
“28살입니다.”
“아, 벌써 이십대 후반이야? 그럼 얼른 애를 가져야지. 시댁에서는 뭐라고 하지 않아?”
“시댁에서도 원하기는 하죠.”
박지영 중사는 불편한 얼굴로 일단 대답은 했다. 그렇지만 방대철 주임원사는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아니면 자주 만나지만 관계는 안 해?”
“네?”
박지영 중사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능글맞게 말했다.
“아니. 시댁에서도 원하고. 두 사람도 그렇게 원하는데 애를 가져야지. 무엇이 문제지? 내가 보기에 박 중사는 문제가 아닌 것 같고······. 남편 문제인 것 같은데······.”
방대철 주임원사가 얘기를 하면서 슬쩍 박지영 중사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 눈빛을 직접적으로 대하자 박지영 중사가 눈을 찔끔 감으며 말했다.
“주임원사님!”
“농담이야, 농담! 농담도 못 해? 자네가 너무 경직되어 있어서 그래. 어쨌든 자주 좀 찾아와. 이러다가 얼굴 잊어버리겠어. 그러다 내가 깜빡 잊고 박 중사를 힘든 보직으로 추천해 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방대철 주임원사가 보직에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추천이나 은근슬쩍 얘기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어느 정도 보직이동에 대해 참견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협박하며 박지영 중사를 압박했다. 불편한 표정을 짓던 박지영 중사가 멋쩍게 웃었다.
“아무튼 조만간 술 한잔하자고.”
“네? 수, 술 말씀입니까?”
박지영 중사가 깜짝 놀랐다. 그 모습에 방대철 주임원사가 인상을 썼다.
“뭘 놀라고 그래. 내가 뭘 어떻게 해? 아니면 잡아먹어? 내 역할은 어떻게 하면 우리 부사관들이 편안하게 군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또한 어떤 고충이 있는지 들어서 개선을 해주는 거잖아. 안 그래?”
“······네.”
“그래서 이런 딱딱한 곳에서 하는 것보다는 술 한잔하면서 분위기를 풀어가며 하는 것이 좋지 않아?”
“······.”
박지영 중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대답해 봐. 아니야?”
“아, 아닙니다.”
“그래, 박 중사. 속에 있는 얘기를 하기에는 술만 한 것이 또 없지. 안 그래?”
“······네.”
“그래, 그래. 다음에 시간 한번 잡자고. 그만 나가봐.”
박지영 중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때마침 이정명 중사가 방대철 주임원사 방에 들어왔다.
“어? 주임원사님 방금 나간 사람 박 중사 아닙니까?”
“왜?”
“아니, 박 중사가 무슨 일이랍니까?”
“이 중사. 자네는 또 뭐가 그리 궁금해서 물어봐.”
“그냥 궁금해서 말입니다.”
“쯧쯧쯧, 아무튼 이 중사 자네는 말이야.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가져. 신경 꺼!”
“네에.”
이정명 중사가 바로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방대철 주임원사가 물었다.
“그래서 왜 왔어?”
“맞아! 4중대에 들렀다가 다시 대대에 오는 길에 말입니다. 그 양반 봤습니다.”
“그 양반이라고 하면 내가 알아?”
“있지 않습니까. 최대성 씨!”
“최대성? 어디서 들어봤는데······.”
“주임원사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죠. 최윤희 아버지.”
순간 방대철 주임원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뭐? 그년 아버지?”
오상진은 최대성을 보자마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리 앉으세요. 아버님.”
“네.”
최대성이 자리에 앉으며 손에 든 상자를 테이블에 올렸다. 오상진은 환한 미소로 말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했습니다.”
“아닙니다.”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커피, 녹차가 있는데······.”
“아, 아닙니다. 저는 그냥 물 한 잔이면 됩니다.”
최대성이 두 손을 황급히 흔들었다. 오상진이 컵에 물을 따라서 최대성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최대성이 물을 한 모금 하고는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중대장님치고는 상당히 젊으신 것 같습니다.”
“아, 제가 좀 그렇죠. 제 동기들 보다는 진급이 빠른 편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다들 저를 너무 좋게 봐주셔서 소문에 과장이 좀 많습니다. 저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고, 군 생활 열심히 하고 싶은 군인입니다.”
그 말을 듣고 최대성이 살짝 당황했다. 지금까지 그래놓고 살짝 발을 빼려고 그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오상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제가 지금 몸 담고 있는 군대가 올바르고 정의로운 군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버님 오시게 했습니다. 먼저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상진의 시선이 상자로 향했다.
“혹시 이게 자료입니까?”
“아, 네에.”
“제가 지금 봐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당연히 그러라고 가져온 겁니다.”
최대성이 상자를 오상진에게 밀었다. 오상진이 상자를 열어 확인을 했다. 그 안에는 여성용 팬티도 있고, 여러 쪽지들, 그리고 다이어리도 보였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딸아이가 엄청 예뻤습니다. 연예인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로 며느리 삼겠다고 난리였습니다.”
“그렇습니까.”
“네네. 사실 딸아이가 부사관이 되겠다고 했을 때 저는 솔직히 말렸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긴 군인이고 대부분은 남자 아닙니까. 일 역시 험하고······. 그런데 사위 될 사람이 먼저 군 복무를 하고 있어서 더 강하게 말리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지금 와서는 너무 후회가 되네요.”
최대성의 말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진은 그러면서 몇 가지 쪽지들을 확인했다.
쪽지에는 대부분 ‘좋아한다, 사랑한다, 언제 한번 만나자, 너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이런 뻔한 말들의 편지들이 정말 많았다.
편지지와 필체들이 제각각 달랐다. 그만큼 여러 남자 부사관, 혹은 장교들에게까지 받았던 것이다.
오상진은 다이어리를 꺼내며 물었다.
“혹시 이건 일기입니까?”
“아, 네에. 딸아이가 일기를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는데······.”
“혹시 아버님은 보셨습니까?”
“예전에 그 사건이 있고 살짝 한번 봤어요. 그런데 끝까지는 보지 못했어요.”
최대성이 멋쩍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많은 죄책감과 미안함이 보였다. 오상진의 시선이 최윤희 다이어리로 향했다. 그것을 펼쳐 대충 훑어봤다.
언뜻 봐도 최윤희가 꼼꼼하게 잘 적어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일기 쓰는 것에 익숙해 있던 건지, 단순히 어떤 것을 했다는 식이 아니라, 오늘은 뭘 먹었고, 어떤 일을 했으며 누굴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눴고, 이러한 것들이 아주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이런 식으로 꾸준히 일기를 썼던 사람들은 증거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사회에서도 일기장이 증거로 채택된 판례가 있었다.
물론 군 법원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자세히, 세세하게 적고 몇 년 동안 꾸준히 쓴 일기장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