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90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4)
“방금 말이야. 새로 오신 4중대장님께 전화가 왔네.”
-······뭐라고 해요?
“그전에 우리끼리 먼저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
-저희가요? 무슨······.
“아직 윤희가 그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확답이 없지 않나. 아무리 말을 하지 않더라도 윤희 의사를 묻지도 않고 또다시 상처를 입으면 어떻게 하나. 그러다가 또다시 극단적인 생각을 하면······. 한 서방. 난 자신이 없네.”
-하아······. 아버님. 저도 그 생각을 못했습니다.
“나도 못했네. 나도! 그냥 당장 그것만 생각을 하고 말이지. 중대장님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어. 또 한 번 윤희에게 깊은 상처를 줄 뻔했단 말이지.”
-그러게요. 아버님. 정말 큰일이 날 뻔했어요.
“그러니. 이번에는 윤희의 의사를 확실하게 들은 후 조사를 진행하자고. 그 얘기를 듣는데 솔직히 부끄럽더라. 난 도대체 뭘 하고 지냈는지······.”
최대성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통화를 하는 한용수도 마찬가지였다.
-아버님. 그리 따지면 제가 더 한심하죠. 저 때문에 윤희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뭘 자네 때문에 그래. 자네도 다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인데······.”
-아닙니다. 이 모든 일이 저의 잘못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아버님과 윤희를 볼 면목이 없습니다.
“그런 소리 말게. 그렇게 따지면 내가 더 한심스럽네. 아버지로서 뭐 하나 해주지도 못하고 말이야.”
-그런 말씀 마세요. 아버님.
“어쨌든 오늘은 가게 일찍 정리하고 들어갈 것이네. 자네도 오늘만큼은 일찍 퇴근해서 들어와.”
-네. 아버님.
전화를 끊은 최대성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만약에 최윤희와 진지하게 얘기를 한 후 끝까지 가겠다고 한다면 이제 두 번 다시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최대성과 한용수, 그리고 최윤희 이렇게 세 사람은 오랜만에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식탁 위로 부스터와 고기 불판이 올라가고 그 위로 생삼겹살이 올라갔다.
“이렇게 앉아서 우리 다 같이 삼겹살을 먹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러게요. 아버님. 우리 앞으로도 자주 이렇게 삼겹살 구워 먹어요.”
“그래. 그러자꾸나.”
한용수과 최대성은 서로 오래전부터 입을 맞춰 온 듯이 주고받고를 참 잘했다. 그런 와중에도 한용수는 슬쩍 최윤희를 봤다. 최윤희 역시 표정이 밝았다.
지금까지는 식당 일이 바빠서 식사는 간단하게 차려서 먹는 편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이렇듯 차려 먹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보였다. 덕분에 모두가 오랜만에 힐링하는 기분이었다.
“여보도 이거 먹어.”
한용수가 잘 구워진 삼겹살을 아내 최윤희에게 건넸다. 그녀는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최윤희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한용수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삼겹살을 다 구워 먹고 식탁 위를 치웠다. 한용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커피는 내가 탈게.”
세 잔의 커피를 타서 전했다. 그사이 최윤희는 과일을 깎아서 가져왔다. 과일과 함께 커피를 마시던 그때 최대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윤희야.”
“······?”
최윤희과 최대성을 바라봤다. 여전히 말은 못했지만 눈빛으로 답을 보냈다.
“오늘 너하고 긴히 논의할 것이 있는데······. 어떻게 할까? 말로 하는 것이 불편하니 글을 써서라도 얘기를 해줄래?”
최대성이 조심스럽게 묻자 최윤희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 한용수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한용수가 환하게 미소를 보였다.
“아버님이 하실 말씀이 있으시대.”
최윤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갔다. 그곳에서 노트와 볼펜을 들고 나왔다. 최윤희가 자리에 앉자 최대성이 입을 열었다.
“일단 먼저 미안하다, 윤희야.”
“?”
최윤희는 바로 노트에 물음표를 그렸다. 최대성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시간이 지나면 네 상처가 아물 거라 생각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있고 하니 말이다. 사실 이제 와 뭘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으니까. 너도 그렇고 우리 가족 모두 그 일을 잊고, 벗어나려 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좋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너무 내 생각만 했던 것 같구나. 미안하다, 내 딸······.”
최대성의 얘기를 들은 최윤희는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밥 잘 먹고 이런 얘기를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최윤희는 곧바로 노트에 글을 적었다.
-아빠. 그런 얘기라면 안 할래.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
최대성이 그 글을 보고 입을 열었다.
“아니. 그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너도 뉴스 봤지? 부대에서 전수조사를 한다는 구나. 그래서 내가 한 서방이랑 같이 알아봤어. 다시 조사를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최윤희는 일어나던 것을 멈추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한용수가 최윤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여보. 아니, 윤희야. 미안해. 좀 더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나도 너무 내 생각만 했어. 너는 이렇듯 매일 힘든데 그냥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 그냥 네가 옆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 내 할 도리는 다하고 있는 것이라 여겼어. 정말 미안해······.”
한용수는 슬픈 눈으로 진심을 다해 사과를 했다. 최윤희 역시 애써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빠르게 가로저었다.
그녀 역시 한용수가 없었다면 진짜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몰랐다. 하물며 한용수니까, 말도 못 하는 자신을 데리고 같이 살지 다른 남자였다면 진즉에 질려서 도망을 쳤을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최대성이 입을 열었다.
“김태호 상사랑 통화를 했다. 새로운 중대장이 좋은 사람이더구나. 또 얼마 전에 그 중대에서 너랑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해. 그때 중대장이 나서서 담당자를 처벌했다고 하더라. 그냥 처벌한 것도 아니야. 뒷배가 어마어마한 친구를 처벌했다고 해. 그렇지, 한 서방?”
“네. 윤태민 소위라고······. 자기도 몇 번 얘기 들었지. 그 친구에 관한 것. 내가 김 상사님 만나고 오는 날이면 항상 얘기해 줬잖아.”
한용수의 말에 최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외할아버지가 준장이야. 그러니 기고만장하고 지 잘난 맛에 살고 그래서 김 상사님이 죽으려고 하더라고요. 그냥 군복 벗고 싶다면서······. 그런데 새로 온 중대장님이 얄짤 없이 쳐버린 거지.”
최윤희가 다시 최대성을 바라봤다. 최대성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애비가 중대장님과 통화를 했다. 도와줄 수 있냐고. 중대장님이 김 상사님에게 대충 얘기를 들었다고 하더라. 도와줄 수는 있는데······. 중대장님께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해. 재조사를 들어가면 제일 힘든 사람이 윤희 네가 될 거라고. 그래서 이 사건을 재조사에 들어가기 전에 꼭 네 의사를 물어보라고 하더라. 그 얘기를 듣고 있는데 이 애비가 반성을 많이 했다. 애비가 되어서 나이만 먹었지 우리 딸이 힘들 것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어. 네 의사가 제일 중요하고 그런데······.”
최윤희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한용수가 옆에서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그렇지만 최대성 역시 이런 자신의 옆을 지켜준 고마운 존재였다.
“그래서 애비는 네 뜻을 물어보고 싶구나. 만약에 네가 어떻게든 진실을 밟히고 싶다면 애비는 모든 것을 다 걸어서라도 끝까지 싸워볼 생각이다.”
옆에 있던 한용수도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여보. 지난번에는 당신이 힘든 것도 있었지만 나도 힘들고······. 빨리 현실도피를 하고 싶어서 그런 못난 결정을 내렸는데. 이제는 아니야. 이제는 진짜로 당신의 평생 한 내가 어떻게든 풀어주려고 노력할 거야.”
한용수가 진심을 다해 말했다. 그러자 최윤희가 그런 한용수의 손을 잡았다. 반대 손으로 이번에는 최대성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걸로 되었다.
최대성은 그런 최윤희의 의지를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힘든 싸움이 될 거야. 예전의 네 상처를 헤집을지도 몰라. 그래도 우리 딸. 이겨낼 거지?”
최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함께 할 거예요. 아빠.’
최윤희는 눈빛으로 강하게 말했다. 최대성 역시 그 눈빛을 보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아버지가 내일 당장 중대장을 만나러 가마. 그리고 혹시 예전에 가지고 있던 자료들······. 아직 있니?”
최윤희가 노트에 ‘창고’라고 적었다. 최대성이 그 글자를 보고 말했다.
“이참에 오늘 우리 창고 좀 정리하자. 중대장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하는데 우리도 제대로 된 증거를 보여줘야지. 그때는 그냥 내놔봐야 봐줄 사람도 없었다지만, 이번엔 제대로 확실하게 보여주자.”
그 말에 최윤희가 단단히 결심을 했다. 그렇게 세 사람이 일어나 창고로 갔다. 그곳에서 커다란 상자를 확인했다.
3년 전 창고로 들어갔던 상자가 그 사건 이후 처음으로 나온 것이다. 그 상자 안에는 별의별 것이 다 있었다. 여러 남자 부사관들이 추행하듯이 던진 쪽지들과 편지들. 예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며 썼던 일기들. 그 외 흔적들.
사실 군대를 나오면서 이것을 모두 불태우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했던 얘기들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증거가! 정확한 증거를 가지고 와서 얘기를 하십시오. 정황증거나, 일반적인 것으로는 증거가 될 수 없다니까요.
그때 최윤희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증거들이 있지만 그것을 지금 내놔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불태운다는 것은 자신이 당했던 것이 너무 억울하고 한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최윤희는 다짐을 했다. 언제고 방대철 주임원사가 애지중지 아낀다는 자식의 결혼식 때 모두 폭로할 마음을 먹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한용수가 앞으로 나섰다.
“여보, 이리 줘. 내가 꺼낼게.”
최윤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히 이 안에는 한용수에게 보여주기도 민망할 것들이 많았다.
물론 어차피 세상에 공개될 내용이지만 지금은 자신의 남편이 된 한용수에게 바로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한용수도 그런 최윤희의 마음을 눈치챘다.
“괜찮아. 아니면 내가 뭐가 들었는지는 안 볼게. 그냥 옮겨만 줄 거야. 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설마 이런 걸로 당신을 오해하고 그러진 않아.”
한용수는 늘 이런 식이었다.
처음에 최윤희가 한용수를 좋다고 할 때는 거리를 뒀다. 또 어리게만 봤다. 그러나 최윤희의 진심을 확인한 후부터는 지금까지 늘 한결같았다.
최윤희가 부사관에 지원을 하려고 할 때도 걱정이 많았다. 군이라는 폐쇄적인 집단이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으니 말이다. 자신이 근무하는 부대에 티오가 생긴 것이긴 했지만 걱정이 앞섰었다.
어쨌든 최윤희는 한용수와 함께 군인으로 생활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