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89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3)
“아, 네······.”
“그런데 뉴스 때문에 아마 얘기가 이렇게 흘러간 것 같습니다. 갑자기 저에게 최 하사 아버님이 전화가 와서는 중대장님 얘기를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바로 중대장님께 연결을 해드리는 것이 좀 그랬습니다. 어쨌든 중대장님은 이 사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계셔서 말이죠.”
김태호 상사는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 딴에는 머리를 쓴다고, 만약에 조사에 들어가게 된다면 저보다는 유 하사가 비슷한 일을 겪은 당사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유 하사에게 조심히 얘기를 했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최 하사를 도와줄 수 있냐고 말입니다. 그랬던 건데 유 하사가 아무래도 중대장님께서 많이 의지하다 보니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세한 것은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일단은 방대철 주임원사로 인해서 여자 부사관 하나가 두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일이다.
그리고 이 사안이면 전수조사 때 보고가 되어서 재조사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한번 최윤희 씨 아버님과 통화를 해봐도 되겠습니까?”
“괜찮긴 한데······. 중대장님께서는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마 위에서 엄청 싫어할 텐데 말입니다.”
오상진이 히죽 웃었다.
“하하하, 제가 그런 것을 신경 쓸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만약 그런 걸로 눈치를 봤으면 이렇게까지 사고를 치지 않았겠죠. 내가 못 들었다면 모르겠지만 알게 된 이상 대한민국 군인 중 한 사람으로서, 또한 비록 군복은 벗었지만 최 하사의 군 동료로서 도울 수 있으면 돕고 싶습니다.”
“중대장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오히려 제가 부끄럽습니다. 저도 그 당시 이렇게 나서서야 했는데······. 뭘 그렇게 제 몸 사리겠다고 그랬는지 후회되고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뭘 그런 것을 가지고 그러십니까. 저도 스스로 대단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행보관님 입장이었다면 아마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오상진은 지금이 인생 1회차였고, 먹고 살기 바빴다면 오지랖 넓게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내 일이 아니라는 듯 넘겼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 그렇게 살았었고 말이다.
로또에 미쳐 살다가 정신 차린 이후로 제대로 군 생활을 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의롭고 올바르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회귀를 하고 난 후에 예전처럼 살지 말자는 다짐하며 많은 것이 바뀌고 있을 뿐이었다.
대신에 요즘 자신의 행동을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한마디로 대담성이다. 예전이라면 못 보고 넘어갈 것을 이제는 그것이 눈에 보였다.
아니, 참지 못하고 끼어들어 올바르게 바꾸려고 한다. 진급을 하면서 좀 더 책임감이 생기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사건도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이 어쨌든 유선영 하사도 자신의 도움으로 무사할 수 있었고, 또 이 일로 부대 전체 전수조사까지 이루어졌다.
그런 상태에서 최윤희 아버지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연락해 보겠습니다. 전화번호 주실 수 있습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김태호 상사의 표정이 매우 밝아졌다.
“네. 알겠습니다.”
김태호 상사는 곧바로 전화번호를 오상진 휴대폰 문자로 보내줬다.
점심을 먹고 오상진은 자신의 사무실로 왔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그곳에는 최윤희 아버님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후우······.”
숨을 크게 내쉰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 나이 지긋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는 이번에 새로 4중대에 부임한 오상진 대위입니다. 혹시 최윤희 하사······ 아버님 되십니까?”
-아, 네네. 안녕하십니까. 중대장님.
“네. 일단 우리 중대 행보관님으로부터 최 하사에 관한 얘기는 들었습니다. 저에게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오상진은 이 얘기를 꺼내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그래도 아직은 아버님 역시도 상처를 가지고 있는 분이기 때문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한숨과 함께 얘기가 들려왔다.
-후우, 그것이 말이죠······.
오상진이 바로 얘기를 했다. 아버님이 얘기를 하는 데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게 말이다.
“최윤희 하사의 일은 어느 정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니 편안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최대성의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들으셨다니 아시겠지만 저희 딸이 아픕니다.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있고요. 아빠가 되어서 딸자식 상처 입은 것도 모르고 있다가 일 치르고 나서 알게 되어서······. 딸자식을 볼 면목도 없고······.
“아버님. 그게 어떻게 아버님 잘못이겠습니까. 군 조직이 군인들을 보호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이고 아닙니다. 이렇게라도 얘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희 사위로부터 얘기를 듣고 좋은 중대장님이시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인가? 뉴스에서 전수조사 얘기가 나왔지 않습니까.
“네네. 그렇죠.”
-그 뉴스를 제 딸아이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제 딸아이가 잊기를 바라고 시간이 해결해 주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 딸아이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입을 닫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치료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고······. 그런 와중에 전수조사를 한다는 뉴스를 보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걸 봤는데 아버지로서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든 제 딸아이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이렇게 연락을 할 방도를 찾게 된 것입니다. 물론 중대장님 입장에서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이렇듯 나서주시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11연대에서 일어난 일이지 않아요. 어떻게든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게 말씀 좀 해주면 안 되겠습니까?
오상진은 최대성 아버님의 긴 얘기를 말없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얘기를 했다.
“아버님. 저도 부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유감이라 생각하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또 이런 진상조사라는 것이 지금껏 군대에서 쉬쉬하고 덮었던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 하사가 원하면 얼마든지 이 사건을 재조사할 수 있게 건의해 보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전에 아버님.”
-네.
“정말 최 하사가 이 조사를 원하고 있는지 한 번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그게 무슨······.
“아버님 만약 재조사에 들어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최 하사도 다시 와서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예전에 있었던 기록들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릅니다. 그것으로 조사가 제대로 될 리는 없지 않습니까.”
오상진의 말에 최대성도 이해가 되었다.
-아, 그렇죠.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와 관련된 사건을 누가 알고 있는지, 또한 누가 증언을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들을 솔직히 말씀드리면 군대에서 일일이 해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전국의 모든 부대에 전수조사가 들어가다 보면 인력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조사관들도 대충대충 형식적인 조사만 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사할 만한 그런 근거가 있는 사건에 집중하지 않겠습니까?”
-네,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 일단은 최 하사하고 얘기를 잘해보십시오. 최 하사의 의지가 확고하고 또 확실하다 싶으면 부대에 한번 찾아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오실 때 가지고 계신 자료도 함께 들고 와주시면 더 좋고요. 그러면 제가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오상진은 최윤희 사건만 들으면 당연히 돕고 싶다.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말이다. 유선영 하사도 어떻게 보면 최윤희가 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유선영 하사 때문에 조용히 넘어갔지만 황하나 하사도 주변의 부사관들이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것에 걱정이 많았다.
만약 최윤희가 지금의 시점에서 군 생활을 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오상진은 최선을 다해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부임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고 이미 사건이 3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그 사건에 대한 자료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또한 오상진이 직접 나서서 해결할 권한도 없다. 오상진은 4중대장이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오상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임규태 헌병대 대장을 통해서 이 사건이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정도였다.
만약 그 루트를 통해 부대 내에서 절차를 받지 않고 사건을 진행시키려면 임규태 중령에게 뭔가 확실한 증거나 무언가를 쥐여줘야 한다.
단순히 최윤희가 안타깝다는 이유만으로 임규태 중령에게 나서 달라고 하는 부담을 줄 수는 없었다. 그것은 정의감이 아니라 무책임한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최윤희가 이 사건을 바로 잡으려는 의지가 있는지. 그런 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사실 최윤희 건을 끄집어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건을 덮은 방대철 주임원사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게다가 대대장과 작전과장은 오상진과 사이가 좋지 않다.
만약 이 사건이 아무 증거 없이 재조사된다고 했을 때 높은 확률로 덮거나 쓸데없이 일을 다시 키웠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된다면 최윤희만 두 번 상처 입게 되는 일이 된다. 오상진은 그런 것에 괘념치 않고 넘어간다고 쳐도 말이다.
또 조사 과정에서 어떤 조사관을 만나는지에 따라 더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앞서 유선영 하사도 먼저 나온 헌병대 조사관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대충 일을 덮겠다는 의도로 유선영 하사를 꽃뱀으로 몰아갔다.
그런 일이 최윤희에게도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최윤희에 대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재수사를 원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일이 잘못되면 최윤희가 다시 한번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딸아이와 사위와 상의해 보겠습니다.
“네. 아버님. 충분히 상의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오상진이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잠깐 고민을 하던 오상진이 오후 업무에 돌입했다.
한편, 최대성도 전화를 끊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 자신의 딸의 생각도 들어보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진행시킨 것은 아닌지 말이다.
“후우······. 큰일 날 뻔했어. 내가 딸아이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어.”
그렇게 중얼거리던 최대성은 휴대폰을 들어 사위인 한용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아버님.
“지금 일하는 중인가?”
-네. 무슨 일이세요?
“통화는 가능해?”
-잠시만요.
한용수는 일하던 중에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잠시 후 한용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