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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957화 (957/1,018)

<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87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1)

한용수은 설사 오상진이 최윤희의 사건을 전략적으로, 아니면 정치적으로 이용을 하더라도 다시 한번 파헤쳐 주길 바랐다.

하지만 최대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딱히 승산도 없을뿐더러 잘못했다가 딸인 최윤희만 두 번 상처 입히는 꼴이 되는 것이었다.

“자네 마음은 잘 알겠네. 그런데······. 아니다. 찬찬히 생각을 좀 해보도록 하자.”

“네, 아버님.”

한용수는 그렇게 얘기가 끝났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저녁 챙그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방에 있던 최대성이 깜짝 놀라며 다급하게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최윤희가 물잔을 떨어뜨린 채 멍하니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윤희야. 괜찮아? 왜 그래? 왜 그러는데.”

최대성이 황급히 딸 최윤희를 살폈다. 그런데 최윤희는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왜 그래? TV에서 뭐가 나오는데······.”

최대성의 시선도 TV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최익현 의원과 박찬중 국방부 장관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자막이 떠 있었다.

<박찬중 국방부 장관 전 부대 성폭력 진상 조사 실시하도록 주문>

이런 자막이 떠 있었다.

“이게 뭐야?”

최대성은 그 뉴스를 보고 리모컨을 통해 다른 곳을 틀어 뉴스를 봤다.

“최익현 의원이 이번에 큰일을 하나 보네.”

최대성이 중얼거리며 슬쩍 최윤희를 바라봤다. 최윤희가 뚫어져라 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는 듯 말이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고 있는 최대성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하아, 윤희는 아직도 마음에 묻고 살고 있구나. 저 한이 오죽했으면 저럴까. 그런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힘들다는 이유로 포기해서는 안 되겠지. 그래, 뭐라도 해보자.’

최대성은 바로 뉴스를 끄고 최윤희를 진정시켰다.

“윤희야.”

“······.”

최윤희는 여전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를 조심스럽게 거실 소파에 앉혔다.

“진정하고. 딴생각 말고 안방에 들어가 쉬어.”

최윤희가 아버지 최대성을 올려다봤다. 최대성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곧 한 서방 올 시간 되었어. 저녁 준비해야지.”

그제야 최윤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마른 헝겊을 가져와 바닥에 뿌려진 물을 닦고는 다시 부엌으로 갔다. 그 모습을 찬찬히 보던 최대성이 자신의 방으로 갔다.

겉옷을 챙긴 최대성은 부엌에 있는 최윤희를 향해 말했다.

“윤희야. 아빠 잠깐 나갔다가 올 테니까. 한 서방이랑 밥 먼저 먹고 있어.”

최윤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어딜 가냐며 언제 오냐며 묻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는 다시 식사 준비를 했다. 잠깐 동안 그 모습을 보던 최대성이 몸을 돌려 현관으로 갔다.

현관을 나서며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한 서방 나네. 지금 어디인가?”

-네, 아버님. 거의 집에 도착했어요.

“잘됐네. 괜찮으면 문자로 김태호 상사 전화번호 좀 보내주게.”

-김 상사님요?

“그래. 지금 당장.”

-아, 네에.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최대성은 전화를 끊었다. 그는 비장한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잠시 후 문자가 왔다. 그 문자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혹시 김태호 상사님 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가 김태호 상사입니다. 누구시죠?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어······ 최윤희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최윤희······. 최 하사 말입니까? 최 하사 아버님?

“네. 맞습니다. 기억하시죠?”

-물론이죠. 당연히 기억납니다. 아버님, 잘 지내고 계시죠.

“네. 덕분에요. 그렇지 않아도 엊그제 우리 한 서방을 만났다고 들었어요.”

-네네, 아버님. 용수랑 술 한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것 때문에 연락을 한 것은 아니고. 한 서방에게 듣기로는 새로 오신 중대장님이 좀 남다르시다고 들었어요.”

-아, 네에. 그 얘기를 들으셨구나.

“혹시 말이에요.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

최대성이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곧바로 수화기 너머 김태호 상사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당연합니다.

“지금 그렇지 않아도 국방부에서 성폭력 관련해서 전수조사가 들어간다는 뉴스를 봤어요.”

-······.

“하아, 그냥 이제는 다 잊고 살려고 했는데······. 우리 윤희는 아직 못 잊었나 봅니다. 오늘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딸이 가지고 있는 한이······. 애비로서 그 한을 풀어줘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네요.”

-네, 아버님. 아버님 말씀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고요. 오늘 뉴스를 보고 제일 먼저 최 하사 생각이 났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용수를 만나서 얘기를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아버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중대장님하고 좀 만날 수 있습니까?”

-중대장님하고요?

“어렵겠습니까?”

-으음······. 그것보다는 아버님. 제가 유 하사 번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유 하사요? 그분은 누구죠?”

최대성은 의문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아, 유 하사는 이번 피해를 입은 하사입니다.

“아. 그래요. 그런데 그분 번호는 왜?”

-중대장님께서 부담스러워 하실 수 있었어요. 유 하사는 얼마 전 같은 일을 피해를 입었고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최 하사 일에 도움을 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조사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유 하사가 좀 나서주는 것이 도움이 좀 될 것입니다.

최대성이 얘기를 듣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김태호 상사는 사실 그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몇 년 전 그 사건으로부터 말이다. 그래서 조직적인 은폐에 김태호 상사도 침묵으로 가담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김태호 상사가 나선다는 것에 최윤희 사건이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유선영 하사는 군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만약에 최대성이 유선영 하사의 얘기를 듣고 도움을 청한 것이라면 그녀의 입장에서는 좀 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말이다.

“알겠어요.”

-아, 그전에 제가 유 하사에게 딸 얘기는 해놓겠습니다. 그러니 오늘 말고요. 괜찮으시다면 내일 아침에 전화를 주시죠.

“그래요. 알겠어요.”

최대성은 전화를 끊고 가만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다음 날 최대성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방문을 꼭 잠근 채 유선영 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대성은 매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실례가 많으십니다. 최대성이라고 합니다.”

-아, 네네. 말씀 들었습니다. 최윤희 하사님 아버님 되신다고······.

“혹시 말이에요. 어디까지 얘기를 들었어요?”

-자세한 얘기는 못 듣고 아버님께서 저에게 따로 하실 말씀이 있다고만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실까요?

그러자 최대성이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내게 딸이 하나 있어요. 그 딸이 지금 실어증에 걸려 있어요.”

-네? 설마 최 하사님께서요?

“그게 우리 딸이 3년 전까지만 해도 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최대성은 최윤희에 대해서 쭉 얘기를 했다. 대략 20여 분간 듣던 유선영 하사가 화를 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어떻게······. 나 좀 도와줄 수 있겠소?”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부대도 아니고 저희 부대에서 일어난 일이잖아요. 게다가 선배님일이신데······. 저도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유선영 하사가 다부지게 대답했다. 최대성의 표정이 밝아졌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렇다고 무리해서 나서 달라는 소리는 아니에요. 혹시라도 관련해서 전수조사 할 때 그때 얘기 들었다고 한 번만 얘기해 주세요. 그래서 우리 윤희 사건 재조사할 수 있게만 도와주십시오.”

-네. 걱정 마세요. 아버님. 제가 꼭 재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겠어요.

유선영 하사의 자신 있는 대답에 최대성은 연신 감사의 말을 전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네. 걱정 마시고 계세요.

“그래요.”

최대성이 전화를 끊었다.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바로 오상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김태호 상사는 4소대를 데리고 중대 고랑에 쌓인 낙엽을 파내고 있었다.

“야야, 빨리 썩은 낙엽들 파내라. 고랑 막히면 홍수 난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행보관님.”

“왜?”

“여기 막힌다고 홍수까지는 아닌데 말입니다.”

병장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김태호 상사가 버럭 했다.

“인마. 작은 구멍이 큰 구멍을 만드는 법이야. 안일하게 대처했다가 더 큰 일 나면 어떻게 해. 미리미리 대처하는 거지.”

“쳇, 그게 아니면서······. 괜히 병력들 놀게 하지 않으려고 일을 만들고 있으면서······.”

병장이 몸을 돌려 중얼거렸다. 김태호 상사가 흠칫했다.

“야, 너 뭐라고 했냐?”

“아닙니다. 아무 말도 안 했지 말입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작업 마무리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김태호 상사가 하나하나 작업을 지시 내리고 있을 때 행정병이 뛰어왔다.

“행보관님. 행보관님.”

“어, 왜?”

“지금 중대장님께서 찾으시지 말입니다.”

“중대장님께서?”

“네.”

“알았다.”

김태호 상사가 서둘러 중대장실로 걸어갔다. 그전에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야, 농땡이 부리지 말고. 내가 올 때까지 이 구역은 다 정리해 놔라.”

“알겠습니다.”

김태호 상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중대장실로 발길을 다시 돌렸다.

김태호 상사가 중대장실로 들어갔다.

“중대장님 저 찾으셨습니까.”

“아, 네. 앉으세요. 작업하시다가 오셨습니까?”

“네. 중대 뒤쪽 고랑에 썩은 낙엽이 잔뜩 쌓여 있어서 말입니다. 4소대 애들 데리고 치우고 있었습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닙니다. 미리미리 해둬야 고랑이 안 막히죠. 그것 말고도 몇 군데 초소도 수리해야 합니다.”

“네.”

“그보다 말입니다.”

“말씀하세요.”

“체육대회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애들 불만이 좀 많습니다.”

“체육대회라······. 저도 자세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대대에서 연기를 했는데 언제 다시 재개될지는 모릅니다.”

“하긴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렇죠. 헌병대에서 조사가 나왔는데 체육대회를 한다는 것도 좀 웃긴 일이죠.”

오상진이 씁쓸하게 말했다. 김태호 상사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이번 체육대회는 좀 힘들지 않을까요? 더욱 더 날씨가 추워지는데······.”

“그건 대대에서 알아서 하겠죠. 우린 대대에서 내려오는 명령에 따르면 될 겁니다.”

“네.”

김태호 상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진이 슬쩍 입을 열었다.

“혹시 뉴스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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