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1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85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19)
한용수는 대답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우리 김 상사님은 저를 그렇게 부르셔도 됩니다.”
“그래. 나도 시간 좀 줘라. 나도 너하고 한두 해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오래 군 생활을 했는데 하루 아침에 끊어지냐.”
“네.”
“야, 술 시키자.”
“좋습니다.”
김태호 상사는 치킨과 생맥주를 시켰다. 각자 500cc에 잔을 부딪치며 시원하게 마셨다. 그러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냐?”
“그냥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회사?”
“네. 그냥 자그마한 중소기업 연구원으로 있습니다.”
“오오. 연구원?”
“운이 좋았습니다.”
“하긴 자네는 군 시절부터 머리 하나는 똑똑했지. 잘됐다. 잘되었어.”
김태호 상사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에 한용수는 멋쩍은 미소로 답했다.
“그보다 김 상사님은 어때요?”
“나? 나야 뭐 요새는 살 만해.”
“지난번에는 군복을 벗느니 마느니 하셨잖아요. 요새는 괜찮나 봅니다.”
“그때가 언제 일인데······. 내가 지난번에 말했잖아. 새로운 중대장님 오셨다고.”
“아. 얘기는 들었습니다. 제법 잘나간다는······.”
“맞아. 우리 중대장님이 4중대를 많이 뜯어고쳤어.”
“네? 꼴통 중대를요?”
한용수가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김태호 상사가 피식 웃었다.
“뭐, 하루아침에 싹 다 고쳐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이 바뀌었다. 아, 그리고 내가 전에 말했던 윤태민 소위라고 기억하냐?”
“알죠. 김 상사님이 항상 재수 없다고 그러셨잖아요. 제가 김 상사님 얘기만 들어봐도 진짜 싸가지가 없긴 없는 녀석이었구나. 생각했죠.”
“그래, 그놈! 그 새끼 이번에 헌병대 끌려갔다.”
“네에? 헌병대요? 무슨 사고를 쳤는데요?”
“그냥 사고 정도가 아니야. 군복을 벗는 것은 물론이고, 불명예제대에 아마 군 깜빵에 들어갈 거야.”
“네에? 전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윤태민 소위 외할아버지가 신범규 준장님이라고. 그래서 그 빽이 장난 아니라고······.”
“맞아. 내가 그랬지.”
김태호 상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도 헌병대에 잡혀갔습니까? 아니, 도대체 누가 윤태민 소위를 날렸습니까?”
“우리 중대장님.”
“진짜요?”
한용수는 처음 부대에 왔을 때 김태호 상사를 보고 완전 맞선임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김태호 상사를 참 많이 따랐고, 그가 대대에 찍히고 4중대로 내려갔을 때도 한용수와도 잘 지내왔다.
3년 전 한용수가 불미스러운 일로 전역을 했을 때도 한 달에 한 번, 길면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만나서 술 한잔하면서 회포를 푸는 사이였다.
“내가 윤태민 그 녀석이 외부 물건 반입했다가 걸렸다는 얘기를 했나?”
“걸렸어요? 언제요?”
“아, 얘기를 안 했구나. 내가 너를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모양이구나.”
“말도 마세요. 얼마나 바쁜지······. 지난번에 생각 나십니까?”
“언제?”
“와, 제가 저번 달에 연락 드렸지 않습니까. 그때 바쁘다고 바로 전화를 끊고 연락도 없으셨지 않습니까. 나는 또 김 상사님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걱정하고 그랬죠.”
“걱정했어?”
“당연하죠. 그런데 부대 일 때문이었어요?”
“어. 그렇지. 그때 윤태민 그 녀석이 외부 물건 반입해 오다가 걸렸거든.”
“걸렸어요?”
“응. 내가 그 얘기는 했나?”
“네. 만날 윤 소위 그 새끼. 외부에서 물건 반입해 온다고. 중대장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데 중대장도 한 통속인 것 같다며. 저에게 울분을 토했지 않습니까.”
“내가? 울분을 토해?”
“안 그러셨습니까?”
“아닌데. 그런 적 없는데······.”
“그러셨습니다.”
“뭐, 어쨌든! 그 일을 우리 중대장님께서 밝혀냈잖아.”
“진짜요?”
“그래! 사실은 김호동 하사가 단서를 찾아오긴 했는데.”
“오오······. 김 하사가요? 그 꼴통이?”
“야, 꼴통 꼴통 하지 마라. 요즘에는 잘한다. 이제 곧 중사로 진급도 하는데.”
“헐. 그 녀석이 중사로 진급을 해요? 그런데 진급이 좀 늦긴 합니다.”
“몰라. 인사과에서 잘못했는지······. 아무튼 이제 진급한다.”
“뭐, 진급해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꼴통이라는 말은 김 상사님이 먼저 하셨는데요.”
“아, 그렇지. 뭐, 내가 그랬긴 했지만 요새는 빠릿빠릿하고 그래. 아무튼 아까 얘기를 계속하면.”
“네.”
“김호동 하사가 소주병을 찾은 거야.”
“오호. 소주병······.”
“소주병을 찾았으면 어떻게 되겠어? 어디서 들어왔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야.”
“그런 그 빈 소주병이 자연스럽게 윤태민에게 가겠네요.”
“어, 그렇지.”
한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에는요?”
“사실 나는 대충 넘어갈 줄 알았거든. 그런데 말이야. 우리 중대장님······. 와, 장난 아니더라. 뿌리 뽑게 다고 칼을 빼 들었는데 4중대를 발칵 뒤집어엎었지. 워낙에 드러난 일에다가 증거도 확실하니까. 대대장님도 아무 말 못 하더라.”
“대대장님까지요?”
“그렇다니까. 그래서 이참에 완전히 바꾸려고 엄청 노력하셨지.”
“와.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듣기론 중대장님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 이제 고작 몇 개월 됐나?”
“보통 이러면 대충 넘어가지 않아요?”
“내 말이. 내가 여태까지 수많은 중대장을 봐 왔는데 이번처럼 우리 중대장님은 처음이다. 칼을 빼 드는 데 거칠 것이 없어!”
“오호······.”
한용수가 생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김태호 상사가 바로 말했다.
“야, 혼자 마시냐?”
“아, 아닙니다. 목축이세요.”
“그래. 아직 여기서 끝이 아니야. 일단 한 모금 마시고 계속 얘기하자.”
김태호 상사는 벌컥벌컥 생맥주 500cc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곤 뒤를 향해 소리쳤다.
“사장님 여기 생맥 하나 더요.”
그렇게 소리를 치고는 다시 한용수를 보며 얘기를 늘어놓았다.
“일단 중대장님이 확실한 물증을 잡았어. 그런데 윤태민이 뒤에서 수를 쓰지 못하도록 아예 육본을 보내 버린 거야.”
“육본을요?”
“그래! 도대체 어떤 파워가 있기에 소위 한 명을 육본에 보낼 수 있는지.”
김태호 상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그런데 육본에 올라갔는데 다시 내려왔어요?”
한용수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태호 상사는 바로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 내가 말을 잘못했구나. 육본에 1주일 정도 파견을 보낸 거야.”
“아, 파견요. 그사이에 중대를 확 다 뒤집어 놓고요.”
“그래. 그런데 너 척하면 척이다.”
“에이. 김 상사님도. 제가 군대를 어디 한두 해 다녔습니까?”
“아무튼 그래서 윤태민이 된통 걸렸거든. 그 사건이 있고 난 후 윤태민 밑에 있던 이기상 하사 알지?”
“아, 그 뺀질이요?”
“그래. 내가 말했잖아. 그 녀석도 제법 도움을 줬거든.”
“어라? 정말요. 김 상사님 말로는 그 녀석은 절대 그럴 녀석처럼 안 보였는데요.”
“그런데 무슨 심경에 변화가 생겼는지. 아니면 윤태민에게 붙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생겼는지. 잽싸게 노선을 갈아 타버리더라.”
“아마 후자겠네요.”
“그래. 후자가 백 퍼 맞지.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살짝 언질을 해줬거든. 그렇게 윤태민 똥꼬 빨다가 한 번에 훅 간다고 말이야.”
“에이. 김 상사님이 얘기 했네.”
“뭐, 내 충고를 받아들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분위기가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 아무튼 이기상 하사 입장에서는 윤태민과 같이 못 있잖아. 어쨌거나 내부 배신자인데. 윤태민 같은 놈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서 이기상 하사의 보직을 옮겨주고 새로 부사관을 뽑았는데 여자 부사관이 왔네.”
그 말에 한용수의 눈빛이 대번에 바뀌었다.
“어? 그래요? 윤태민 여자라면 환장하지 않아요? 김 상사님 얘기 들어보면 그런 것 같던데.”
“맞아. 환장하지. 대대 여자 간부들 중에 윤태민을 안 거쳐간 여자가 없지.”
“으음······.”
“그래서 이번에 결정적인 큰 사건이 터진 거고.”
김태호 상사는 생맥주를 다시 한번 들이켰다. 반쯤 마시고 탁자에 내려놨다.
“크, 시원하다.”
후라이드 치킨 한 조각을 안주로 뜯어 먹은 후 슬쩍 한용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 김태호 상사의 눈빛을 읽은 한용수가 미소를 보였다.
“왜 그렇게 보세요? 설마 지난 쟤 사건과 이번 사건이 비슷해서 그래요?”
“······.”
“됐어요. 언제 적 얘기인데 그래요? 그냥 얘기하셔도 돼요.”
“크흠, 그래. 나 얘기한다.”
“네.”
“좋아. 여자 부사관이 왔어.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 우리 4중대로 배정되었어.”
“어떻게 2명이 들어와요?”
“나도 그것이 솔직히 의문이야. 어쨌든 그중 한 명이 윤태민 소대 부 소대장으로 갔어.”
“아, 그래요?”
“그렇지. 그런데 우리가 살짝 그 여자 부사관에게 언질은 했어.”
“언질요?”
“그래. 윤태민 조만간 보직해임 당하고 전출을 갈 거다.”
“아. 그 일이 보직해임 되면서 전출로 끝이 났어요?”
“어어. 그랬더니 둘 사이에 트러블이 있었던 모양이야. 그리고 환영식이 있었지. 그런데 이 여자 부사관이 술에 완전히 취해버린 거야. 그래서 같이 온 동기 여자 부사관에게 관사로 데려다줘라. 그렇게 말했거든.”
“그랬는데요.”
“윤태민이 또 어떻게 알고 그곳으로 차를 몰고 나타났네.”
“설마······.”
한용수가 눈을 매섭게 떴다.
“······차에 태운 거예요?”
“차에 태웠지.”
“그럼 같이 보냈던 그 여자 부사관은요?”
“걔는 또 회식이 중요하다며 다시 온 거야.”
“네에? 뭐지 그 애는?”
“뭐, 일이 벌어지려고 하니 별일이 다 있는 거지.”
“하긴 그렇긴 하겠네요. 그래서요?”
“윤태민 이 자식이 여자 부사관이 취했겠다. 평소에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겠다. 어떻게 하려고 하다가 추행을 했나 봐.”
“추행요?!”
“어, 가슴을 만졌다고 하더라고.”
“이야. 이 자식······.”
“하아, 처음에는 여자 부사관도 긴가민가했나 봐. 그런데 자신의 군복 단추가 풀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추궁을 했나 봐.”
“그랬더니요?”
“처음에는 미안하다고 하다가 중대장님에게 보고를 하고 난 후부터는 딱 잡아떼더라고. 그 이후 헌병대에서도 나왔잖아.”
“헌병대까지 나왔어요?”
“그래! 그리고······. 알잖아. 대대에서 어떻게 덮으려고 했는지.”
“그렇죠. 다른 것도 아니고 성 군기 위반으로 이슈가 되면 골치 아파지잖아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한용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김태호 상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 헌병대가 왔을 때는 대충 대충 조사를 하더라고 사건을 덮으려고 말이야.”
“어휴······. 군대는 아직도 그 모양 그 꼴이구만.”
한용수가 잔뜩 인상을 쓰며 맥주를 마셨다.
“어허. 또 혼자 먹는다.”
“아, 네에······.”
잔을 부딪친 후 김태호 상사도 마셨다. 그리고 맥주 잔을 탁자에 탁 하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랬는데 우리 중대장님이 증거를 딱 내놓더라고.”
“증거요? 어떻게요?”
“나는 몰랐는데 근처 돌아다니면서 CCTV? 블랙박스? 뭐였더라? 아무튼 그 비슷한 것을 찾은 모양이야.”
“영상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