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1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84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18)
그 말에 홍성율 중사가 바로 인상을 썼다.
“주임원사님. 저 손 씻었습니다. 요새 맘 잡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뭐? 확실해?”
“네. 안 그래도 윤 소위 사건 때문에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지 않습니까. 저도 그냥 제 일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홍성율 중사가 저렇게 말은 했지만 방대철 주임원사는 믿지 않았다. 그는 어쨌거나 부사관 사이에서는 여자에 환장한 놈으로 통하고 있었다.
또한 방대철 주임원사가 기억하기로 여자에 환장하는 놈이 몇 놈 있었다. 홍성율 중사는 거의 윤태민 소위와 동급이었다. 여자만 보면 환장하고 무조건 다가가서 집적대었다.
‘그런 녀석이 뭐 조용히 지내고 있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친다고 해라.’
방대철 주임원사가 속으로 생각한 후 말했다.
“뭐, 네 일만 한다니 다행이네. 그보다 오늘 신문 봤어?”
“네. 봤습니다.”
“그러니까. 너 조심하라고.”
“갑자기 왜 저에게 그러십니까?”
“부대 전수조사를 한다고 하면 그냥 조용히 넘어가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 각 부대 한 명씩 찍어 올리라고 하면 너 무사할 것 같냐?”
홍성율 중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와, 주임원사님 봐주십시오. 저 요새 맘 잡고 지내고 있는데 왜 그러십니까.”
“이 사람아. 요새 맘 잡고 지내면 어떻게 해. 평소에 맘 잡고 지내야지.”
홍성율 중사가 바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어쨌든 지나간 일입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리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제가 또 언제 그렇게까지 했습니까. 그냥 맘에 드는 여자부사관을 보면 차 한잔하자고 그러는 거죠.”
마지막 말을 할 때 홍성율 중사는 괜히 찔리는 것이 있는지 방대철 주임원사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네가 그냥 조용히 차만 마시고 넘어갔어? 아주 그냥 집요하게 들이대고 스토커 짓까지 했잖아.”
“네?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그냥 보고 싶으니까. 관사까지 찾아가는 것이고. 한 번만 만나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죠.”
“그게 인마, 스토커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아니긴······. 아무튼 너 만에 하나라도 이번 전수조사에서 너에 대한 것이 올라오면 나 커버 못 쳐준다. 알았어?”
“주임원사님. 지금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게 평소에 잘했어야지. 어쨌든 당분간은 나 죽었다고 생각하고 헛짓거리 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그만 나가서 일 봐.”
“넵!”
홍성율 중사가 시무룩한 얼굴로 나갔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일단 가장 문제가 될 것 같은 홍성율 중사의 입단속을 시켰다.
하지만 정작 사무실을 나온 홍성율 중사는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 전 자신에게 충고하는 방대철 주임원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발, 뭐야! 자기도 만날 헛짓거리 하면서 나한테 지랄이야.”
솔직히 방대철 주임원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식으로 굴었다. 하지만 홍성율 중사가 누구에게 이런 것을 배웠겠는가. 홍성율 중사가 부사관들이 집적대는 것은 바로 방대철 주임원사를 보고 배운 것이었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만날 상담을 핑계로 여자부사관들을 따로 사무실로 불러 딸 같아서 그래. 그러면서 손을 더듬고 만지고 또 회식 자리에서는 꼭 여자부사관을 옆자리에 앉혀 괜히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그랬다.
또한 싫다고 하는 여자부사관을 억지로 노래방까지 데리고 가서 괜히 브루스를 추며 별 지랄을 다 떨었다. 그 장본인이 바로 방대철 주임원사다. 그런데 자신에게 조심하라고 충고를 한다. 참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건드린 여자 부사관들도 한둘이 아니잖아. 내가 모를 것 같아?’
홍성율 중사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씩씩거렸다.
‘자기는 그렇게 지저분하게 놀아놓고. 심지어 가정도 있는 양반이 말이야. 나는 아직 미혼이잖아. 여자 친구도 없고. 그래서 좀 잘해보고 싶어서 그러는데······.’
홍성율 중사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뭐? 커버를 못 쳐줘? 에이 썩을······. 됐다고 그래. 나는 뭐 너 커버 쳐줄 줄 아냐.”
홍성율 중사가 투덜투덜거리며 복도를 걸어갔다.
그 시각 오상진도 4중대 간부들을 따로 불러서 얘기를 했다.
“다들 기사 봐서 알겠지만 조만간 군 차원에서 성폭력과 관련해서 전수조사를 실시한다. 혹시라도 중대장에게 할 얘기가 있다거나 필요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얘기 할 수 있도록 한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다음 주제로 넘어가자.”
오상진은 회의에서는 굳이 길게 얘기하지 않았다. 이 정도만 얘기해도 충분히 전달될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오상진이 4중대에 부임하는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그것을 수습하는데 성폭력과 관련된 것은 없을 것이라 여겼다.
설사 있더라도 그동안의 일들을 봐 왔을 간부들과 병사들이다. 충분히 자신을 믿고 얘기를 해줄 거라 믿었다.
“뭐. 별일 없겠지.”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박윤지 3소대장이 들어왔다. 오상진은 박윤지 3소대장을 보며 말했다.
“3소대장. 어서 와.”
“네.”
“앉아. 차라도 줄까?”
“아닙니다.”
“그래, 중대장에게 할 말 있어?”
오상진이 자리에 앉아 조용히 물었다. 박윤지 3소대장은 평소와 달리 약간 우물쭈물했다.
“왜 그래, 3소대장. 편안하게 말을 해. 괜찮아.”
“네. 중대장님. 아시겠지만 전 중대장하고······.”
오상진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그래. 그것은 대충 들어서 알고 있어. 그런데 그건 우리 3소대장이 원했던 일은 아니잖아.”
“네.”
“그래서 이번 전수조사를 할 때 그문제도 조사해 달라고 할까?”
“아닙니다. 그건 아니고······. 솔직히 그 당시에는 저도 전 중대장님께 많이 기대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와 그 일을 가지고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이 문제가, 전수조사가 될까 봐 그것이 걱정입니다.”
오상진이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3소대장은 말은 이제 그 문제를 더 이상 왈가불가하기 싫다. 그 뜻이지?”
“네. 중대장님. 저도 중대장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군 생활을 그만할까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 군 생활을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그 당시 제 부족한 선택 때문에 앞으로 군 생활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 그래.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 혹시라도 그 문제 가지고 얘기가 나오면 중대장이 최대한 막아볼 게. 3소대장은 걱정 말고 소대원들 관리 잘하고 있으면 돼. 알았지?”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성폭력과 관련해서 모두가 다 진실이 드러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박윤지 3소대장처럼 긁어 부스럼이 될까 무서운 사람도 적지 않았다.
오상진이 듣기로 이민식 대위가 박윤지 3소대장에게 직위를 앞세워 접근하고 그랬던 점이 있었다. 또한 윤태민 소위도 그것을 이용했고 말이다. 이래저래 박윤지 3소대장도 상처가 많은 여자였다. 그럼에도 스스로 이겨내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어쨌거나 윤태민 소위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처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민식 대위도 군복을 벗은 상태였다. 괜히 이 상황에서 과거의 일이 들춰질 경우 박윤지 3소대장만 힘들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다.
“으음······. 열심히 군 생활을 하려고 하는데 괜히 주홍글씨가 찍히지 않게, 또 새롭게 시작하려는 모습을 내가 지켜줘야지.”
오상진이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다시 업무를 보려는데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네에!”
오상진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천천히 문이 열리며 고개를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유선영 하사였다.
“어? 유 하사······.”
오상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지난번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또 다른 일이 벌어졌는지 걱정이 되었다.
“유 하사가 무슨 일이야?”
“중대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와서 앉아.”
자리에 앉히는 유선영 하사를 보는 오상진은 걱정이 되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 제 일은 아닙니다.”
“아냐? 다행이다.”
오상진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는 안도하며 미소를 보였다.
“중대장은 또 유 하사에게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걱정이 되었잖아.”
오상진의 진심 어린 말에 유선영 하사가 미소를 보였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오히려 중대장이 지난번에 더 신경을 못 써줘서 미안한데.”
“그런 말씀 마십시오. 중대장님 때문에 저 엄청 잘 견뎌냈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자네 문제가 아니면 무슨 일로 찾아왔어?”
오상진의 물음에 유선영 하사는 매우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에 말입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 그래서 통화는 했어?”
“네. 통화는 했는데 저를 좀 만났으면 한다고 합니다.”
“누가?”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3년 전에 이곳 3대대에서 근무한 최 하사 아버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최 하사? 최 하사가 누구지?”
유선영 하사도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오상진도 이곳 3대대 4중대장으로 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부대에 누가 근무를 했는지에 대해 모두 다 꿰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유선영 하사가 최 하사에 대해서 알아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행보관님께 물어봤습니다.”
“행보관? 어어, 그렇지. 행보관이라면 알고 있겠지.”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행보관이 뭐래?”
“그것이 말입니다. 부대에서 안 좋은 소문이 나서 다른 곳으로 전출이 되었다는 부사관이었습니다. 전출이 되고 난 후 얼마가지 않아 군복을 벗었다고 합니다.”
“그래? 안 좋은 소문? 그것이 뭔데?”
“행보관님께서는 그 말을 매우 조심스러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얘기를 듣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뭔데? 괜찮으니까. 말해봐.”
오상진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유선영 하사는 매우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다.
“주임원사님하고 무슨 일이 있었다고······.”
“주임원사?”
오상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윤태민 소위가 헌병대로 끌려간 그 날. 김태호 상사는 부대 근처 호프집에서 한용수를 만났다. 한용수는 최윤희의 남편이었고, 그 사건 당시에는 몰래 연애 중이었던 사이였다.
김태호 상사는 호프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발견한 한용수를 보고는 반갑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어, 용수야.”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한용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김 상사님 오랜만입니다.”
김태호 상사는 한용수 맞은편에 앉아 환한 얼굴로 물었다.
“잘 지냈어. 한 중사.”
“저야. 만날 똑같이 지내죠. 그보다 저를 언제까지 한 중사로 부르실 겁니까. 군 제대한 지가 언제인데 말이에요.”
“그래도 나이게는 평생 한 중사다. 왜? 한 중사라고 듣는 것이 싫어?”
“아니에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