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16)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82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16)
한소희가 오상진을 꽉 끌어안았다. 어느새 두 사람이 만난 지도 꽤 시간이 흘러왔다. 그러면서 서로 말도 놓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지내왔다.
단 한 번의 싸움도 있지 않았다. 그럴 일이 좀처럼 없었다고 봐야 했다. 워낙에 서로에게 잘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아마도 장거리를 연애를 해서일 것이다. 오랜만에 보면 좀 더 애틋한 사랑이 더욱 피어올랐다.
“참, 상진 씨.”
“네? 왜요?”
“평택에는 언제까지 있을 거예요?”
“왜요? 벌써 같이 있고 싶어요?”
“안 그렇다면 거짓말이죠. 서울에 있을 때도 상진 씨 얼굴 보기 힘들었는데 평택에 있으니 더 힘든 것 같아요.”
오상진은 약간 투정부리는 한소희를 더욱 강하게 안았다.
“미안해요. 내가 자주 서울에 올라오고 그래야 하는데······.”
“아니에요. 진급하려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렇죠. 군인은 다양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보직을 경험해 봐야 해요. 이런저런 일들을 알아야 진급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그래요.”
“그럼 상진 씨는 어디까지 진급할 생각이에요?”
“진급요?”
오상진의 눈빛이 깊어졌다. 예전에도 오상진과 한소희는 종종 이런 얘기를 해왔다. 한소희는 항상 오상진이 언제까지 군 생활을 할지 궁금했었다.
그러면서 한소희는 가끔 그런 생각도 했다. 오상진이 군 생활을 하지 않고 사회에 나와 뭘 해도 잘할 것 같다는 생각.
그렇다고 해도 오상진이 군 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상진의 의사와 뜻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오상진이 군 생활을 적당히 시기에 그만두고 자신과 함께 잘 지냈으면 했다.
같이 집에서, 같은 식탁에서, 같은 거실에서 그리고 같은 방에서 말이다. 그런 욕심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 한소희를 보며 오상진은 살짝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미안해요. 나도 군 생활에 큰 욕심은 없는데. 그래도 조금은 더 하고 싶어요.”
“뭘 미안해해요. 일이 잘 안되는 것도 아니고······. 상진 씨 진급도 빠른 편이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요. 내 걱정 말고 상진 씨 하고 싶은 만큼 군 생활 해요.”
오상진이 환하게 웃었다.
“역시 난 여자 친구 하나는 잘 둔 것 같다.”
“그걸 이제야 알았어요.”
그때 똑똑똑 문소리가 들려왔다. 오상진과 한소희는 안고 있다가 황급히 떨어졌다. 그러곤 한소희가 문이 있는 곳으로 갔다.
“엄마야?”
그러면서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한만식이었다.
“아빠?”
한소희가 눈을 크게 뜨며 한만식을 봤다. 오상진은 아빠라는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빠, 무슨 일이에요?”
“아, 아니······. 뭐 하나 싶어서 와 봤다.”
한소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빠. 이제 하다 하다 우리 뭐 하는지도 염탐해요?”
“이 녀석이 무슨 염탐이야. 그냥 오 서방 뭐 하나 해서.”
오상진이 바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버님. 저희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러자 한소희가 바로 고개를 돌려 오상진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이상하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뭐 별거 할 수도 있는 나이죠. 안 그래요, 아빠!”
“이 녀석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딸자식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냐. 게다가 식도 아직 올리지 않았고······. 부모님이 집에 있는데 그러면 쓰나.”
한만식이 따끔하게 훈계를 했다. 하지만 한소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와, 우리 아빠······. 이렇게 고지식한 분이셨구나.”
“뭐어?”
“아빠. 내 나이가 몇인데요. 그럼 손만 잡고 있어요?”
“말이 그렇다는 거다. 말이······.”
한만식은 한소희를 한번 노려보고는 옆에 서 있는 오상진을 봤다.
“자네 별일 없으면 바둑 한 판 어떤가?”
“아빠!”
한소희가 오상진 앞에 섰다.
“아까 엄마가 안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상진 씨를 불러요.”
“이놈아. 나도 오랜만에 오 서방 봤는데. 바둑이라도 같이 두면 좀 좋아?”
오상진은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한소희의 어깨를 잡고 한쪽으로 밀었다.
“네. 아버님. 당연히 괜찮죠.”
“거봐. 괜찮다고 하잖아. 천천히 내려와. 준비하고 있을 테니.”
“네, 아버님.”
한만식은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1층 거실로 내려갔다. 그런 한만식을 못 말리겠다는 듯 바라보는 한소희. 오상진은 그런 한소희를 보며 말했다.
“아버님께서 많이 심심하신가 봐요.”
“미안해요, 상진 씨.”
“전혀요.”
오상진이 미소를 보이며 1층 거실로 내려갔다. 한만식이 이미 거실 바닥에 바둑판을 깔아 놓고 앉아 있었다.
“아버님 벌써 준비하셨어요?”
“준비할 게 뭐 있나. 어험.”
오상진이 미소를 보이며 맞은편에 앉았다. 한만식이 백돌을 가지고 갔고, 오상진이 흑돌을 집었다.
“네, 지난번보다 바둑 좀 늘었나?”
“제가 기보를 보고 열심히 연습은 했는데요.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어험. 어디 한번 우리 오 서방 바둑 솜씨 좀 볼까?”
“네.”
그렇게 두 사람은 바둑을 뒀다. 한소희도 내려왔고 이선주와 함께 부엌으로 향했다. 차와 과일을 깎아 가지고 나왔다.
“어후, 조금도 못 참고 바둑을 둬요?”
“어허. 조용히 해봐.”
한만식은 이선주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둑판에 집중을 했다. 이선주가 오상진에게 말했다.
“오 서방.”
“네, 어머니.”
“봐주지 말고 확 이겨 버려!”
“아닙니다. 아버님의 기력이 세셔서 제가 못 이깁니다.”
이선주가 피식 웃었다.
“오 서방 자네. 슬슬 봐주면서 하는 것을 모를 줄 알고?”
그 말에 오상진이 당황했다. 슬쩍 시선을 한만식에게 향했다.
“어, 어머님. 저 바둑 못 둡니다.”
“그래, 알았으니까. 이겨! 이 양반을 확 이겨 버려.”
이선주는 한만식이 철딱서니 없이 느껴졌다. 처음 오상진을 얘기했을 때 시큰둥하게 반응할 때는 언제고 비싼 술도 사 오고 제법 능력도 있고 그러니 마치 진짜 사위처럼 보는 것이 웃겼다.
하지만 오상진은 한만식의 이런 행동이 싫지는 않았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과거에도 딱히 장인어른의 사랑은 받지 못했다.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한만식이 이렇듯 바둑으로 다가오려는 자체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날 오상진은 밤늦게까지 한만식과 바둑을 뒀다.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야 한소희와 함께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아빠는 진짜······.”
한소희는 시계를 보며 인상을 썼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저는 괜찮아요.”
“그게 아니라 오늘 나랑 있지도 못하고······.”
“아까 바둑 둘 때 계속 내 옆에 있었잖아요.”
“그거야······. 됐어요.”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항상 같이 있을 수 있잖아요.”
“칫!”
한소희가 살짝 토라졌지만 이내 오상진을 바라봤다.
“이제 서울 집으로 갈 거예요?”
“그래야죠. 오랜만에 우리 소희 씨 봤는데. 이제 소희 씨에게 시간을 투자해야죠. 이제 우리 집에 가요.”
오상진이 한소희의 손을 잡았다. 엄마가 있는 집이 아닌 오상진 만의 아파트로 두 사람이 갔다.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두 사람.
그 안에 오상진은 라디오를 틀었다. 주파수를 맞추자 노래가 아닌 뉴스가 흘러 나왔다.
-다음 소식입니다. 민국당 최익현 의원은 오늘 박찬중 국방부 장관을 만나 군내 성폭력 관련 대비책을 마련한다는 것에 뜻을 같이했습니다. 박찬중 국방부 장관은 국방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 부대에 걸쳐 실태조사에 들어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강운수 기자가 하겠습니다.
-네. 강운수 기자입니다. 저는 지금 국방부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 국방부 대변인은······.
오상진은 가만히 그 뉴스를 귀에 담았다. 최익현 의원이 이 일을 국방 위원회에서 다루겠다고 얘기를 했다. 그 말대로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조수석에 있던 한소희는 뉴스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 오상진을 보고 노래를 틀려던 손을 멈췄다. 덕분에 오상진은 기자의 보도를 끝까지 들을 수 있었다.
“이 뉴스 내용 상진 씨도 아는 얘기에요?”
“네. 지난번에 최 의원님 만나서 우리 부대 얘기를 말씀드렸거든요.”
“아, 부사관.”
“네. 그것 때문에 최 의원님이 이번에 전체적으로 그 일에 관련해 전수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 하셨어요. 바로 추진하신 것 같네요.”
“와. 최 의원님 대단하세요. 추진력 하나는······.”
한소희가 감탄했다. 오상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러니까요.”
“최 의원님 같은 분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데요.”
한소희가 흘러가듯 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오상진을 향해 물었다.
“이번에 최 의원님 대통령 선거에 나오신대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예 생각이 없으신 것 아닌 것 같은데, 당에서 대선 후보로 나올 분들이 많다 보니 고민을 좀 하시는 것 같아요.”
“으음, 저는 이번에 좀 젊은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만날 정치 많이 하는 사람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오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나저나 만약에 군대 전수조사하면 상진 씨 또 엄청 바빠지는 거 아니에요?”
“에이, 설마요. 나야 뭐 내 일만 하면 되는데요.”
오상진은 정말 별거 아니라고 얘기를 했다. 어차피 중대장으로서 자신이 할 일은 많이 않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모든 사건은 오상진을 향해 있었다.
운전을 하며 서울 집으로 향하는 오상진은 기분이 묘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쨌거나 이번 일도 그저 무사히 조용히 넘어가길 바랐다.
‘별일 없겠지. 이미 우리 중대는 다 끝났으니까.’
그러나 그건 오상진의 큰 착각이었다. 알게 모르게 사건의 중심이 오상진을 통해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이고 죽겠다.”
식탁에 앉은 방대철 원사가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자 아내인 김순자가 신경질적으로 국그릇을 탁 하고 내려놨다.
“그러게 나이도 있는데 술을 적당히 먹어야지. 그렇게 허구한 날 술을 먹고 다녀.”
방대철 주임원사가 김순자를 보며 인상을 썼다.
“거참 이 여편네가 아침 댓바람부터 또 잔소리네. 잔소리야. 이 사람아. 내가 술을 마시고 싶어서 마셔? 대대 주임원사고. 내가 부대에서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부대 안에선 내가 어머니나 다름없다고.”
“아이고, 그놈의 어머니 타령! 지겨워, 지겨워! 부성애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걸핏하면 어머니 타령이래.”
“여기서 부성애가 왜 나와. 아무튼 이놈의 여편네는 아주 그냥 남편 잔소리하는 낙으로 살지.”
“잔소리? 이게 잔소리야. 동네 사람들에게 다 물어봐. 허구한 날 술 처먹고 다니는 남편 술병 나지 말라고 해장국 끓여 주는 아내가 어디 있냐고.”
“그래. 그래. 알았다. 고맙다. 고마워. 됐냐? 됐어?”
부엌에서 한바탕 대화를 하던 그때 문이 열리며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으으으으······.”
장남 방철수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방대철 주임원사 한마디 했다.
“이놈아. 너는 좀 일찍 좀 일어나지. 늦게까지 뭐 하고 있다가 이제야 일어나.”
“아버지는 아침부터 왜 잔소리에요. 요즘 공부하느라 정신없어 죽겠는데.”
“뭐? 공부? 공부 같은 소리 한다. 네가 공부를 했어? 아니, 제대로 공부를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