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71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5)
이런 식의 말을 들으니 괜히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도 언짢았다. 그것 때문에 김현자가 많이 삐진 상태였다. 그런데 이제 와 조애령이 다시 국회의원 밀어주겠다고 하니 그녀도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언니 커피는 시켰어?”
“시켰어.”
“그런데 다 마신 거야?”
“아니. 다 되면 가져다주겠지.”
“언니도 참······. 진동벨 안 받아왔어?”
“아니······.”
그러면서 한쪽에 있는 진동벨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김현자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언니도 참······.”
진동벨은 벌써부터 울리고 있었다. 그것을 집어 든 김현자가 계산대로 가지고 갔다. 그리고 잠시 후 김현자가 커피 두 잔을 가지고 왔다.
“자. 언니.”
“이거 내가 계산한 거다.”
“알아, 알아. 그래서 내가 가져왔잖아. 솔직히 말해서 나 말고 언니에게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어이가 없다. 왜, 아까처럼 똥 씹은 표정으로 있지.”
“그거야. 언니가 단물 다 빠진 껌처럼 뱉으려고 했으니까. 그렇지.”
“야. 내가 언제 그랬니. 그리고 막말로 나는 뭐 땅 파서 장사하니? 돈이 막 땅에서 샘솟아? 나도 뭐 벌이가 괜찮아 널 밀어주고 하지.”
김현자가 바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언니 왜? 요새 벌이가 시원찮아? 힘들어요? 듣기론 요새 잘나간다고 하던데.”
“내가 잘 나간다는 소리는 누구에게 들었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다 누굴까? 다 언니랑 관계 있는 사람들 아니야. 그 사람들이 전부 다 하는 말이 언니 엄청 잘 나간다고 하던데요.”
조애령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잘 못 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사업적으로 문제가 없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생산성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익도 예전만 못하고 그걸 만회하려고 일을 자꾸만 키우다 보니 회사가 지나치게 규모가 커지고 인건비만 많이 나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큰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이에 한호푸드는 숙원 사업으로 선진마트 푸드코너에 입점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일이 잘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거기다가 자신들에게 까인 신순애 국밥집이 입점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여기서 신순애 국밥집이 입점을 해 버리면 여태껏 준비해온 한호푸드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어떻게든 신순애 국밥집을 떨쳐 내려야 했다.
“현자야. 솔직히 말해서 우리 요새 좀 힘들다.”
“뭐가? 무슨 일인데?”
“우리 선진마트에서 푸드코트 입점할 업체 공고 나와서 그거 준비하고 있었거든.”
“오오. 선진마트. 거기 들어가면 전국 선진마트에 다 들어가는 거야?”
“뭐, 당장은 아니지만 들어가기만 하면 늘리는 것이야. 어려운 것은 아니지.”
“하긴 그렇지. 그런데 그게 잘 안돼?”
“말도 마라. 다 된 밥에 코 빠뜨린다고 우리가 점찍어 놓은 국밥집이 있거든. 그런데 그 국밥집 사장이 무슨 욕심이 그리 많은지 이 제안을 해도 시큰둥, 저 제안을 해도 시큰둥한 거야.”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거기가 안 될 것 같아서 다른 업체를 알아보고 있었지. 그런데 뜬금없이 그 업체가 단독으로 선진마트하고 계약을 맺었대.”
“뭐? 그게 가능해?”
“그러니까. 분명 뭔가 있겠지. 동네 국밥집이 무슨 수로 거길 가겠니.”
“하긴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지.”
“그러니까. 아무튼 난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
“그래서 뭐? 언니하고 같이 가서 깽판이라도 쳐달라는 거야?”
조애령이 피식 웃었다.
“어때? 이제는 못 할 것 같아? 아니 3선 시 의원이라 창피해?”
만약 조애령이 국회의원 선거를 밀어주지 않으려고 했다면 김현자는 못 들은 거로 하겠다면 자리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김현자 입장에서는 현재 조애령을 도와야 할 상황이었다.
한호푸드가 잘되어야지 돈을 벌 것이고, 선거 자금을 지원받을 것이 아닌가. 그래야 그걸 가지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라도 하지.
그런데 이번 일로 한호푸드가 힘들어지면 당연히 조애령에게 지원을 받지 못한다. 그리되면 이곳저곳에다가 선거 자금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김현자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눈 딱 감고 이번 한 번만 도와주자. 그리고 선거 자금 받아내면 그게 이득이지.’
김현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애령을 보며 말했다.
“언니 가자!”
“응?”
“깽판 치자며.”
“너 괜찮겠냐?”
“언니! 나 김현자야.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악으로 깡으로 여기까지 왔잖아.”
“알지. 우리 현자.”
“가자. 내가 아주 개 박살을 내줄 테니까.”
김현자가 당당하게 일어나 몸을 돌렸다.
그 시각 최익현 의원은 모처럼 선진백화점에 들렀다. 모처럼 딸 최강희 사무실에 들러 차를 마셨다.
“아이고 죽겠다.”
최익현 의원은 소파에 몸을 거의 눕다시피 하며 곡소리를 냈다. 최강희가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어제 술 드셨어요?”
“그냥 도움받을 것이 있어서 의원들하고 한잔했다.”
“아빠. 이제 슬슬 건강 챙겨야 하지 않아요? 이러다가 대통령 되기 전에 술병부터 나시겠어요.”
“이놈의 녀석아. 악담을 해라. 아주!”
“말이 그렇다는 거죠. 아빠도 참······. 술도 못 마시는 분이 술을 그렇게 먹고 다니시니 말이에요.”
“너도 정치를 해봐라. 술을 안 마시고 다닐 수 있는지 말이야. 다 술이고, 친분이고, 인맥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정치 안 하는 건데.”
최익현 의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솔직히 최익현 의원은 정치권을 바꿀 생각으로 정치인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간 정치권은 녹록지 않았다.
그런데 이놈의 정치권이 서로 야합하고 짬짬이 하고 서로 주고받고 거래하고. 이러다 보니 대한민국이 발전이 되지 않았다.
최익현 의원은 처음에 정치를 하고 안 나가려고 했다. 막상 또 최익현 의원이 정치를 안 하겠다고 하니 이리저리 견제가 엄청 들어왔다. 덩달아 선진그룹을 쥐고 흔들려는 사람까지 나왔다.
그래서 최익현 의원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선거에 나서게 되었고 그렇게 2선 3선까지 오르고 이제는 대통령 후보로 언급이 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간에 퍼부은 알코올이 장난 아니었다.
그러나 체질 때문일까? 좀처럼 술은 늘지 않았다. 그것을 알고 있는 최강희이기에 걱정이 되었다.
“아빠. 해장은 하셨어요?”
“아침에 북엇국 좀 먹었다.”
“그런데도 안 풀려요?”
“하, 사흘 연속으로 먹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이놈아, 너는 이 애비에게 해장국 좀 끓여주고 그런 소리를 해.”
최익현 의원이 괜히 최강희를 보며 닦달했다. 최강희가 히죽 웃었다.
“아빠. 내 해장국 먹을 자신 있어요?”
“응?”
“자신 있냐고요.”
“······음. 그건 생각지 못했구나.”
최익현 의원이 시선을 돌려 눈을 감았다. 최강희가 그 모습을 보다가 눈을 반짝였다.
“맞다. 아빠! 국밥 좋아하시죠?”
“국밥? 좋아는 하는데 요새는 국밥이······. 제맛을 내는 곳이 없어.”
최강희가 씨익 웃었다.
“아빠. 내가 진짜 맛있는 국밥집을 알고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어차피 해장도 하셔야죠.”
“진짜 맛있는 국밥집? 그런데 네가 국밥을 먹어?”
“에이. 당연히 안 먹죠. 그런데 얼마 전에 푸드코너 입점 건으로 국밥집에 갔다가 뚝배기 한 그릇 뚝딱하고 나왔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최익현 의원이 깜짝 놀라며 최강희를 바라봤다.
“뭐라고? 네가? 입이 엄청 짧은 네가 말이야?”
최강희는 최익현 의원의 말에 그저 미소로 답했다. 그 미소를 본 최익현 의원이 진실임을 알았다.
“······진짜구나.”
사실 최강희는 입이 엄청 짧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끝까지 먹은 적이 없었다. 이건 엄마에게 배운 지식이었다. 자고로 여자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도 끝까지 먹는 것은 옳지 않다. 식탐을 부리는 것은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해. 그러니 항상 남겨라.
그래서 그 어릴 적부터 들어 온 최강희는 미슐랭 별 5개짜리 음식이 나와도 항상 남겼다. 얼마 전까지 동생인 최강호와 함께 후계자 경쟁을 해왔기 때문에 CEO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여자로서 얕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해 왔다.
하지만 동생인 최강호가 워낙에 후계자로서 자질을 보여줬기 때문에 최강희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선진 백화점만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런 이후에도 최강희는 식사 조절을 해왔다. 일이 바빠 운동을 할 수 없었기에 먹는 것을 줄여왔다. 그런 최강희가 평소 먹지도 않는 국밥을 한 그릇 뚝딱했다는 소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익현 의원이 절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최강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 거기가 어디인 줄 아세요?”
“네가 말도 안 해놓고선 어디인 줄 아냐고 물어봐.”
“혹시 상진 씨 어머님이 국밥집을 하는 것은 아시죠.”
“얘기를 들어 알고······ 너 설마 거기냐?”
“네. 예전에 강철이가 하도 맛있다고 노래를 불러서요. 그래서 한번 먹을까 말까 고민을 했거든요. 그런데 선진마트 푸드코너 입점 건으로 한호푸드에서 상진 씨 어머님 국밥집과 계약을 하려고 하더라고요.”
“그래? 그래서 계약이 된 거야?”
“아뇨. 그쪽 조건이 좀 그래서요. 한호푸드 알아보니 영세업체들 레시피만 쏙 빼먹고 자기들끼리 따로 브랜드 만들어서 팔고 그러더라고요.”
“그랬어? 아직도 그런 업체들이 있었어.”
최익현 의원이 움찔했다. 그는 오상진에 관한 일이라면 괜히 열부터 나곤 했다. 최강희가 바로 진정시켰다.
“열부터 내지 마시고요. 아무튼 좀 문제가 있었는데 당시에도 압력을 행사하려는지 공무원들이 와서는 좀 난리를 피운 모양이더라고요.”
“난리를 피워?”
최익현 의원의 눈빛이 차갑게 바뀌었다.
“네. 갑자기 위생 점검을 하지 않나. 뒤로 돈을 요구하지 않나. 때마침 제가 그때 그 자리에 있어서 해결했잖아요.”
“너 설마 아버지가 최익현 의원이라고 하고 해결했니?”
“아버지도 참······. 나를 뭐로 보고······. 그리고 아버지. 나도 인맥이 있고, 빽이 있어요. 선진 백화점 대표 최강희. 그렇게까지 약하지 않다니까요.”
“아이고 퍽이나······.”
“진짜라니까요. 아빠는 은근히 날 무시하더라.”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으니까 하는 소리야.”
“알아요. 알아, 나도.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어디 가서 선진그룹 딸이라고 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딱 봐도 억지로 온 것 같거든요. 얘기 들어보니 그날은 정식 영업일도 아니라고 해요.”
“그래서?”
“상진 씨 어머님이 틈틈이 자선활동을 하시더라고요. 근처 노인정이나 밥 못 먹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쉬는 날 국밥을 대접하더라고요. 그것도 무료로 말이에요. 그런데 그때 찾아와서는 그 난리를 피우는 거예요. 그날은 돈도 안 받고 오직 무료봉사로 하는 날인데······.”
최강희는 그때를 생각하며 아직도 화가 나는 듯 말을 하는 족족 약간 격앙된 목소리가 되었다.
“그래서 걸린 거라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