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70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
그런데 이제 와 그것 가지고 자신에게 말을 하니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연대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이렇게 따질 수도 없었다. 송일중 중령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아, 내가 자네 때문에 죽겠다. 죽겠어.”
“혹시 무슨 일 있는 겁니까?”
“자네 그 성 군기 일 때문에 지금 위에 난리가 아니야.”
“네? 아니, 왜······.”
“몰라. 최익현 의원실에서 실태를 조사하니 마니 공문이 내려왔단 말일세.”
“최익현 의원······. 그 양반이 왜?”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아무튼 윗선에서 왜 그러는지 알아보니 자네 부대에서 일어난 그 성 군기 사건 때문에 일이 이렇게 커졌다는군. 그러니 내 입장이 지금 뭐가 돼?”
“아, 죄송합니다.”
송일중 중령은 진짜 어이가 없었다. 설마하니 이 사건이 국회의원까지 올라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곽종윤 준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그래서 말인데. 자네 당분간 그 자리를 좀 더 지키고 있어야 할 것 같아.”
“네?”
송일중 중령의 눈이 커졌다.
“연대장님. 저 조만간 육본으로 보직이동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이 친구가 진짜······. 자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무슨 육본인가. 그러면 뭐? 후임자보고 똥 치우라는 거야 뭐야. 누가 그 똥을 치워.”
“그건 아니지만······.”
“그러게 내가 누차 말했지 않나. 부대 관리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라고 말이야. 굳이 잘하지 않아도 돼. 그저 사고만 치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도대체가 그거 하나 하지 못하고······. 쯧쯧쯧.”
곽종윤 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 송일중 중령은 바로 반박을 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다시 얘기가 나올 때까지 얌전히 부대 관리나 신경 써.”
“네.”
송일중 중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대장실을 나갔다. 그렇게 걸어가는데 복도에서 배운역 연대작전참모가 나타났다.
“송 중령 나랑 차 한잔하지.”
“아, 네.”
배운역 작전참모는 송일중 중령보다 5년 선배였다. 자리를 옮긴 후 송일중 중령이 다급하게 물었다.
“선배. 일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하아, 말도 마. 연대장님 된통 깨졌어.”
“네?”
“최익현 의원 때문에 말이야. 아침에 출근하시자마자 최 부장님 전화 받고 완전히 저기압이셨어. 그나마 자네 볼 때는 좀 기분이 풀려서 그 정도로 끝난 거야.”
“아······. 그런 겁니까?”
“그래도 연대장님께서 사람이 좋아서 그 정도로 끝난 거야. 아마 다른 분이셨다면 그 정도로 안 끝났어. 자네를 쥐잡듯이 잡았을걸?”
“······.”
송일중 중령은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만약 자신이 그렇게 당했다면 바로 당사자를 불러 호되게 혼을 냈을 것이다. 그렇지만 송일중 중령은 한편으로 불안했다.
차라리 불같이 화를 냈다면 같이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일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화를 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곽종윤 준장은 너 일을 왜 그렇게 했냐고 말을 하는 것이 모든 일을 자신에게 다 떠넘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살짝 불안했다.
“선배 나 이러다가 연대장님께 팽당하는 것은 아닙니까?”
“에이.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나. 연대장님께서 자넬 얼마나 챙기는데.”
“아닙니다. 요새 연락도 뜸하시고······. 좀 많이 불안합니다.”
“그거야. 자네가 육본 올라간다고 들떠 있어서 그런 거지.”
“제가 또 언제 그랬습니까.”
“언제는 뭐 언제야. 예전에는 사흘이 뭐야. 이틀에 한 번씩 연대에 올라와서는 연대장님 비위 맞추고 그랬지 않나. 그런데 요새는 뭐······. 코빼기도 안 비추더만.”
“크흠······. 그야 저희 대대에서 일이 많아져서 그렇죠.”
“어쨌든 대대 관리 좀 잘해. 그래야 연대장님도 다시 보지 않겠나.”
배운역 중령이 그런 송일중 중령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송일중 중령이 대대로 왔다. 그때는 이렇게까지 짜증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막사 대대에 도착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게다가 불안감마저 더 높이 치솟았다.
“이거 영 불안해서······.”
송일중 중령이 곧장 홍민우 소령을 불렀다.
-네. 대대장님.
“방으로 와.”
-알겠습니다.
잠시 후 대대장실이 열리며 홍민우 소령이 들어왔다.
“대대장님 찾으셨습니까.”
“그래. 자네 말이야. 우리 대대에 혹시 성 군기와 관련해서 문제가 있는지 찾아봐.”
“네? 갑자기 그것은 왜······.”
“연대에 다녀왔는데 국회에서 공문이 하나 내려왔다고 하더군. 그 공문에서 군대 성 군기에 관한 실태 조사를 한다고 하는군.”
“네? 설마 저희 때문에······.”
홍민우 소령은 바로 눈치를 했다. 송일중 중령이 바로 눈을 부라렸다.
“그래! 윤 소위 이 새끼 때문에······. 윤 소위 지금 어디 있어!”
“윤 소위는 이미 헌병대에 붙잡혀 갔습니다만······.”
“아, 그렇지. 그런데 이 새끼 헌병대에서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
송일중 중령은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들었다. 홍민우 소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자신의 죄만 더 많아질 텐데 말입니다.”
“하아, 내가 진짜 그 새끼를 오냐오냐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송일중 중령은 이제 와 윤태민 소위의 편의를 너무 봐줬다는 것에 후회가 밀려왔다. 홍민우 소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대대장님. 육본 가시는 것은······.”
순간 송일중 대대장이 눈을 치켜떴다.
“너 인마! 지금 상황이 육본이라는 말이 튀어나와! 가서 내가 시킨 일이나 알아봐! 어서!”
송일중 중령이 고함을 질렀다. 홍민우 소령이 대번에 경례를 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길로 대대장실을 빠르게 나온 홍민우 소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미치겠네. 갑자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네.”
홍민우 소령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바뀌었다.
조애령은 시청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커피숍 내부를 훑었다. 그리곤 자신의 시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분명 이 시간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애령이 커피 주문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있던 종업원이 환한 미소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어떤 걸 드릴까요?”
“아메리카노 한 잔 줘요.”
“네. 알겠습니다.”
조애령은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결재를 마무리하고 진동벨 하나를 줬다.
“진동벨이 울리면 가지러 오시면 됩니다.”
그것을 들고 구석진 자리로 가서 앉았다. 조애령은 자리에 앉자마자 진동벨을 한쪽으로 던지며 팔짱을 꼈다. 그러면서 괜히 그 진동벨을 보며 투덜거렸다.
“요즘 것들은 참 장사 편하게 해.”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커피숍 문이 열렸다. 약속을 잡은 김현자가 들어왔다. 김현자는 성진당 시 의원이었다. 조애령을 발견한 김현자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김현자가 조애령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바쁜 사람 왜 이렇게 오라 가라야.”
“야, 김현자. 너 많이 컸다.”
“언니. 진짜······. 나 시 의원이야. 말 좀 예쁘게 못 해?”
사실 조애령과 김현자는 학교 선 후배 사이였다. 조애령이 두 살 더 많았다. 중, 고등학교를 같이 나왔고 대학교까지 같이 다녔다. 집이 잘살아서 조애령은 학교 다니는 것을 취미생활로 여겼다.
그와 반대로 김현자는 집이 무척이나 가난했다. 그래서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 어떻게든 성공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말이다. 그런 김현자를 본 조애령은 자신이 한번 키워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정치에 대해 꿈도 없던 김현자를 억지로 정치권으로 보냈다.
제일 먼저 김현자를 시민운동부터 시켰다. 그렇게 시민운동을 통해 어느 정도 입지를 다져놓고 적당한 때에 힘을 실어줘서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 시 의원으로 당선을 시킨 것이다.
현재 김현자는 3선째 당선되어 12째 시 의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3선 시 의원 마지막을 하고 있었다.
처음 조애령이 김현자를 키운 것은 맞다. 하지만 스스로 12년째 시 의원을 하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오라 가라 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왜? 무슨 일로 불렀어요?”
못마땅한 얼굴로 보고 있는 조애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 말이 왜 그래?”
“뭐가요?”
“너 지난번에 내가 안 도와준다고 해서 그런 거니?”
“언니도 참······. 사람 이상하게 만든다. 언니가 도와주면 도와주는 거고 안 도와주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내가 그걸 가지고 뭐라 하겠어.”
“그래. 너 말 잘했다. 너 지금까지 시 의원 3선째 한 것은 누구 때문이야? 너 나 아니었으면 시 의원 못했다.”
“언니. 시 의원이 무슨 돈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아. 그럼 언니가 나가서 해보지 그래?”
“이야, 진짜······. 예전의 현자 어디 갔니?”
“그러면 예전의 애령 언니는 어디 갔데? 예전의 애령 언니는 이렇듯 악독하지는 않았거든.”
김현자는 끝까지 지지 않고 말대꾸를 했다. 그녀는 자세까지 바로잡으며 얘기했다.
“언니! 처음에 말이야. 언니가 나 정치권에 들어가면서 했던 말 기억해? 그때 뭐라고 그랬어? 내가 잘되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며. 언니 꿈 대신 이뤄져서 고맙다며. 그래놓고 시 의원 되자마자 나 얼마나 부려먹었는지 생각도 안 해?”
김현자는 조애령이 자신을 진짜 순수한 의미로 도와준 것이라 여겼다. 물론 김현자 역시 조애령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 의원이 되자마자 온갖 부정한 일에 자신을 끼워 넣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김현자도 덕을 본 것이 있다. 선거 때마다 선거 자금을 지원해 줬고, 또한 사람들도 불러 모아줬고 말이다. 또 주변 아는 사람을 통해서 표를 찍어 달라고 했고 말이다.
그런 조애령의 노력 덕분에 김현자는 편안하게 시 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시 의원도 할 만큼 한 상황이라 이제는 조애령이 보기 싫었다. 여전히 자신을 쥐고 흔들려는 그녀가 말이다.
그러자 조애령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지 슬쩍 말했다.
“야. 현자야.”
“왜요.”
“너 국회의원 선거 나갈 거니?”
“네?”
“국회의원 말이야. 이번에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잖아. 너 나갈 거야?”
“······국회의원은 무슨 아무나 되는 줄 알아요. 인맥도 없고, 끈도 없는데요.”
그러자 조애령이 씨익 웃었다.
“만약 네가 하겠다면 내가 도와주고.”
그 미소와 말을 들은 김현자의 표정이 순간 달라졌다. 김현자의 꿈은 솔직히 정치가가 아니었다. 그런데 12년 동안 시 의원을 하다 보니 이제 국회의원에 나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도 국회의원에 나가도 되지 않냐며 입을 모았다.
문제는 국회의원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만큼 돈도 많이 들고 말이다. 그래서 슬쩍 조애령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당시 사업 확장을 하느라 이리저리 돈이 많이 들어갔던 조애령은 김현자에게 쌀쌀맞게 대했다.
“너, 언제까지 내 도움받아서 정치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