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68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2)
유진호 주임이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저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저에게 왜 그러십니까?”
“그러니까, 누가 뭘 어떻게 시켰는지 말을 해주셔야 저희가 알죠.”
“그건 저도 잘 모르는데······.”
“하아. 유진호 주임. 자꾸 이런 식이면 좋을 것 없습니다. 일단 이동해서 얘기 나누시죠. 아니면 공개적으로 일 처리할까요?”
“아, 아닙니다.”
“그럼 빨리 따라오시죠.”
감사팀 두 명의 사내는 주저앉아 있는 유진호 주임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때 유진호 주임의 얼굴이 흙빛으로 바뀌었다.
침대에서 자고 있던 오상진이 힘겹게 눈을 떴다.
“아이고 머리 아파라.”
오상진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이 주말이라는 것이다. 전날 최익현 의원이랑 임규태 중령과 함께 엄청 달렸다.
“아무튼 내가 이 양반들과 술을 마시면 만날 이래요.”
골이 지끈지끈거리는 것을 부여잡으며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러곤 손을 더듬어 침대 머리맡에 둔 휴대폰을 들었다.
“지금 몇 시야?”
시간을 확인하는데 10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부재중 전화가 잔뜩 와 있었다. 그것도 무려 10통이나 말이다.
“누구지?”
부재중 전화를 확인해 보니 한소희에게서 온 전화였다. 오상진은 깜짝 놀라며 곧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잠깐의 통화음이 가고 한소희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상진 씨! 뭐예요.
“미안해요. 소희 씨. 어제 새벽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잤어요.”
-아니,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요.
“의원님께서 워낙에 술이 세셔서······.”
-맞다. 강철 씨 아버님 만난다고 했죠.
“네.”
-강철 씨 아버님. 뭐라고 하세요?
“별말씀은 없으셨어요. 그냥······.”
오상진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한소희가 어제 많이 걱정을 했을 것 같아 얘기를 했다.
“참. 어제 임 중령님도 함께 마셨거든요.”
-네.
“그런데 잘하면 임 중령님 정치를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임 중령님께서요?
“네.”
-그거 원래 상진 씨가 하기로 한 것이 아니었어요?
“나에게도 제안을 하셨는데. 내가 못하겠다고 하니, 임 중령님께 제안을 하신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요. 좀 아쉽네······.
“왜요? 소희 씨는 제가 정치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건 아니고요. 그냥······. 상진 씨는 뭐든 하면 다 잘할 것 같아서요. 정치를 해도 좋고, 사업을 해도 좋고.
“군인은요?”
-솔직히 제 남편이 나라 지키는 것은 좋긴 한데요. 이렇게 떨어져 지내는 것은 좀 그래요.
“뭐예요. 언제는 평택에 내려가 있으니 좋다면서요.”
-그때는 참고 견딜 수 있을 줄 알았죠. 그런데 주말인데도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조금 슬퍼요.
한소희가 슬쩍 애교를 부렸다. 오상진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미안해요. 조금만 참아요. 그런데 소희 씨는 어디에요?”
-저요? 지금 회사에 잠깐 출근했어요. 급한 결재를 해야 해서요. 이거 마치면 어머님에게 가 보려고요.
“엄마에게요?”
-네. 어제 선진백화점에서 제안서를 줬거든요. 제가 충분히 검토를 했고, 괜찮을 것 같아서 어머님 보여드리려고요.
“선진백화점에서 제안서를 보냈어요? 뭐라고 해요?”
-저쪽에서는 자기들이 직접 관리할 수 있게 상호하고 레시피만 공유 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으음······.”
-제가 생각해도 선진백화점과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선진마트가 한 곳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전국 100여 개가 넘는데. 그곳에 전부 입점을 하면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어떻게 일일이 관리를 하겠어요. 게다가 어머님은 손맛인데 거기서 일할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도 일이세요.
“하긴 그것도 그래요.”
-그렇다고 이 기회를 썩히는 것도 안 좋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어머님께서 열심히 장사하셔서 인정받은 것이잖아요. 요리사로서 인정받는 거니까. 저는 이번 기회에 어머님이 좀 더 편안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한소희의 말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저도 소희 씨 생각과 같아요. 엄마에게 잘 말씀드려보세요.”
-네, 알겠어요. 다음 주는 올라올 수 있는 거예요?
“네. 갈 수 있어요.”
-그래요. 내가 주중에 한 번 내려갈 수 있으면 내려갈게요.
“네.”
오상진은 한소희와 통화를 마치고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나온 오상진은 곧바로 냉장고로 향했다. 한소희가 있었다면 숙취해소에 좋은 국을 끓여줬을 텐데······.
“먹을 것이 있나?”
하지만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결국 냉장고 앞에 부착된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네. 짬뽕 하나랑요. 군만두도요. 네.”
이렇듯 오상진은 늦은 아침을 주문했다.
토요일 오전.
윤태민 소위는 헌병대 영창에 갇혀 있었다. 그곳에서 잔뜩 억울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철창 밖에는 헌병대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이곳 영창에서는 말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 빼고는 말이다. 그리고 낮에는 이렇듯 양반 다리를 하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어쨌든 윤태민 소위는 재판전까지는 이곳 영창에서 대기해야 했다.
‘하아······. 시발. 왜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거야?’
아직까지 윤태민 소위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너무나도 억울했다.
그때 헌병대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분주해졌고, 박태진 중위가 들어왔다.
“충성!”
헌병대 한 명이 경례를 했다. 박태진 중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박태진 중위는 현재 조사관에서 배제되었다. 일련의 사건 때문에 조사관에서 나와 이곳 영창 쪽을 관리하는 곳으로 나와 있었다.
물론 이곳도 임시로 있는 것이다. 나중에 2-3개월 있다가 다시 조사관으로 돌아갈 것이다.
“별일 없지?”
“네. 그렇습니다.”
박태진 중위의 시선이 윤태민 소위에게 향했다. 윤태민 소위의 눈빛은 뭔가 간절함이 있었다.
‘접니다. 박 중위님 저 좀 어떻게······.’
하지만 박태진 중위의 눈빛은 매우 차가웠다. 싸늘하게 그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리고 윤태민 소위에게 다가갔다.
“면회다.”
“네? 며, 면회······ 말입니까?”
“그래.”
박태진 중위는 그 말과 함께 몸을 돌렸다. 그러자 헌병대가 열쇠를 가져와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앉아 있던 윤태민 소위가 일어났다.
“조용히 따라와.”
윤태민 소위는 박태진 중위를 따라 헌병대에 마련된 면회소로 안내되었다.
헌병대 영창에는 미결수가 재판 전까지 구치소 역할을 하기 때문에 면회소가 존재했다. 면회장은 그냥 방에다가 의자 세 개에 칸막이 이렇게 단촐하게 생겼다.
윤태민 소위가 박태진 중위에게 물었다.
“면회라면 누구······.”
박태진 중위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가서 확인하면 되잖아.”
박태진 중위의 목소리를 매우 차가웠다. 어쨌든 윤태민 소위는 면회소 앞에 도착을 했다. 박태진 중위가 문을 열자 그 안으로 들어가는 윤태민 소위였다. 그런데 면회자를 발견하고는 우뚝 멈췄다.
“하, 할아버지······.”
칸막이 밖에 근엄한 자세로 앉아 있는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있었다. 그는 윤태민 소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왔느냐. 앉아라.”
윤태민 소위는 쭈뼛거리며 자리로 가서 앉았다. 하지만 앞에 있는 신범규 예비역 준장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못했다. 그 뒤로 박태진 중위가 책상에 앉았다.
면회는 미리 가족 측에서 신청하거나, 미결수 측에서 변호사 접견을 요청하면 이루어진다. 가족은 일정 기간에 한 번만 가능하고, 변호사는 무제한으로 접견할 수 있다.
이곳에는 외부물건은 반입금지이며 무조건 PX에서 구매 후 전달해야 한다. 전달된 음식은 면회장에서 모두 취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바깥 근무자가 가족 측 문을 지키고, 내부 근무자는 수용자 옆에서 접견 내용을 대충 상황만 기록하게 되어 있다. 물론 변호사 접견 시 출입 불가가 된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슬그머니 뒤쪽에 있는 박태진 중위를 봤다.
“박 중위.”
“네.”
“잠시 손자와 단둘이 조용히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신범규 예비역 준장의 말에 박태진 중위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규정이라서······.”
“부탁하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다시 한번 부탁을 했다. 잠깐 생각을 하던 박태진 중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고맙네.”
박태진 중위가 슬쩍 윤태민 소위를 바라보고는 그곳을 벗어났다. 이제 면회장에는 신범규 예비역 준장과 윤태민 소위만이 남아 있었다.
“······.”
“······.”
5분 여가 흘러가는 동안 두 사람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은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외손자 윤태민 소위를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만 봤다.
윤태민 소위는 괜히 고개를 숙인 채 다리만 까닥거렸다. 그렇게 또다시 침묵의 시간이 흘러가고 먼저 입은 연 쪽은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었다.
“······몸은 괜찮으냐.”
“······할아버지 왜 왔어요?”
“이 할애비가 많이 원망스럽냐?”
“······.”
윤태민 소위는 바로 답을 하지 않았다. 애꿎은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태민아. 이 할아버지는 말이다. 좀 후회한단다.”
“······.”
“괜히 너에게 군대를 강요해서 너의 인생을 망쳤나 싶고 말이다. 그래서 많이 미안하게 생각한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의 말에 윤태민 소위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시발 뭐야. 왜 저러는데. 어차피 거래잖아. 거래!’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당시 자신의 집을 살리려면 할아버지와 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신 스스로가 선택을 한 것이고 말이다. 그 거래가 없었다면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렇듯 가게를 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신범규 예비역 준장은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어쩌면 잘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기회에 정신 차리고······. 군 재판 잘 받고. 만약에 나오면 그냥 평범하게 너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해라. 아무래도 너는 군인의 길은 아닌 것 같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의 뼈 때리는 말에 윤태민 소위의 가슴이 아파왔다.
“······치이. 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할아버지의 욕심이었다.”
“······.”
윤태민 소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뭐라고 해도 웃긴 일이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저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하는 말만 들었다.
“군 재판은 받겠지만 오래 있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군복도 벗게 되겠지. 넌 아직 젊으니 밖에 나와서도 바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다. 기술을 배워도 되고······.”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말을 할 때 윤태민 소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의문부호를 그렸다. 윤태민 소위가 그런 신범규 예비역 준장을 보며 물었다.
“할 말 더 없으시죠?”
“······태, 태민아······.”
윤태민 소위가 몸을 홱 돌려서 문 쪽으로 향했다.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끝났습니다.”
끼이이이익.
바로 문이 열렸고 윤태민 소위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조심히 가세요.”
그 뒤로 신범규 예비역 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강하거라. 변호사는······ 보내주마.”
윤태민 소위는 그 말을 끝으로 그곳으로 나갔다. 박태진 중위가 칸막이 건너편 신범규 예비역 준장에게 경례를 하고는 문을 닫았다.
“하아······.”
면회장에는 신범규 예비역 준장의 긴 한숨 소리만 나직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