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5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66화
04. 그 나물에 그 밥(53)
“아이고 갑자기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니 욕심이 막 생깁니다.”
“군 생활 열심히 하는 친구 데려다가 고생시킬 거면 말도 꺼내지 않았지. 그러니 정말 생각이 있다면 빨리 말해줘. 조만간 선거 있는 거 알지?”
“네.”
임규태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오상진이 임규태 중령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을 보니 조만간 정치에 도전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참! 의원님은 이번 대선에 출마하십니까?”
최익현 의원이 손을 흔들었다.
“대선은 무슨······. 아직 나설 때가 아니야.”
“왜요. 언론에서도 그렇고 제 주위 사람들도 의원님 좋아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건 대한민국 정치가 바뀌었으면 하는 사람들 얘기고. 아직은 우리나라 정치가 그 정도로 발전하지 않았어. 그렇지 않아도 당내에서 신선한 후보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다들 어찌나 욕심들이 많은지 원······.”
최익현 의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술잔을 비웠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짬에서 밀린 것 같았다. 그래서 오상진이 슬쩍 말했다.
“그래도 저는 의원님께서 머지않아 대통령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오상진이야 과거의 미래에서 살다 오지 않았나. 최익현 의원은 결국 대통령이 된다. 젊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변화를 위해서 많이 헌신하고 노력했다. 지금 당장은 최익현 의원이 3선 의원이다.
아직은 다른 의원들에 비해서 어리고 그래서 대통령으로 나서기 힘든 상황이라 하더라도 오상진은 최익현 의원이 그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고, 우리 오 대위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이거 대통령 한번 해봐야겠는 걸.”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세 사람이 그렇게 웃고 넘어갔다. 이야기는 계속 되었고, 윤태민 소위 사건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니까 그 소대장이라는 놈이 부소대장을 강제 추행했단 말이지.”
“네.”
“게다가 발뺌까지 했고 말이지.”
“그렇습니다.”
“하아, 대한민국 군대 참 문제다. 문제야.”
그러자 임규태 중령이 바로 말했다.
“에이. 그렇게 따지면 정치인들도 만만치 않죠.”
“어허. 여기서 왜 정치 얘기가 나와.”
“아니.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뭐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
“그래. 내가 잘못했네. 잘못했어. 아무튼 내가 국방의회 소속이다 보니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답답해. 아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냐 말이야. 웃긴 것은 그런 얘기는 보고서에 안 올라와요. 그런데 실제로 들으면 온갖 부대 비리가 없는 곳이 없어. 막상 올라오는 보고서에는 그런 문제들이 전혀 없는데 말이야. 대한민국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만 하고. 임 중령!”
“네.”
“헌병대 대장으로서 어떻게 생각해?”
“그게 또 저에게 온 것입니까?”
“그러니까. 헌병대 대장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죠. 솔직히 군대가 폐쇄적인 조직이라 뭐 어떻다 말은 합니다. 그런데 윗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 썩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고서 내용대로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는 것도 그저 말뿐인 것 같고 말이죠.”
“내 말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서 말인데 의원님. 이번 기회에 전수조사 한번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전수조사?”
“네. 윤 소위 사건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아마 찾아보면 윤 소위 사건보다 더한 것도 많을 겁니다. 다들 이런 소문들이 나면 부대 시끄럽다고 덮으려고만 하고 피해자들도 적당히 입막음을 당합니다. 의원님 말씀처럼 언제까지 군대가 이래야 합니까. 이제 바뀔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던 최익현 의원이 오상진을 봤다.
“오 대위 생각은 어때?”
오상진은 미래를 살다왔기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에 차분하게 말했다.
“저도 임 중령님 생각과 같습니다. 지금 당장은 시기상조일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것들이 곪아서 터져 더 큰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예방차원에서 미리 예방주사를 놓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오상진은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곪아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지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때는 여론도 안 좋아지고, 군대에 대한 인식도 나빠진다. 그래서 그전에 미리 정리를 하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라도 좋을 것 같았다.
최익현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들 말이 맞네. 내가 이번에 올라가면 그 일을 추진해 봐야겠어.”
임규태 중령이 바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감사는 무슨······. 내가 할 일인데 자네들이 이렇듯 신경을 써줘서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 그보다 우리 이제 답답하고 무거운 얘기는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마셔볼까?”
최익현 의원이 술잔을 들었고 오상진 임규태 중령도 미소를 보이며 같이 들었다. 그렇게 세 사람의 술잔에 술이 가득 채워졌다.
다음 날 점심 무렵 한소희가 선진백화점 본사를 찾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최강희 대표님하고 미팅 약속이 잡혀 있는데요.”
“혹시 성함이······.”
“한소희입니다.”
“아······. 네. 절 따라오십시오.”
비서의 안내를 받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최강희가 책상에 앉아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대표님 한소희 씨 오셨습니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비서를 발견한 최강희가 대답했다.
“아, 그래요.”
최강희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서 책상 위에 내려놨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온 한소희를 보며 깜짝 놀랐다.
‘예쁘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정말 예쁜데.’
한소희는 자신을 본 최강희가 살짝 놀라는 모습에 속으로 웃었다. 최강희가 최강철의 누나이자 또 한때는 오상진과 잘될 뻔했던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오상진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꽃단장한 보람이 좀 있네.’
한소희가 속으로 중얼거린 후 최강희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소희입니다.”
“아, 네에. 최강희입니다.”
“강철 씨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강철이가 제 욕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니에요. 그런데 듣던 대로 참 미인이시네요.”
“어후, 예쁘긴요. 소희 씨야말로 배우 소리 들으시겠어요.”
“어멋. 아니에요. 호호호.”
“자리에 앉으시죠.”
최강희가 앞 소파로 안내했다. 한소희가 자리에 앉았고, 잠시 후 비서가 차를 가지고 나왔다.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며 차를 마셨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최강희였다.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올라오시는 데 불편함은 없었어요?”
“네. 전혀 없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연락 기다리고 있었어요. 신순애 사장님께서는 뭐라고 하세요?”
“어······. 저희 어머님은 저한테 모든 것을 다 맡기셨어요. 사실 어머님이 걱정이 많으셨어요.”
“걱정요? 어떤 걱정을 하셨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신순애 국밥집의 국물 맛은 어머님께서 개발을 하신 겁니다. 이미 특허도 내놨고요.”
“다행이네요.”
“네. 그렇죠. 어쨌든 그전에 다른 곳에서 일을 하셨는데 그때 차근차근 레시피를 개발해 오셔서 지금의 국밥 맛에 이르게 되었어요. 1호점, 2호점, 3호점······. 앞으로 이어질 4호점까지 어머님께서 직접 만드신 비법 국물과 양념장으로 맛을 내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대량으로 만들어질 경우 미묘하게 맛이 달라질 것을 우려하고 계세요.”
최강희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일반적인 장사꾼이라면 신경을 쓰지 않겠지만 신순애는 나름 자신의 국밥으로 맛에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손님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것 같아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강희로서도 신순애 국밥집이 꼭 필요했다.
“요즘은 마트에 가족단위로 많이 찾아와요. 그래서 먹거리에 신경을 좀 많이 쓰는 편이에요. 여러 마트들도 그런 것에 경쟁이 붙고요. 그래서 가족들이 편안하게 장을 보고 배가 고플 때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필요해요. 무엇보다 그 손님들의 취향을 저격할 만한 다양한 푸드코너가 필요한 편인데 양식이나 중식 쪽은 업체들이 많은 반면에 한식 쪽으로는 특색 있는 업체를 찾기 힘들어요.”
“대부분의 한식당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니까요.”
“네. 맞아요. 잘 알고 계시네요. 어쨌든 그렇다 보니 괜찮은 한식 음식점을 찾기 힘들고 그러던 차에 상진씨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국밥집을 찾게 된 것이에요. 그런데 저는 진짜 국밥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어머니 국밥은 정말 맛있어요.”
그 말에 한소희가 기뻐했다.
“그렇죠. 저도 태어나서 처음 어머니 국밥을 먹었거든요. 너무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국밥집이 이런 줄 알고 직원들을 데리고 회사 근처 국밥집을 갔는데 어후, 돼지 냄새도 나고 맛도 영 별로더라고요. 이 돈 주고 먹어야 하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래요?”
“네. 심지어 거기가 유명한 프랜차이즈예요.”
“아! 거기 어딘지 알 것 같아요.”
최강희도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마치 생각이 났는지 입을 열었다.
“참. 강철이에게 얘기 들었어요. 오 엔터테인먼트 대표님이시라고 들었어요.”
“대표는 맞는데요. 회사 자체가 제 것은 아니에요. 상진 씨 대신해서 제가 운영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또 알아보니 소중 픽처스에서 이사로 있다고 계시더라고요.”
“네. 거기 작은 오빠가 하는 곳인데요. 그냥 이름만 올려놓고 있어요.”
“그러시구나.”
최강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소희가 만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신순애 국밥집의 예비 며느리로 온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사업가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강희는 어떻게 얘기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희 입장에서는 레시피를 공유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가지고 각 업체들마다 전달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 저희 자체적으로 관리를 하는 것이 편해요.”
“으음······. 일단 이름만 빌려달라는 말씀인가요?”
“일단은 그렇죠. 물론 음식 맛이라든지 직원들 교육까지 맡아주시면 감사하죠.”
“만약 그러면 수익 구조는 어떻게 되는 거죠?”
“직접 가게를 운영하시는 것에 비해서는 수익이 적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저희 선진백화점에서 그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철저히 관리하도록 할게요. 그편이 낫지 않겠어요?”
한소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솔직히 그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희 어머님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시더라도. 상진 씨가 잘 벌고 있어요. 그래서 딱히 장사에 집착하실 필요는 없어요. 지금도 편안하게 보내시면 되는데 소일거리 삼아서 아들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국밥집을 운영하시는 거예요.”
“아. 그러시구나.”
최강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또 어머님께서 불우이웃돕기를 많이 하세요. 만약에 선진마트에 저희 신순애 국밥집이 들어간다면 그것과 관련해 기부활동도 같이 병행할 생각이에요.”
“오,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요. 사회 환원의 일종으로 생각하시는 거잖아요? 정말 좋네요.”
보통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스스로 벌어먹기 바쁘다. 주변 사람들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사회 봉사는 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네. 저희 어머님이 좀 멋있으세요.”
한소희가 말을 하면서 피식 웃었다. 최강희가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이게 저희 쪽에서 제시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한번 가서 검토해 보시고 연락해 주세요.”
최강희가 서류철을 내밀었다. 한소희는 그것을 받았다.
“네. 알겠어요. 충분히 검토를 한 후에 연락드릴게요.”
“네. 부디 좋은 인연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네.”
한소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강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조심해서 가세요.”
“네. 그럼.”
한소희도 악수를 나눈 후 그곳으로 나왔다. 그렇게 일차적인 미팅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