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5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64화
04. 그 나물에 그 밥(51)
최익현 의원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의원님도 참······. 대한민국 군인은 위수지역을 못 벗어납니다.”
임규태 중령도 피식 웃으며 핑계를 댔다.
-아이고 알았네. 알았어. 내가 내려가지. 내려가. 그런데 언제든 주중이면 상관없다는 거지?
“네. 의원님.”
-그러면 내일이면 어떤가?
“내일 말입니까?”
임규태 중령이 다소 놀란 듯 말했다.
-왜? 내일 금요일인데······. 내일 술 한 잔씩 하고 주말에 푹 쉬면 좋잖아.
“의원님. 그렇게 쉬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싫다고?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오 대위도 시간 낸다고 했으니 내일 하시죠.”
-진즉 그럴 것이지. 어쨌든 장소는 임 중령이 잡아놔.
“네, 알겠습니다.”
임규태 중령이 최익현 의원과의 통화를 마쳤다. 휴대폰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오상진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그다음 날 아침 위병소를 통해 헌병대 차량이 도착했다. 위병소 근무자가 확인을 한 후 차량이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 현관 앞에 차량이 서고 그곳으로 헌병대가 들어갔다. 잠시 후 고개를 푹 숙인 윤태민 소위가 헌병대에 이끌려 나왔다.
차량에 태운 후 헌병대도 올라탔다. 병사들 각 간부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윤 소위가 잡혀가네.”
“저렇게 되면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헌병대가 와서 잡아갈 정도라면 완전 끝났다고 봐야지. 내가 듣기로는 군 재판까지 받는다고 하던데.”
“그럼 커리어가 완전 끝나는 거지 않습니까.”
“맞아! 군 재판 받고 아마도 형까지 살게 될 거야. 그러면 뭐······.”
말을 하는 사람의 표정이 씁쓸하게 바뀌었다.
그 사실이 실시간으로 대대로 보고가 올라갔다. 홍민우 소령이 곧장 대대장실로 갔다.
“대대장님.”
“그래.”
“방금 윤 소위 헌병대로 끌려갔습니다.”
“······.”
난을 치고 있던 송일중 중령이 멈칫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홍민우 소령을 봤다.
“별다른 일은 없었고?”
“네. 윤 소위도 그냥 조용히 끌려간 것 같습니다.”
“알았어. 그만 나가봐.”
“네. 충성.”
송일중 중령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다시 난을 잡은 그의 표정이 착잡했다.
“하아······. 하나같이 도움도 되지 않고. 이래서 맘 편히 떠날 수나 있는 것인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멈췄던 난 닦는 것을 다시 시작했다.
한편, 유선영 하사도 밖에 나와 윤태민 소위가 탄 차량이 위병소를 향해 가는 모습을 덤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박윤지 3소대장이 다가왔다. 유선영 하사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박윤지 3소대장인 것을 확인하고 애써 미소를 보였다.
“나와 있었어?”
“······네.”
“기분은 어때?”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박윤지 3소대장이 대답을 하고는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그러곤 나직이 말했다.
“유 하사······. 그동안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아니긴, 내가 곁에서 지켜봤는데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어.”
“······그래도 3소대장님 덕분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래······.”
박윤지 3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선영 하사를 다독였다. 그때 황하나 하사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저어기 유 하사······.”
“응?”
“······수고했어.”
“아니야. 고마워.”
“그, 그래······.”
황하나 하사는 뭔가 말을 하려고 머뭇거렸다. 박윤지 3소대장이 그런 그녀를 보며 말했다.
“황 하사 더 할 말 있어?”
“아, 아니, 그것이 말입니다. 미, 미안해······.”
황하나 하사가 사과를 했다. 유선영 하사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이제 괜찮아. 황 하사가 너무 그러지 마.”
“고마워.”
황하나 하사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그녀는 조금 전보다는 밝아진 얼굴로 다시 건물로 들어갔다. 박윤지 3소대장이 유선영 하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어. 잘한 거야.”
“······네. 그래도 같이 지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럼! 이제 기운 내자. 좋은 일만 있을 거야.”
“네.”
“그보다 3소대장님.”
“왜?”
“중대장님께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좀 도와주십시오.”
“식사?”
“네. 지금까지 중대장님께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는데 모른 척하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단둘이 밥 먹자고 하기에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도 3소대장님과 함께 먹으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좀 도와주십시오.”
“그래. 알았어. 내가 중대장님께 말씀드려볼게.”
“고맙습니다.”
“고맙긴.”
박윤지 3소대장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고 유선영 하사 역시 밝게 웃었다.
“참! 김호동 하사와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네?”
유선영 하사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김호동 하사 말이야.”
“아, 저어······. 그냥 뭐 친하게 지내는 정도입니다.”
“정말? 나에게까지 그렇게 말할 거야?”
“실은······. 김 하사님이 한 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얘기는 했는데······.”
박윤지 3소대장이 눈을 반짝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아니. 얼마 전까지 황 하사를 좋아했지 않습니까.”
“퇴짜 놓은 거야?”
“그건 아닙니다. 그냥 좀······. 저에 대한 마음이 어떤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어후, 유 하사도 은근히 여우네.”
“그건 아닙니다.”
“아무튼 잘되면 나에게 꼭 얘기를 해줘야 해.”
“네. 알겠습니다. 그보다 3소대장님은 남자 친구 없으십니까?”
“없어. 내 주제에 무슨 남자야.”
“마음에 두고 계신 분도 없으십니까?”
“마음에 둔 사람? 글쎄······.”
그러고 있는 김진수 1소대장이 다가왔다.
“두 사람 여기서 뭐 해?”
“어······.”
“윤 소위 가는 것을 보고 있었어?”
“······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눈치를 살폈다. 김진수 1소대장 역시 윤태민 소위가 떠나는 것이 홀가분했다.
“이제야 갈 사람이 가는 것 같네. 두 사람도 고생 많았어. 내가 지금까지 1소대장 역할을 잘 못 했는데. 앞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어.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나에게 얘기해.”
“네.”
“알겠습니다.”
김진수 1소대장이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유선영 하사가 말했다.
“어? 우리 1소대장님도 멋있으십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그러게. 원래 저렇게 어깨가 넓었나?”
박윤지 3소대장이 잠깐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유선영 하사에게 말했다.
“자, 우리도 들어갈까?”
“네.”
두 사람도 나란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상진의 약속 장소는 부대 근처 시내에 위치한 한정식집이었다. 가방을 정리한 후 어깨에 멨다. 그 길로 행정실로 향하려고 했다. 그때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들어와.”
문이 열리고 박윤지 3소대장이 나타났다.
“어, 3소대장. 무슨 일이야?”
“저기 중대장님.”
“말해.”
“오늘 시간 괜찮으십니까?”
“오늘? 오늘은 내가 약속이 있는데. 왜?”
“다른 것이 아니라 유 하사가 중대장님께 너무 감사해서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해서 말입니다.”
“아이고. 먹은 걸로 하지. 유 하사 박봉인 거 뻔히 아는데 무슨······.”
“그래도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겸사겸사 얻어먹고 말입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그래?”
오상진이 곰곰이 생각했다. 그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알겠다. 다음 주 중으로 한번 시간을 맞춰보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방을 메고 중대장실을 나왔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후 6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어? 늦겠다.”
오상진이 서둘러 복도를 걸어갔다. 일과를 마친 병사들이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충성.”
“어, 그래.”
“충성. 퇴근하십니까. 중대장님.”
“그래.”
오상진은 병사들의 인사에 일일이 답을 해 줬다. 그렇게 주차장으로 나간 후 차를 타고 이동했다. 위병소를 통과할 때 근무자가 힘차게 경례했다.
“추우우웅서어엉!”
“그래. 수고가 많다. 위병소 근무 잘 서고.”
“네, 알겠습니다.”
“고생들 해라.”
“넵.”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차를 몰고 나갔다. 그 뒤로 또 한 번 경례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오상진은 약속 장소에 도착을 하고 직원의 안내를 받고 어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자 그 안에는 이미 도착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임규태 중령이었다.
“어, 먼저 오셨습니까?”
오상진은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와 시계를 봤다. 약속 시간은 오후 6시 30분이었다. 지금 20분이라 늦은 것은 아니었다.
“괜찮아. 자리에 앉게. 그냥 내가 먼저 나왔네.”
“네에······.”
오상진도 자리에 착석했다. 임규태 중령이 그를 보며 말했다.
“우리 오 대위 얼굴 보기 힘드네.”
“그러게 말입니다. 어떻게 같은 사단에 있는데도 얼굴 보기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이제 사단에 올라와. 무슨 4중대에 꿀 발라놨어?”
“저 이제 중대장으로 부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벌써 보직 이동을 합니까?”
“그래? 1년도 안 되었어?”
“네.”
“아니, 그동안 하도 일들이 많아서 시간이 꽤 지난 줄 알았지.”
“하하하······.”
오상진은 웃고 말았다. 임규태 중령이 슬쩍 물었다.
“중대장 일은 어때?”
“솔직히 말씀드리면 중대장 자리도 쉬운 곳이 아닙니다. 이리저리 챙길 것이 너무 많습니다.”
사실 오상진은 과거지만 중대장도 하고 대대장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 중대장 업무를 본다고 했을 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대장도 자리 나름이었다. 4중대에 부임했을 때 너무나도 신경 쓸 곳이 많았다. 전임 중대장이 일을 너무 대충 한 것도 있었다. 현재는 매일매일 업무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임규태 중령은 이런 오상진이 엄살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워낙에 오상진이 일을 잘하기 때문에 말이다.
“이 사람 엄살은······.”
“엄살 아닙니다.”
“알았네. 참! 오늘 윤태민 소위 체포했는데 혹시 봤나?”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체포당했다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내가 고생할 것이 뭐가 있나. 조사관들이 다 한 건데.”
“윤 소위······. 재판받겠죠?”
“아마도 그렇겠지. 군 검찰로 넘어갔고. 게다가 증거도 너무 확실하고 그전 사건까지 겹쳐서 말이야. 중징계? 아니면 아마도 좀 살다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그렇게 되는군요.”
“그렇지. 그런데 신 준장님께서 찾아갔다며.”
“아, 네에.”
“뭐라고 하시던가?”
“딱히 별말씀 없으셨습니다.”
“그 양반 성격이 원래 그래. 그렇다고 신 준장님을 너무 미워하지는 말게나.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소리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야. 신 준장님께서 군 생활을 하시는 동안 철저하게 중립을 지키셨어. 그러면서 군인다운 모습을 많이 보이셨어.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분이셨어. 그런데 외손자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왜 없겠나. 그렇다 보니 찾아가신 것 같네. 그러니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하네.”
“네. 그런데 신 준장님하고 아시는 사이입니까?”
“어? 티가 났나?”
임규태 중령이 피식 웃었다.
“네.”
“내가 예전에 모셨던 분이야.”
“아, 그러시구나.”
오상진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임규태 중령은 그때 일을 회상하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