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50)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63화
04. 그 나물에 그 밥(50)
“중대장님 잠시 얘기 가능하십니까?”
윤태민 소위를 본 오상진은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얘기? 일단 들어와.”
“감사합니다.”
윤태민 소위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테이블 앞 회의 의자에 앉았다.
“그래, 무슨 일이야?”
“중대장님.”
“응.”
“저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안 됩니까?”
“무슨 기회?”
오상진은 대답을 하면서도 솔직히 웃겼다. 근신 중인 상황에서 이렇듯 무작정 찾아와 이런 말을 하는 자체가 말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기회를 달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이번 딱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하아······. 윤 소위.”
“네.”
“내가 기회를 안 줬어? 분명히 내가 처음에 말했을 텐데 사실대로, 솔직히 말하라고 말이야. 그런데 자네 나에게 뭐라고 그랬나.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 것이 아니라면서! 그런데 이제 와 나에게 기회를 달라고 하는 거야? 난 기회를 몇 번을, 충분히 준 것 같은데 말이야.”
“그때는 제가 너무 경황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윤태민 소위는 정말 너무도 뻔뻔하게 대답을 했다. 오상진은 그런 윤태민 소위를 보며 한편으로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할 수가 있지?’
오상진은 일단 그 생각을 멈추고 얘기를 했다.
“윤 소위. 그때 말고도 바로 잡을 기회가 얼마나 많았는데. 지금껏 가만히 있고······. 그리고 지난번 헌병대 조사에서는 오히려 유 하사가 자네를 스토킹 한 것으로 몰아가 버렸잖아. 그런데 이제 와 기회를 달라고? 내가 자네에게 무슨 기회를 줄까?”
“중대장님,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그래도 저는 다른 곳도 아니고 같은 육사 후배로서 좀 챙겨 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오상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윤 소위! 아니, 윤태민! 너 언제쯤 정신 차릴 거야. 언제까지 육사를 찾고, 그렇게 편을 가르고 그럴 거야. 일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넌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구나.”
“······.”
“좋아! 육사 출신씩이나 되어서 군 생활 그렇게 개판으로 하면 다른 육사 선배들이 널 좋게 볼 것 같아?”
“주, 중대장님······.”
“그렇게 징징거릴 거면 나가. 그래도 최소한 네가 스스로 책임을 지는 그런 인간이 되길 바랐다. 그런데 제멋대로 그래놓고 이제 와 징계받을 생각에 나에게 찾아와 기회를 달라고? 너의 그 구역질 나는 행동에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
오상진이 윤태민 소위를 매섭게 노려봤다. 윤태민 소위가 자리에서 일어나 씩씩거리며 중대장실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김진수 1소대장이 뛰어 들어왔다.
“중대장님, 중대장님.”
“왜 그래?”
“괜찮으신 겁니까?”
오상진이 김진수 1소대장을 빤히 바라봤다. 김진수 1소대장은 조금 전 윤태민 소위의 목소리를 듣고 다급하게 들어온 것이다.
“괜찮아. 그보다 윤 소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2소대장이 뭐라고 합니까?”
“기회를 달라고 하네.”
“기회 말입니까?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1소대장은 어때? 내가 윤태민 소위를 가혹하게 대한다고 생각해?”
“아닙니다. 중대장님께서는 충분히 기회를 주셨습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말입니다.”
“됐어. 자네에게 그런 소릴 들으려고 물어본 말이 아니야. 하아, 진짜······. 어쩌자고 저런 인간이 장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육사 생도라고 해서 다 올바른 군인이 되겠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서도 별생각 없이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 와중에 육사 생도들 중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초심을 잃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낙오하고 밀려난다. 하지만 그래도 소위로 임관하고 그러면 좀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윤태민 소위처럼 저렇게 엉망으로 군 생활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오상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과거에 나도 막장으로 살았다고 하지만. 저런 식으로 살지는 않았어.’
오상진의 과거에는 일확천금을 노리며 로또에 빠져 살았다. 거의 폐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얻고 나서는 그 시절을 반성하면서 제대로 된 군인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렇듯 하나씩 하나씩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하다 보니 어느새 동기 중에서 가장 앞선 사람이 되어 있었다.
또한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더욱 마음을 다잡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윤태민 소위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몇 번의 기회를 줬다.
외부의 물품을 반입했을 때, 그때도 자체 징계로 끝을 냈다. 물론 외할아버지인 신봉규 예비역 준장의 입김이 어느 정도는 들어갔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한 번은 기회를 줬다.
이미 그 정도라면 오상진 입장에서는 큰 의미였다. 그런데 또 저렇듯 사고를 쳤다는 것은 전혀 변화될 가능성도 없고, 또다시 사고를 칠 거라는 의미였다.
‘그래. 윤태민. 넌 군대에 있을 놈이 아니야.’
이렇듯 오상진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그날 오후 임규태 중령에게 최종 보고서가 올라왔다. 보고서를 쭉 훑던 임규태 중령이 담당자를 호출했다.
삐익!
-네, 대대장님.
“황 대위 내 방으로 올라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황인태 대위가 헌병대장실로 들어왔다.
“충성.”
“어, 어서 와.”
황인태 대위가 다가갔다.
“그래. 자네가 올린 보고서는 방금 다 확인했어. 이게 최종 보고서가 맞아?”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마음에는 드십니까?”
“마음에 들고 안 들고 어디 있어. 담당 조사관이 제대로 판단해서 조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지.”
“제대로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증거가 확실해서 더 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당사자는 뭐라고 해?”
“윤 소위는 어디까지나 실수였다. 안전벨트를 해주려다가 닿은 것이다. 이렇게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이지 않습니까. 술도 먹지 않았고, 딱 증거가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부정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 피해자는?”
“피해자 얘기도 들어봤는데 말입니다.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하나였습니다.”
“어떤 것? 물질적인 보상?”
“아닙니다. 피해자가 원한 것은 합당한 처벌이었습니다.”
“그래. 피해자가 원하면 그렇게 가야지. 알았어, 그렇게 진행하도록 해.”
임규태 중령은 최종 보고서에 바로 사인을 했다. 그것을 받아 든 황인태 대위가 대답했다.
“넵.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3대대 주임원사 말입니다.”
“주임원사?”
“네.”
“그가 왜?”
“아무래도 주임원사를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임원사를 조사한다고?”
“네. 첩보가 들어온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이번 사건을 조사하면서 3대대 주임원사에게 비리가 몇 개 포착되었습니다.”
“비리?”
“네,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 헌병대가 조사를 해야지. 모르면 모를까. 이미 황 대위 레이더에 걸렸다며.”
“네.”
“그래도 첩보가 들어온 것은 아니니까. 너무 대놓고 파지는 말고. 조심스럽게 한번 캐보자고.”
“알겠습니다.”
황인태 대위가 경례를 하고 나갔다. 그렇게 제법 오래 끌었던 윤태민 소위의 사건이 군 검찰로 이관되었다.
임규태 중령은 한결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임규태 중령의 휴대폰이 울렸다.
“누구지?”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최익현 의원이었다. 임규태 중령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넵, 의원님.”
-아이고 임 중령. 잘 지냈는가?
“네, 의원님.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의원님께서 먼저 전화하게 만들었습니다.”
-어허, 이 사람아. 한가한 사람이 전화를 하는 것이지.
“의원님께서는 한가하신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허, 굳이 그런 것을 따지고 그래. 방금 한가해서 내가 전화했네.
“감사합니다. 의원님.”
-감사는 무슨······.
“그보다 어쩐 일이십니까?”
-어라? 자네 정녕 몰라서 묻는 건가? 지난번 오 대위하고 밥 한 끼 먹자고······. 자네가 자리를 마련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기다려도 깜깜무소식이야.
“의원님은 만날 사람이 저희밖에 없습니까? 진짜 많이 안 바쁘신 겁니까?”
-어험! 이 사람 참······. 내가 말이야. 바쁜데 그래도 자네들을 보려고 시간을 만드는 거지.
“그런 겁니까?”
-그래!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해서 속 터놓고 말할 사람은 자네뿐이고. 기분 좋게 얘기할 사람은 오 대위밖에 없네. 됐나?
“알았습니다. 안 그래도 방금 급한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오 대위에게 바로 전화해 보겠습니다.”
-그래. 빨리 좀 잡자고. 조만간 나도 국정감사에 불려가야 해.
“네. 알겠습니다. 의원님. 제가 바로 오 대위에게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래.
임규태 중령이 전화를 끊고 피식 웃었다.
“아무튼 의원님도 참······. 만나자는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닐 텐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참······.”
임규태 중령은 미소를 지으며 오상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우, 뚜우, 뚜우.
몇 번의 통화음이 가고 오상진이 전화를 받았다.
-충성. 네, 헌병대장님.
“그래. 오 대위. 잠깐 통화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윤 소위에 관한 것은 방금 군 검찰로 넘겼어. 조만간 윤 소위 군 검찰로 송치될 거야.”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무슨······. 어디 내가 조사하나? 부하들이 하는 거지. 그보다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안 궁금한가?
-알아서 잘해주셨겠죠.
“하하하, 역시 오 대위야.”
-그보다 헌병대장님께서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됐고. 그보다 자네 시간 좀 내어주지.”
-시간 말입니까?
“그래. 최 의원님이 난리도 아니야.”
-왜 그럽니까?
“밥 한 끼 하자고 말이야. 내가 지난번에 말했잖아. 약속 잡겠다고 해 놓고 지금까지 자네 때문에 약속도 못 잡고 지금까지 온 거 말이야.”
-죄송합니다. 일을 벌여서······.
“됐네. 내가 무슨 자네에게 그런 소릴 들으려고 말한 줄 아나. 그보다 자네 시간 괜찮나? 자네만 괜찮다면 바로 의원님께 연락을 드려야 해. 확답을 줘.”
-저야 주말만 아니면 괜찮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 그렇게 따지면 의원님께서 내려오셔야 하나?”
-아닙니다. 저희가 올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지. 보고 싶은 사람이 움직이는 거야. 일단 알았어. 내가 의원님과 통화하지.”
임규태 중령이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서 피식 웃었다. 자신은 서울에 올라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이쪽은 두 명, 최익현 의원은 한 명이었다.
“의원님이 내려오시는 것이 맞지. 두 명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한 명이 효율적으로 낫지.”
임규태 중령이 스스로 납득을 하고는 전화를 걸었다.
“네, 의원님.”
-어, 그래. 약속 잡았나?
“네. 그런데 오 대위. 주말은 시간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주중에 시간을 내야겠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중에는 의원님께서 내려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임규태 중령이 바로 말했다.
-뭐? 나보고 내려가라고? 대한민국 국회의원보고 지금 내려오라고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