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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932화 (932/1,018)

< 04. 그 나물에 그 밥(4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62화

04. 그 나물에 그 밥(49)

“나도 해줄 말이 없다. 그냥 돌아가.”

“작전과장님······.”

“돌아가라니까, 이 친구가 진짜······. 아무리 상황이 그래도 그렇지. 위아래로 몰라보고 날뛸 거야?”

“······알겠습니다.”

윤태민 소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작전과를 나갔다. 그런 윤태민 소위를 본 작전장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과장님.”

“왜?”

“윤 소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지은 죄가 있으니 달게 받아야지.”

“와. 그럼 이대로 아웃입니까?”

“쓰잘데기 없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자네 일이나 해. 자네도 말이야. 요즘 들리는 소문에 별로 좋지 않아. 요즘 대대장님 육본 올라가는 일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많은데 자네들까지 이럴 거야.”

작전장교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과장님.”

“잘 봐. 윤 소위처럼 까불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야.”

홍민우 소령은 이번 기회에 윤 소위를 타산지석의 기회로 삼았다. 비록 송일중 중령과 함께 육본으로 올라갈 가능성은 많이 낮아졌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홍민우 소령의 군 생활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송일중 중령이 올라가면 어차피 새로운 대대장이 온다. 그 대대장에게 잘 보이면 자신도 다시 새로운 동아줄을 잡을 수도 있다. 그래서 홍민우 소령은 다시 작전과부터 확실히 잡을 생각이었다.

“아무튼 조심해. 내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만 해. 다들 가만히 안 둘 거야.”

홍민우 소령의 말에 다들 하나같이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다시 4중대로 돌아온 윤태민 소위는 박윤지 3소대장을 찾았다.

“3소대장 나 좀 봅시다.”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행정실로 들어가려던 박윤지 3소대장을 불러 세웠다.

“네? 저를 말입니까?”

“잠깐이면 됩니다. 잠깐이면······.”

윤태민 소위는 박윤지 3소대장을 구석으로 데려갔다.

“무슨 일이시죠?”

예전이었다면 박윤지 3소대장이 바짝 얼어붙었을 것이다. 윤태민 소위가 이제 곧 옷을 벗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딱히 무섭지 않았다.

그런 박윤지 3소대장의 당당한 시선을 받은 윤태민 소위는 착잡했다.

‘예전에는 나랑 눈도 마주치지 못했으면서······.’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당당했다.

“3소대장. 부탁 하나만 합시다.”

“뭔데요?”

“유선영 하사 좀 설득해 주십시오.”

“네?”

박윤지 3소대장은 어이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윤태민 소위는 어떻게든 이번 일을 무사히 넘겨야 했다.

“일이 커져봤자 좋을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막말로 내가 징계를 받으면 거기서 끝날 것 같습니까. 나 징계받으면 자연스럽게 장교들은 장교들끼리 부사관은 부사관들끼리 편 갈라서 싸울 텐데. 그래서 좋을 것이 뭐가 있습니까.”

얘기를 듣는 박윤지 3소대장은 진짜 어이가 없었다.

평소에는 장교도 다 같은 장교가 아니다. ROTC는 ROTC고 삼사는 삼사고, 육사만 제대로 된 장교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다니며 무시를 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 장교들끼리 도와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니 진짜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ROTC 출신이라 그런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 3소대장! 여기서 ROTC가 왜 나옵니까. 다 같은 장교 아닙니까.”

“뭐 하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진짜로 그리 생각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죠.”

“그럼 왜 그동안은 육사 출신이 아니라고 무시하고 그랬습니까?”

“내가 또 언제 무시하고 그랬습니까. 솔직히 우리들은 교육 과정 자체가 다르지 않습니까. 육사는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고······. 그것에 대해서 조금 존중을 받아야 된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한 거죠. 그런데 내가 또 언제 무시하고 그랬습니까.”

윤태민 소위가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넘어가 줄 만큼 박윤지 3소대장은 어수룩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뭔가를 하고 싶다면 1소대장님 찾아가십시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박윤지 3소대장이 찬바람 쌩 불며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런 그녀를 윤태민 소위가 애타게 불렀다.

“3소대장! 3소대장······.”

하지만 박윤지 3소대장은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윤태민 소위가 바로 인상을 썼다.

“하아, 시발······. 다들 왜 이렇게 안 도와주냐. 이러다가 내가 진짜 옷 벗으면 너희들이 책임질 거냐.”

윤태민 소위가 짜증을 냈지만 돌아온 것은 공허함뿐이었다. 그때 윤태민 소위의 전화기가 울렸다. 바로 확인해 보니 엄마였다.

“어, 엄마! 어떻게 알아봤어?”

-알아보길 뭘 알아봐. 할아버지에게 전화했다가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었는데.

“아, 할아버지 진짜······. 할아버지는 내가 옷 벗는 것이 좋대?”

-그렇지 않아도 그 얘기를 했는데.

“어!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는데?”

-너 맘대로 하래.

“뭐?”

-맘대로 하라고.

“할아버지가 진짜 그렇게 말했다고?”

-그래. 이 녀석아!

“그럼, 뭐야? 할아버지가 나 포기한 거야?”

-이놈아. 그러게 잘 좀 하지. 그 대단한 양반이 울먹이며 말씀하시더라. 욕심이 과했다고 너한테 몹쓸 짓을 했다고 말이야.

“아이씨.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야. 그리고 하나뿐인 외손자가 옷 벗게 생겼는데 정말 할아버지는 괜찮으신 거야?”

윤태민 소위는 하나뿐인 외손자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들려오는 엄마의 말은 싸늘했다.

-너도 이놈의 자식아. 할아버지 명예 그만 괴롭히고 그만둬. 그딴 식으로 군 생활 하지 말고.

“엄마까지 왜 그래.”

-너 때문에 할아버지께서 수치스럽고 부끄러우시대. 너를 지금까지 감싼 것도 후회스럽다고 하시고. 엄마가 그 얘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아.

“아, 됐어. 나도 이제 몰라.”

윤태민 소위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런 얘기를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이 일에 대해서 수습하기를 원해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오히려 잔소리만 잔뜩 들으니 짜증이 났다.

“하아, 시발.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해.”

그러고 있는데 윤태민 소위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을 키운 것은 엄밀히 따지면 오상진이었다. 유선영 하사가 오상진에게 얘기를 했을 때 일을 키우지 않고, 적당히 덮고 화해를 주선했다면 이렇게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걸 가지고 대대에 보고까지 하면서 헌병대까지 내려오게 만들었다. 윤태민 소위는 주먹을 쥐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 중대장님을 찾아가자!”

윤태민 소위는 사생결단을 낼 각오로 중대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상진은 한소희와 통화 중이었다.

“그러니까, 선진백화점 쪽에서 그런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는 거죠.”

-네. 제가 보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인데 어머님께서는 아직 고민 중이신가 봐요.

“으음······. 엄마 입장에서는 고민이 될 거예요. 장사에 대한 욕심도 그리 많지 않으시고요. 사실 분점 낼 때도 고민 많이 하셨거든요.”

실제 신순애 국밥집은 4호점까지 준비 중이었다. 1호점은 신순애, 2호점은 이모인 신지애가 맡아서 하고 있다. 3호점이 얼마 전 소망빌딩에 입점되었다.

3호점을 운영하는 사람은 이대근과 이세광의 할머니께서 맡기로 하셨다. 할머니가 워낙에 손맛이 좋으셔서 신순애가 상당히 만족해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한울빌딩을 시작으로 믿음빌딩, 소망빌딩에 국밥집이 들어섰고, 한소희의 요청으로 사랑빌딩으로 이름을 바꾼 만복빌딩에도 국밥집 4호점을 내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신순애가 일을 벌이는 성격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이렇듯 프랜차이즈처럼 분점을 내게 된 것이다. 원래 신순애는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요. 맛이라든지, 청결 문제에 있어서 말이에요. 관리도 잘해야 하고 신경 쓸 것도 많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에 대해서 강철 씨랑 얘기를 좀 해봤거든요.

“강철이랑요? 뭐래요?”

-강철 씨 말로는 직접 어머니께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레시피만 제공해서 수익의 일부만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랬어요.

“흐음······. 그러면 맛에서 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런데 상진 씨. 원래 같은 프랜차이즈라고 해도 맛은 조금씩 다르잖아요. 전 사실 이모님 국밥집도 가 봤는데 어머님께서 해주신 국밥이 더 맛있거든요.

“어? 이모가 들으면 서운하겠는데요.”

-어멋! 그건 당연히 비밀이죠. 그리고 제 입맛은 어쩔 수 없어요. 어머님의 국밥에 입맛이 이미 길들여졌거든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점수를 따고 싶어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이미 신순애는 충분히 한소희를 예뻐했다.

한소희가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은 확실히 같은 레시피라고 해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맛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이었다.

“소희 씨가 그렇게 느낄 정도라면 프랜차이즈를 하면 안 되겠는데요.”

-아니죠. 그 반대죠.

“네?”

-전 어머니가 만드신 국밥을 많은 사람들이 먹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어머니 혼자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에게 맛을 보여주겠어요. 한계가 있잖아요. 그러니 프랜차이즈대로 진행을 하고 어머님의 손맛이 궁금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본점으로 오도록 유도하는 것이 어때요?

오상진은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발상의 전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상진은 단순히 모든 분점의 맛이 똑같지 않다면 프랜차이즈 사업을 안 하는 것이 맞다 판단했고.

반대로 한소희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할 경우 업소마다 맛을 균일하게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순애 국밥집 본점으로 손님들이 몰려오도록 유도를 하자는 식이었다.

이렇듯 한소희는 사업적인 마인드로 얘기를 하고, 오상진과 신순애는 요리사적인 입장에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소희가 공부한 쪽은 경영학이었다.

“소희 씨 얘기를 들어보니 나쁘지는 않네요.”

-그렇죠. 그리고 저는 어머님도 연세가 있으신데 너무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소희 씨 벌써부터 엄마 걱정해 주는 거예요?”

-당연하죠. 저희 어머님인데요.

“그런 식으로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요새 어머님 좋은 일 많이 하시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이번에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시면 본격적으로 그런 일을 하면 부담도 더 적을 것 같은데요. 상진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으음······. 그런 생각은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엄마가 잘될수록 주변에 베풀고 살아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시간도 없고, 사정이 뻔해서 많이 봉사활동을 못 한 것에 서운해하셨어요.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면서 그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공헌을 하는 식으로 한다면 엄마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요?”

-그렇죠! 내가 또 괜찮은 생각을 한 거죠.

“역시 우리 소희 씨입니다.”

-에이. 뭘요. 그러면 제가 이렇게 준비해서 어머니랑 얘기해 볼게요.

“그래요.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해요.”

-알겠어요.

오상진은 한소희와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바라보며 오상진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프랜차이즈라······. 이러다가 우리 엄마 부자 되겠는데.”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때를 같이해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윤태민 소위가 얼굴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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