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47)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60화
04. 그 나물에 그 밥(47)
“어머님 죄송해요. 제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여기로 모셨어요.”
“괜찮아요. 그보다 우리 상진이하고는 서로 아는 사이세요?”
“아······. 제가 그 말씀을 안 드렸구나. 강철이가 상진 씨 밑에서 군 생활 한 것은 아시죠?”
“네.”
“그 당시 제 동생이 워낙에 철딱서니가 없어서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요.”
“어후. 지금은 세상에 그런 총각이 없던데요.”
“강철이 이 녀석이 어머님 앞에서는 잘했나 보네요. 집에서는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막내아들이거든요.”
“하하, 그래요?”
“네. 아무튼 그때 제가 상진 씨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도 막냇동생이라고 하나밖에 없는데 오죽 신경이 쓰여야지요. 그래서 제가 종종 상진 씨에게 연락도 하면서 강철이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하면서 이렇듯 인연이 이어져왔네요.”
“그래요.”
신순애가 최강희를 바라봤다. 최강철보다 살짝 나이가 있어 보이긴 했지만 참하면서도 뭔가 똑부러진 그런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절로 며느리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오상진에게는 한소희가 있었다. 그래서 신순애는 방금 떠오른 생각을 냉큼 지우며 말했다.
“그런데 오늘 무슨 일로 날 찾아왔어요?”
“다름이 아니라. 혹시 어머니······ S마트가 있다는 것은 아세요?”
“S마트? 저기 너머에 있는 커다란 마트요?”
“네.”
“아, 거기가 선진 백화점 것이었어요?”
“네. 제가 관리하고 있어요.”
최강희가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어이구.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어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저희 엄마가 여태까지 해오셨던 계열사를 떼서 가져온 것밖에 없어요.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걸요.”
“그래도요.”
“혹시 S마트에 장 보러 가시나요?”
“자주는 아니고요. 종종 가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재래시장을 많이 이용해서요.”
“아, 그러시죠. 충분히 이해해요. 어쨌든 S마트에 푸드코너가 있어요.”
“네네.”
“그곳에 한식 메뉴를 추가할 생각인데요. 저희 S마트만의 브랜드가 필요해서 고민 중이었거든요. 그러다가 강철이에게 어머니 국밥집 얘기를 듣고 이렇듯 찾아오게 되었어요.”
“그 말씀은······.”
“네. 괜찮으시면 저희하고 같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시면 어떨까, 해서요.”
신순애가 살짝 당황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그런 비슷한 얘기를 들었었기 때문이다. 그러곤 이내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사실 최강희가 그 사실을 몰랐다면 신순애의 방금 반응에 좀 실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강희도 한울푸드에 대해서 얘기를 이미 들었다.
“어머니 얼마 전에요. 한울푸드에서 찾아왔다고 들었어요.”
“어······. 예. 그걸 어떻게······.”
“네. 실은 한울푸드에서 S마트에 입점하기 위해서 괜찮은 업체를 수소문하고 다녔던 모양이더라고요. 그 얘기를 나중에 듣고 알아보니 어머니 식당이기도 해서 한번 찾아와 봤어요.”
“아, 그렇구나.”
신순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강희는 바로 음식 칭찬을 했다.
“그런데 어쩜 그렇게 맛이 있어요.”
“네?”
“저 사실 한식 잘 안 먹거든요.”
“아, 그래요?”
“네. 아까 저 밥 한 공기 다 비우는 거 보셨죠?”
“봤어요. 그런데 억지로······.”
신순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최강희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저 억지로 먹고 그러지 않아요. 저는 엄마가 만든 요리도 맛없으면 안 먹거든요. 자랑은 아니지만······.”
“그래요?”
“네.”
“그럼 입맛에는 맞던가요?”
“제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국밥을 몇 번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제일 맛있었어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말고 어르신들이 아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봤거든요. 그런데 하나같이 너무 행복한 미소를 보이더라고요. 저희 S마트가 추구하는 것이 그런 것이거든요. 어쨌거나 대형마트는 가족 단위 고객들이 많이 찾아오면 좋은 것인데 아무래도 메뉴들이 젊은 취향들과 어린애들에게 맞춰지다보니 어르신들이 와서는 딱히 먹을 것들이 없더라고요. 그런 불만 접수도 많았고요. 그래서 어르신들을 위한 음식이 뭐가 있을까? 그러다가 어르신들만을 위한 음식 브랜드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국밥이 꼭 어르신들만을 위한 음식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어르신들을 마트까지 찾아오게 하려면 그분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 그러시구나.”
신순애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시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희가 딱히 프랜차이즈를 할 만큼 업체 규모가 크지 않아요.”
신순애의 말을 듣고 최강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에 프랜차이즈를 하게 되면 이리저리 신경 쓸 것이 많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를 해요. 그런데 프랜차이즈 계약을 했다고 해서 어머니가 직접 모든 것을 다 관리할 필요가 없어요.”
“그럼······.”
“이런 경우는 저희 백화점에서 설비부터 모든 조리 과정까지 저희가 준비를 하겠어요. 대신 어머니께서는 레시피만 공유해 주시면 됩니다.”
“레시피요?”
“아! 저희가 레시피를 강제로 얻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레시피 공유가 어려우시면······. 혹시 따로 담그신 장이 있어요?”
“네. 있어요.”
“그 장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을까요?”
“네. 뭐······.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한번 장 담글 때 일주일에 한 번씩 국밥에 들어가는 다진 양념장을 만든다. 그래서 대량으로 만드는 것 역시 어렵지 않았다.
“그럼 그 양념도 필요하시면 저희쪽에서 인력을 제공해서 만들 테니까요. 어머니께서는 관리감독만 해 주시면 돼요. 대신에 저희 S마트에 들어가는 모든 국밥집에는 어머니 상호가 그대로 적용될 것이고 판매 수익의 일부를 로열티로 지급해 드리는 방식으로 운영할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드세요?”
“음, 그렇게 하면······. 문제 될 것이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제가 이것에 대해서 잘 몰라서요.”
“그러시겠죠.”
“그럼 며느리 될 아이에게 이 일을 맡겨도 될까요?”
“며······느리요?”
최강희의 표정이 살짝 떨떠름하게 바뀌었다.
“혹시 소희 씨 말씀하시는 거죠?”
“저희 며느리 아세요?”
“얘기만 많이 들었어요. 엄청 미인이라고 강철이 녀석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어요.”
“어후 대표님도 미인이신데요.”
“감사합니다. 어머니.”
최강희가 쓸쓸히 웃었다. 그러곤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어머니께서 그게 편하시면 그렇게 하셔도 상관없어요. 저희 S마트에 어머니 국밥집이 들어오는 바람에서 하는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어떤 조건을 말씀하셔도 최대한 수용할 의사가 있어요.”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저야 감사하죠. 아, 그럼 이것도 가능할까요?”
“네, 말씀하세요.”
“수익의 일부를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위해 써도 될까요?”
“그럼요. 저희 프랜차이즈 사업과 관련해서 나온 수익은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곳에 사용하셔도 됩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신순애의 표정이 환해졌다.
“만약에 어머니께서 그리하신다면 저희도 푸드코트에서 나오는 매출 일부를 좋은 일에 쓰도록 하겠어요.”
“그러면 좋죠.”
신순애가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최강희가 그런 그녀의 미소를 보며 따라 웃었다.
최강희가 신순애를 만나고 있던 그 시각.
오상진에게도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찾아왔다.
“바쁜데 내가 찾아와도 되는지 모르겠네.”
“아닙니다. 앉으십시오. 차 한 잔 드시겠습니까?”
“주면 감사히 먹겠네.”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미소를 보였다. 오상진은 자신이 직접 녹차 잎을 우려내 차를 내왔다.
“드십시오.”
“고맙네.”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곤 미소를 보였다.
“차 맛이 좋군.”
“저희 예비 장인어른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요.”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다시 차를 마신 후 내려놨다.
“전에는 서울에 있는 곳에서 근무했다고 들었네.”
“네. 충성대대에 처음 임관해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곳 사단을 거쳐서 이곳까지 내려왔습니다.”
오상진이 차분하게 답을 해줬다.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질문을 했다.
“혹시 아는 동기들은 많은가?”
“하하하······. 제가 육사에서 공부만 하느라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군. 하긴 그게 정답이지. 자기 앞가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지.”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멋쩍게 웃었다. 오상진이 조슴시럽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오상진은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자네도 내가 왜 왔는지 알고 있지 않나. 태민이 때문에 왔네.”
“······네.”
오상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자 바로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말했다.
“그렇다고 그 일로 자네에게 부탁을 하려고 온 것은 아니야. 그건 걱정 말게.”
“네. 아무튼 그 일에 대해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자네가 뭐가 죄송한가.”
“제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윤태민 소위를 잘 이끌고 챙기고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니네. 나도 듣는 귀가 있고 이리저리 알아본 것도 있네. 오 대위는 충분히 할 만큼 했네. 솔직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자네가 조금이라도 악의를 가지고 그랬다면 내심 서운했을 것이네. 하지만 자네는 그런 것이 없지 않았나. 그것이면 충분하네.”
신봉규 예비역 준장의 대답에 오상진은 씁쓸했다. 솔직히 말해서 윤태민 소위에 대해서 감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자신이 처음 부임했을 때부터 사고를 쳤고 어떻게 보면 4중대의 악에 근원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 윤태민 소위를 인간적으로 끌어안지 못했다고 반성하고 자책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오상진이 신도 아니고 말이다. 어떻게 모든 사람들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오상진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넘겼다.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입을 열었다.
“참! 임 중령이 오 대위 자네 칭찬을 많이 했네.”
“임 중령님이라면······. 헌병 대대장님?”
“맞네. 내 후배라네.”
“아, 그러시구나. 임 중령님에게는 항상 도움만 받고 있습니다.”
오상진의 말에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피식 웃었다.
“임 중령은 오히려 반대로 말을 하던데. 오 대위 덕분에 지금 자리에 앉게 된 거라고 말이야.”
“아닙니다. 임 중령님이야 워낙에 군인으로서 모범이 되신 분이고 스스로 잘하셔서 그 자리까지 가신 분입니다. 오히려 제가 본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상진의 겸손에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바라봤다. 오상진의 내면까지 모든 것을 꿰뚫을 듯한 눈빛이었다.
“겸손까지······. 혹시나 했는데, 안되겠구나.”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
“아, 아닐세.”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다시 차를 들어 입 안을 적셨다. 사실 오상진을 만나면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려고 했었다. 어쩌면 윤태민이 옷을 벗게 될지도 모르니까. 혹여 일말의 가능성? 그런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오상진은 뚝심 있어 보였고, 자신이 말을 해도 올바르지 않다면 절대 하지 않을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