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46)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59화
04. 그 나물에 그 밥(46)
“아! 알죠. 여기에도 몇 번 밥 먹으러 왔는데요.”
“네. 강철이가 여기 국밥이 그렇게 맛있다고 해서요. 그래서 저도 한번 먹어보러 왔어요. 그런데 휴일이시라면서요, 어머니.”
“괜찮아요. 오늘 제가 따로 양로원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날인데 괜찮으면 먹고 가요.”
“저야 그러면 감사하죠. 사실 저희도 백화점이 월요일이 휴무라서요. 그래서 시간을 쪼개서 와 봤거든요. 다른 날은 제가 좀 바빠서 시간을 또 내야 하나 고민을 했거든요.”
“아니에요. 오늘 먹고 가요. 준비해 드릴게요.”
신순애가 따듯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러다가 최강희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부엌에 뻘쭘하게 서 있는 세 남자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누구죠?”
“어, 저기······. 식약청에서 공무원들이 나왔어요. 위생 점검을 한다면서요.”
“그래요? 그런데 제가 아까 밖에서 듣기론 이상한 말들을 하시던데······.”
최강희가 그들 중 최철호를 보며 물었다.
“죄송한데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네? 제 이름은 왜······.”
최철호가 당황했다.
“식약청에서 나오신 분들이 아니에요?”
“맞아요.”
“그런데 왜 성함을 안 알려주시죠. 그럼 소속을 알려주세요. 아니다. 위생 점검 나왔다면 위생과겠네요.”
“······.”
세 사람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대답을 하지 못했다. 최강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요. 식약청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왜 말들이 없죠? 성함을 알려주세요. 제가 정당하게 공무집행을 하고 있는지 따로 알아보려고 그래요.”
최강희의 말에 세 사람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최철호가 입을 열었다.
“어험! 흠······. 사장님 깨끗하네요. 별일 없는 것 같습니다. 저희들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최철호가 두 사람에게 눈짓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곧바로 부엌을 나가려고 했다. 최강희가 다시 불렀다.
“이봐요. 내가 묻잖아요. 이름이 뭐냐고요.”
“저희는 공무집행을 하러 왔을 뿐입니다. 이상이 없으니 이만 가겠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이 나가고 최강희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러니까요. 성함이 어떻게 되냐고요.”
하지만 그 세 사람은 대꾸도 하지 않고 가게를 나가버렸다. 최강흐는 그런 세 사람을 유심해 살폈다.
“흥, 당신들이 알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모를 것 같아. 이대로는 못 물러나지.”
최강희가 혼잣말을 했다. 그러곤 식당에 뻘쭘하게 서 있는 남자를 불렀다.
“최 비서!”
“네. 대표님.”
최 비서가 후다닥 달려왔다. 최강희는 그를 보며 지시를 내렸다.
“방금 나간 세 사람. 누군지 신원 파악해 놔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식약처장님하고 식사 한번 해야겠네요.”
“네. 준비하겠습니다.”
그 얘기를 알아들은 신순애가 말했다.
“그러지 말아요.”
“아뇨. 어머님도 세금 많이 내시겠지만 저는 엄청 내거든요. 제가 낸 세금으로 저런 짓을 한 공무원들은 용납이 안 돼요. 혹시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아버지께서 정치를 하시거든요.”
“네네. 들었어요. 최익현 의원님이시죠.”
“네. 맞아요. 제가요.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런 일은 그냥 못 넘어가요. 아후······.”
최강희는 선진 백화점 오너답지 않게 화통한 구석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신순애는 참 신기한 눈으로 최강희를 바라봤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거기 명함 있죠. 제 직통 번호거든요. 그쪽으로 전화 주세요. 제가 처리해 드릴게요.”
“아이고 고마워요.”
“고맙기는요. 그보다 이제 밥 먹을 수 있죠?”
“그럼요.”
“어디 앉으면 될까요? 저기 자리 비는데 저기 앉을까요?”
“네. 그래요. 앉아 계세요. 제가 바로 준비해서 가져다 드릴게요.”
“네.”
최강희는 밝은 미소를 보이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최강희랑 최 비서와 함께 한쪽 구석진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사이 어르신들이 한 명 두 명씩 들어왔다. 그러다가 구석에 앉아 있는 최강희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아이고 못 보던 예쁜 처자가 앉아 있네. 누구야?”
“글쎄다. 사장님네 아들이 있다고 했지? 혹시 며느리 아니야?”
“며느리?”
그 소리를 들은 최강희가 피식 웃었다. 그다음 말이 이어졌다.
“아들 부부가 왔나?”
어르신들은 최강희 옆자리에 앉은 최 비서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최 비서가 당황해하고 최강희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면서 정중하게 말했다.
“아니에요, 어르신. 저는 일 때문에 왔어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식사를 하세요.”
잠시 후 어르신들이 식사를 했다. 그리고 최강희와 최 비서에게도 식사가 나왔다. 그들 앞을 국밥이 놓이며 신순애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오늘은 영업일이 아니라서요. 메뉴가 하나밖에 없어요.”
“괜찮아요. 이게 기본 메뉴죠?”
“네.”
“맛있게 먹겠습니다.”
“네. 맛나게 먹어요. 더 필요하면 달라고 하시고요.”
“네, 어머니.”
신순애가 빙글 웃으며 부엌으로 돌아갔다. 최강희가 최 비서를 바라봤다.
“최 비서.”
“네, 대표님.”
“국밥 많이 먹어봤지?”
“그럼요. 먹어봤죠. 그러는 대표님께서는 드셔보셨어요?”
“나? 내가 많이 먹어봤겠어?”
“하하하······. 그렇죠. 대표님 평소에 한식을 잘 안 드시죠.”
최강희는 어머니의 식성을 따라서 양식을 좋아한다. 솔직히 최강희 집안에서는 입맛이 좀 갈리는 편이다. 선진그룹 이명희 회장은 양식파. 특히 이명희 회장은 유학 시절부터 양식을 즐겼고, 최강희 역시 유학을 하면서 입맛이 확 바뀌었다.
가끔 가족들이 모였을 때 아버지 최익현 의원 때문에 한식을 먹는다. 그 외는 쌀밥을 거의 먹지 않는다. 그런 최강희다 보니 사실 국밥을 즐기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야. 몇 번 먹어보긴 했는데······. 어떻게 먹어야 맛있게 먹는지 알아?”
“아······. 그런데 대표님. 제 스타일대로 드셔보시게요?”
“그럼. 이렇듯 어르신들이 다 계시는데 깨작깨작 먹으면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아, 네에······.”
최 비서가 멋쩍게 웃었다. 사실 최강희가 주변 어르신들 핑계를 대긴 했지만 왠지 이곳 사장님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크음. 그럼 대표님 제 스타일대로 합니다.”
“그래. 어서 해봐.”
“일단은 밥을 말아야 하니까요. 어후, 고기가 잔뜩 있네요. 이걸 적당히 그릇에 덜어내고요.”
“어. 그렇게 했어.”
“다음에 밥 반 공기를 넣어서 말아요. 그렇게 드시면 됩니다.”
“그렇게만 하면 돼?”
“네.”
“알았어.”
“깍두기와 김치는 드시기 편안하게 썰어 놓겠습니다.”
최 비서가 깍두기를 가위로 먹기 편하게 썰었다. 그사이 최강희는 시키는 대로 고기를 한쪽으로 덜어내고 공깃밥을 반쯤 넣어서 쓱쓱 말았다.
그 모습을 한쪽에 있던 신순애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래도 국밥 먹을 줄 아나 보네.”
최강희가 살짝 긴장한 얼굴로 한 숟갈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질끈 감은 눈으로 국밥을 입에 가져갔다. 돼지고기 비린내가 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응?”
입안 가득 고소함을 물론이고 담백함마저 있었다. 거기다가 깍두기 하나를 입에 가져가 아삭아삭 먹었다. 그러자 시원함과 개운함 맛까지 느껴졌다.
“어멋! 국밥이 이런 맛이었어? 완전 중독되겠는데.”
최강희의 수저가 바삐 움직였다. 몇 번 더 먹던 그녀는 앞에 있던 최 비서를 불렀다.
“최 비서.”
“네, 대표님.”
“국밥이 원래 이렇게 맛있어?”
“저도 이렇게 맛있는 국밥은 처음입니다.”
“그래?”
“네. 예전에 어렸을 때 저희 할아버지가 국밥을 정말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할아버지를 따라 여러 국밥집을 다니며 먹어봤어요. 그런데 이 집보다 맛있는 국밥은 거의 못 먹어봤습니다.”
“있긴 있고?”
“거의 제 어렸을 적 기억이에요. 시장에 있는 오래된 국밥집요.”
“응!”
“거기랑 이 집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그렇구나.”
최강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어르신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맛있게 드시고 계셨다.
‘맛은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네. 또 어르신들에게 봉사활동으로 대접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최강희가 반쯤 남은 공깃밥을 다시 국물에 말았다. 다시 수저를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음 맛있어. 강철이 이 자식은 이렇게 맛있는 것을 혼자 먹었단 말이야.”
신순애에게는 최강철에게 소개를 받아서 왔다고 했지만 사실 최강철은 신순애 국밥집에 같이 오자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맛있다고 얘기는 했지만 최강철도 최강희의 식성을 알기에 같이 가자고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맛이 있으면 같이 가자고 했어야지! 나쁜 자식!’
식사를 마친 최강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최 비서가 화들짝 놀랐다.
“대표님.”
“왜?”
“저기 대표님 블라우스에 국물이 튀었습니다.”
“진짜?”
최강희가 자신의 블라우스를 봤다. 그곳에 깍두기 국물이 몇 방울 튀어 있었다.
“그러네.”
만약 평소였다면 최강희는 무척이나 짜증을 낼 것이다. 그런데 모처럼 배불리 먹어서일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이거······. 최 비서가 그런 거 아니야?”
“아, 아닙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저 대표님하고 같이 식사하면 소화불량······.”
“뭐? 소화불량?”
최 비서는 더욱 당황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 대표님하고 혹시라도 밥 먹다가 실수할 것 같아서 정말 신경 써서 먹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랑 밥 먹는 것이 불편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방금 최 비서가 그랬잖아. 소화불량 걸린다고.”
“말이 헛나왔습니다.”
최 비서가 당황한 나머지 말이 헛나왔지만 아예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진그룹 오너 일가의 최강희다. 단둘이 앉아서 밥을 먹는데 편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심지어 최강희는 엄청 깔끔쟁이다. 임원들도 최강희가 같이 식사나하시죠. 그러면 대부분의 임원들이 질색을 했다.
수행비서라는 이유로 최강희와 팔자에도 없는 밥을 먹는 시간이 많다. 그나마 적응하긴 했지만 초반에는 소화불량으로 개고생을 했다. 최강희가 피식 웃었다.
“최 비서가 깐깐한 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 괜찮아야지. 대신에 최 비서! 내가 월급 많이 주잖아.”
“그럼요.”
최 비서가 미소를 보였다. 그녀가 농담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비서치고는 업계 최고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꾹 참고 견디는 중이었다.
“어디 보자. 여기 식사 끝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까. 일단 우리는 나가 있자.”
“네.”
최강희와 최 비서는 2층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식당을 찾은 어르신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대표님 제가 가서 모셔오겠습니다.”
“그렇게 해줘.”
“네.”
최 비서가 후다닥 1층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신순애가 2층 커피숍으로 올라왔다.
“여기 계셨네요.”
최강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