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4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58화
04. 그 나물에 그 밥(45)
오상진은 서울에서 술 약속이 있을 때도 어지간하면 한소희를 잘 안 불렀다. 하지만 상황보고를 하고 한소희가 오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차 키를 맡긴다. 그러나 한소희가 운전대를 잡는 순간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그러면 한번 알아봐요. 어차피 경비처리로 할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진짜죠?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요.”
“소희 씨 일하는 데 도움이 되라고 하는데요. 그리고 뭐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 우리 소희 씨가 너무 예뻐서 이렇듯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두지 않으려고 그래요. 남자들이 다들 저렇듯 달려드는데 내가 맘이 편할 것 같아요. 내 와이프는 내가 지킨다!”
오상진을 말을 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모습에 한소희가 씨익 웃었다.
“상진 씨.”
한소희가 오상진의 팔에 안겼다. 이렇듯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며 지금까지 평택을 오가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오상진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이제 알아서.”
“아니에요.”
“진즉에 말을 하지 그랬어요. 바로 해결할 수 있는데······.”
“상진 씨 신경 쓰게 하기 싫어서 그랬어요. 그리고 별것도 아니고요.”
“이게 왜 별것이 아니에요. 그러지 말아요. 앞으로 소희 씨에게 또 이러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바로 혼내줄게요.”
“정말요?”
“네.”
“알았어요. 어서 가요. 나 배고파요.”
오상진과 한소희는 차량에 올라탔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임스 상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쳇! 뭐야. 진짜였던 거야? 에이 모처럼 마음에 드는 예쁘장한 한국 여자애였는데.”
그러다 저만치 서 있는 여자를 보고는 씨익 웃었다.
“아쉬운 김에 저 여자라도 꼬셔야겠다.”
제임스 상사가 성큼성큼 그 여자에게 걸어갔다.
신순애 국밥집은 월요일이 정기휴일이었다. 정기 휴일날 신순애는 한 달에 한 번씩 봉사활동을 한다. 주변의 양로원으로 가서 그곳 어른들에게 맛있는 국밥을 대접한다.
오늘도 봉사활동을 맞이해 아침 일찍부터 가게로 나가 준비를 했다. 봉사활동 날만큼은 혼자 모든 것을 다 한다. 오랜만의 휴식일인데 종업원까지 자신의 봉사활동에 동원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혼자 고생하는 신순애를 위해서 봉사활동 단체에 있는 회원들이 식사준비를 거들었다. 하나둘 신순애 국밥집으로 모여들었다.
“어머나. 사장님. 역시 일찍 나오셨네요.”
“다들 나오셨네요.”
“잠시만 기다려 줘요. 저도 도울게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안 그러셔도 돼요. 다들 앉아 있으세요. 조금 있다가 서빙 할 때만 부탁드릴게요.”
“어떻게 사장님 혼자서 그걸 다 하세요. 인원이 몇 명인데······.”
“그런데 오늘은 인원이 몇 명이 오려나요?”
“글쎄요. 아마 저번하고 거의 같지 않을까요?”
신순애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한 회원이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40명 정도 오셨죠?”
“네.”
“알겠어요. 내가 준비를 할게요.”
“아 참! 사장님.”
“네?”
“수육은 준비하지 마세요.”
“왜요? 수육이 맛이 없대요?”
“그게 아니라 수육 나온다고 하니 이곳저곳에서 수육 먹으려고 오시는 분들이 몇 분계시더라고요.”
“으음······, 그 정도는 괜찮은데요.”
“아니. 그분들은 사정이 괜찮은 분들이신데요. 그저 수육이 먹고 싶어서 와서 밥만 먹고 가시는 분들이에요.”
“아, 그래요?”
“봉사활동의 취지가 어떤 것인지는 잘 알겠는데요. 그런 분들은 괜히 얌체 같더라고요. 그런 분들 있으면 원래 식사하시는 어르신들이 불편해하시고요.”
“네.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요.”
신순애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가게에 오신 손님들 중에서 몇몇 어르신들이 수육 서비스로 안 주냐는 소리를 농담식으로 말을 하던 것이 생각났다.
아마도 한 달에 한 번 봉사활동을 하는 날에 수육을 제공했던 것을 알고 그것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았다.
‘하아, 참······. 베풀면서 사는 것도 힘드네.’
원래 신순애가 이렇게까지 남을 위해서 살고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 하루하루 벌어먹기 바빴다. 그러다가 아들이 로또에 당첨되고 난 후부터 뭔가 일이 잘 풀렸다. 그래서 아들을 위해서라도 베풀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식당을 하면서도 틈틈이 불우이웃들을 도왔고 그러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휴일을 반납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런 자신의 선행을 이해해 주고 좋아해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아니야. 그래도 다른 분들을 위해 빨리 준비해야지.’
신순애는 애써 부정적인 것을 걷어냈다. 다시 부엌으로 가서 음식 준비를 서둘렀다. 종종 들렀던 아주머니 둘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벌써 준비하고 있어? 미영 씨.”
“언니도 왔어요?”
“우린 뭐해?”
“저쪽 테이블부터 쭉 수저를 놓아주시면 될 것 같아요. 주방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내가 주방을 돕는 것이 좋지 않나?”
“아니에요. 주방은 제가 해요.”
“알았어.”
그렇게 다들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구청 공무원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수고들 하십니다.”
“네? 누구신데요?”
회원들 중 하나가 물었다.
“저희 식약청에서 나왔습니다.”
“식약청요?”
“네.”
미영은 식약청 공무원들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물었다.
“오늘 영업 안 하는데요.”
식약청 공무원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영업 안 하시는데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아, 지금 한 달에 봉사활동 때문에 양로원에 계신 어르신들 식사 준비 중이에요.”
“어후, 좋은 일 하시네요. 그런데 저희도 신고받고 와서요. 위생 점검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사장님.”
오늘 휴일이라고 했는데도 식약청 공무원들이 무작정 밀고 들어왔다. 미영은 그대로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장님. 사장님.”
“왜요?”
한창 국밥 국물을 준비하던 신순애가 다급히 들어온 미영을 봤다.
“아니, 식약청에서 사람들이 위생 점검한다고 지금 막 왔어요.”
“위생 점검을요? 갑자기 오늘요? 공문을 받은 적도 없는데······.”
신순애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이내 앞치마를 벗었다.
“미영 씨, 내가 나가볼게요.”
“네.”
신순애가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곧바로 식약청 공무원과 마주쳤다.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
신순애가 말릴 틈도 없이 식약청 공무원은 부엌으로 들어왔다. 그는 대충 눈으로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으음······. 많이 깔끔하시네요. 깨끗한데요.”
식약청 공무원들이 이리저리 뒤지며 확인을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영이 신순애에게 다가갔다.
“사장님 어떻게 해요?”
“별일 없을 거예요. 위생 점검을 몇 번 받아봤는데 그때마다 별일 없었어요. 그런데······ 대부분 못 보던 얼굴인데요.”
신순애가 혼잣말을 했다. 지금까지 식약청에서 위생 점검을 나온다고 하면 며칠 전 공문을 미리 보낸다. 그리고 매번 같은 사람이 나와 위생 점검을 실시했다. 그때마다 위생이 깨끗하다며 우수식당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순애는 별문제 없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 명의 식약청 공무원은 구석구석 확인을 해봤지만 이렇다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이 정도면 깨끗한데요.”
“그러게 말이에요. 손볼 곳이 없어요.”
“딱히 걸릴 곳이 없는데······.”
공무원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유 주임님이 특별히 신경 쓰라고 했잖아. 빈 손으로 갈 거야?”
“그럼 어떻게 해요?”
“뭐 하나라도 걸릴 것이 있는지 확인해 봐.”
“없어요. 없다니까요.”
그렇게 식약청 공무원들이 난감해하고 있을 때 양로원 어르신들이 하나둘 가게로 들어섰다. 미영이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사장님 오셨어요.”
“일단 미영 씨는 어르신들을 자리로 안내해 줘.”
“네.”
미영이 재빨리 움직여 봉사활동 회원들과 함께 어르신들을 자리로 안내했다. 식약청 공무원인 최철호는 이때다 싶어서 뭔가 트집 잡을 것을 찾고자 이리저리 뒤졌다. 그러던 순간 옆에 있던 식약청 공무원 한 명이 최철호를 툭 쳤다.
“왜 그래?”
“하지 마.”
“왜?”
그러자 그 직원이 최철호에게 눈짓을 보냈다. 최철호는 직원이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뒀다. 그곳에서 신순애가 손님들이 들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 진짜······. 끈질기네.’
솔직히 조금이라도 걸리는 것이 있다면 그걸 가지고 큰소리치면서 잔뜩 겁을 줄 생각이었다. 그다음에 유진호가 나서서 이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었다. 한데 막상 들어와 보니 너무 깨끗했다. 오늘은 영업일도 아닌데 전날에 청소를 깨끗이 하고 가서 걸릴 것이 없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러고 있는데 신순애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마나 더 걸리죠?”
“왜요?”
“지금 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요.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데요.”
“식사 준비하세요. 저희는 좀 더 보고 갈 테니까요.”
최철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신순애가 살짝 표정을 굳혔다.
“이렇게 부엌에 계시면 식사를 어떻게 준비해요.”
최철호가 콧방귀를 꼈다.
“왜요? 저희에게 보여주면 안 되는 거라도 있어요?”
“그게 아니라. 여기 봐봐요. 부엌에 좁아요. 이렇듯 장정 셋이 들어와 있는데 제대로 준비가 되겠어요? 그리고 여기는 화기를 다루는 곳이에요. 뜨거운 국물과 불이 있단 말이에요. 자칫 잘못했다가 사고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게다가 오늘은 영업일이 아니라 저 혼자 모든 것을 다 준비해야 한단 말이에요. 이렇듯 안에 계시면 제가 일을 못 해요.”
그러자 최철호는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사장님 이상한 말씀을 하시네요. 저희 식약청에서 나왔다고요. 일하러 왔는데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챙겨주지도 못할망정 뭐라고요? 사장님 우리 식약청을 너무 우습게 보신다.”
“네? 뭐라고요?”
오히려 황당한 표정을 짓는 신순애였다. 여태껏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예 대놓고 금품을 요구한 적도 말이다.
“참 답답한 사장님이시네. 좋게 끝날 것을······.”
신순애가 막 말을 하려는데 밖이 소란스러웠다. 미영의 음성이 들려왔다.
“잠시만요. 그쪽으로 들어가시면 안 되는데······.”
또각또각.
발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정장을 차려입은 여성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신순애 사장님?”
“네. 제가 신순애에요.”
“아. 네에.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선진 백화점 최강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최강희가 명함을 내밀었다. 신순애가 얼떨결에 그 명함을 받고 확인했다. 그러자 대표라고 적힌 것을 보고 눈을 크게 했다.
“대, 대표님이세요?”
그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흠칫 놀랐다. 이곳에 선진 백화점 관계자가 온 것도 웃긴데 그 사람이 바로 대표였다. 최강희가 환한 미소로 말했다.
“제가 상진 씨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제 동생이 상진 씨에게 신세를 좀 졌거든요.”
“동생이면······.”
“강철이요. 혹시 아시나요?”
최강희의 물음에 신순애는 대번에 표정을 밝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