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4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57화
04. 그 나물에 그 밥(44)
“아, 예에······. 괜찮습니다. 저 그렇게 신경 안 써주셔도 됩니다.”
“유 하사는 그렇게 말을 해도 내가 괜찮지 않아.”
“예?”
“유 하사가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 그게 아니야.”
“그게 무슨······.”
유선영 하사도 정말 궁금했다. 눈을 크게 하며 김호동 하사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러자 김호동 하사가 자신의 머리를 박박 긁었다.
“아, 진짜!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러는지.”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김호동 하사였다. 그러면서 앉아 있는 유선영 하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뭐······. 지금 내 감정을 모르겠는데.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해지려고 해. 유 하사가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면 돼! 그거면 되는 거야.”
그 말을 한 다음에 김호동 하사가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유선영 하사가 중얼거렸다.
“뭐라고 하는 거지?”
유선영 하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김호동 하사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가만,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해?”
유선영 하사의 눈이 점점 커졌다.
“설마······. 설마? 진짜로? 설마?”
유선영 하사도 이번 사건으로 인해 부사관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정말 싫었다. 윤태민 소위 사건으로 인해 적당히 거리를 두고 뒤에서는 자신에 대해 쑥덕거렸다.
물론 그런 이유 때문에 휴가를 군말 없이 갔다.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너무 피곤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도 너무 싫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하지만 그때도 그런 상황에서도 늘 자신 옆에서 한결같았던 사람은 김호동 하사였다. 그래서 김호동 하사에 대한 호감이 많이 커져 있었다.
그렇지만 김호동 하사는 황하나 하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자신이 포기를 했다. 자신이 김호동 하사라고 해도 상관과 부적절한 소문이 나도는 동료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오상진에 대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냥 짝사랑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갑자기 김호동 하사가 저런 식으로 말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뭐야. 이제 와······. 사람 마음 정리 다 했는데.”
그렇게 홀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박윤지 3소대장이 휴게실로 달려왔다.
“유 하사 괜찮아?”
“네. 언니, 괜찮아요.”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
“왜 그래요?”
“못 들었어? 2소대장 보직해임 당했대.”
“정말요? 왜요?”
유선영 하사는 이미 다 들었지만 못 들은 척을 했다. 그러자 박윤지 3소대장이 신나 하며 얘기했다.
“말도 마. 지금 행정반에 들어와서 혼자 씩씩거리며 난리도 아니야.”
“보직해임 당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해. 무조건 처벌 확정이라는 거지. 그리고 부대에서는 웬만하면 보직해임은 잘 안 시켜. 그것도 대대장님 직접 지시를 내린 거라고 하니까. 헌병대에서 대충 넘어가면 대대장님이 가만 안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거예요?”
“아무튼 정말 잘 됐다!”
“고마워요, 언니.”
두 사람은 손을 꽉 잡았다. 박윤지 3소대장이 미소를 보였다.
“내가 해준 것이 뭐가 있다고.”
“그런데 언니.”
“응?”
“김호동 하사님이요. 저 없을 때 어땠어요?”
그러자 박윤지 3소대장이 씨익 웃었다.
“으구, 너 아직도 김 하사 좋아해? 지난번에 마음 정리 다 했다면서.”
“그게 말이에요. 조금 전에 이상한 말을 하고 가서요.”
“조금 전에?”
박윤지 3소대장이 고개를 홱 돌려 김호동 하사를 찾는 듯했다.
“조금 전까지 김호동 하사랑 같이 있었어?”
유선영 하사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박윤지 3소대장이 표정이 환해졌다.
“그래서? 김 하사가 뭐라고 했는데?”
박윤지 3소대장은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며 재촉했다. 그러자 유선영 하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에요.”
유선영 하사가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 틀어놨다. 그러자 박윤지 3소대장이 박수를 치며 유선영 하사만큼 좋아했다.
“어멋! 어머머머! 김 하사가 유 하사를 좋아한다는 거네. 아니지, 마음이 있다는 거네. 잘됐다! 잘됐어, 유 하사.”
“아, 아니에요. 아직은 표현을 안 했는데요.”
“뭐가 아니야. 그 말은 자기가 좋아하고 있는데 잘 모르겠다는 거잖아. 그럼 좋아하는 거야!”
“그런 걸까요?”
“그렇다니까. 아무튼 김 하사 웃겨! 처음에는 황 하사 따라다니더니.”
“그러게요.”
“음, 김 하사 말이야. 원래 내 부소대장이었던 거 알고 있지?”
“네.”
“사실 그때는 내가 정말 못했어. 김호동 하사는 나에게 살갑게 대하려고 했는데 난 무섭고 겁이 나더라.”
“왜요? 언니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아서요?”
“그런 것도 있고. 또 너무 친하게 지내면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게다가 그때는 전 중대장이 이상했거든.”
“이상해요?”
“응! 남녀 간에는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한다는 둥. 자신 말고는 앞으로 의지하지 말라고 하고······.”
“어멋! 웃기는 중대장이네요.”
“그래. 지금은 그 양반도 보직해임 당했거든. 아마 스스로 전역했을 거야.”
“아, 그래요?”
이민식 대위에게 종종 전화가 왔다. 하지만 박윤지 3소대장은 받지 않았다. 더 이상 군 생활에 관여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시엔 한편으로는 자신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받아주면 이 인간에게 평생 끌려다닐 것만 같았다. 게다가 박윤지 3소대장에게는 든든하게 믿을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오상진을 믿고 군 생활을 열심히 해보기로 한 것이다.
“어쨌든 잘됐다, 잘됐어!”
“그런데 김 하사님의 마음을 확실히 모르겠어요. 황 하사를 좋아했잖아요.”
“황 하사? 아니야. 요새는 안 그럴걸.”
“왜요?”
“황 하사 예전만큼 인기 없어.”
“······.”
유선영 하사는 의문이 가득 담긴 눈이 되었다. 박윤지 3소대장이 차분하게 얘기를 해줬다.
“황 하사······. 소문이 났어. 그때 황 하사가 유 하사를 버리고 간 것을 말이야.”
“어떻게 말이에요? 난 말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돌아다니며 이실직고하고 다녔어. 그때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이야. 아마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이라도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모양이야.”
“아, 네에······.”
“그러니 유 하사도 황 하사를 너무 미워하지 마. 이제 와 저러는 것이 좀 그렇지만 어쨌든 황 하사도 반성하고 있다는 거잖아. 용서가 어려우면 이해라도 해줘.”
“네, 알겠어요.”
“들어가자.”
“네.”
두 사람이 휴게실을 벗어나 행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저녁 기분 좋게 퇴근을 한 오상진은 평택 버스터미널에서 기다렸다. 그러면서 시계를 확인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오상진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네. 소희 씨.”
-나 방금 도착했어요.
“나는 지금 주차장이에요. 지금 내리는 곳으로 갈 테니까. 거기 있어요.”
-아니에요. 저 지금 내려요. 내가 주차장으로 갈게요. 거기 있어요.
“그럴래요?”
-네.
“알겠어요. 빨리 와요.”
오상진이 전화를 끊었다. 차에서 내린 후 그 자리에서 한소희를 기다렸다. 차창을 통해 비치는 자신의 군복을 정리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람들이 통로를 통해 나왔다. 그 속에 한소희가 보였다. 오상진의 표정이 밝아지며 손을 들려는데 그녀 옆으로 웬 미군이 다가와 말을 걸고 있었다.
“응?”
오상진이 뭔가 싶었다. 그런데 한소희가 얘기를 하며 그 미군에게서 벗어났다. 그럼에도 그 미군은 계속해서 한소희를 쫓아와 말을 걸었다. 한소희 다시 뿌리치며 가려는데 이번에는 미군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순간 오상진의 눈이 추켜 떠졌다.
“저 자식 뭐야?”
오상진이 다급하게 한소희 곁으로 다가갔다. 한소희가 밝은 표정으로 오상진을 불렀다.
“상진 씨.”
한소희가 미군의 손을 뿌리치고 오상진에게 갔다. 미군은 오상진을 위아래로 훑더니 씨익 웃었다.
“넌 뭐냐?”
영어로 물었다. 그러자 오상진도 바로 영어로 답했다.
“난 남편인데 당신은 뭐지?”
그 미군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남편이라고? 장난하지 마.”
미군은 한국드라마를 많이 봤다. 그곳에서 여성이 도와달라고 하면 남자들은 나서서 자신이 남자친구다, 혹은 남편이다라고 하며 도움을 주는 식이다. 오상진 역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너희들 본 적도 없잖아.”
미군이 비아냥거리며 웃었다. 오상진의 눈길이 확 일그러졌다. 그러면서 미군의 계급을 확인했다. 약칭으로 MSG(Master Sergeant), 즉 상사였다. 그 말에 오상진이 대꾸를 하려는데 한소희가 나서서 유창한 영어로 답했다.
“결혼했든 말든 당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야. 난 이 사람의 아내가 맞다. 그러는 당신은 왜 조금 전부터 싫다고 했는데 사람을 괴롭혀! 당신 소속 어디야? 군인이 민간인에게 이래도 돼? 미군이면 용인 미군 기지인가? 계급과 소속 이름을 말해봐!”
한소희가 당당하게 말을 하자 미군은 머뭇머뭇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두 팔까지 들며 더 이상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면서 힐끔힐끔 뒤를 돌아봤다. 딱 봐도 한소희에게 미련을 보이고 있었다.
“아, 짜증 나!”
한소희가 인상을 썼다. 아무래도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상진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이번이 처음 아니죠?”
“아, 아니에요. 우리 가요.”
한소희가 팔짱을 꼈다. 오상진은 그 얘기를 듣고 바로 느꼈다.
“소희 씨 피곤하니까 버스 타고 내려오라고 한 것인데······. 안 되겠네요. 기사 딸린 차라도 한 대 사야지.”
한소희가 바로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정말요? 정말?”
“왜요? 진짜 문제 있는 거예요?”
“아니, 그거 말고요.”
“그럼요?”
“기사 딸린 차!”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기사 딸린 차가 필요해요?”
“아니 뭐······. 다른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미팅을 나가고 그러려면 자료를 볼 시간도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내가 직접 운전할 때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자료를 확인하고 그래야 해서요. 그냥 그래서 그런 거죠.”
그렇게 말을 했는데 한소희가 약간 그런 것에 로망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버님은 따로 운전기사가 있으시죠?”
“네. 최 기사 아저씨요.”
“그렇구나. 큰 형님은요?”
“오빠는 자가운전하죠. 그냥 의사인데.”
“설마 둘째 형님은······.”
“맞다.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요. 둘째 오빠 기사 뽑았어요.”
“네에? 형님이요?”
“내가 운전기사 월급 주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말을 하는데요. 둘째 오빠가 그래요. 비즈니스 하다 보면 그런 것에 차이가 크대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본인이 직접 운전하는 것이 트렌드이지만 아무래도 이 시대에는 한 회사의 대표라면 운전기사를 따로 두고 차를 타고 다니는 편이었다. 아마도 그런 것 때문에 한소희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계속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둘 수도 없고······.’
오상진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오늘만 봐도 그랬다. 미군이 그랬으면 일반 한국 남자들은 아마 더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운전이 아직 미숙한 한소희에게 차를 맡기는 것도 좀 그랬다.
한소희는 종종 오상진이 탄 차를 운전하고 그랬다. 그러나 운전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운전에 소질은 없었다. 한소희도 자신의 그런 모습에 많이 속상해하고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