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4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56화
04. 그 나물에 그 밥(43)
대대장실을 나온 방대철 주임원사는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제기랄! 도대체 이게 뭐야? 일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 거야.”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 대대장실을 쳐다보며 더욱 인상을 썼다.
“그리고 지는 왜 나에게 지랄이야. 이게 다 너를 위해서잖아. 멍청한 대대장아.”
방대철 주임원사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사무실로 가는데 저 멀리 홍성율 중사가 걸어왔다.
“홍 중사!”
“네, 주임원사님.”
홍성율 중사가 재빨리 달려왔다. 그러다가 힐끔 대대장실을 보며 말했다.
“왜 대대장님실에서 나오신 겁니까?”
“나 지금 대대장에게 완전 깨졌거든.”
“네? 대대장님에게 말입니까?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대대장님이라고 해도 주임원사님을······. 좀 너무하셨습니다.”
홍성율 중사는 방대철 주임원사의 눈치를 살피며 그를 두둔했다. 예전 같으면 피식 웃고 넘어갔을 텐데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홍 중사. 너 헌병대 조사를 받았다고 했지?”
“네. 받았죠.”
“지난번 말고 이번에 말이야.”
“아······. 예에. 헌병대에서 새로운 조사관이 나와서 다시 받았습니다.”
“너, 그때 뭐라고 했어?”
“······.”
순간 홍성율 중사가 눈알을 굴렸다.
‘우씨! 왜 갑자기 물어보지?’
설마하니 방대철 주임원사가 그것을 물어볼 줄은 몰랐다. 그런 홍성율 중사의 표정을 읽은 방대철 주임원사가 바로 얼굴을 굳혔다.
“야! 홍 중사!”
“네.”
“너 솔직히 말해. 뭐라고 그랬어.”
“별 얘기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별 얘기 안 했는데 뭐라고 했냐 말이야.”
“그냥 저기 뭐냐. 처음에 얘기 했던 대로 했습니다.”
“처음에 했던 대로? 하나도 빠지지 말고 똑바로 말해!”
방대철 주임원사가 바로 눈을 부라렸다. 홍성율 중사는 순간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그냥 윤 소위에 대해서 묻기에 그냥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 하사에 대해도 묻기에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도 그렇고 자신의 몸을 잘 가누지도 못하고 또 은연중에 윤 소위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돈다고 그 정도까지 딱 말했습니다.”
“그래? 그게 끝이야?”
“네. 더 이상 뭘 얘기하겠습니까.”
홍성율 중사는 얘기를 하면서도 시선을 피했다. 말까지 얼버무리자 방대철 주임원사가 놓치지 않았다. 그 역시도 군 짬밥이 몇십 년이었다.
“그래서? 그걸 누구에게 들었다고 그랬어?”
“저어······.”
“솔직하게 말하라고 했다.”
그러자 홍성율 중사는 거의 기어들어 가는 말투로 말했다.
“주임원사님께서······.”
“뭐? 날 팔았다고?”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아······. 미치겠네. 너 제 정신이야? 완전 미친놈이네. 내가 아무리 그런 소리를 했다고 해도 그딴 식으로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지. 너 이 새끼야. 중사라는 녀석이······.”
“주임원사님.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표정이 막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뭐?”
“그러니까, 저에게 떠보듯이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어떻게 알아? 네가 어떻게 아냐고!”
“제가 거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뭐?”
“제가 맨 마지막에 불려갔단 말입니다. 다른 부사관들은 일찌감치 불려가서 진술을 하고 나왔는데 물어봐도 잘 대답도 해주지 않고 피하는 겁니다. 뭔가 찔리는 것이 있는지······. 어쨌든 제 차례가 되어서 들어가 보니 알겠더란 말입니다. 분위기가······. 어쨌든 헌병대 조사관이라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알고 불렀단 말입니다. 거기다 대고 거짓말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홍성율 중사는 자신은 억울하다며 말했다.
“그래서 날 팔았어? 에라이······.”
“주임원사님 진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물어보십시오.”
“꺼져! 꺼져 새끼야!”
홍성율 중사가 후다닥 도망치듯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방대철 주임원사가 짜증을 냈다.
“대대장이 왜 저 지랄을 했는지 알겠네. 헌병대에서 자신이 부사관들을 선동해 유 하사를 묻어버리려고 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면······. 와, 제기랄 이제 어떻게 하나?”
게다가 믿었던 부사관들은 힘들 때 아버지 찾고 형님 찾고 그랬으면서 막상 이럴 때는 등을 돌려 버리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것들을 진짜······. 조만간에 푸닥거리 한번 해야겠네.”
방대철 주임원사가 이를 갈았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설마 이걸로 나한테까지 지랄하는 것은 아니겠지?”
방대철 주임원사도 한 번 불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황인태 대위가 조사를 맡았다. 황인태 대위는 별 얘기를 안 했다. 간단한 것을 물어보고 부대에 관한 것을 물어보는 정도였다.
“잠깐 내가 그때도 유 하사에 대해서 얘기를 했던가?”
고민을 하던 방대철 주임원사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니야. 안 했던 것 같아. 그럼 윤 소위에 대해서도 별말 안 했어. 그럼 나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모른다고 해야겠다. 그래!”
일단 방대철 주임원사는 그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걸음을 옮기다가 우뚝 멈췄다.
“가만! 설마······. 부식업체와 관련된 것도 걸린 것은 아니겠지?”
방대철 주임원사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동생인 방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왜?
“너 지금 뭐 하냐?”
-뭐 하겠어. 지금 물건 정리 중이지.
“다른 것은 아니고 너 말이야. 가게에 누가 찾아오거나 하지 않았지?”
-찾아오긴 누가 찾아와. 가뜩이나 장사가 안되어서 죽겠는데.
“새끼가 아주······. 형이 전화를 했는데 꼬라지가 그게 뭐야.”
-그것보다 형! 이게 뭐야? 형 때문에 이혼당하게 생겼어.
“뭐?”
-여편네가 돈도 안 벌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화를 내잖아.
“제수씨가? 이야, 제수씨 해도 너무하네. 너 덕분에 잘 먹고 잘살았으면 좀 참고 버텨줘야지.”
-뭘 나 덕분에 잘 먹고 잘살았어. 형 말 듣고 부대 치킨집 차렸다가 최근까지 파리만 날리다가 접었잖아.
“그래. 이 새끼야. 내가 언제 치킨 가지고 장난치래? 잘 만들어서 팔아야지. 누가 그렇게 하랬냐고?”
-그거 형이 알려준 거거든. 어차피 먹으면 다 똥으로 간다고 했잖아.
“그래도 적당히 해야지. 적당히! 나도 못 먹겠는걸 팔면 어떻게 하냐?”
-아, 됐고. 왜 전화했어?
“이상한 사람 왔었냐고!”
-그거 물어보려고 전화했어?
“그래.”
-없어! 아무도 안 왔어. 제발 사람 좀 왔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누가 찾아오면 절대 바로 상대하지 말고 나에게 전화해.”
-형에게 전화하면 바로 오고?
“새끼야. 바로 전화 하라고! 형이 알아보려니까.”
-뭔데? 무슨 일인데?
“별거 아니야. 혹시 몰라서 그래.”
-알았어!
방대호가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서 방대철 주임원사가 중얼거렸다.
“아, 이 새끼······.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동생인 방대호를 통해 뒷돈을 받아먹을 생각으로 부식업체를 차리게 한 것은 방대철 주임원사다. 그러나 막상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모든 것이 방대호 때문인 것만 같았다.
“그보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설마 거기까지는 하지 않겠지.”
방대철 주임원사는 애써 부정하며 속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무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김호동 하사는 유선영 하사와 따로 휴게실에 앉아 있었다.
“유 하사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유 하사가 이해해. 윤 소위 저 인간. 사람 아니야. 그렇게 사고를 치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그런데 윤 소위님 왜 저러십니까?”
“아, 얘기 못 들었구나. 대대에서 윤 소위 보직해임 하라고 했대.”
“네? 진짜입니까?”
“그래.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아니, 헌병대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보직해임 하라고 대대장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네. 그래서 내가 그거 알려주려고 유 하사가 찾으러 다녔다가 딱 발견한 거잖아.”
“아, 네에······. 아무튼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무슨······. 부사관끼리 서로 돕고 그래야지.”
유선영 하사가 그런 김호동 하사를 바라봤다. 조금 전 김호동 하사가 자신 앞을 가로막고 윤태민 소위와 맞섰을 때는 솔직히 살짝 설렜다. 또한 자신을 이렇듯 보호하는 것으로 보아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김호동 하사가 같은 부사관이라고 도왔다고 하니 살짝 서운하기도 했다. 김호동 하사도 자신이 그 말을 내뱉고는 살짝 후회했다.
‘아이씨. 이게 아닌데······.’
사실 김호동 하사는 처음에 황하나 하사를 좋아했다. 붙임성도 좋고, 술도 잘 먹고 여군을 하기에는 아까운 외모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황하나 하사와 한 번쯤 사귀어보고 싶은 것은 맞았다.
유선영 하사도 예쁘장한 얼굴에 매력적이긴 하지만 황하나 하사와 같이 다니니 빛이 바랬던 것도 있었다.
그런데 황하나 하사 주변으로 파리가 꼬이고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의욕이 떨어졌다. 그런 경쟁자들을 다 제치고 황하나 하사를 쟁취할 수만 있다면 참 좋을 것이지만, 솔직히 여자와 연애를 하겠다고 군인이 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은 이미 한 번 군 생활을 그만두려다가 어렵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여자 때문에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고 있다가 윤태민 소위 사건이 터졌다. 김호동 하사는 화가 많이 났다.
“그러게 술을 적당히 마시지. 왜 하필 윤 소위랑······.”
마치 그 일이 제 일처럼 열이 났다. 그리고 도와주고 싶었지만 딱히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윤 소위를 흠씬 패줄 수도 없고 말이다. 이대로 유선영 하사가 그만두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유선영 하사는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히 중대장님을 찾아가 모든 사실을 알리고 헌병대 조사가 내려와도 버티고, 주변에서 쑥덕거려도 참고 이겨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 멋있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후회도 되었다. 만약 그때 황하나 하사가 아니라 자신이 관사로 부축해서 갔으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고작 걱정된다는 핑계로 문자 달랑 하나만 보내놓고 끝이었다. 그래도 선배인데 말이다. 그렇게 유선영 하사에게 마음을 쓰다 보니 김호동 하사는 자신도 모르게 호감이 생겼다.
처음에는 동정이나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김호동 하사 본인은 윤태민 소위 때문에 전역까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그것도 자신의 상관인 소대장을 상대로 말이다. 그 모습을 보니 확실히 유선영 하사가 달라 보였다.
하지만 유선영 하사와 그런 교감이 없다 보니 말이 그렇게 튀어나왔다. 유선영 하사가 약간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같은 부사관이라고 이렇듯 챙겨 주시고 말입니다.”
“어······ 그게······. 유 하사······.”
“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나는 꼭 부사관이라서 챙겨준 것은 아니야.”
“그럼 말입니까?”
“유 하사를 보면 마음도 쓰이고······ 신경도 쓰이고······.”
하지만 유선영 하사는 그것이 동정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