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4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55화
04. 그 나물에 그 밥(42)
황인태 대위가 다이어리를 덮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조현철 상사가 입을 열었다.
“유 하사 그동안 고생했어.”
“네?”
“그동안 사실 이리저리 부사관들을 전담했거든. 원래 장교들은 장교들 편이고, 부사관들은 부사관들 편 아니야.”
“아, 예에······.”
“장교들 입장에서는 윤 소위가 집안도 괜찮고, 외모도 괜찮고 하니 뭔가 운이 없었다. 재수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할 수 있어. 만약에 우리가 반대로 생각하면 어떤 장교 때문에 우리 부사관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면······. 팔은 안으로 굽으니까. 뭔 얘기인 줄 알지?”
“네. 이해는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유 하사를 감싸고 보호해 줘야 할 부사관들이 그랬다는 것이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유선영 하사가 그 소리를 듣고 왈칵 눈물을 흘리려고 했다. 그러자 황인태 대위가 나섰다.
“울지 말아요.”
그러면서 괜히 조현철 상사에게 말했다.
“조 상사. 왜 괜히 그 얘기는 해서는······.”
“아니, 나도 부사관이고 유 하사도 부사관인데 내 딸 같아서 그래. 딸 같아서. 앞으로 군 생활을 하다 보면 또 이런 일을 겪을 텐데······. 아이고. 나도 군인이지만 대한민국 군인들은 참 별로야.”
황인태 대위가 휴지를 떼서 유선영 하사에게 건넸다.
“눈물 좀 닦아요.”
“감사합니다.”
황인태 대위가 차분하게 말했다.
“아무튼 지금까지 고생 많았어요. 솔직히 군사재판까지 가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끝까지 가야겠지만······.”
설사 윤태민 소위가 군사재판을 통해 옷을 벗게 되더라도 유선영 하사의 아픔이 상처가 백 퍼센트 치유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게다가 헌병대는 이런 사건 사고를 조사하는 기관이지 이렇게 인간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그런 의무는 없다. 하지만 황인태 대위도 그동안 고생했을 유선영 하사를 같은 동료로서 미안함이 들었다.
“고생 많았고······. 내가 군인들을 대신해 사과를 할게요. 물론 내 사과가 유 하사에게 얼마나 큰 위로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재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어요. 그러니 유 하사도 너무 자책하지 말고 군 생활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알겠죠?”
유선영 하사가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그래요. 이제 나가보셔도 좋습니다.”
유선영 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한 후 상담실을 나갔다. 그러자 조현철 상사가 의외라는 눈빛으로 황인태 대위를 봤다.
“오오. 웬일이십니까?”
“뭐가요?”
“원래 그런 말씀 잘 안 하시잖아요.”
“조 상사님이 조사하셨으니까. 잘 아시지 않습니까. 부사관들이 유 하사를 어떤 식으로 몰아갔는지. 만약에 이 증거가 없었다면 어떨 것 같아요. 아마 군 생활 오래 못 버티고 옷 벗었을 것입니다.”
“그렇죠. 이곳 군대라는 곳이 여자가 오래 버티기 쉬운 곳도 아니고요. 그보다 윤 소위는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죠. 윤 소위가 잘못한 것 하나도 빠짐없이 다 올려서 최대한 무거운 벌을 받게 해야죠.”
“난 솔직히 이런 인간들이 육사랍시고 군대 위로 올라가는 것은 못 참겠습니다.”
“저기······. 조 상사.”
“네?”
“저도 육사 출신입니다만······.”
“아는데요.”
“와. 그런데 지금 제 앞에서 육사를 욕하는 겁니까?”
“황 대위님 같은 육사 출신도 있고, 윤 소위 같은 육사 출신도 있다는 말이죠.”
“그걸 그렇지만······.”
“뭐 쓰레기 같은 육사들 많다고 다 싸잡아서 얘기해야 합니까?”
“그건 아니죠. 우리 조 상사 같은 훌륭한 부사관도 있죠.”
“그렇죠! 당연하죠.”
조현철 상사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그러다가 노트북 증거 영상을 보던 황인태 대위가 물었다.
“이 영상 4중대장이 찾았을까요?”
“제 생각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왜 처음부터 까지 않았을까요?”
“중대장 입장에서는 이렇게 증거를 내놓고 하면 사건에 개입하는 것 같지 않았을까요?”
“으음······.”
“그래서 아마 상황을 좀 지켜본 다음에 증거를 내놓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또 부대 돌아가는 사정을 보아하니 전부 윤 소위 편인 것 같았지 않습니까. 그 와중에 이런 증거가 나오면 과연 그 증거를 썼을 것 같습니까.”
“아마도 없앴겠죠.”
“그렇죠. 황 대위님은 최 소령님을 어떻게 봤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솔직히 그분 좋아하지 않습니다.”
“에이, 저라고 좋아하겠습니까. 그래도 4중대장 같은 사람이 있어서 우리 군의 미래가 밝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자! 그럼 우리 일도 끝났는데 모처럼 돼지껍데기에 소주 한잔합니까?”
조현철 상사가 기겁하며 말했다.
“와, 진짜······. 황 대위님 언제까지 돼지껍데기입니까? 삼겹살 좀 먹읍시다.”
“에헤이······. 돼지껍데기 먹어요. 맛있어요.”
“어후, 진짜······. 그렇게 아끼면 아파트 한 채라도 삽니까?”
“에이. 군인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아파트를 삽니까. 여자 친구도 없어서 서러워 죽겠는데······.”
“그래서 뭐? 이 부대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그 뭐······.”
황인태 대위가 슬쩍 시선을 피하며 우물쭈물했다.
“그 뭐 누구 말입니까?”
“황하나 하사라고······.”
“유 하사하고 같이 들어온 부사관 말입니까?”
“네. 그 부사관 괜찮을 것 같은데요.”
조현철 상사가 혀를 쯧쯧 찼다.
“에효. 이렇게 보는 눈이 없어서야······.”
“네? 왜요?”
“아니, 진술서도 안 읽어 봤습니까?”
“진술서요?”
“네. 거기 보면 동료가 윤 소위 차에 버리고 갔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조현철 상사의 말에 황인태 대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네에? 설마 그 동료가······.”
“황 대위님 그 생각이 맞습니다. 그 동료가 바로 황 하사입니다. 아니 영상까지 봤지 않습니까. 딱 봐도 유 하사를 부축하고 오는 사람이 여자인데요.”
“아, 그 사람이 황 하사였어요? 와······. 내가 또 사람을 잘못 봤네.”
“왜요? 아까는 괜찮게 봤다면서요.”
“제가 또 동료를 버리는 것은 못 참죠. 우리는 또 전우애로 사는 것이 아닙니까.”
“에효. 말이라도 못하면······. 갑시다. 제가 삼겹살 쏘겠습니다.”
조현철 상사가 책상 위 자료들을 챙기며 일어났다. 황인태 대위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후. 오늘 모처럼 목에 기름칠 좀 하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를 정리하고 부대를 나섰다.
윤태민 소위를 보직 해임시킨 송일중 중령은 오후에 방대철 주임원사를 찾았다.
“주임원사.”
“네. 대대장님!”
“이 부대에서 근무한 지 몇 년째에요?”
“10년째 넘었습니다.”
“아이고 오래 있었네요. 요즘 부대 분위기는 어때요?”
“아······. 요새 부대 분위기 말입니까? 별거 있겠습니까. 다만 유 하사 건 때문에 조금 시끄러운 것 빼고는 괜찮습니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송일중 중령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유 하사 건, 유 하사 건이라······.”
송일중 중령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정확하게 말을 하면 유 하사 건이 아니라 윤태민 소위 건이었다. 심지어 방대철 주임원사는 부사관의 아버지나 다름이 없는데 이 모든 일을 유선영 하사의 잘못으로 치부해버리니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만약에 헌병대 조사가 별일 없이 끝났으면 또 몰랐다. 그런데 헌병대에서 재조사까지 들어갔다. 재조사로 봤을 때 윤태민 소위에게 징계까지 내렸다. 그런데 아직도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있는 주임원사는 그것도 모르고 저러고 있으니 참 답답했다.
“주임원사.”
“네, 대대장님.”
“윤 소위 현재 보직해임 시켰어요.”
“네?”
방대철 주임원사가 깜짝 놀랐다.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니 윤 소위는 왜?”
“잘못을 했으니 보직해임을 시켰죠. 괜히 그랬겠어요?”
방대철 주임원사는 당황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요?”
“사건이 이대로 커지면 대대장님께서 안 좋으시지 않습니까.”
“그래요. 주임원사. 도대체 뭐가 안 좋아진다는 말이죠?”
“저도 듣기는 했습니다. 대대장님 조만간 육본에 올라가신다는 소식 말입니다.”
그러자 송일중 중령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서 그랬습니까?”
“네?”
“그래서 그리했냐고 물었어요.”
“대대장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정령 모르는 얼굴이었다. 송일중 대대장이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소문을 들어보니 유 하사가 꽃뱀을 짓을 하고 다닌다고 소문을 내셨다면서요.”
“어이구 아닙니다. 소문이라니요. 말도 안 되는······.”
“그럼 주임원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고······. 대대장님 아시지 않습니까. 부사관들이 절 찾아와서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본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제 경험상 이런 일이 있었다. 라고 얘기를 해줬을 뿐입니다.”
“그러니까요. 왜 경험상 그런 얘기를 했어요.”
“네?”
“아니, 왜 확인도 되지 않은 소문을 퍼뜨렸냐고요. 도대체······. 아니 주임원사까지 올라왔으면 짬도 차고 그런 것 아닙니까? 아니면 짬을 똥꾸녕으로 먹었어요!”
순간 방대철 주임원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대장님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말은 좀······.”
“왜요? 기분 나빠요? 그러라고 말을 한 겁니다. 아니, 왜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헛소문을 퍼뜨려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 말입니다.”
“······.”
방대철 주임원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송일중 중대장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방대철 주임원사가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서 한 행동이 아니라 빨리 육본으로 올리기 위해서 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로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다. 쉽게 말해서 주임원사가 걸리면 부대가 시끄러워진다는 것이다.
“주임원사요. 헌병대에서 조사하면서 주임원사를 이상하게 생각합디다.”
“네? 저를 말입니까? 아니 왜?”
방대철 주임원사는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송일중 중령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몰라서 물어요? 아니 주임원사라는 사람이 이제 막 입관한 어린 부사관을 챙겨주지는 못할망정 대놓고 죽이려고 하고 있으니 뭔 일인가 싶은 거죠.”
“어후, 정말 그런 것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저는 다만 일이 시끄러워지면 좋을 것이 없으니까 그냥 유 하사에게 적당히 넘어가자 그랬던 것뿐입니다.”
“그럼 그렇게 얘기하면 되는 것이지. 왜 유 하사를 쓸데없이 꽃뱀을 만들고 있어요. 헌병대가 그 사실을 모를 거라 생각했어요?”
“그게 아니라······.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여자 쪽에서 좋게 넘어가야 사건이 빨리빨리 해결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랬던 겁니다. 정말입니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난감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송일중 중령이 눈을 부라리며 충고했다.
“만약에 말입니다. 주임원사 때문에 일이 커지면 알아서 해요. 각오하세요. 내가 지금까지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닌데 이번에는 그냥 안 넘어갑니다. 진짜 만에 하나 주임원사 때문에 불똥이 튄다? 그러면 주임원사 책임지고 가만 안 둡니다. 알겠어요!”
송일중 중령이 방대철 주임원사에게 경고와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다. 그 충고에 방대철 주임원사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