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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924화 (924/1,018)

< 04. 그 나물에 그 밥(4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54화

04. 그 나물에 그 밥(41)

보직해임을 당하고 무보직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 현역 부적합 전역이 가능하다. 또한 보직해임을 같은 계급에서 2번 이상 당했을 경우 현역 부적합으로 전역 사유가 된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누누이 말했지. 군 생활 똑바로 하라고 말이야.

“할아버지, 혼나는 건 나중에 할게요. 지금 저 좀 살려 주세요. 부탁드려요.”

애원하는 윤태민 소위를 보며 신봉규 예비역 준장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아무것도 몰랐다고 해도 윤태민 소위를 돕기가 쉽지 않았다. 장교를 보직해임을 시켰다는 것은 그만큼 근거가 있고, 죄의 무게가 무겁다는 뜻이었다.

하물며 신봉규 예비역 준장 역시 윤태민 소위가 무슨 짓을 했는지 동영상 확인을 이미 끝냈다. 그래서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와 외손자를 도와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와줄 수 없다고 하면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몰랐다.

-일단 알겠다. 할아버지가 알아볼 테니. 너는 그때까지 근신하고 있어.

“네. 할아버지만 믿고 있을게요.”

-만에 하나! 또 사고 치면······.

“안 쳐요. 내가 멍청이도 아니고······. 할아버지 말대로 정말 진짜 아무것도 안 할게요. 대신에 할아버지가 이 문제 해결해 주시는 거죠?”

-알아본다니까, 일단!

“아, 진짜······. 할아버지 그러지 말고 해결해 주세요. 현재까지 할아버지 뒤를 이을 사람은 저밖에 없잖아요. 네? 할아버지······.”

그런 윤태민 소위의 말을 듣고 수화기 너머로 신봉규 예비역 준장의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알겠다. 일단 끊어라.

“네. 할아버지.”

윤태민 소위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꼭 쥐며 중얼거렸다.

“그래. 할아버지가 해결해 주실 거야. 해결해 주신다고 했어. 그래.”

윤태민 소위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곳에서 서성거렸다.

한편 신봉규 예비역 준장은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깊은 한숨이 나왔다.

“후우······.”

그래도 손자들 중에서 가장 영특해서 자기 할아버지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고 있었고, 할아버지 위할 줄도 아는 놈이었다. 그래서 예뻐했는데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윤태민 소위는 원랜 군에 갈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윤태민 소위의 부모가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당장 길거리에 나 앉게 되었고, 그래서 신봉규 예비역 준장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나 신봉규 예비역 준장은 원칙이 있었다. 방만하게 사업을 경영하다가 망한 딸자식과 사위를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너희들이 벌인 일. 너희들이 수습해! 난 도와줄 생각이 없다.”

그랬는데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윤태민 소위가 직접 찾아와 무릎까지 꿇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저희 집 한 번만 도와주세요.”

“그건 어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너는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할아버지 그렇게만 해주시면 제가 육사에 가겠습니다.”

“뭐?”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신봉규 예비역 준장은 당돌하게 말을 하는 손자놈이 어이가 없었다.

‘나와 거래를 하겠다?’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부모님을 위해 저렇게까지 하는 것을 보니 기특하기도 했다.

“네가 육사를 가겠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말 그대로예요. 장교가 되겠다는 말씀이에요.”

“육사를 가면 쉽게 옷 벗을 생각은 하지 마라. 끝까지 열심히 해야 한다.”

“네. 할아버지 저도 그럴 생각이에요.”

“좋다. 그럼 이거 하나만 약속해라. 만약에 일찍 군을 나오면 네 몫의 유산은 없는 것이다.”

신봉규 예비역 준장은 당시 퇴역을 앞두고 있었다. 소장 진급이 가능하긴 했지만 그 조건으로 서로 다른 파벌에서 들어오라고 회유하려고 했다. 하지만 신봉규 예비역 준장은 그런 군대에 신물이 나면서 차라리 군을 나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40년 넘게 군 생활도 할 만큼 했고, 이제 연금도 꼬박꼬박 나오니 먹고 사는 것에 지장도 없었다. 게다가 신봉규 예비역 준장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제법 되었다.

땅을 물려받은 것들은 하나같이 땅값이 많이 올랐고, 주변의 권유로 샀던 아파트도 몇 채 있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들이 적잖이 있었다. 그 사실을 윤태민 소위도 알고 있었다.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떠보듯이 얘기를 했는데 녀석이 뜻밖의 말을 했다.

-만에 하나 별을 달지 못하고 퇴역을 하면 한 푼도 받지 않겠다.

그걸 가지고 그 자리에서 각서를 썼다. 그만큼 윤태민 소위는 절실했고, 신봉규 예비역 준장 역시 그런 절실한 윤태민 소위를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 윤태민 소위는 자식들이나 손자들 중 자신의 뒤를 잇는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비뚤어지고 어긋나고 있었다.

“으음······. 계속해서 이 녀석을 안고 가야 하는 것인가? 아니지, 아니야. 아무리 내 뒤를 잇는다고 해서 태민이 녀석을 계속 이대로 놔둘 수는 없어. 이 녀석은 나라를 지킬 재목이 아니야.”

신봉규 예비역 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곤 휴대폰을 들어 임규태 중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음이 가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넵! 선배님. 무슨 일이십니까?

“다른 것은 아니고 손자 말이야.”

-네. 안 그래도 지금 진행 중입니다.

“그 일······. 나 신경 쓰지 말고 제대로 처벌해 주게.”

-네? 그리되면 군 생활 힘들어질수도 있습니다.

“상관없네.”

-진심······이십니까?

“그래! 솔직히 말해서 내가 잘못 가르친 것 같네. 내 일평생을 나라를 위해 헌신했는데······. 이런 녀석을 군대에 남겨둘 수는 없네.”

그런 신봉규 예비역 준장의 속내를 읽은 임규태 중령이 나직이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조만간에 찾아뵙겠습니다.

“알았네. 그럼 그때 보지.”

신봉규 예비역 준장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러곤 의장에 등을 푹 기대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 이게 맞는 거야. 이게······.”

신봉규 예비역 준장의 나직한 말이 서글프게 들렸다.

그날 오후 황인태 대위가 유선영 하사를 불렀다.

“유선영 하사?”

“네, 그렇습니다.”

“우리 얼굴 보는 것은 처음이죠.”

“네.”

“그럼 우리 소개부터 할게요. 나는 헌병대 조사관 황인태 대위고, 이쪽은 조현철 상사입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유선영 하사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황인태 대위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무 긴장하진 말고요. 이미 조사는 다 끝났어요. 유 하사가 휴가를 다녀왔기 때문에 이제야 유 하사를 조사하는 겁니다. 그냥 형식적인 조사일 뿐입니다.”

“형식적인 조사 말입니까?”

“그래요. 혹시 그 영상 봤어요?”

“무슨 영상이신지······.”

“영상 못 봤어요?”

“네.”

황인태 대위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그럼 이거 누가 보낸 거지?”

조현철 상사가 입을 열었다.

“글쎄 말입니다.”

애당초 이번 사건의 조사는 쉬웠다.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조사를 하기 때문이다. 이게 꼬일 일이 없었다. 조사를 통해 알아봐야 하는 것들은 간단했다. 만약 증거가 없었다면 주변 사람을 통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인간관계는 어땠는지. 뭘 좋아하는지 혹은 두 사람 관계는 어땠는지······. 그러면서 어느 쪽 얘기가 신빙성이 있는지 얘기를 따져야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명확한 증거가 존재했다. 그 증거 속에서 유선영 하사는 확실히 술에 취해 있었고, 차에 타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유선영 하사의 가슴에 손을 뻗은 것은 누가 봐도 윤태민 소위였다.

앞서 조사에서처럼 윤태민 소위가 안전벨트를 메어주기 위해서 유선영 하사의 가슴을 스쳤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증거가 명확하고 앞선 조사에 결과처럼 유선영 하사가 악의를 가지고 윤태민 소위를 성추행범으로 몰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이제 당사자의 얘기만 들으면 되었다. 하지만 유선영 하사는 앞선 조사에서 자신이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상세히 진술을 했다. 또 헌병대의 조사에서 그 진술 내용을 번복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래도 피해 당사자인 유선영 하사와 만남이 필요했기에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나는 솔직히 이 증거 영상을 유 하사가 보낸 것인 줄 알았어요. 아니면 가족이 보냈다거나······.”

“네? 그게 무슨······.”

“아뇨. 일단 볼래요?”

황인태 대위가 옆에 있는 조현철 상사를 봤다. 조현철 상사가 노트북을 돌려 보여줬다. 유선영 하사가 그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하니 그날 그 상황이 찍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유선영 하사는 그 영상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조현철 상사가 바로 물었다.

“괜찮아. 유 하사? 마실 거라도 줄까?”

조현철 상사가 곧바로 컵에 물을 담아 건넸다. 그것을 꿀꺽꿀꺽 먹은 유선영 하사가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이거 처음 봐요?”

황인태 대위가 다시 물었다. 유선영 하사가 말했다.

“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나신 겁니까?”

“이거 참······. 미스터리네.”

황인태 대위가 고개를 갸웃하며 조현철 상사를 봤다. 그러자 조현철 상사가 씨익 웃었다.

“저는 누가 보냈는지 알 것 같습니다만······.”

“누굽니까?”

“당연히 유 하사를 도우려는 한 명이겠죠. 그중에서 좀 이런 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겠고 말이죠.”

황인태 대위가 번뜩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중대장? 4중대장?”

“제 생각에는 그 사람밖에 없다고 봅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두 사람은 이 영상의 출처가 궁금했을 뿐이다. 하지만 유선영 하사는 달랐다.

‘중대장님께서 날 위해 이런 증거영상까지······.’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상진이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말을 했을 때 뭔지 잘 몰랐다. 그런데 이런데 CCTV 영상까지 찾아 놨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제야 유선영 하사는 안심이 확실히 되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단 기본적으로 윤태민 소위의 잘못이 명확하기 때문에 아마 징계를 받게 될 겁니다. 유 하사는 그 이후의 일들은 법적으로 다퉈야 될 것 같은데······. 유 하사는 윤 소위와 합의를 볼 생각이 있어요?”

“합의를 봐야 합니까?”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유 하사의 생각을 묻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사람마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금전적인 보상을 받는 것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그 사람이 속물이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사람에 있어서 돈은 참 중요하잖아요. 금전적으로 보상을 하고 나면 얼마나 속이 쓰리겠어요. 막말로 돈을 쌓아 놓고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말이죠. 한동안 또 힘들어질 테고······. 하지만 유 하사가 금전적인 보상은 나중에 하더라도 일단은 윤 소위를 용서할 수 없고, 법적으로 꼭 처벌을 원하면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어요.”

“저는 법적으로 꼭 처벌을 받기 원합니다.”

“오케이.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의견을 정리해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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