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40)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53화
04. 그 나물에 그 밥(40)
“설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입니까?”
“아니요, 소대장님께서 물어보셔서 말씀드린 겁니다.”
오상진에게 확답을 들은 유선영 하사는 진짜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자리를 비운 윤태민 소위가 빨리 자리로 돌아왔으면 했다. 그리고 윤태민 소위가 돌아오자 유선영 하사는 괜히 밝은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그랬는데 윤태민 소위가 더 똥줄을 타고 있으니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래. 너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이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지.’
윤태민 소위는 불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유 하사 아무리 그 일이 있다고 해도 내가 그래도 상관인데 그런 식으로 예의 없이 해도 됩니까?”
“그 부분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됐습니다. 하아······.”
윤태민 소위가 짜증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이러면 다른 부소대장들은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이런 식으로 물어보며 비위를 맞춰준다. 하지만 유선영 하사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마치 이제 넌 곧 옷을 벗을 텐데······. 이런 확신이라도 드는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시발······. 짜증 나게 하네.’
마음 같아서는 확 뒤집어엎고 싶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자신의 코가 석 자라는 것을 잘 알았다. 또한 자신의 생사를 유선영 하사가 쥐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유 하사.”
“네?”
“지난번의 그 일은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뭘 말이죠?”
“······.”
윤태민 소위가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유선영 하사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윤 소위님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요? 아니면 제가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억지로 소대장님을 모함했다 한 것요?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유선영 하사는 똑바로 눈을 뜨며 당당하게 윤태민 소위를 바라봤다. 오히려 윤태민 소위가 움찔했다.
“그만합시다. 알면서 그럽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분명히 제가 피해받은 일을 말씀드린 거고. 그런데 정작 저는 꽃뱀으로 몰려 있었습니다. 또한 제가 소대장님께 추근거리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고, 엉뚱한 사람을 모함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뭘 다 압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네네. 그래요. 그래! 미안해요. 미안해. 내가 실수로 만졌습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내가 이만큼 얘기를 했으면 됐지. 도대체 뭘 또 하라는 말입니까? 내가 진짜 옷이라도 벗어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윤태민 소위의 그 말에 유선영 하사가 바로 정색하며 말했다.
“네. 그래야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네? 뭐라고요?”
“소대장님. 이런 말 좀 외람됩니다만. 지금 소대장님의 행동 웃깁니다.”
“뭐가 웃겨요. 지금 이 상황이 재미있어요?”
“이 상황이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소대장님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말입니다. 처음에 제가 사과를 요구했을 때 소대장님께서 지금처럼 솔직히 인정하고 그랬다면 상황이 이렇듯 악화되었을 것 같습니까? 아니, 제가 중대장님께서 말씀드렸을 때 솔직히 인정했다면 이렇게 왔을 것 같습니까? 저는 소대장님께 사과를 하고 그 일에 대해 인정할 시간을 충분히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게 만든 것은 소대장님 본인입니다. 그런데 왜 저에게 화를 내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유선영 하사는 똑 부러지게 말을 했다. 그런 유선영 하사가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이대로 물러서고 싶지 않은 윤태민 소위였다.
“유 하사. 말을 참 이상하게 하네. 지난번에 찾아갔잖아요.”
“돈 봉투 전해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때 저에게 제대로 사과를 했습니까? 그냥 이것 먹고 떨어져라 이 뜻 아니었습니까?”
“뭔 말을 그렇게 해요. 이 세상에 돈보다 확실한 진심이 어디 있어요.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유 하사에게 미안함을 전달한 겁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합니까.”
유선영 하사가 피식 웃었다.
“소대장님. 어차피 이 일이 군사재판으로 넘어가면 위자료는 나중에 받아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소대장님께서 하셨던 것은 사건을 돈으로 무마시키려고 발악을 하신 것이지 사과를 하시려고 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설마 제가 그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습니까?”
윤태민 소위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우······. 그래요. 알겠어요. 내가 뭘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유 하사 화가 풀리겠습니까?”
“저 화 다 풀렸습니다. 그런 것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우리 어렵게 가지 말고 쉽게 갑시다. 내가······ 그래요, 유 하사가 말한 물질적인 보상, 내가 최대한 해줄게요. 그리고 사과? 다른 사람 앞에서 사과하는 것을 원한다면 그 역시 할게요. 대신 이번 헌병대 조사만 잘 넘깁시다.”
“네?”
“그렇게만 해줘요.”
윤태민 소위가 유선영 하사의 손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다. 유선영 하사가 확 손을 빼면서 말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니, 동료끼리 손도 못 잡습니까?”
“왜 그러십니까? 다른 사람이 보면 오해합니다. 저는 이미 소대장님 좋다고 쫓아다니는 미저리 같은 여자가 되었는데 말입니다. 이제 와 왜 그러십니까.”
“유 하사. 그만 좀 꽁해 있고. 우리 좀 풉시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겁니까.”
“······.”
유선영 하사는 이런 윤태민 소위의 적반하장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갑자기 김호동 하사가 나타났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김호동 하사는 잔뜩 굳은 얼굴로 유선영 하사 앞을 막아섰다. 윤태민 소위는 그런 김호동 하사의 모습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지금 뭐 하고 있냐고 말입니다.”
“뭐 하긴 뭐 해. 얘기하고 있었지.”
윤태민 소위가 김호동 하사를 보며 짜증 난 얼굴로 말했다. 김호동 하사도 지지 않았다.
“무슨 얘기를 그런 식으로 하십니까?”
“뭘? 내가 뭘 어쨌는데!”
“제가 지나가다가 봤는데 계속 유 하사의 손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윤태민 소위는 답답한 얼굴이 되었다.
“하아, 진짜······. 부탁 좀 하려고, 나의 진심을 좀 받아달라고, 그래서 손 좀 잡으려고 한 거야.”
“싫다는 사람 계속해서 잡으려고 하면 추행인 것 모르십니까?”
“하아, 진짜······. 김 하사. 내가 우스워! 아니,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 해. 우리끼리 할 얘기가 있으니까, 자네는 좀 빠져.”
윤태민 소위가 그렇게 말을 했는데 유선영 하사가 바로 말했다.
“저는 할 얘기 없습니다.”
“뭐요?”
“할 얘기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김호동 하사가 앞으로 나섰다.
“들으셨죠? 할 얘기 없다고 합니다.”
윤태민 소위의 시선은 유선영 하사에게 향했다.
“진짜······. 유 하사 후회 안 하겠어요?”
“네.”
“정말 후회······.”
윤태민 소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휴대폰이 지잉, 지잉 하고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홍민우 소령이었다.
‘하필 이 타이밍에······.’
윤태민 소위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잠깐만요. 나 아직 얘기 안 끝났어요. 전화 좀 받고······.”
윤태민 소위가 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신보안. 4중대 2소대장 소위 윤태민입니다.”
-윤 소위, 작전과장이다.
“충성! 네, 과장님.”
-자네 말이야.
“죄송한데 작전과장님. 제가 조금 있다가 다시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윤태민 소위가 다급하게 말했다. 전화기 너머 홍민우 소령은 좀 어이가 없었다.
-뭐라고? 지금 뭐 하는데?
“지금 급하게 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하나. 상관이 전화를 했는데 일이 있어서 끊어? 이 새끼야! 지금 내 전화가 우스워!
“그, 그게 아닙니다.”
윤태민 소위는 앞에 있는 유선영 하사와 전화를 받고 있으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야. 윤 소위.
“네.”
-너 현 시간부로 보직해임이야. 조금 후면 공문이 내려갈 거야. 그리 알고 있어.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왜······.”
-그걸 몰라서 물어! 이 새끼가 오냐오냐해 줬더니 부대 얼굴에 먹칠을 하고 말이야. 너 이 새끼. 헌병대에서 결과 나올 때까지 영내 대기하고 있어!
수화기 너머 홍민우 소령의 호통 소리가 옆에 있는 김호동 하사 유선영 하사에게까지 들려왔다. 어쨌든 그 소리에 윤태민 소위는 머리가 멍해져왔다.
“과장님. 작전과장님······.”
-나 할 말 없어.
뚜뚜뚜뚜뚜······.
전화는 이미 끊어져 버렸다. 이윽고 팔을 출 늘어뜨리는 윤태민 소위.
“하아, 시발······. 시바알!”
윤태민 소위가 고개를 추켜들며 악을 내질렀다. 그런 윤태민 소위의 발광에 김호동 하사가 다급히 유선영 하사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젠장! 젠장! 젠장······. 왜?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윤태민 소위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김호동 하사가 재빨리 유선영 하사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유 하사 갑시다.”
“네? 하, 하지만······.”
“지금 저 모습 보면 모릅니까? 유 하사가 여기 있으면 뭔 일 당할지도 모릅니다.”
유선영 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김호동 하사는 유선영 하사를 데리고 떠났다. 그런 줄도 모르고 윤태민 소위는 소리를 질렀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냐고! 시발!”
윤태민 소위는 솔직히 보직해임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일전에 부대로 내부 음식을 반입했을 때도 근신 처분으로 끝이 났다. 이번 일은 그것보다도 더 가벼운 사건이라고 생각했었다. 절대 보직해임은 물론 근신 처분도 내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구두경고나 아니면 다시 한번 근신 처분이 내려질 것이라 여겼다.
물론 근신 처분도 계속 받으면 진급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가급적이면 좋게 넘어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선영 하사를 불러 다시 한번 얘기를 통해 합의를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보직해임이라니······. 나를 완전 죄인 취급하는 거잖아.’
윤태민 소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어!”
윤태민 소위가 곧장 휴대폰을 꺼내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그리고 외할아버지인 신봉규 예비역 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네가 무슨 일이냐?
“할아버지 나 좀 도와주세요.”
-이 자식이 오랜만에 전화를 해서 정신을 차린 것이라 생각을 했더니. 뜬금없이 뭔 소리야.
“할아버지. 저 좀 살려달라고요.”
-······너 이 녀석. 무슨 사고를 쳤어?
신봉규 예비역 준장은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일 때문에 전화를 한 것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짐짓 모르는 척하며 전화를 받았다.
“사고라니요. 저는 진짜 억울하다니까요.”
-뭐냐? 무슨 일인지 얘기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아니······. 우리 소대 부소대장이 새로 왔거든요. 그런데 여자 부사관이에요.”
-그래서!
“회식을 했나 보더라고요. 그런데 우연히 술 취한 모습을 보고 관사로 데려다주는데요. 그 와중에 안전벨트를 메어주다가 몸이 좀 닿았거든요. 그걸 가지고 성추행이니 뭐니 난리도 아니에요. 그래서 저 지금 대대로부터 보직해임을 당했어요.”
-뭐? 보직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