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37)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50화
04. 그 나물에 그 밥(37)
“아무튼 자네 말이야. 그때 위아래도 몰라보고 설치고 다니는 것도 눈감아 줬는데 못하겠다 이거야?”
“아닙니다. 하, 하겠습니다.”
황명수 대위가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했다.
“당연히 그렇게 나와야지. 황 대위, 나 홍 소령이야. 나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알지?”
“네. 잘 알죠.”
“나 완전 뒤끝 있는 거 잘 알지? 앞으로 잘해.”
홍민우 소령이 황명수 대위의 어깨를 툭 쳤다. 그 순간 황명수 대위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황명수 대위가 사무실을 나가고 홍민우 소령은 고민에 빠졌다.
“이거 도대체 헌병대에서 어디까지 조사하겠다는 거야. 이러다가 부대 비리를 다 조사하겠다는 거야?”
부대에서 헌병대 조사를 원치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워 버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별거 아닌 일로 시작하는데 조사를 하다 보면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온다.
헌병대에서 그것에 대한 것만 딱 꼬집어 물어보면 좋은데 프로파일링이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에둘러 이것도 물어보고 저것도 물어보고 그러다 보면 하지 말아야 할 말도 하고 그렇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황명수 대위가 부식업체 건을 알았다는 것은 결국 헌병대 조현철 상사에게 누군가 그와 관련된 얘기를 흘렸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으음······. 헌병대에서 방대철 주임원사에 대해서 알 것 같고······. 그쪽으로 몰아가야 하나? 이거 뭐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뭐라도 하지. 그렇다고 이런 일을 가지고 대대장님이랑 논의를 할 수도 없고.”
홍민우 소령이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오 대위랑 담판을 지어야지.”
홍민우 소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투모를 챙겨서 4중대로 향했다.
유선영 하사는 오상진이 준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를 했다.
“충성. 하사 유선영. 휴가를 마치고 복귀를 했습니다.”
유선영 하사가 밝은 표정으로 행정실 입구에 서서 보고를 했다. 그러자 행정실에 있던 장교와 부사관들이 반갑게 반겨주었다.
특히나 김진수 1소대장이 유선영 하사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
“휴가 잘 다녀왔어요?”
“네. 1소대장님.”
“다행입니다. 얼굴이 한결 좋아 보입니다.”
“그래 보입니까? 오랜만에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요. 좋아 보입니다.”
김진수 중위가 환하게 웃었다. 때마침 2소대장 윤태민 소위는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행정실 분위기는 오히려 좋았다. 박윤지 소위가 다가왔다.
“복귀 잘했어요. 유 하사.”
“네. 3소대장님.”
“어이구, 푹 쉬었는지 얼굴이 확 폈네.”
“네?”
“얼굴이 밝아 보인다고요.”
그러자 유선영 하사도 밝게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박윤지 소위는 정말 유선영 하사가 편안하게 쉬어서 표정이 밝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오늘 다시 부대에 출근을 할 생각에 전날 잠을 설쳤다. 그래서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부대를 올라오며 걱정이 되었다. 부대를 떠났을 때 자신을 색안경을 끼고 보던 사람들, 그리고 뒤에서 쑥덕거리던 사람들. 앞에서 아닌 척을 하지만 뒤에서는 딴소리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냐며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부대에 들어오니 분위가 많이 달랐다. 위병소를 지나던 중 자신을 향해 꽃뱀이니 뭐니 하며 떠들던 부사관을 만났다.
당연히 유선영 하사는 움찔했고, 솔직히 불편했다. 그러나 그 부사관이 슬그머니 다가와 먼저 말을 걸어줬다.
“유 하사 요즘 통 안 보이던데. 어디 갔다 왔어?”
“네. 김 중사님. 휴가 좀 다녀왔습니다.”
“휴가? 그럼 사람이 쉴 때는 쉬어줘야지. 그건 그렇고 지난번에 미안했어.”
“네?”
“그 일 있잖아. 그 일······.”
김 중사는 말 꺼내기도 민망한지 살짝 시선을 피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아, 네에.”
유선영 하사가 아는 척을 하자 바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도 오해를 했었네. 그게 아닌데······. 뭐, 어쨌든 미안해. 그보다 군대는 이것이 참 문제야. 꼭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뒤에서 퍼뜨려.”
처음에 유선영 하사는 고개만 까닥하는 것으로 끝냈다. 김 중사하고는 더 이상 길게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부사관들과 장교들마저 유선영 하사에게 먼저 다가와 살갑게 얘기를 해 줬다. 그런 모습들을 보니 지난 일주일 동안 중대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4중대 행정실로 마찬가지였다. 윤태민 소위에 대해서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부사관이나 장교들처럼 윤태민 소위 편을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유선영 하사가 좀 과했다. 좀 지나쳤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중대가 좀 시끄러운데 더 시끄럽게 만드니 그랬던 것이다.
그랬는데 그 사람들조차 유선영 하사가 오니 엄청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렇다는 것은 지난 일주일 동안 헌병대 조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방증이었다.
“방증 중대장님께 복귀 신고는 했어요?”
“아뇨. 지금 보고드리려던 참입니다.”
“빨리 갔다 와요.”
“네.”
유선영 하사가 자신이 메고 왔던 가방을 내려놓고 중대장실로 향했다.
똑똑!
문을 두드린 후 열었다. 오상진이 출근해 있었다.
“어, 유 하사.”
유선영 하사가 중대장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곧장 경례를 했다.
“충성! 휴가 복귀 신고하러 왔습니다.”
“아. 그래.”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전투모를 썼다. 그리고 유선영 하사에게 복귀 신고를 받았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충성.”
오상진은 복귀 신고를 받고 손을 내밀었다. 유선영 하사도 악수를 했다.
“일단 앉아. 커피 줄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
오상진이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안 그래도 오늘 휴가 복귀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 언제 오나 했는데······.”
유선영 하사가 빤히 오상진을 봤다.
“그래. 휴가는 어땠어? 잘 보냈어?”
“네. 중대장님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표정은 좋아 보이네. 집에 무슨 좋은 일이 있었어?”
“그게 아니라. 오늘 부대 출근을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아. 그래?”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유선영 하사가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대충 이해가 되었다. 유선영 하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해 먼저 물었다.
“중대장님.”
“응?”
“지금 어떻게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뭐, 헌병대 조사가 다시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
“네.”
“그분들이 일을 참 잘해.”
“그렇습니까?”
“전임 조사관들이 했던 조사들을 다시 하면서 문제점과 오류들을 다시 되짚고 있는 중이야.”
“아······.”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번에 오신 조사관들은 그 영상을 알아.”
“······아, 그렇습니까.”
유선영 하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영상을 보고 사건을 조사한 것이라면 오해가 있을 수가 없었다. 쉽게 말을 하면 결론을 정해놓고 수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당연히 그렇다 보니 유선영 하사에게 안 좋은 소리를 했던 사람들도 입을 닫았다.
물론 그중에는 아직도 유선영 하사가 꽃뱀이고 윤태민 소위가 당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군대 짬을 좀 먹었던 사람들은 대충 알고 있다.
헌병대 조사관들의 얘기만 들어보면 이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질문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사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부대 전체로 퍼져 나간 상황이다. 한마디로 그전에는 윤태민 소위가 억울했다는 분위기라면 지금은 윤태민 소위가 잘못했다는 분위기로 바뀌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일주일 사이에 중대 분위기가 확 바뀌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나에게 감사할 것이 뭐가 있어. 중대장은 오히려 유 하사에게 고마운데.”
“네?”
“유 하사가 날 믿고 이렇듯 버텨 준 것이잖아. 솔직히 중대장은 윤 소위하고 합의라도 보면 어쩌나 걱정을 했거든.”
“중대장님. 제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알지, 알아! 물론 결론은 헌병대에서 내는 것이지만 유 하사는 어떤 처벌을 원해?”
유선영 하사의 표정이 단호하게 바뀌었다.
“일단 저는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사과······. 그건 당연한 것이고. 또?”
“윤 소위님이 군 생활 그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윤 소위 군 생활을 그만하라?”
“네. 솔직히 말해서 만약에 윤 소위님이 처음부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으면 제가 술 취해서 그런 것이라 그냥 한 번은 넘어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윤 소위님은 처음에는 날 좋아한다는 식으로 가다가, 발각되고 나니 제가 거짓말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며 정말 실망도 많이 하고, 한편으로는 무서웠습니다. 저야 중대장님께서 절 끝까지 믿고 증거까지 찾아주셔서 버틸 수 있었지만, 만약에 다른 부대에서 다른 힘없는 여군에게 그랬다고 생각을 하면 지금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 유 하사의 의견은 잘 알았다. 중대장이 그럴 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유 하사의 의견을 반영해 강력하게 징계를 해달라고 요구를 해볼게.”
“정말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그래. 오늘은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고.”
“아, 네에.”
“쉬다 보면 적응 기간이 필요하니까. 천천히 해.”
“네, 중대장님.”
유선영 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중대장실을 나갔다. 유선영 하사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역시 우리 중대장님이야.’
유선영 하사가 마침 중대장실로 오는 홍민우 소령과 눈이 마주쳤다. 유선영 하사가 바로 경례를 했다.
“충성!”
홍민우 소령이 고개를 까닥이며 슬쩍 명찰을 확인했다. 유선영이라 적혀 있었다.
“자네가 유선영 하사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 요새 통 안 보이더니.”
“일주일간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그래? 중대장에게 용무 있어 왔나?”
“네. 휴가 복귀 신고를 하러 왔습니다.”
“알았어. 그만 가 봐.”
“네.”
홍민우 소령은 유선영 하사를 지나쳐 가며 유선영 하사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러더니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중대장실을 나온 유선영 하사가 싱글벙글 마치 좋은 일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뭐지? 이 와중에 웃어? 그렇다는 것은······.’
홍민우 소령이 순간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일이 유선영 하사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아······. 오 대위에게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말인가?”
홍민우 소령이 중얼거리며 시선은 중대장실로 향했다. 홍민우 소령은 답답해졌다. 동기인 최영도 소령만 믿고 좀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헌병대에서 조사관을 다시 보내면서 일이 다 꼬여 버렸다. 이 상황에서 홍민우 소령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래. 일단 얘기라도 해보자.”
홍민우 소령이 중대장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