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3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47화
04. 그 나물에 그 밥(34)
“저희 부소대장님 말씀입니까?”
최헌일 상병이 묻자 조현철 상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희 부소대장님이 이 일로 많이 힘들어하셔. 그래서 내가 지금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고 다니고 있단 말이지. 그런데 너희가 직접적으로 중대장님 찾아가서 그런 얘기를 하기보다는 나에게 얘기하는 것이 낫지 않겠니. 그럼 내가 그것들을 정리해서 익명으로 중대장님께 보고할 수 있는데 말이야. 그것이 낫지 않겠어?”
최헌일 상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그 얘기라면 확실할 것 같았다.
“그럼 저희가 얘기했던 것은 말하지 않는 거죠.”
“그래. 당연하지. 내 입에서 너희들이 말했다는 것은 나가지 않아. 그리고 중대장님이 물어봐도 절대 나는 말하지 않을 거야. 왜? 헌병대 조사는 원래 그렇게 하거든. 이런 식으로 조사를 했는데 누가 그랬고, 또 누가 그랬다고 다 까발려지면 그게 무슨 헌병대 조사야. 안 그러니?”
조현철 상사의 말에 최헌일 상병과 최진찬 일병의 표정이 밝아졌다. 조현철 상사가 그런 두 사람을 좀 더 구슬렸다.
“아니면 자리를 옮겨서 빵이라도 먹으면서 얘기할까?”
“어······ 괜찮은데 말입니다.”
“괜찮긴. 가자, 가! 너희들 보니까 우리 조카 생각나네.”
“조카분이 군인이십니까?”
“어······. 며칠 전에 면회를 갔거든. 아직 일병이야. 아무튼 죽겠다고 난리를 치는데······. 암만 우리 때보다 군대가 좋아졌다고 해도 군대는 군대야. 그치?”
“······.”
“솔직히 편안한 군 생활이 어디 있어. 다 고달픈 군 생활이지. 안 그래?”
조현철 상사가 병사들을 위로하는 말에 최진찬 일병은 같은 일병으로서 울컥했다. 최헌일 상병도 조현철 상사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자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저쪽으로 가자. 가!”
그런 두 사람을 PX로 데려가면서 조현철 상사가 씨익 웃었다. 솔직히 병사들에게 어떻게 접근하나 싶었는데 시작이 좋았다.
조현철 상사가 병사들에게 다가가서 상황 얘기를 듣던 그 시각. 유진호는 신순애 국밥집을 찾아갔다.
“여기네.”
유진호는 신순애 국밥집을 바라봤다.
최만석 과장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위생 점검을 실시해서 탈탈 털라고 얘기를 했다. 그러나 유진호는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가게 확인해 보고, 사장하고 얘기도 하고 뭐가 문제인지 파악도 해봐야 했다. 그러면서 도울 것이 있으면 돕고······.
유진호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분명히 과장님도 업체에서 뒷돈 받고 그럴 텐데 나한테도 뭐라도 떼어 주든가. 그러면서 만날 시키는 것만 하래. 어쨌든 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 두고 보라지.’
유진호는 고개를 끄덕인 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인지 빈자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어서 오세요.”
홀 직원이 다가왔다.
“아, 네에······. 자리 없나요?”
“죄송해요. 지금 좀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요. 금방 자리 빌 거예요.”
“그래요?”
유진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한편에 혼자서 밥을 먹고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쪽 테이블에 합석 가능하지 않나요?”
“아, 저기요? 잠시만요. 제가 한 번 물어볼게요.”
홀 직원이 가서 얘기를 했다. 잠시 후 밝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네. 괜찮다고 하네요.”
“그래요.”
유진호가 남자 반대편으로 가서 앉았다. 홀 직원이 다가와 말했다.
“주문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유진호의 시선이 앞에서 먹고 있는 국밥으로 향했다.
“이거 뭐예요?”
“아. 저 손님께서 드시는 것은 내장국밥이에요.”
“저걸로 주세요.”
“네.”
홀 직원이 빠르게 이동했다. 그러면서 유진호는 슬쩍 앞에 앉은 남자를 보며 물었다.
“저기······. 이곳에 자주 오세요?”
“네? 아, 뭐어······.”
“이 집 국밥 어떻습니까? 제가 여긴 처음 와봐서요.”
그러자 그 아저씨가 표정을 밝게 하며 말했다.
“여기 국밥 맛나죠. 장사도 잘돼요. 이 근방에서 여기 국밥집이 제일 잘될 걸요. 내가 듣기로는 여기 분점도 있다고 하던데요.”
“분점도요? 워, 우리 사장님 돈을 많이 모으시나 보네.”
“많이 버시지는 않을 건데요. 여기 사장님 좋은 일도 많이 하시고 국밥도 딴 집에 비해서 훨씬 싸게 받아요. 거의 안 남는다고 봐야 할걸요.”
아저씨는 깍두기 하나를 입에 넣고 아그작아그작 씹었다. 유진호의 시선이 가격표로 향했다. 다른 국밥집은 대부분 6천 원 하던 것이 여기는 5천 원밖에 하지 않았다.
“으음······. 싸긴 하네.”
물론 구내식당에서는 더 싸게 먹을 수 있긴 하지만 원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없었다. 천 원 비싼 가격으로 이 국밥을 먹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맛만 있다면 말이다.
잠시 후 돌솥에 보글보글 끓는 국밥과 함께 밑반찬이 나왔다.
“으음······. 반찬도 깔끔하게 잘 나오네······.”
그 중얼거림을 들은 맞은 편 아저씨가 씨익 웃었다.
“여기 맛나다니까. 아마 아저씨도 단골 될걸요.”
그 아저씨는 어느새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진호가 천천히 밥을 먹었다.
“어?”
유진호의 눈이 커졌다. 생각보다 국밥이 정말 맛있었다.
그는 국밥이야 다 같은 국밥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맛있는 국밥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막 국밥을 맛나게 먹고 있는 사장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입맛에는 맞으세요?”
“아, 네네. 맛나네요.”
“그래요. 사실 저희 가게에 처음 오시는 분 같아서 찾아와 봤어요. 맛있게 드세요.”
신순애가 인사를 하고 다시 이동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유진호가 중얼거렸다.
“사람들 얼굴도 다 기억하나?”
그러면서 주위에 국밥을 먹는 사람들을 봤다. 모든 사람들이 다 맛있다는 듯이 먹었다. 유진호는 대수롭지 않게 식사를 마저 했다. 국물까지 싹 비운 후 계산대로 갔다.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네.”
“5천 원입니다.”
5천 원 현금으로 계산했다. 유진호가 만 원을 내며 5천 원 잔돈을 받았다.
“현금영수증 끊어주죠?”
“네, 그럼요.”
보통 현금영수증은 잘 안 끊어주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는 현금영수증을 바로 끊어줬다.
‘왜 이렇게 장사를 해? 현금영수증까지 끊어주고······. 그럼 남는 것도 없을 텐데 말이야.’
유진호가 계산대에 있는 아주머니를 봤다.
“혹시 여기 사장님 되세요?”
“사장님은 지금 주방에 계시는데요.”
“죄송한데 사장님을 좀 만날 수 있을까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아, 다름이 아니라 저 공무원인데요.”
유진호가 낮게 말을 하자 홀 직원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요.”
주방으로 가서 신순애를 불렀다. 잠시 후 신순애가 나왔다.
“아, 네네.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네. 맛나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셨죠?”
“사장님 죄송한데 밖에서 잠깐만 얘기하시죠.”
“지금 점심시간이라······.”
신순애가 곤란한 듯 말하자 유진호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아요. 잠깐이면 됩니다. 그리고 사장님에게도 좋은 얘기일 겁니다.”
“······알겠어요.”
신순애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호는 약간 불안한 얼굴이 된 신순애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2층에 커피숍이 있는데 거기로 갈까요?”
신순애가 말하자 유진호가 손을 흔들었다.
“잠깐 얘기를 할 건데요.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어요.”
물론 유진호 입장에서는 커피숍이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커피숍은 뭐가 문제라면 돈을 주고받기가 쉽지 않았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어느 커피숍에서 돈을 받았다고 자세한 진술이 나와 버리면 나중에 골치 아파질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뒷돈을 받았다고 탈이 난 공무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에이 이 아줌마가 장사 한두 번 하시나.’
유진호는 가게 뒤편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양해도 구하지 않고 담배를 꺼냈다. 그것을 손으로 툭툭 치며 물었다.
“사장님 장사하신 지 얼마나 되었어요?”
“저희요? 5년 좀 된 것 같은데요.”
“그래요? 장사 오래 하셨네. 그전에는 뭐하셨어요?”
“그전에는 다른 집에서 일했어요.”
“그러시구나. 그럼 지금까지 위생 점검을 몇 번이나 받으셨어요?”
“글쎄요. 그래도 해마다 한 번씩은 받은 것 같은데요.”
“그래서 위생 점검에서 뭐 지적받은 것은 없어요?”
“없어요. 저희는 오히려 칭찬받았는 걸요.”
신순애의 말에 유진호가 피식 웃었다.
“에이. 공무원들 안 되겠네.”
“네?”
“그 양반들 안 되겠단 말입니다.”
“그게 무슨······.”
신순애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이었다.
“사장님. 정말 그런 것 없어요. 먼지 하나 털어서 나오지 않는 곳이 없단 말입니다. 대부분은 문제가 있는데 그런 것을 지적해 주고 개선사항을 알려주고 그래야 발전이 있는 거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대충대충 했다는 거죠.”
“그게, 저희가 그만큼 위생 관리를 잘해서 그런 거죠.”
“혹시 말이에요. 위생 점검받을 때 연락받고 그러셨어요?”
“그건 아닌데요.”
“에이.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위생 점검에서 한 번도 걸리지 않아요. 여기 말고 엄청 큰 식당들도 위생 점검 불시에 들이닥치면 걸리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니에요. 여기 해충 박멸하는 업체 아시죠.”
“네네.”
“세코 아시죠.”
“알고 있어요.”
“그 업체에서 관리하는 곳에서도 다 걸려요. 그런데 한 번도 안 걸렸다? 그게 말이 됩니까?”
유진호가 피식 웃었다. 물론 운이 좋아서 그럴 수도 있고, 그리고 위생 점검을 확실하게 하지 않았다고 믿었다. 그런 신순애가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지······.”
“아, 다름이 아니라. 제가 위생 점검을 하는 사람입니다. 저기 시청에서요.”
“그래요.”
“혹시 담당자가 누군지 아세요?”
“그것까지는 잘······.”
“뭐, 그거야 내가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되는 거고요. 이 친구들 안 되겠네. 위생 점검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거지.”
유진호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 연기를 뿜어냈다. 그러면서 살짝 겁을 줬다. 보통 이 정도 말을 하면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 정도라든지 그러면서 슬쩍 뒷돈을 챙겨주는 편이다.
그런데 신순애는 겁먹은 표정을 짓긴 하지만 멀뚱멀뚱한 표정이었다. 전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 말이다.
‘뭐야. 이 아줌마. 내가 그렇게 알아듣기 편하게 말을 했는데······.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거야.’
유진호가 속으로 그러고 있다가 왠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아 아예 대놓고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시죠, 공무원들이 박봉인 거.”
“네. 알죠, 고생이신 거······.”
“밤늦게까지 고생을 하는데 솔직히 야근수당도 제대로 안 나와요.”
솔직히 거짓말이다. 오히려 대놓고 야근수당을 챙겨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야근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게다가 유진호도 퇴근 시간 전에 나와서 이러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