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3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45화
04. 그 나물에 그 밥(32)
“방금 소식 듣기론 새로운 조사관이 파견되었다고 하던데 말이야.”
홍민우 소령은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느낌적으로 뭔가 좋지 않다는 것을 강하게 받았다.
-미안해. 그렇게 됐어.
“응?”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대대장님이 아시더라고.
“뭘?”
-자네하고 나 사이를 말이야.
“그래?”
-어. 자네 지난번에 왔을 때 대대장님께서 보셨나 보더라고.
“하아······.”
홍민우 소령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자신이 이번 일을 부탁하기 위해 찾아간 것은 맞지만 만약 그것을 헌병대대장이 봤다면 충분히 오해할 만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친구가 얼굴 보러 왔다고 둘러대긴 했지만.
“그래서?”
-그래서라니?
“헌병대대장님께 뭐라고 말씀드렸어.”
-나야 대충 둘러댔지. 오랜만에 내 얼굴 보러 온 거라고 말이야. 그런데 우리 헌병대대장님 보통 양반이 아니야. 바로 알더라고.
“그래서 담당자가 바뀌었다고?”
-그래.
최영도 소령은 차마 윤태민 소위에게 속아서 조사를 했다가 대판 깨졌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 얘기는 외부에 발설할 수 없는 문제였다. 어쨌거나 헌병대 내부의 일이었다.
이건 제아무리 홍민우 소령이 동기라고 해도 있는 그대로 말을 해줄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이번에 조사관으로 내려간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인태 대위는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었다.
괜히 홍민우 소령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가 황인태 대위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같이 망하는 꼴이었다.
“그래서 조사가 어떻게 되는 건데?”
-그건 그 친구가 어떻게 조사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거야.
“그 친구가 도대체 누군데?”
-자네는 모를 수도 있는데 황인태 대위라고······.
“황인태 대위?”
-그래. 자네가 모를 수도 있는데 우리 육사 후배이기도 해. 그런데 좀 깐깐해. 좋은 말로 하면 고집스럽다고 하고, 나쁜 말로 하면 좀 눈치가 없어.
그 눈치가 없다는 말에 홍민우 소령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한마디로 자신의 입맛대로 휘둘리지 않는 성격이라는 말이었다.
“하아. 알았어.”
-미안해, 홍 소령.
“미안할 것이 뭐가 있나. 최 소령도 나 도와주려고 할 만큼 한 건데.”
-그렇게 얘기를 해주니 그나마 고맙네.
“아니야. 다음에 또 연락하게.”
-어, 그래.
홍민우 소령은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인상을 쓰며 욕을 내뱉었다.
“하아, 시발! 이 새끼는 진짜······. 소령이나 되는 새끼가 이런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뭐하는 거야.”
홍민우 소령도 뭔가 눈치를 했다. 최영도 소령이 뭔가 사고를 쳤다는 사실을 말이다.
혹시 그럴까 봐 홍민우 소령도 신신당부를 했었다. 윤태민 소위가 보통 녀석이 아니다. 그 녀석의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마라 그렇게 조언까지 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니 윤태민 소위만 믿고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아, 큰일인데. 일이 커지면 안 되는데······.”
홍민우 소령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난 그가 곧바로 휴대폰으로 통해 오상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신보안. 4중대장 오상진 대위입니다.
“나네.”
-충성.
“4중대장. 지금 어딘가?”
-지금 업무보고 있습니다.
“아침에 얘기를 들어보니 헌병대에서 새로운 조사관이 파견되었다면서.”
-네. 그렇습니다.
“거기서 뭐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 안 만났어?”
-만나긴 했습니다. 그런데 헌병대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뭐? 정말이야?”
-네.
홍민우 소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4중대장. 이번 일 우리 대대 일이야. 감정적으로 처리해야 될 일이 아니야.”
-정말입니다. 제가 뭔 얘기를 듣고 숨기겠습니까? 저도 갑자기 조사관이 바뀌어서 뭐가 문제라도 생겼나 싶어 물어봤는데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습니다.
“확실해?”
-네, 그렇습니다.
“알았어. 뭔가가 나오면 나에게 바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홍민우 소령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이맛살을 찌푸렸다. 오상진의 말을 100% 믿을 수는 없지만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모르는 것 같았다. 최영도 소령도 쉬쉬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으음······.”
낮은 신음을 흘린 홍민우 소령은 다시 휴대폰을 들어 윤태민 소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우, 뚜우.
-통신보안. 윤태민 소위입니다.
“나다.”
-충성. 네, 과장님.
“자네 어딘가?”
-행정반에 있다가 잠깐 담배 피우러 나왔습니다.
“이번에 새로 조사관이 나왔다며.”
-네.
“그럼 말이야. 지난번 조사받을 때 자네 뭐라고 말했나?”
-지난번에 말입니까?
“그래.”
-유 하사가 저를 좋아해서 일을 좀 키운 것 같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습니다.
홍민우 소령이 바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뭐? 진짜로 그렇게 얘기를 했어?”
-네.
“아니, 이 친구야. 둘러댈 거면 적당히 둘러댔어야지. 그건 너무 나갔잖아.”
-네?
“이 일의 팩트가 뭐야? 고의냐, 실수냐. 그것이 관건이잖아. 그러면 실수한 것으로 가닥을 잡고 일을 수습할 생각을 해야지. 아예 발뺌을 해버리면 어떻게 해.”
-어, 그것이······.
“왜? 나에게도 억울하다고 할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
“하아, 진짜 미치겠군. 아무튼 자네 입조심해. 괜히 발뺌하다가 일이 더 커질 수 있으니까. 생각 잘하고 입을 열어.”
-네, 알겠습니다.
홍민우 소령이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바라보는 홍민우 소령은 절로 인상을 찡그려졌다.
“내가 진짜······. 하나하나 일일이 알려줘야 해. 도대체 뭔 정신인지······.”
홍민우 소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한편, 윤태민 소위도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기랄, 뭐야······. 나보고 어쩌라고.”
윤태민 소위도 짜증이 났다. 막말로 유선영 하사하고 무슨 일이라도 있었다면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냥 술 취해서 차에 태웠다가 잠깐 실수한 것에 불과한데 이 난리를 피우는 것이었다.
“젠장!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지.”
막상 담배 피우러 나왔는데 담배는 피우지 않고 애먼 엄지손톱만 물어뜯었다. 그러다가 유선영 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우, 뚜우······.
하지만 유선영 하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휴가 중인 유선영 하사는 부대에 출근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에이씨, 도대체 전화를 받지도 않고······. 도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윤태민 소위는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괜히 짜증이 치솟았다. 하지만 유선영 하사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중이었다.
다음 날 황인태 대위와 조현철 상사는 다시 상담실에서 만났다.
“조 상사님 조사 많이 했어요?”
“저야 조사 많이 했죠. 여기 부사관들과 소주 한잔하면서 아주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진짜 조 상사님 사람 구워삶는 데는 타고났습니다.”
조현철 상사는 후덕한 이미지에 입담도 좋아서 어딜 가든 인기가 많았다. 조현철 상사의 주특기가 정보수집이었다.
정보수집을 하라고 하면 그냥 대놓고 꼬치꼬치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식으로 접근을 하다 보면 몸을 사리게 되고 진실이 덮어지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조현철 상사는 일단 인간적으로 다가갔다.
정보를 캐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과 저녁에 술자리를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다. 그런 와중에 이런저런 질문을 통해 정보를 습득한다.
원래 사람은 술을 먹을 때 가장 경계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현철 상사에게 일을 맡기면 다른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워낙에 완벽하게 조사를 해오기 때문에 흠잡을 곳이 없었다.
“일단 조 상사님 조사한 내용부터 들어봅시다.”
황인태 대위의 말에 조현철 상사가 수첩을 꺼냈다. 그는 아직도 수첩을 통해 수기로 작성을 하고 있었다.
“일단 말이죠. 생각보다 이 대대가 복잡해요.”
“복잡하다니 어떤 것이요?”
“일단 여기 대대장부터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대대장이 송일중 중령입니다. 송일중 중령이 요즘 대대 관리는 뒷전이고 난만 관리를 한답니다.”
“난? 왜요? 진급심사가 있나요?”
“진급심사는 아직 멀었죠. 진급을 하려면 보직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오호. 그래서 어디서 불러주는 곳이 있데요?”
“이 양반이 글쎄······. 최우일 소장 눈에 들었나 봅니다.”
“최우일 소장? 그럼 일심회?”
“네.”
“아니, 어떻게 그 사람 눈에 들었대요.”
“그러니까요. 아무튼 최우일 소장이랑 곽종윤 준장이 상당히 가까운 사이랍니다. 그런데 곽종윤 준장 오른팔이 송일중 중령이라고 합니다.”
“아하, 그래요?”
“네.”
“그러니까. 이 양반이 육본에서 불러주기를 기다리며 열심히 난을 치고 있단 말이지.”
“네. 그런데요. 여기 주임원사가 이리저리 많이 해 먹었나 보더라고요. 그러다가 이번에 부식업체를 바꾼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부식업체. 그것도 돈이 꽤 되겠죠.”
“그런데 대대장이 약간 경고 같은 것을 했나 봅니다.”
“경고? 사고 치지 말라고?”
“네. 대대장 입장에서는 주임원사가 해 먹더라도 자기 가고 난 다음에 해 먹으라 이 말이죠.”
“으음······.”
“그러니 주임원사가 어떻게 할까요? 한시라도 빨리 송일중 중령이 빨리 가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그렇죠. 정화수를 떠놓고 빌겠죠.”
“내 말이요. 그런데 이 와중에 윤태민 소위의 사건이 터진 것이죠.”
“으음, 뭔가 흥미로운데요. 그래서요?”
“주임원사가 나섰답니다. 부대 내 성 군기와 같은 문란한 일이 벌어져서야 되겠냐. 게다가 유부남도 아니고 미혼 남녀이고 사람 사는 동네인데 그들끼리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걸 가지고 이렇듯 시끄럽게 떠들어서야 되겠냐며 말했답니다.”
그 말에 황인태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대 주임원사쯤 되면 나이가 지긋하다. 그 양반쯤 되면 성 군기와 같은 민감한 문제에도 고리타분하게 반응을 하곤 한다.
“그러니까 우리 조 상사님 말은 주임원사가 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덮으려고 하고 있다?”
“네.”
“그 이유는 대대장님 앞길을 막지 않기 위해서고요?”
“그렇죠. 정확하십니다.”
“와, 충신 났네. 충신 났어. 그러면 대대 부사관들의 진술 내용은······.”
“네. 맞습니다. 슬쩍 떠보니 주임원사가 시켰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라고 말이죠.”
“어허, 주임원사 이 양반. 진짜 큰일 날 짓을 했네. 이거 다 조사해서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 도리어 자신들에게 문제가 생길 텐데······.”
“아시지 않습니까. 부사관들에게 주임원사의 말이 어떤지 말입니다.”
조현철 상사도 이런 얘기를 하면서도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 역시 부사관이고, 사단 주임원사의 말을 쉽게 거역하지는 못한다. 물론 사건과 관련된 일이라면 누가 얘기를 해도 듣지 않겠지만 말이다.
“어쩌겠습니까. 그 양반도 시키는 대로 해야지. 무슨 힘들이 있겠습니까.”
물론 잘못된 일이다.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이렇게 진술을 했느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부대가 시끄러워지니까. 조용히 넘어가길 원해서 한 행동들일 것이다.
그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현철 상사는 모든 잘못은 주임원사에게 있다고 얘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