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3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44화
04. 그 나물에 그 밥(31)
조애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솔직히 저번 주말에 최윤태 대표에게 그런 소리를 했다.
“설득을 해봤는데 쉽지가 않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써봐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에 최윤태가 말했다.
“무슨 국밥집 콧대가 높아!”
최윤태는 그저 이맛살을 찌푸리고 말았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선진백화점 쪽에서 선을 그었다.
“뭐야. 확실히 말해.”
“그냥 사소한 시비가 붙었어요.”
“사소한 시비?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봐. 뭐야!”
조애령은 어제 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것도 자신의 입장에서 최대한 유리하게 풀어냈다. 그렇게 하면 최윤태 대표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았다.
“뭐? 고작 계란 후라이 때문이라고?”
최윤태 대표는 어이가 없었다. 계란 후라이 때문에 그 집 며느리와 아들보고 싸웠다는 것에 짜증이 났다.
“지금 그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거기에 지애 그년은 왜 데리고 간 거야.”
“그럼 어떻게 해요. 평소에 국밥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처럼 생겼다고 그러는데요. 그리고 가족들이 국밥을 전부 좋아한다고도 말했고요.”
“그러게 옷을 적당히 화려하게 입고 다녀야지.”
“그럼 이 나이 먹고 이 정도는 입고 다녀야죠. 내가 이상하게 입고 다니면 당신이 좋겠어요.”
“지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몰라요. 일이 그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요.”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진즉에 나에게 말을 했어야지. 별일 아닌 것처럼 얘기를 하면 내가 뭐가 돼?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강 이사 그놈에게 이딴 전화를 받아야 하냐 말이야.”
최윤태 대표가 짜증을 확 냈다. 최윤태 대표도 간이고 쓸개도 다 빼주며 이번 선진백화점의 푸드코트에 사활을 걸었다.
선진마트는 전국에 120개가 넘고, 프랜차이즈 삼아서 입점시킨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이 국밥집을 확 늘릴 수 있었다.
게다가 요즘에는 망해가는 국밥집도 많고 전국에 널린 것이 국밥집이었다. 그곳을 병합시킬 수 있다면 전국의 국밥집 체인을 모두 한호푸드가 독점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선진마트 푸드코트에 들어가는데 쉽게 망할 리가 없었다. 잘만 하면 회사를 크게 키울 기회로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계획을 다 세워뒀는데 망할 마누라와 딸자식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다 엎어지게 생겼다.
“하아······.”
최윤태 대표는 한숨과 함께 허탈함이 밀려왔다. 조애령은 그런 줄도 모르고 최윤태 대표를 위로한다고 말을 했다.
“여보. 그냥 그러려니 해요. 아니 뭐, 국밥집이 거기 하나인가. 다른 곳을 알아보면 되는 거죠.”
“답답한 소리 하지 마. 고작 이 정도로 수습될 일이라면 강 이사가 그런 식으로 전화를 했겠어!”
“그럼? 설마 우리 입찰 못 하는 거야?”
“그래! 잘난 딸내미와 당신 때문에 입찰 건은 날아갔다고 봐야지.”
“당신 말을 또 왜 그렇게 해. 우리가 당신을 돕겠다고 그런 건데.”
“도울 거면 제대로 돕든가. 이게 뭐야!”
괜히 욕을 얻어먹은 조애령은 화가 났다.
“그래서요. 이거 수습이 안 된다 이거죠.”
“내 말을 뭘로 들은 거야.”
“그럼 나도 이대로 당할 수는 없지.”
“뭐?”
“내가 그 국밥집 기필코 망하게 할 거야.”
자기 잘못도 모르고 혼자 길길이 날뛰는 조애령을 보면서 최윤태 대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네.”
하지만 말릴 생각은 없었다. 고작 국밥집이나 하는 주제에 자신의 사업에 코를 빠뜨렸다.
“맘대로 해!”
최윤태 대표가 크게 소리쳤다. 조애령은 사무실을 벗어나며 인상을 썼다.
“감히 너희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똑똑하게 보여주지.”
조애령이 휴대폰을 열어 식품위생과에 전화를 걸었다.
“어, 최 과장님 난데요. 시간 좀 돼요? 나 정말 억울한 일이 있지 뭐야.”
조애령이 또각또각 복도에 발소리를 내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어후, 잘 먹었다.”
두 시가 한참 지나서야 유진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공무원 점심시간은 12시부터 13시까지이지만 잘나가는 공무원은 딱히 점심시간을 지키지 않았다.
유진호도 마찬가지다. 그는 점심시간 한 시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3시간 만에 자리로 돌아왔지만 그 누구도 감히 유진호에게 눈치를 주지 않았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직원이 유진호에게 말했다.
“유 팀장님. 최 과장님께서 찾으십니다.”
“과장님이? 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알았어.”
입에 물고 있던 이쑤시개를 쩝쩝거리며 책상 위에 올려뒀던 손거울을 들었다. 자신의 이를 드러내며 혹시라도 이물질이 끼어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곤 여직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과장님 기분 어땠어?”
“과장님요? 별로 딱히 이상하지는 않았는데요.”
“그래? 알았어.”
유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과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최만석 과장이 자리에 있었다.
“과장님. 저 찾으셨다고요.”
“어, 그래. 유 팀장. 아까 보니 자리에 없던데.”
“네. 손님이 오셔서 식사 좀 하고 왔습니다.”
“손님은 무슨······. 그리고 말이야. 공무원이 되어서 말이야. 근무시간에 자리는 지키고 있어야지.”
“과장님 또 왜 이러실까요. 그래요. 제가 또 무슨 일을 하면 되는데요.”
이런 일이 익숙한 듯 유진호가 물었다. 잠깐 인상을 찌푸린 최만석 과장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사실 최만석 과장은 이런 유진호가 참 좋았다. 알아서 굽힐 줄도 알고, 시키는 대로 일 처리도 잘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공무원으로서 결격사유가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랏일을 하는 데 무작정 깨끗하게만 할 수도 없었다.
때로는 누군가의 손에 흙도 묻히고, 먼지도 묻혀야 했다. 그런 일을 하기에 유진호는 참 괜찮은 녀석이었다.
“너 업소 하나 털어봐.”
“업소요? 룸입니까?”
“이 친구 룸을 참 좋아해. 아니면 전에처럼 코가 삐뚤어질 정도로 마시게?”
“에이, 과장님도 저 좋다고 그럽니까. 그리고 저쪽에서 한 번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 마냥 뿌리치기도 그렇지 않습니까.”
“뭐든 적당히 해. 적당히. 이 친구야. 자네 그러다가 진짜 칼 맞을 수가 있어.”
“에이. 과장님 너무 겁을 주신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디인데요.”
유진호는 잔뜩 기대 어린 눈으로 물었다. 최만석 과장으로부터 미션을 받으면 그 업체로부터 상당한 뒷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만석 과장은 이번에는 그런 일이 아니라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는 그냥 털기만 해. 쓸데없이 뒷돈 받지 말고.”
유진호가 바로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 일이라면 제가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닙니까.”
“이 친구가······. 그래서 돈 되는 일만 하겠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른 친구들도 일을 해봐야 하지 않습니까.”
“다른 친구들이 일을 못 할 것 같아서 자네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야. 그래서 뭐? 안 하겠다는 거야?”
“아닙니다. 까라면 까야죠.”
“어후 진짜······.”
최만석 과장이 메모지 하나를 내밀었다. 그 메모지에는 신순애국밥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국밥집입니까?”
“왜? 싫어?”
“아니, 뭐 싫다기보다는······. 그런데 여긴 왜요?”
최만석 과장이 얘기를 해줬다.
“한호푸드 최 대표 알지?”
“알죠. 최 대표님.”
“최 대표님이 새롭게 한식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해.”
“아. 그래서 이 집?”
“맞아. 그런데 거기서 영 뻗대는 것 같아.”
“아니, 최 대표님이 돈 벌게 해주겠다는데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 왜 뻗대는데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래서 한번 찔러봐라?”
“그래. 별것 없더라도 있게끔 만들어서 잔뜩 겁을 줘. 그래야 한호푸드 최 대표가 뭐라고 할 것 아니야.”
“아이고야. 그런 거야 금방 하죠. 알겠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유진호가 씨익 웃으며 나갔다. 그런 유진호를 보며 최만석 과장이 혀를 찼다.
“쯧쯧, 빠릿빠릿해서 일을 잘할 것 같더니······. 하는 짓이 나보다 더 하네.”
최만석 과장도 유진호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 윗사람들 심부름을 하면서 자기 잇속도 챙기고 말이다.
하지만 최만석 과장은 나름 규칙을 지켰다. 그래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유진호는 요즘 돈맛을 들여서인지 몰라도 선을 지키지 않았다.
한마디로 일을 시키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었다. 지난번에도 경쟁업소 손 좀 봐달라고 해서 보냈더니 거기 룸에서 성 접대까지 받으며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놨다.
그래서 최만석 과장이 하마터면 받았던 것을 다 토해낼 뻔했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이가 갈렸지만 유진호만큼 일을 처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건 그렇고······. 아니, 국밥집 하나 못 잡아서 나에게 전화를 다 하고 그러지?’
최만석 과장이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효. 이제 이 짓도 그만해야 하나.”
최만석 과장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홍민우 소령은 송일중 대대장의 부름을 받았다. 대대장실로 들어간 홍민우 소령이 송일중 대대장에게 다가갔다.
“대대장님 저 찾으셨습니까.”
송일중 중령이 고개를 홱 돌려 날카로운 시선으로 물었다.
“어디 갔었어?”
“연대에 잠깐 다녀왔습니다.”
“연대? 연대에는 왜?”
“연대 작전처에서 다음 달 훈련사항 전달받고 왔습니다.”
“그래? 으음······. 그보다 말이야. 환장하겠어.”
“네? 무슨 일 있으십니까?”
홍민우 소령이 물었다. 송일중 대대장이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자네 아직 소식 못 들은 거야?”
“네? 죄송합니다. 대대장님께서 찾으셨다고 해서 바로 오는 길이라······.”
“하아. 내가 말이야. 자네를 믿고 군 생활을 해야 하나?”
홍민우 소령이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또 왜 저러나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송일중 대대장의 입에서 나온 말에 홍민우 소령도 충격을 받았다.
“헌병대에서 4중대로 다시 조사관을 보냈어.”
“무슨 말입니까? 이미 조사는 저번 주에 끝난 것으로 아는데 말입니다.”
“끝나긴 뭘 끝나. 문제가 생겼으니까 새로운 조사관을 보냈을 것 아니야.”
“새로운 조사관 말씀입니까?”
“그래. 그것 때문에 물어보려고 했는데 자네는 자리에 없고 말이야. 심지어 무슨 일인지 파악도 못 하고 있고 말이야. 이래서 내가 자네를 믿고 일을 맡길 수 있겠나.”
홍민수 소령이 바로 표정이 심각해졌다.
‘뭐지?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홍민우 소령의 생각은 짧았다. 바로 송일중 대대장에게 말했다.
“제가 바로 알아보고 보고드리겠습니다.”
“빨리빨리 서둘러.”
“네.”
홍민우 소령이 대대장실을 나와 곧바로 휴대폰을 꺼냈다. 그곳에서 동기 최영도 소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우, 뚜우, 뚜우······.
신호음이 가고 평소라면 바로 전화를 받았을 텐데 한참 동안 받지 않았다.
“무슨 일 있나?”
그때 수화기 너머 딸각하며 최영도 소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 그래. 홍 소령. 그렇지 않아도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그래. 최 소령. 혹시 말이야. 헌병대에 무슨 일이 있나? 아니, 자네에게 말이야.
-어,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