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2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42화
04. 그 나물에 그 밥(29)
“윤태민 소위?”
“소위 윤태민. 네, 그렇습니다.”
“반가워. 나 헌병대에서 나온 황인태 대위야.”
“아, 알고 있습니다.”
“그래. 일단 앉지.”
“네.”
윤태민 소위가 자리에 앉았다. 황인태 대위가 서류를 확인하다가 말했다.
“육사 후배님이네.”
“네. 선배님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윤태민 소위는 황인태 대위의 속도 모르고 웃으며 말했다. 원래 선배님 후배님 하며 학연을 따지는 것도 같은 육군사관학교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히죽 웃는 윤태민 소위를 본 조현철 상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후, 저 인간도 낚였네.’
처음 조사를 시작할 때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게 만드는 것이 황인태 대위의 특기였다.
육사 출신이면 친근하게 굴어서 속에 있는 것을 다 털어놓게 만들고, 육사 출신이 아니면 그들이 겪는 아픔을 달래며 털어놓게 만든다.
아니나 다를까. 윤태민 소위는 앞서 최영도 소령과 함께 조사했던 내용들을 쭉 얘기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피력했다.
“음······. 정리하자면 윤 소위는 많이 억울한 것이네.”
“네. 그렇습니다. 솔직히 안전벨트를 해주다 보면 신체가 실수로 닿을 수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그런데 그걸 가지고 성추행이니 뭐니······. 저는 아주 억울합니다. 술에 취해 떡이 된 부소대장을 관사에 데려다주려고 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일단 알았어. 나가봐.”
“네.”
윤태민 소위가 면담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조현철 상사가 피식 웃었다.
“대단하네요. 저 정도면 배우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리플리 증후군인가?”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하면 거짓말을 진실로 믿는 사람들을 말한다. 한마디로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다 보면 오히려 진실이 흐릿해지고 자신이 말한 거짓말 세계에 갇혀 버린다는 뜻이다.
윤태민 소위는 대담하게도 자신이 안전벨트를 착용시켜주다가 가슴에 닿았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받아본 동영상에는 안전벨트에는 손도 가지 않고 가슴에만 머물러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되었다. 막말로 윤태민 소위 말처럼 데려면 안전벨트 쪽으로 손을 뻗다가 살짝 닿거나, 메어주는 과정에서 손이 아니라 팔꿈치 쪽이나 팔뚝에 닿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윤태민 소위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뭐가요?”
“동영상 얘기 말입니다.”
“아. 그거요. 벌써 까면 재미없잖아요. 지금쯤 윤 소위는 엄청 좋아하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아마 저하고 조 상사님이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하면 느낌이 쎄할 겁니다. 왜 다시 하지? 그런 생각하고 최 소령님이나 박 중위에게 연락하지 않겠습니까.”
“한다면 진즉에 했겠죠. 원래라면 결과가 나오고도 남았죠. 다시 헌병대에서 나왔다고 하면 본인도 느낌이 좋지 않겠죠. 그런데 위에서 얘기를 해줬겠습니까. 만에 하나 그것까지 걸려 버리면 더 난리가 날 겁니다.”
“하긴 지금 두 사람 목이 걸려 있는데 그렇게까지는 못하겠죠.”
최영도 소령과 박태진 중위는 홍민우 소령을 돕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그 사실이 발각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한 번 뒷수습을 한다고 나섰다가 들키면 이제 완전히 엿 되는 것이었다.
헌병대대장인 임규태가 몰랐다면 모를까, 다 알아버린 상황에서 말이다.
게다가 확실한 증거로 인해 이 일이 뒤집히게 생겼다. 괜히 여기서 나섰다가 상황을 악화시키면 둘 다 옷을 벗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윤태민 소위는 두 사람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한다. 어차피 전화도 안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자. 이제 시간이 이렇게 되었는데 점심 먹고 조 상사님은 사단 부사관들 올라왔던 조서 말입니다. 다시 한번 조사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저는 4중대 장교들부터 만나보겠습니다.”
“네.”
점심시간 이후 가장 먼저 김진수 중위부터 황인태 대위에게 불려갔다. 그 모습을 본 윤태민 소위가 인상을 쓰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뭐지? 아까 얘기가 잘된 것이 아니었어?’
윤태민 소위는 담당자만 바뀌었다고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다시 조사를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최영도 소령은 전화를 받지 않고, 그나마 했던 박태진 중위와 통화에서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뒤엎고 헌병대가 다시 조사하지는 않을 것이라 여겼다.
‘군 조직의 특성상 그런 일은 제 살 파먹는 거잖아. 설마 그런 일은 할까?’
윤태민 소위는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김진수 중위가 불려가니 뭔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뭐지, 이거?’
윤태민 소위가 행정실을 나와 건물 밖으로 나갔다. 휴대폰을 꺼내 박태진 중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박태진 중위가 전화를 받았다.
-그래, 윤 소위.
“충성. 박 중위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지금 먹는 중.
“네. 지금 잠깐 통화 괜찮으십니까?”
-어, 말해.
“지금 부대에 말입니다. 새 조사관님께서 나오셨는데 말입니다.”
-아, 황 대위님?
“네.”
-그런데 왜?
“황 대위님 내려와서 뭐 하시는 겁니까?”
-뭐 하긴 뭐 해. 당연히 조사하러 간 거지.
“지난번에 조사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아. 그건 1차 조사. 황 대위님은 2차 조사.
“2차······ 조사요?”
-어!
“2차 조사 말입니까? 아니, 2차 조사까지 왜······.”
그때 수화기 너머 탁하고 수저를 강하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박태진 중위에게서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 소위.
“네.”
-지금 자네 행동 경우 없는 거라는 걸 알아?
“죄송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 헌병대야. 헌병대에게 조사 과정을 물어봐?
“아, 아닙니다.”
-그리고 말이야. 우리가 친해?
“그게 아니라······.”
-막말로 내가 자네에게 밥이라도 얻어먹었다면 이런 소리도 안 해. 자네 때문에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했는데······.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절대 아닙니다.”
-앞으로 이런 식의 전화는 다시는 하지 마.
“알겠습니다.”
바로 박태진 중위가 전화를 끊었다. 박태진 중위는 나름의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윤태민 소위는 고개를 갸웃했다. 윤태민 소위는 박태진 중위와 나름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여태껏 자기가 박태진 중위에게 커피며, 담배까지 사다 줬었다.
그런데 이제 와 자기와 친하냐고 물어보니 뭔 소리인가 생각했다. 그제야 윤태민 소위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가만!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건가?”
갑자기 윤태민 소위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시각 최강희도 모처럼 만에 온 최강철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야, 점심시간 맞춰서 오라니까. 점심을 먹고 오면 어떻게 해.”
“누나가 언제 점심 먹으러 오라고 했어. 점심때쯤 오라고 했지.”
“그게 그거지. 설마 내가 괜히 점심 먹고 보자고 했겠니.”
“그럼 점심 먹고 오지 말라고 하든가. 누나가 언제 나랑 점심을 먹었는데?”
최강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 진짜······. 강호 닮아가니?”
“여기서 형 얘기가 왜 나와?”
최강철이 바로 정색했다.
“너 정말 강호 밑에서 일하더니······. 버렸네, 버렸어.”
최강희는 서운하다는 듯이 말했다. 모처럼 막냇동생을 만나면서 맛있는 식사를 같이 먹을 생각에 식당까지 알아봤다.
그런데 이놈이 점심시간을 한참 넘겨서 한다는 말이 점심 먹었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최강희는 짜증이 확 났다.
하지만 최강철도 최강희가 같이 점심을 먹자는 뜻인 줄 몰랐다. 지금까지 최강희하고 단둘이 식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집에서도 단둘이 식사를 한 적도 거의 없었다.
“알았어! 미안해. 다음에 내가 밥 살게.”
“됐어, 인마. 그보다 너 연애는 잘하고 있니?”
“당연하지.”
최강철의 얼굴이 미소가 떠올랐다. 최지현만 생각해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으이구, 그런데 너 말이야. 그 여자 계속 만날 거니?”
“만나야지. 우리 지현 씨가 왜?”
“내가 모르면 모를까. 그때 그 사건의 그 아가씨 아니야?”
순간 최강철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누나! 그 얘기는 꺼내지 말자. 그때는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거고. 만약에 지현 씨 아니었으면 내 인생 완전히 망쳤을 거고 아빠에게도 화가 미쳤을 거야. 회사에도 문제가 생겼을 거야. 그런데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너 웃기다. 네가 제대로 살았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거라 생각은 안 하니?”
“그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서 그 아가씨랑 결혼할 거니?”
“당연하지!”
“너나 강호나 왜 그러니.”
“왜?”
“야! 내가 강호 신소라랑 만나는 줄 모르는 줄 아니.”
“으흠······. 알면 좀 넘어가 주라 누나! 누나도 예전에 그랬잖아. 사랑 없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그 얘기를 왜 꺼내!”
최강희가 발끈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소리야.”
“내가 그 얘기를 했을 때는 엄마가 자꾸 정략결혼 시킨다고 하니 그런 거고!”
“그럼 형이나 나는? 우리는 정략결혼을 하라는 거야?”
“누가 그러래. 아무리 그래도 급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야지.”
그러자 최강철이 바로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이야, 누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다. 우리 누나야말로 엄마랑 똑같네. 똑같아.”
“너 말이 좀 심하다.”
“언제는 엄마처럼 성공한 CEO가 되고 싶다며.”
“그건 그냥 해본 소리고. 나는 엄마처럼 평생 외롭게 살 생각 없거든.”
최익현 의원과 이명희 회장은 쇼윈도 부부나 마찬가지다. 물론 같이 자고 지내고 있지만 두 사람은 필요에 의해서 만났다.
젊었을 때는 한 창 불타올랐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명희 회장이 자식 셋을 낳고 사업에 빠지고, 최익현 의원 역시 정치를 하다 보니 서로 가정에는 조금 소홀했다.
보통 자식을 낳다 보면 아이를 통해 서로 유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 두 사람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서로 바쁘다 보니 가끔 서로 밥 먹을 때나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심지어 잠도 각자의 방에서 따로 잤다. 그렇다고 해서 최익현 의원이 외도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명희 회장이 따로 애인을 두는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의 사생활에 있어서는 너무 깨끗했다.
사실 두 사람 결혼할 때 한 가지 약속한 것이 있다.
-서로에게 존경받는 배우자가 되자
이렇듯 지금까지 이 약속은 잘 지키고 있다. 하지만 최강희는 엄마처럼 여자로서의 삶은 포기하고 사업가로서 사는 모습을 정말 싫어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최강희도 사업을 하다 보니 이명희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아, 됐어. 그나저나 용건이 뭐야?”
“맞다. 다른 것은 아니고 뭐 하나 물어볼 것이 있었어.”
“물어볼 것이 있으면 전화로 하지. 같이 밥 먹을 것도 아니면서······.”
“그만하자! 다음에는 안 먹고 올게.”
“······.”
최강희는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최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서 본래 여기 온 목적을 얘기했다.
“누나가 지난번에 얘기했잖아. 푸드코트 개편한다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