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2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41화
04. 그 나물에 그 밥(28)
“아이고, 그러니까 헌병대장님께서 주변을 챙기라고 하지 않습니까.”
“와, 진짜 억울합니다. 막말로 얼마 전에 내가 조 상사님 결혼기념일도 챙겨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뭐냐 조 상사님 사모님 생일도 챙겨 드렸는데 정말 이러깁니까?”
“나에게 말고 말입니다. 나야 부사관이고 그렇다고 평생 황 대위님 뒤치다꺼리해요?”
“맘먹으면 그럴 수도 있죠.”
“에이 황 대위님 쭉쭉 위로 올라가셔야죠.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겁니까.”
“굳이 저는 진급에 목매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냥 대대장님처럼 나중에 중령 달고 내려올 겁니다.”
“어차피 그 일은 먼 훗날의 얘기 아닙니까. 게다가 중령은 아무나 막 다나?”
“진짜 왜 그래요. 저도 동기들 중에서는 진급이 빠른 편입니다.”
“빠르면 뭐 해요. 3년 후배하고도 계급이 같은데.”
“그, 그거야······. 아픈 곳을 막 찌르네요. 그리고 나중 일은 모릅니다. 어쨌든 제가 대위는 먼저 달았지 않습니까.”
“네네. 그렇긴 하죠. 그래도 황 대위님께서 말한 것처럼 앞날은 모르는 거죠. 3년 후배가 먼저 소령을 달지 누가 압니까.”
“거참······. 진짜로······.”
황인태 대위는 괜히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조현철 상사가 슬쩍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요. 막말로 황 대위님께서 진급이 빠르겠습니까. 오 대위님이 진급이 빠르겠습니까?”
“그야 뭐······.”
황인태 대위는 담배를 피우며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 솔직 담백한 모습에 황인태 대위의 매력이긴 하다. 하지만 너무 사람이 이런 식이다 보니 약간 가볍게 보이는 것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일에 들어가면 또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아무튼 아까 4중대장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솔직히 저 같으면 나보다 진급 늦을 것 같은 선배님? 딱히 안 챙깁니다. 무시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접점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선배 후배 다 끼고 가면 나중에 답도 없는 건데요.”
“그래요. 조 상사님 그렇게 안 봤는데 인간관계 빡빡하시네요.”
“내가요? 빡빡하다고요?”
“그래서 황 대위님 주변에 동기가 누가 있는데요?”
“저야 동기······. 으음······.”
잠시 신음을 흘리던 황인태 대위가 살짝 인상을 썼다.
“없네요. 동기······. 다 어디 갔지?”
“어디 가긴 어디 갔겠어요. 황 대위님 만날 저랑 술 마신다고 하니 다 도망갔죠.”
“에이, 그놈들하고 술 마시며 할 얘기도 없는데요. 저는 조 상사님하고 세상사는 얘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후······. 어쨌든 비빌 언덕은 있으면 좋습니다.”
“비빌 언덕 있지 않습니까. 우리 대대장님.”
“대대장님 다른 곳에 가시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아니면 황 대위님도 함께 데리고 간답니까?”
“열심히 하면 데리고 가지 않을까요?”
“모르죠. 그 부대 사정이 어떻게 되는지요. 그걸 믿고 있으면 안 된다니까요. 무엇보다 나중에 데리고 간다고 해도 황 대위님이 잘하셔야죠.”
“저 열심히 하지 않습니까. 지금 헌병대에서 나만큼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알죠. 황 대위님께서 딱 나서면 사삭 일 처리가 바로 되는 거 말입니다. 그거 하나는 저도 인정합니다.”
“흐흠. 그렇죠.”
“그런데 일 잘하는 것은 둘째 치고 인간관계 이것도 중요합니다.”
“······.”
황인태 대위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딱히 자신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현철 상사가 살짝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보다 제가 오 대위에 대해서 따로 조사를 해봤는데요.”
“네.”
“오 대위도 진급을 잘한 것이 딱 한 사람과 인간관계가 좋았답니다.”
“그래요? 누군데요?”
“장기준 소장님이요.”
“장기준 소장님이라면 이번에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으로 올라가신 분이요?”
“네.”
“어후 그분하고 어떻게 안대요?”
“장기준 소장님이 사단장님으로 계실 때 오 대위가 그렇게 잘했답니다.”
“그래요? 어떻게 잘했답니까?”
“거의 사단장님이 합참으로 올라갈 때 1등 공신이었다고 하죠.”
“아하······.”
황인태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현철 상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설명했다.
“게다가 그렇게 잘하니 장기준 소장님이 대대에 있던 오 대위를 사단으로 끌어 올리지 않았습니까.”
“와, 황금 동아줄을 잡았네요.”
“문제는 그렇게 올라가서도 크게 도와주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응? 그럴 거면 왜 데리고 갔답니까?”
“믿었던 거죠. 사단으로 올라간 2년 동안 얼마나 일을 잘했는데요. 동기들이 뒤에서는 씹어도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단에서는 거의 혼자 지냈다고 합니다.”
“뭡니까. 나랑 똑같지 않습니까.”
“에이. 아니죠.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죠. 솔직히 말해서 우리 황 대위님은 주변을 못 챙겨서 주변 사람들이 떠나는 거고.”
“에이, 나 잘한다니까.”
“오 대위는 너무 잘나니까, 주변에서 시기 질투를 하는 건데 그렇다고 해서 그게 언제까지 갈 것 같습니까? 오 대위님이 제일 먼저 소령 달죠? 그러면 그 전까지 질투했던 사람들이 전부 다 오 대위에게 축하 전화를 할 걸요. 거기다가 중령, 대령까지 먼저 달죠?”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일단 잘나고 봐야 한다는 거죠?”
“그게 아니라. 그 정도로 앞설 자신이 없으면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라는 뜻입니다.”
황인태 대위가 담배 연기를 푹 내뿜었다. 솔직히 자신도 그런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다. 자신이 동기들보다는 빠른 진급을 하고 있어서 만족하고 있긴 하지만 오상진의 스토리를 듣고 보니 위기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오상진이 중대장으로 와서도 완전 꼴통 중대를 뜯어고치겠다고 지금까지 했던 일들을 보면 왜 저런 후배가 잘되는지 이해가 되었다.
한 마디로 잘한다. 잘하니 저렇듯 인정을 받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이곳으로 와서 오상진처럼 할 수 있을까? 그건 솔직히 장담을 하지 못했다.
지금 황인태 대위 위에 임규태 중령처럼 좋은 사람이 있어서 망정이지 그가 오기 전까지도 그도 조용히만 살았다. 그전 헌병대대장이 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해서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현철 상사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는 않았다. 조현철 상사가 그런 황인태 대위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황 대위님 설마 화나신 것은 아니죠?”
“화는 무슨 화입니까? 반성 중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반성하지 마시고 지금도 잘하고 계신데 제 말은 그겁니다. 황 대위님은 잘될 겁니다. 워낙에 일을 잘하셔서 말이죠. 하지만 군 생활 하면서 힘든 일이 한 번도 없겠습니까?”
“그렇죠.”
“그럴 때 누군가는 도움을 줘야 하는데 그때마다 대대장님을 찾을 겁니까?”
“그건 그렇죠.”
“그러니까요. 대대장님 찾을 일은 대대장님을 찾는 게 맞는데. 동기들에게 조언을 구할 일은 동기들에게 구해야죠. 그런데 지금 딱히 친하게 지내는 동기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 대위하고 잘 지내봐라 이 말입니까?”
“네. 딱 두 분 보니 잘 지낼 것 같네요. 성격도 비슷한 것 같고······.”
“나도 방금 오 대위를 겪어보니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요. 오 대위하고 친하게 지내면 장석태 대위하고도 친하게 지내게 될 겁니다.”
“장석태 대위? 아······. 장기준 소장님 아들.”
“네. 요즘 그분 무척이나 핫합니다. 인싸 중에 인싸입니다. 장석태 중위가 그렇게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서 인맥이 차고 넘칩니다.”
“오 대위는 엘리트 중에 엘리트고, 장석태 대위는 금수저 뭐 이런 느낌이네요.”
“금수저이긴 한데 장석태 대위도 일 잘해요. 그리고 주변 평판도 좋고요. 물론 둘 중에 한 사람을 데리고 가고 싶다고 한다면 오 대위를 데리고 가고 싶겠죠. 주변 관리 잘하는 사람보다는 일 잘하는 사람이 먼저니까요. 윗분들에게는 말이죠.”
“하긴 그렇죠. 윗분들은 실적이 중요하죠.”
윗사람들은 자신이 진급할 수 있게 실적을 챙겨주는 부하를 두고 싶어 한다. 장석태 대위가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상진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보면 누구나 그를 원할 것이다. 장석태 대위는 어떻게 보면 아버지 후광 속에서 자기 일만 열심히 했던 것이니 말이다.
오상진은 자수성가형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이번에 잘 지내보도록 하죠.”
황인태 대위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 그러면 부담되는데.”
“왜요?”
“이번에 수사를 잘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건 아니죠. 이 일이 어떻게 저희에게 넘어왔는지 들으셨지 않습니까.”
처음 임규태 중령에게 불려갔을 때 이해를 하지 못했다. 자신의 상관인 최영도 소령이 조사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다시 넘기며 조사하라는 것은 최영도 소령이 뭘 잘못했는지 다 드러내라는 말과 같았다.
보통은 잘 이러지 않는다. 어느 군대든 쉬쉬하는 분위기가 많다. 하물며 윗사람의 실수를 아랫사람이 덮어주며 서로서로 챙겨주지, 이런 식으로 처음부터 다시 조사를 하라고는 하지 않는다.
물론 같은 사건을 맡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조사하는 것은 맞지만 그건 문제가 있으면 적당히 덮으라는 말이다.
그런데 임규태 중령의 지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시 철저히 바로잡으라고 했다.
바로잡으려면 최영도 소령이 했던 것을 다 드러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최영도 소령이 주말에 황인태 대위에게 찾아와 술을 마시며 신세한탄을 했다.
자신의 진급이 어떻고, 이런 상황이고 지금 죽겠다는 둥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 한마디로 선배로서 좀 봐 달라는 말이었다. 황인태 대위는 그 자리에서 얘기는 들어줬다. 하지만 곧바로 그 말들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오상진 얘기까지 듣고 나니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황 대위님은 황 대위님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요.”
“내 스타일대로?”
“네.”
“그러다가 오 대위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고요?”
“그러면 오 대위가 받아들여야죠. 황 대위가 어디 사심을 가지고 조사를 하실 분입니까?”
“그렇죠. 저는 그런 것을 가지고 조사하지 않죠. 아시잖아요. 전 헌병대대장에게 왜 찍혔는지요.”
“그러니까요. 그런 걱정 마시고 철저하게 조사하십시오. 설사 오 대위가 그 결과를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받아들이게 만드십시오. 그게 진짜 선배가 할 일입니다. 아까 그러지 않았습니까. 빈말인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봤을 때 멋있고 좋은 선배라고 생각했다고 말이에요.”
그 얘기에 황인태 대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오상진에게 그 얘기를 빈말로 듣긴 했다. 조현철 상사가 상기를 시켜주니 대충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요. 갑시다.”
황인태 대위가 어느새 다 피운 담배를 비벼 껐다. 조현철 상사가 움직였다.
“뭐부터 하실 겁니까?”
“일단 윤태민 소위부터 조지죠.”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두 사람이 당당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윤태민 소위가 면담실로 불려왔다.
“충성!”
윤태민 소위는 면담실로 들어오자마자 경례를 했다. 황인태 대위가 경례를 받은 후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