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2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37화
04. 그 나물에 그 밥(24)
지금 소중 픽처스는 오상진이 산 건물에 사무실을 내고 지내고 있다. 위치 자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소중 픽처스에 찾아온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말들을 했다.
“이런 곳에 사무실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보통 대부분의 영화제작사들은 충무로에 많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소중 픽처스 주소를 이쪽으로 알려 주면 사람들이 살짝 오해를 하곤 했다. 이 투자사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때는 임대료가 없고 그래서 지금까지 있는 것이지만.
반면에 오 엔터 건물은 강남에 좋은 빌딩에 사무실을 차렸다. 그 근처에 영화제작사는 물론 대형 기획사들도 즐비하다. 그래서 그쪽으로 가면 좀 더 많은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빌딩을 최강호가 팔지 않을 것은 알고 있다. 일단은 그곳에서 임대를 통해 자리를 잡고 추후에 다른 곳 빌딩을 사서 옮기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오늘 일을 겪고 나니 굳이 소중 픽처스와 오 엔터를 떨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소희가 즉각 반응을 보였다.
“맞아요. 아주 좋은 생각 같아요. 상진 씨 말은 오 엔터를 중심으로 해서 투자사업도 하고 엔터 사업도 하고 겸사겸사 영화제작도 하자는 말이죠?”
“네. 뭐, 영화제작도 하고 여유가 있으면 드라마도 제작하고요.”
“와, 상진 씨 사업수단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요?”
오상진이야 미래를 살아가면서 보고 느꼈던 것이다.
미래의 사업은 원래 컨텐츠 자체제작으로 간다.
지금은 연예 기획사들이 아티스트를 공급하고 출연료를 받으면서 회사를 운영한다.
시간이 지나면 자체적으로 컨텐츠도 만들고 수익을 만드는 구조로 바뀐다.
그 시절을 이미 살았던 오상진이기에 가능한 얘기였다. 게다가 이런 얘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었다. 이미 틀이 갖춰진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했으면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오빠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형님요?”
“네. 그래도 오빠는 대표님 소리를 듣기 좋아라 했는데 이사직급을 줘야 하나?”
오상진이 슬쩍 말했다.
“그러지 말고 형님이랑 공동 대표 하세요.”
“오빠랑요? 아니, 오빠가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요.”
“물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공동 대표로 하고, 시간이 지나면 한 대표님이라는 것보다는 한 감독님이라고 불리고 싶을 수도 있어요.”
한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 오빠 꿈이 하고 싶은 영화 잔뜩 하고 싶은 거니까요.”
“그러니까요. 사업과 관련되어서는 어차피 소희 씨가 전부 담당할 거잖아요. 그러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알았어요. 그런데 상진 씨.”
“네?”
“상진 씨를 왜 그렇게 저를 믿어요.”
“뭐가요?”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한소희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상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결혼할 사람이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녀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믿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한소희의 말은 의문이 들었다.
“아니. 내가 학교에서 경영학 공부를 하긴 했지만 상진 씨는 너무 날 믿는 것 같아요. 이러다가 내가 회사 말아먹으면 어떻게 하려고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아. 그런 뜻이었구나.”
오상진은 조금 전 생각했던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한소희 본인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얘기 한 것이었다.
“네?”
“아니에요. 어쨌든 소희 씨가 고의로 망하라고 할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할 거잖아요. 그게 왜요? 만약에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그것으로 나는 소희 씨 원망 안 해요. 소희 씨가 안 되면 내가 해도 안 되었을 겁니다.”
“으잉, 상진 씨······. 나 진짜 남자 친구 잘 만난 것 같아요.”
한소희는 오상진의 말에 감동받은 듯 눈을 반짝였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무슨 소리예요. 내가 여자 친구를 잘 만난 거죠.”
오상진의 시선이 한소희에게 향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이제 어디 갈까요?”
“상진 씨!”
“네?”
“우리 그냥 오늘은 오랜만에 집에서 푹 쉬어요.”
“서울집에서요?”
“네.”
“그래도 괜찮겠어요? 오늘 데이트하기로 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나는 상진 씨만 있으면 되는데.”
평소에 오상진이 집에서 쉬자고 했으면 약간 응큼하게 봤을 한소희였다. 그런데 오히려 한소희가 이런 말을 하자 오상진은 웃음이 나왔다.
‘하아, 참······. 이럴 때는 정말이지. 회귀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오상진은 액셀을 밟았고, 차는 빠르게 서울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점심 무렵 오상진과 한소희는 한울빌딩에 있는 신순애 국밥집으로 향했다. 2호점을 내면서 상호등록을 새롭게 했다. 그래서 어머니 이름을 따서 신순애 국밥집으로 상호를 바꿨다.
신순애 국밥집은 일요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많았다.
“오늘도 사람이 많네요.”
한소희가 가게 내부를 보며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일단 들어가죠.”
“네.”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저희 왔어요.”
오상진이 주방에 계시는 신순애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신순애가 바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멋!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신순애가 곧바로 주방에서 나왔다. 한소희가 바로 인사를 했다.
“어머니, 저희 왔어요.”
“그래. 어서들 와라. 점심은?”
“아직요. 어머니 국밥 먹으러 왔어요.”
“그러니?”
신순애가 말을 하고는 잠시 주변으로 확인했다. 그러자 한쪽 구석에 빈자리를 확인했다.
“일단 저쪽 자리에 가 있어. 엄마가 국밥 말아서 가지고 나오마.”
“네.”
두 사람은 빈자리로 이동했다. 식당은 반으로 구분을 지어놓았다. 한쪽은 좌식을 선호하는 사람들, 다른 한쪽은 의자를 선호하는 사람들이었다. 한소희와 오상진은 앉은 곳은 좌식으로 된 자리였다.
“소희 씨 불편하지 않아요?”
“전혀요. 그래서 오늘은 저 청바지 입고 왔잖아요.”
한소희가 환하게 웃었다. 사실 한소희는 청바지를 입기보다 무릎 위쪽으로 오는 짧은 미니스커트나 각선미를 뽐내는 그런 옷을 많이 입어왔다.
어머니를 만날 때는 그래도 노출이 적은 얌전한 옷을 입곤 했다. 평소 오상진과 데이트를 할 때는 한껏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옷을 입고 나왔다.
물론 처음에 오상진과 한소희의 만남 때에도 군인들과 옷차림 때문에 시비가 붙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정도로 옷차림이 과하진 않았다. 어쨌든 오 엔터의 대표고 사회적 지위도 있다. 그래서 요새 점잖게 입으려고 노력을 한다.
“어후, 이럴 때마다 센스가 넘친다니까요.”
“그걸 이제 알았어요.”
잠시 후 딸랑딸랑 문이 열리며 화려한 실크 블라우스를 입은 중년 여자가 딸과 손자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왔다. 그 여자가 들어오자 신순애를 보며 바로 말했다.
“어머나. 사장님. 오늘도 손님이 많으시네.”
그 여자를 본 신순애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또 오셨어요. 그때 안 한다고 했는데요.”
“에이, 왜 또 섭섭하게 말을 하실까. 오늘은 그냥 가족이랑 밥 먹으려고 왔어요. 설마 저희는 밥도 못 먹어요?”
그 모습을 보는 한소희의 표정 역시 굳어졌다.
“저 여자 말을 왜 저렇게 얄밉게 하고 그래.”
한소희의 투덜거림을 들은 오상진 역시 그 아줌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니에요. 앉으세요.”
신순애는 손님으로 왔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권했다. 신순애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그 아줌마의 딸로 보이는 여자가 말했다.
“엄마. 진짜 여기서 밥 먹자고?”
“왜? 여기가 어때서?”
“엄마 정말 여기서 먹어? 맛있는 거 사준다면서.”
딸은 손으로 코를 막으며 인상을 썼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만해. 너 여기 장사가 얼마나 잘되는 줄 아니? 여기 소문난 맛집이야.”
“맛집은 무슨······. 여기 죄다 아저씨들만 있네.”
“아저씨들은 밥 안 먹니? 아저씨들은 돈 없어?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돈을 잘 써요. 넌 뭐 알고 그런 말을 하니.”
“아, 몰라! 엄마가 맛있는 거 사 준다고 해서 나왔는데······. 옷도 명품이란 말이야. 이 옷에 냄새 다 배겠네.”
딸은 연신 투덜거렸다. 그 얘기가 한소희 귀에까지 다 들렸다.
“뭐야, 저럴 거면 왜 온 거야.”
“그러게요.”
오상진 역시 엿듣는 것 같아 일부러 신경을 안 쓰려고 했다. 시선을 거두려고 하려는 그때 주방 이모가 나와서 주문을 받았다. 물컵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뭐로 드시겠어요?”
아줌마가 바로 주문했다.
“수육 대(大) 자로 주세요.”
“수육 대(大) 자요? 알겠어요. 혹시 술은요?”
주방 이모가 묻자 그 집 딸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무슨 대낮부터 술이에요.”
“아······. 보통 수육을 주문하실 때 술을 찾으셔서요.”
“뭐야! 우릴 뭐로 보고······.”
딸은 연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줌마가 딸의 팔을 툭 쳤다.
“얘는 진짜······. 여기까지 와서 왜 이래.”
“내가 뭘!”
“술은 됐고요. 수육 나올 때 국밥 국물 나오죠?”
“나와요.”
“그럼 그렇게만 주세요.”
“알겠어요.”
주방 이모가 몸을 돌려 주방으로 갔다. 그러자 딸이 바로 입을 열었다.
“엄마. 무슨 수육?”
“너 어차피 국밥 시켜도 안 먹을 거잖아.”
“내가 무슨 국밥 먹는다고 그래. 그리고 엄마도 국밥 안 좋아하잖아.”
“그래서 수육 시켰잖아. 여기 국밥은 안 먹어봐서 모르겠는데 수육도 맛있더라.”
그러자 아주머니가 곧바로 옆에 앉은 손자에게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어이구. 우리 찬우 조금만 기다려. 할머니가 맛있는 고기 줄게.”
찬우는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온통 그쪽으로 신경이 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딸이 와락 인상을 썼다.
“야! 강찬우. 엄마가 게임 하지 말라고 했지.”
그러면서 게임을 하고 있던 휴대폰을 빼앗았다. 그러자 찬우가 버럭 짜증을 냈다.
“아이씨, 왜 그래!”
찬우는 8살 정도 되어 보였다. 그 소리에 오상진과 한소희가 고개를 돌렸다. 한소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딸은 더욱 목소리로 높였다.
“어디서 소리를 질러! 엄마가 밖에서 소리 지르지 말라고 그랬지! 너 때문에 엄마가 창피해서 죽겠어!”
그 소리를 들은 한소희는 어이없어했다.
“뭐야? 애 목소리보다 자기 목소리가 더 커! 진짜 저 사람들 뭐야.”
그러자 오상진이 바로 얘기했다.
“소희 씨가 이해해요. 요즘에 저렇게 애들 버릇없이 키우는 사람들 많은 것 같아요.”
“우린 진짜 애기 낳으면 저러지 말아요.”
“그러게요.”
그런데 주변 시선을 느꼈던지 그 아주머니가 바로 딸을 나무랐다.
“너는 왜 애를······.”
“내가 뭐?”
“너도 조용히 해. 네 목소리가 더 커! 여기까지 와서 목소리를 높여야겠니?”
“에이씨, 짜증 나······.”
딸은 연신 투덜거렸다. 그로부터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수육이 먼저 나왔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고 찍어 먹을 양념장도 나왔다. 아주머니가 젓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자. 한번 먹어봐.”
“싫어······.”
“한번 먹어봐. 맛있다니까.”
딸은 억지로 한 입 먹어봤다. 잔뜩 찡그려져 있던 표정이 서서히 풀렸다. 작게 고개까지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