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2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36화
04. 그 나물에 그 밥(23)
‘에이, 제기랄······.’
피우던 담배를 쓰레기통에 던지고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한중만이 들어왔다. 그런데 둘이 아닌 혼자였다.
“최 대표는요?”
“글쎄다. 먼저 간 것 같은데.”
한소희가 입을 열었다.
“오빠.”
“응?”
“안 된다고 했지?”
“알아! 안 된다고 했어.”
“순순히 알아들어?”
“다음에 최 대표 작품 투자해 주기로 했어.”
“아이고 뭐하러 그렇게까지 해.”
“아무리 그래도 최 대표가 지금까지 고생한 것도 있고 그런데. 일방적으로 그만하자고 해봐라. 최 대표쪽을 통해서 캐스팅되었던 배우들 다 나가리잖아. 스태프들도 새로 뽑아야 하고.”
“그래서 최 대표가 다 넘긴데?”
“자기가 안 넘기면 어쩔 거야. 자기가 다 떠안을 것도 아닌데.”
“그래! 이번에 괜찮은 제작사 한번 알아보자. 아니면 자회사를 하나 두든가.”
그러자 한중만이 눈을 반짝였다.
“그럴까, 그럼? 그리되면 일이 커지는······.”
오상진이 바로 말을 잘랐다.
“형님. 그건 나중에 생각을 하시고요. 강철영 감독님. 다시 여쭈겠습니다.”
“네.”
“정말 박보연 씨보다 강지영 씨가 괜찮다고 생각하십니까?”
오상진이 다시 한번 물어보자 강철영 감독은 조금 전과 달리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죠. 박보연 씨가 훨씬 낫죠.”
“그렇죠!”
“네. 사실 박보연 씨를 원한다고 들어서 오디션을 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찾던 이미지랑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때 정말 좋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이 배우를 아셨어요?”
“아, 이리저리 아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랬구나. 어쨌든 내가 원하는 배우를 딱 캐스팅할 수 있겠다 싶어서 너무 좋았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강지영 배우를 들이미니까 미치겠더라고요. 그리고 한 대표님이라고 하셨죠?”
“네!”
“강지영 씨가 말했던 것이랑 똑같이 말했어요.”
“어떤 거요? 대본 고치라는 거요?”
한소희가 웃으며 대답하자 바로 강철영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쩐지······. 강지영 배우 싸가지 없다고 업계에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하던 작품마다 망하고, 자기가 못해서 망한다고 생각은 못 하고 말이죠. 게다가 대본도 자기 위주로 고치라고 하고······.”
“그러니까요. 저도 그 소문을 듣고 긴가민가했어요. 일단 만났는데 계약서에 사인하기도 전에 대본부터 수정하자고 하더라고요. 수정 안 하면 출연 못 한다고 말이에요. 그때 얼마나 황당하던지······.”
조금 전까지 조용하던 강철영 감독은 최성철 대표가 사라지자 봇물 터지듯 얘기를 늘어놓았다.
“저는 최성철 대표가 옆에서 당연히 고칠 거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자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요 근래에 제 작품이지만 정말 찍어야 하나 고민 많이 했습니다. 오죽하면 다른 감독에게 넘길까도 생각했습니다.”
오상진이 바로 손을 저었다.
“어후, 그러시면 안 되죠. 저는 감독님만 믿고 투자하는 건데요.”
“저야 감사하죠.”
강철영 감독이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제작비는 그대로 가는 거죠?”
“그럼요. 40억이라고 했죠?”
“네네.”
오상진이 한중만을 봤다.
“형님!”
“응?”
“50억 투자하시죠.”
“50억?”
“네. 어차피 영화 찍다 보면 이리저리 들어갈 돈이 많지 않습니까. 부족한 것보다 여유가 있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어어. 그래. 그러자고.”
“부족한 10억은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어후, 안 그래도 돼. 회사에 그 정도 투자금은 있어.”
“아니요. 잘될 것 같아서 저도 투자 좀 하려고 그럽니다. 제가 돈 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그 정도는 내가 낼 수 있어.”
40억을 투자했다면 그 절반은 항상 오상진 비율이었다. 그것은 소중 픽처스의 규칙이나 다름이 없었다. 오상진이 콕 집어 투자하겠다고 하는 작품은 그가 원하는 만큼 돈을 냈다.
그런데 지난번에 오상진이 스캔들 메이커는 반반씩 투자를 하자고 했었다. 그런데 방금 전에 100억? 50억? 이렇게 투자를 하겠다고 했는데 10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만히 있던 한소희가 말했다.
“그럼 내가 낼게.”
“뭐? 네가?”
“나는 안 돼?”
“그래, 그래. 네가 내라. 그럼 된 거지, 오 서방?”
“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한중만이 살짝 자신의 턱을 만졌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오 서방 명함 하나 파야겠다. 우리끼리는 편안하게 얘기를 하는데.”
“그러게요. 사실 지금까지는 딱히 명함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오늘 보니 명함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상진은 처음 최성철 대표가 무시했던 것이 떠올랐다. 한중만이 바로 말했다.
“그래. 그래. 내가 신경 못 써줘서 미안해.”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강철영 감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저기······. 오 이사님은 본업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 저요. 군인입니다.”
“군인요? 혹시 사병은······. 아니시죠?”
“예. 장교입니다.”
“그러시구나.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영화를······.”
“군인도 영화는 봅니다. 제가 워낙에 영화를 좋아해서요. 그리고 어쩌다 보니 예쁜 여자 친구도 얻고, 좋은 형님도 얻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러시구나.”
그 에피소드가 어떤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강철영 감독은 흥미로운 눈길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스캔들 메이커가 잘 마무리되고 나면 오상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곳을 나온 오상진과 한소희는 차를 타고 거리를 나섰다. 두 사람은 이후에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길 생각이었다.
“후우······.”
그런데 한소희가 차 안에서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운전을 하던 오상진이 슬쩍 물었다.
“소희 씨, 왜 그래요?”
그러자 한소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홱 돌려 오상진을 바라봤다.
“상진 씨! 아까 그 제작자 너무 웃기지 않아요?”
“최상철 대표요?”
“네.”
“아니, 무슨 그런 사람이 다 있어요. 자기 회삿돈 들어가지도 않고 남의 돈으로 영화 찍으면서 무슨, 뒤로 계약하고······.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이 바닥은 원래 이런가?”
한소희는 정말 어처구니없어 했다. 최상철 대표가 처음부터 강철형 감독의 스캔들 메이커를 제작하겠다고 투자자를 유치했다면······. 혹은 회삿돈 절반을 투자해 여자 주인공을 바꾸겠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그런 상황이었다면 최성철 대표에게도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스캔들 메이커는 강철영 감독이 사석에서 만난 한중만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고, 그것을 오상진이 확인하면서 괜찮다 싶어서 진행을 한 것이다.
당시의 한중만은 소중 픽처스가 투자사지 제작은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과 안면이 있는 괜찮다고 생각을 했던 최성철 대표에게 이 작품 제작을 맡겼다.
심지어 투자까지 하고 대본까지 준다고 했다. 그러니 최성철 대표가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 군말 없이 작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예의였다.
이건 뭐 한중만과 친분을 과시해 자신이 감투 잡고 끌고 갈려고 했으니 한소희가 너무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오상진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를 했다.
“그러게요. 형님께서 너무 사람이 좋아서 그래요.”
“그게 뭐 사람이 좋아서 그런 거예요. 호구지, 호구! 세상에 그런 호구도 없어요.”
한소희가 바로 씩씩거렸다. 오상진이 바로 한소희를 말렸다.
“소희 씨 그래도 오빠인데······. 호구는 좀 그래요.”
“내가 진짜 이런 얘기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요. 오빠가 왜 집에서 쫓겨났는 줄 알아요?”
“네? 그거야 형님께서 투자한 영화가 잘 안되었다고······.”
한소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투자했던 영화가 잘 안되었던 것이 아니라 이상한 놈하고 술 먹고 어울려 다니면서 그 사람 영화에 돈을 다 꼬라박은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 영화 만든다고 말만 했지. 만들지 않았어요. 그냥 그 돈을 갖고 튄 거죠.”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내가 진짜 우리 오빠 창피해서 이런 말까지 하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아니, 사람 좀 잘 보고, 신중하게 선택 좀 하고 그러면 좀 좋아요. 어떻게 저런 사람을 만나놓고······. 그 자리에 상진 씨까지 불러요. 내가 진짜 아까 얼마나 민망하던지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요.”
한중만이 저러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는 원래 저래왔다.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술 마시면서 형, 동생 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인맥을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사실 정말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라면 공과 사는 구분을 해야 하는데 한중만은 그것이 없었다.
물론 그런 것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철영 감독의 시나리오를 보게 된 것도 있다.
하지만 또 그런 성격이기에 최성철 대표라는 사람과도 엮었다. 그런데 한소희가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 자리에 오상진과 자신을 불러 창피를 당하게 했다는 것이다.
최성철 대표가 얼마나 한중만을 우습게 생각했으면 여주인공을 바꾸네 마네 그딴 소리를 하느냔 말이다. 오상진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을 했다.
“네. 소희 씨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인간적으로 형님을 좋아하긴 하지만 우리가 투자한 작품에 이런 식으로 끌려다니는 것도 그다지 좋지 않네요.”
“맞아요. 아무리 예술을 남의 돈으로 한다고 하는 거지만 이건 진짜 너무 한 것 같아요. 우리 오빠 진짜 언제 철이 들지 모르겠어요.”
한소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소희 씨.”
“네?”
“우리 지난번에 얘기했던 대로 제작사를 병행해 보는 것은 어때요?”
“제작사요?”
오상진은 한소희가 얼핏 제작사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오상진이 찍어 준 영화가 대박이 난 적이 많다. 솔직히 그 영화를 직접 제작했다면 더 큰 돈을 벌었을 것이다.
나중에 상황이 되면 한중만도 투자뿐만이 아니라 제작을 염두에 뒀다. 원래 한중만의 꿈이 바로 영화감독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한중만에게 제작사 대표를 맡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때는 먼 미래의 얘기라 생각했는데, 오 엔터테인먼트를 만들고 이런 일도 겪고 나니 이제는 오상진도 그때 나눴던 제작사를 만들 때가 왔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우리 이번에 오 엔터 인수를 했으니까. 그쪽에 제작 관련 부서를 따로 하나 만들어서 작은 것부터 제작하는 것이 어때요?”
오상진의 물음에 한소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 솔직히 거기까지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요. 당장 뭐라고 할 얘기는 없어요. 하지만 저는 상진 씨의 말에 찬성이에요. 만약에 우리가 직접 그랬다면 오늘처럼 기분 나쁜 일은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까요. 그리고 언제고 때가 되면 소중 픽처스도 오 엔터에 병합을 시킬 생각이었어요. 만약 오 엔터에 제작부서를 만들면 그 시기를 좀 더 앞당길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