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2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35화
04. 그 나물에 그 밥(22)
그런 한중만의 뻔뻔한 말에 한소희가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 오상진이 영화 관계자를 만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끔씩 시사회에 초대받기도 했고 말이다.
그때마다 한중만은 항상 오상진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자신의 안목을 자랑하고 그랬다.
물론 한중만 역시도 영화를 잘 본다. 영화에 대한 지식 역시 훨씬 많고 말이다.
다만 흥행에 대한 감각은 오상진을 따라가지 못했다. 게다가 한중만은 예술적인 측면을 많이봐서 상업적인 시선은 오상진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성철 대표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저 새끼는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고 난리야. 강지영이 해주겠다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여야지. 뜬금없이 박보연이야. 아니면 박보연과 뭔 관계가 있는 거야?’
만약 박보연이 진짜 나이가 많다면 그런 의심은 확신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박보연이 그리 나이가 많은 배우도 아니고 소속사에서도 철저히 관리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오상진 옆에 한소희가 있다. 한소희는 누가 봐도 예쁜 여자, 배우를 해도 될 그런 여자였다.
그러면서 최성철 대표도 얼핏 들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한소희에게 시선이 갔다.
‘한 대표의 여동생이 연예인 뺨친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확실히 보니 예쁘기는 하네. 저런 여자 친구가 있는데 박보연에게 딴 맘을 품는 것도 웃기네. 그런데 뭐지? 왜 그러는 거지?’
최성철 대표는 그것이 진짜 궁금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철영 감독을 툭 쳤다. 강철영 감독이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아, 저는······. 솔직히 감독 입장에서 아무래도 홍보에 도움에 되는 강지영 씨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강철영 감독이 그리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진심이었다면 솔직히 오상진은 실망할 뻔했다. 그런데 뭔가 등 떠밀 듯이 말을 하는 것이 티가 났다. 오상진이 슬쩍 물었다.
“강 감독님.”
“네?”
“저는 강 감독님이 이 작품 잘 만들어주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솔직히 강 감독님께서는 배우들이 감독이 원하는 연기를 해 주는 배우들이 좋지 않을까요?”
“네, 물론 그렇죠.”
“그런 면에서 어떻습니까? 강지영 씨랑 박보연 씨를 놓고 보면요.”
“네?”
강철영 감독이 눈을 크게 떴다.
“아까 옆에 계신 한 대표님이 말씀해 주시긴 했지만 오 엔터와 제가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도 어느 정도 지분이 있고. 또 소중 픽처스를 통해 계속 영화계에 한 발 담가 놓고 있고요. 그래서 제가 이 바닥에 대해서 아예 모르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그런 제가 봤을 때는 솔직히 강지영 씨는 강 감독님께서 컨트롤하기가 싶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상진의 물음에 만약 다른 감독이었다면 발끈했을 것이다. 내가 배우 하나 컨트롤 못 할 것 같냐고 말이다.
하지만 강철영 감독은 실질적으로 그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최성철 대표가 소개해 준 강지영 배우가 처음에 강철영 감독을 보면서 했던 말이 있었다.
“감독님. 여자 배우 비중이 너무 적은 거 아니에요? 그리고 미혼모는 좀 심하잖아요. 그냥 애 빼고 현태 오빠랑 투톱으로 가요.”
그때 강철영 감독이 충격을 받았다. 소중 픽처스에서 미혼모의 대한 컨셉을 듣고 정말 좋아했다. 자신도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있었던 부분이고 그러한 것을 이해해 줘서 고마웠고 말이다.
그런데 아직 캐스팅도 되지 않은 배우가 와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이 솔직히 맘에 들지 않았다. 이러다가 영화가 산으로 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고 말이다.
게다가 알음알음 듣게 된 강지영 배우에 대한 소문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 오상진이 저런 식으로 말을 해주니 차마 아니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 최성철 대표가 강철영 감독을 보며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저, 저······. 병신 같은 새끼. 왜 대답을 하지 못해.’
최성철 대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그 대상이 오상진이 아닌 한중만이었다.
“한 대표님.”
“네?”
“저희 입장도 생각해 주십시오. 솔직히 까놓고 말하겠습니다. 저 강지영 씨 소속사 대표랑 친합니다. 강지영 씨가 놀러 왔다가 회사에 있던 시나리오를 보고 정말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 출연을 결심해 준 겁니다. 이 정도면 그냥 해주면 안 되는 겁니까? 맞지 않습니까?”
그 얘기를 듣는 오상진. 오히려 옆에 앉은 한소희가 화를 냈다.
“최 대표님.”
“네?”
“왜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뭐가 말이죠? 제가 뭐 실수라도 했습니까?”
“여기 이 자리는 비즈니스 자리 아니에요? 그런데 왜 개인적인 일을 끌어들이는 거죠? 그 말씀은 최 대표님하고 친한 사람은 무조건 출연시켜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아니라······.”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또 누구 있어요?”
“어······.”
“말씀 들어보니 강지영 씨 말고 최 대표님이 아는 배우 잔뜩 들어오겠네요.”
한소희는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한중만을 봤다.
“한 대표님!”
한중만이 화들짝 놀랐다.
“어어?”
“한 대표님은 이런 사실을 알고 계셨어요?”
“어, 그게······.”
한소희는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표정이 어두워지며 말했다.
“일단 회사 가서 말해요.”
그러자 한중만이 조금 어색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얘기 여기서 하면 안 될까?”
한중만이 쩔쩔매는 모습을 본 최성철 대표는 뭔가 확실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뭐지? 저쪽이 실세였어?’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최성철 대표가 한소희에게 잘 보이려고 했지만 이미 배는 떠난 상태였다. 오상진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대표님.”
한중만이 바로 대답했다.
“어어, 그래, 오 서방.”
한소희가 바로 째려봤다. 움찔한 한중만이 바로 말을 바꿨다.
“오 서방이 아니라, 오 이사! 왜? 할 말 있어요?”
“스캔들 메이커 제작비가 얼만가요?”
오상진은 해운대구에 150억, 국가대표팀 50억 이렇게 잡힌 것으로 봤을 때 스캔들 메이커는 50억은 안 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최 대표. 제작비 얼마 책정되어 있었죠?”
“아, 예에. 40억입니다.”
“들었지? 40억이라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40억. 저희 소중 픽처스에서 다 투자하는 걸로 되어 있지 않나요?”
“오오. 그렇지.”
“그런데 굳이 제작사를 최 대표님하고 해야 할까요?”
오상진의 그 말에 최성철 대표가 당황했다.
‘뭐?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보고 빠지라는 말이야?’
애당초 최성철 대표가 이 판에 낀 것은 아니었다. 스캔들 메이커 시나리오 작가는 원래 강형철이었다. 강형철 작가는 원래 강영철 감독과 안면이 있었다. 그런 그가 대본을 본 후 영화화하고 싶다고 대본을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알고 지냈던 제작사 대표 중에 그나마 나름 마음이 잘 맞았던 바른 영화사 대표 최성철에게 제안을 했고, 전액 투자를 하기로 했기에 냉큼 받았다. 현재 이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상진이 저렇게 말을 하니 최성철 대표가 화들짝 놀란 것이다.
‘이제 와 날 빼겠다고?’
최성철 대표의 시선이 다급하게 앞에 앉은 한중만을 봤다. 설마하니 이제 와 자신을 까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중만이 애써 자신의 시선을 피했다.
‘뭐? 시선을 피해? 날 팽하겠다? 지금까지 내가 힘쓴 것이 얼마인데······.’
최성철 대표가 속에서 울화통이 터지는데 한소희가 한마디 했다.
“그래. 오빠. 아니, 우리가 제작비를 다 투자하고 있는데 제작사의 눈치를 봐야 해?”
최성철 대표가 그제야 꼬리를 말며 말했다.
“제, 제가 말입니다. 그런 뜻으로 말씀드렸던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알게 모르게 신경 썼던 것도 있고······. 그랬던 것입니다. 제가 설마 작품이 안 되라고 그랬겠습니까.”
한소희가 한마디 했다.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거의 작품을 망하게 하겠다고 하시는 것 같아 보이는데요.”
“네?”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저도 소속사 대표하면서 강지영 씨에 대해서 많이 들었거든요. 그 외적으로 강지영 씨에 대해서 알 만큼 알아요. 이 작품이 강지영 씨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네? 어, 저어······.”
“이 작품의 포인트는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강지영 씨가 하겠다고 해요? 시나리오를 뜯어고치자고 안 해요?”
“아! 그게, 그것이 아니라······.”
“맞죠. 제 말이!”
한소희의 날카로운 질문에 최성철 대표는 차마 아니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만약 아니라고 한 뒤 강지영을 섭외하면, 뒤늦게라도 시나리오를 못 고치게 되는 것이다.
강지영 입장에서도 미혼모 설정이 빠지지 않는다면 절대 안 하겠다고 할 것이고 말이다.
‘하아, 젠장······. 왜 이렇게 꼬인 거지?’
최성철 대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한중만이 그를 불렀다.
“최 대표.”
“네?”
“잠깐 저 좀 보죠.”
최성철 대표가 오상진과 한소희를 슬쩍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에······.”
두 사람이 식당 밖으로 나가고 한중만이 담배 한 개를 내밀었다.
“우선 담배 한 대 피우죠.”
“그러죠.”
두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서 한중만이 입을 열었다.
“최 대표.”
“네.”
“우리 작품······. 다음번에 다른 걸로 합시다.”
“네?”
최성철 대표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니, 한 대표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내가 나중에 최 대표가 원하는 작품 군말 없이 투자해 줄 테니까. 물론 많이는 못 하지만······. 어쨌든 해줄 테니까. 이번 작품은 그냥 손 떼도록 해요.”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에헤이. 그렇게 합시다.”
한중만의 완고한 말에 최성철 대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여태까지 고생한 것도 있고 한데 솔직히 자기 뜻대로 되지도 않고 말이다.
그나마 한중만이 다른 작품을 조건 없이 투자를 해주겠다고 하니 여기서 물러나야 할 것만 같았다.
“하아······. 한 대표님께서 그리 말씀을 해주시니 물러나야 할 것 같긴 한데······. 그런데 왜 그렇게 동생분에게 잡혀 사세요?”
한중만이 웃으며 말했다.
“동생에게 잡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네? 그럼······.”
“매제 있죠?”
“네.”
“그 매제가 우리 소중 픽처스의 실질적인 갑입니다.”
“그, 그래요?”
최성철 대표가 솔직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젊은 사람이? 그럼 처음부터 그 사람에게 잘 보이라고 미리 언질을 주던가. 이 사람 진짜······.’
최성철 대표는 괜히 한중만에게 서운함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매제가 찍어서 안 된 작품이 없어요. 막말로 우리 소중 픽처스가 영화 투자에서 나름 이름을 날린 것도 매제 덕분입니다.”
“······.”
한중만 대표가 최성철 대표를 쓰윽 봤다.
“그러니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도 매제가 아니라고 하면 불안해서 투자를 못 해요.”
“아, 그러시구나······.”
최성철 대표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인상이 굳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