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1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32화
04. 그 나물에 그 밥(19)
11억을 극장에서 본 것은 아니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특별한 날에 집에서 TV를 통해 봤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당시 같이 살던 아내가 너무 잔인하다며 자기는 못 보겠다며 방에 들어가 혼자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뭐라고 할까? 결말이 좀 허무하기도 했다.
물론 잘 만든 영화이긴 하다. 그러면서 혼자 생각에 이런 영화는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그렇게 혼잣말을 했던 것도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이 영화감독은 참 감각이 좋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지.’
오상진은 슬쩍 예비 캐스팅을 확인했다. 박해수와 신민하가 캐스팅에 들어가 있었다.
“오호, 박해수와 신민하 씨라······.”
“네? 박해수 씨요?”
한소희가 다시 한번 고개를 번쩍 들며 말했다.
“소희 씨, 박해수 씨 좋아해요?”
“그럼요. 연기도 잘하는 배우잖아요. 웃는 모습도 귀엽고.”
오상진은 자신도 모르게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자 바로 한소희가 말했다.
“물론 저는 우리 상진 씨가 제일 좋지만요.”
그러자 앞에 앉아 있던 김우진이 테이블을 똑똑 두드렸다.
“저기 염장질 중에 죄송한데요. 하던 일 마저 하시면 안 될까요?”
“어어······.”
오상진은 다시 시나리오에 집중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때 봤던 영화랑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이렇듯 제작사무실에 들어오는 대본 대부분은 초안이고 제작사 측에서 한번 해잔 말이 나오고 난 후 이 부분은 별로인데······라고 하면 수정하고 그랬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본 작업이 끝이 났다. 지금은 완벽한 대본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상진이 마저 대본을 보는데 김우진이 슬쩍 말했다.
“소대장님. 그건 어때요?”
“뭐? 이거?”
“네.”
“너는 봤어?”
“저야 벌써 봤죠.”
“네가 보기에는 어때?”
“으음······. 뭐라고 할까요? 뭔가 시대를 많이 앞서가는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좀 먹힐 것 같은데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김우진이 오상진을 빤히 보며 물었다.
“왜요?”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오오, 그럼 투자 해 봅니까?”
“아마 여기 캐스팅이 잘될 거야. 박해수 씨도 그렇고 신민하 씨도 출연하더만.”
“네네. 신민하 씨도 요즘 핫하죠.”
“그러니까. 인맥을 늘리는 측면에서는 많이는 말고 적당히······. 무슨 말인지 알지?”
“아······. 적당히 한 발 걸치고 배우들과 친분을 쌓으라는 거죠?”
“그래.”
“그 말씀은 이 영화는 잘 되는 않을 거라는 거구나.”
“네가 방금 말했잖아. 시대를 앞서갔다고. 솔직히 시대를 앞서가는 영화 흥행은 그리 많지 않다. 우진아.”
김우진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한 수 배워갑니다.”
“자식 까분다.”
한소희가 둘의 대화를 듣고는 오상진을 바라보며 반한 표정을 지었다. 오상진은 괜히 어깨를 으쓱하며 다음 대본을 들었다. 글의 제목은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응? 뭐지?”
오상진이 몇 장 넘겨보고는 바로 눈을 반짝였다.
‘아. 이거 그거구나. 윈드······.’
윈드라고 하면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정국이라는 배우의 자전적인 작품이었다. 처음에 개봉을 했을 때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윈드가 이 배우가 출연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다. 문제는 영화가 가진 힘보다는 정국이라는 배우에 대한 관심이 더 크게 작용한 작품이라서 흥행을 하기에는 싶지 않았다.
“음······.”
오상진이 낮게 신음을 흘리고는 그 대본을 내려놨다. 그러자 김우진이 냉큼 물었다.
“그 대본은 어때요?”
“이거? 이거는 글쎄다. 너는 어떻게 봤는데?”
“저는 뭐, 그냥 그저 그랬는데요. 대표님께서 꼭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어요.”
“대표님이? 왜?”
“거기 제작자랑 아시는 분이라고 하던데요.”
“하하하. 그래?”
“이미 그쪽이랑 술 몇 번 마셔본 것 같던데요.”
김우진의 말에 오상진의 표정이 바로 정색하며 말했다.
“우진아.”
“네?”
“이건 아니야.”
“아, 예!”
“이거 진짜······. 아니, 대표님이 정말 하신다고 하면 직접 사비로 하라고 해. 그래도 하겠다고 하면 내가 화 내겠다고 해.”
“네. 꼭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물론 후세에 어떻게 평가를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윈드는 10만도 되지 않는 영화였다. 아무리 저렴하게 만든다고 해도 10만밖에 보지 않았다면 투자금 회수도 하지 못한다.
이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이 추후에 조금씩 인지도가 쌓이고 올라갔다. 하지만 지금 소중 픽처스는 한중민이 이리저리 엉뚱한 곳에 투자를 많이 한 상태라 자금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
일단은 선택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여러 개의 작품들을 훑어보던 중 오상진의 눈에 처음으로 괜찮은 작품이 들어왔다.
‘이, 이건······.’
오상진의 손에 들린 대본. 그것은 바로 ‘국가대표팀’이었다.
“이야 국가대표팀이다.”
오상진이 반갑게 그 대본을 보는데 김우진이 바로 대본을 뺏어가려고 했다.
“아. 그거 거기 있었어요? 이리 주세요.”
“왜?”
“그건 안된다고 커트한 건데요.”
“뭐? 이걸 커트해?”
“왜요? 아세요?”
“잠깐 기다려 봐. 좀 볼라니까.”
오상진은 혹시나 자신이 생각했던 그 영화가 맞는지 쭉 대본을 확인했다.
‘맞네.’
오상진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국가대표팀은 우리나라 최초의 스키점프팀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래. 이거지!”
오상진이 대본을 손으로 툭툭 쳤다. 오상진이 알기로 국가대표팀은 800만, 아니, 거의 1,000만 관객 가까이 동원된 유명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시즌 2 여자 핸드볼팀에 관한 영화도 나왔다.
‘이렇게 유명한 영화를 안 하겠다니······.’
오상진은 어이가 없었다.
“우진아. 이걸 왜 안 한다고 한 거니?”
“보셨어요?”
“봤어!”
“스키점프 얘기인데요.”
“알아!”
“소대장님 스키점프도 아세요?”
“스키점프를 아는 것이 아니라, 스키점프 내용이라는 것을 안다고.”
“에이,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스키점프에 대해 아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대부분 야구, 축구 이런 것만 알지.”
“그래서! 올림픽에서 비인기 스포츠들이 제대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외면을 받고 그러는 것이 아니야. 우리 국민들이 자꾸 인기 스포츠만 쫓아다니니까.”
“그건 그렇지만······. 이거 정말 하실 거예요?”
“응! 이건 될 거라 확신한다.”
김우진이 고개를 갸웃한다.
“대체 이거 어디서 확신을 얻으신 거예요?”
“소재가 신선하잖아. 그리고 이거 동계스포츠 아니야.”
“네.”
“우리나라 동계스포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뭐지?”
“쇼트트랙?”
“그래! 쇼트트랙 말고는?”
“어, 없죠.”
“맞아.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쇼트트랙만 출전하냐?”
“그건 아니죠.”
“아니지. 동계스포츠에서 수많은 선수들이 출전을 해.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그런 의미에서 우리 소중픽처스가, 작은 회사도 아닌 우리가! 나름 영화판에서는 건실한 투자 회사인데. 여기에 투자를 해야지. 그래야 나중에 좋은 소리를 듣곤 하지.”
“아아······. 그렇구나.”
김우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솔직히 오상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튼 오상진이 저렇게 말을 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한소희가 슬쩍 말했다.
“뭔데요? 그거 제가 잠깐 봐도 돼요?”
“그럼요!”
한소희가 그 대본을 빠르게 쭉 읽어 내려갔다. 한소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뭔 내용인지는 모르겠는데······.”
김우진이 바로 그 말을 받았다.
“그렇죠!”
“하지만 궁금하기는 하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말이야. 어찌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팀이네요.”
“이사님. 그거 나오면 보시겠어요?”
김우진이 물었다.
“난 볼 것 같은데.”
“에이, 괜히 소대장님 편드시는 거 아니에요?”
“김 실장. 아무리 우리 상진 씨하고 친해도 그렇지. 우리 상진 씨가 실질적으로 소중픽처스에서 고문이자 이사나 다름이 없는데 그런 식으로 말할 거야.”
“아······ 죄송합니다.”
김우진이 당황하며 바로 사과했다. 오상진이 히죽 웃었다.
“그래. 인마. 너 나한테 그렇게 까불다가 혼 날 줄 알았다.”
“암튼! 이거 저희 소중픽처스에서 투자합니다.”
“투자해!”
“얼마 정도 합니까?”
“그거? 할 수 있을 만큼 해.”
“할 수 있을 만큼요? 네에······.”
김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본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할 수 있을 만큼 하라고 했으니 조금만 하면 되겠지.’
하지만 오상진의 그다음 말에 김우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나도 거기 영화에 50억 투자할 거야. 그리 알고 있어.”
“네에? 50억을요.”
김우진이 따로 챙겨뒀던 서류를 살폈다.
“소대장님.”
“응?”
“이거 제작비 100억인데요.”
“그래서?”
“100억인데 50억을 투자하시겠다고요?”
“맞아. 왜?”
“······.”
김우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상진이 그런 김우진을 보며 물었다.
“거기 제작비 얼마나 모았는데?”
“제가 알기론 거의 못 모았다고 하던데요.”
“그럼 됐네! 내가 50억 넣고, 회사에서 50억 넣으면 되는 거네.”
“저, 정말 이 영화에 투자하실 겁니까?”
김우진은 다시 한번 재차 물었다. 오상진이 그런 김우진에게 되물었다.
“우진아.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50억 투자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해?”
그 순간 김우진의 머릿속 스위치가 딱 하고 켜졌다.
“소대장님, 소대장님.”
“왜?”
“그럼 저도 월급 지금까지 모은 거 넣으면 안 됩니까?”
“너도? 야, 네가 여태까지 모은 거 다 날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리고 너 긴가민가했잖아.”
“에이. 긴가민가하긴요. 소대장님께서 50억을 넣는다고 하는데······. 이건 완전 100%죠. 그렇죠, 이사님.”
김우진이 한소희를 바라봤다. 한소희가 피식 웃었다.
“김 실장. 순서가 틀렸네.”
“네?”
“우진 씨 경우가 바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봤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당연히 회사, 상진 씨 다음은 누구에요? 나 아닌가요.”
“아! 맞다. 그렇죠.”
김우진이 방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바로 끄덕였다. 그러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이사님께서는 얼마나······.”
“얼마를 해야 하나? 그래도 상진 씨가 50억을 했으니까. 나도 10억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어? 그럼 회사에서 투자하는 것이 너무 적은데요.”
“뭐야. 아까랑 얘기가 다르잖아.”
“회사가 돈을 많이 벌어야 저도 보너스도 좀 받고 그러죠.”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래. 알았다. 어차피 홍보비랑 해서 추가로 필요할지 모르니까. 제작비 넉넉하게 지원해줘. 아마 감독이 현지로케도 하고 싶어 하니까.”
“어떻게 아셨어요?”
김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상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비용 넉넉하게 지원하라고. 스포츠 영화 만드는 데 비용 아껴서 이상한 영화 만들게 하지 말고.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제작비가 늘지 않겠어?”
원래라면 제작비가 100억이라면 홍보비 및 추가 비용을 감안하면 110억이나 120억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영화감독치고 제작비를 더 추가로 준다는데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김우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으음······. 알겠습니다. 일단 대표님과 얘기해서 제작비를 늘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한소희가 말했다.
“그럼 우진 씨.”
“네?”
“나랑 상진 씨 비율을 딱 절반으로 맞춰줘요.”
“절반요?”
“응. 상진 씨 50억하고 나머지는 내가 부담하는 걸로 해. 괜찮죠, 상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