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1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31화
04. 그 나물에 그 밥(18)
“아들! 뭐 하고 있어. 소희 어서 데리고 올라가서 쉬게 해.”
“아니에요. 어머니. 괜찮아요.”
“아니야. 얼른 올라가서 쉬어.”
“네. 엄마. 소희 씨, 가요.”
오상진의 말에 한소희가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나 괜찮은데······.”
“괜찮아요. 엄마도 정리하고 쉬어야죠. 우리 올라가요.”
“그래. 상진이 말 듣고 올라가. 나도 씻고 쉬어야겠다.”
“알았어요. 어머님. 쉬세요.”
“오냐.”
오상진과 함께 한소희가 2층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올라온 오상진과 한소희.
“이 방 오랜만이네.”
한소희가 오상진의 집에 자주 오긴 했지만 보통은 간단히 식사만 하고 가거나 서울에 집이 있어서 바로 나가곤 했다. 그래서 오상진의 방에 들어오는 일이 거의 드물었다.
오상진은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주저앉았다.
“으음, 그런데 방에서 좋은 냄새가 나요.”
한소희가 이리저리 방 안을 훑어보다가 코로 냄새를 맡았다.
“좋은 냄새요?”
오상진도 냄새를 킁킁 맡았다. 그런데 흠칫 놀랐다. 사실 이 방에는 세나가 한동안 사용했었다. 물론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세나가 머물 곳이 필요했고, 계속 있는 것도 아니고 임시거처가 필요했던 것뿐이다. 어차피 오상진은 자신의 방을 사용하지도 않아서 세나보고 사용하라고 했다.
그때는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한소희가 들어와 좋은 냄새가 난다고 하니 좀 찔렸다. 한소희가 고개를 돌려 오상진을 봤다.
“왜 그래요?”
“아니······.”
오상진은 순간 갈등했다.
‘말할까? 아니, 숨길까?’
그런데 오늘 자신을 위해 갈비까지 해준 한소희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실은 이 방에 한동안 세나가 머물렀어요.”
“세나가요? 왜?”
“그때 소속사를 우리 쪽으로 옮기면서 약간 문제가 있었잖아요. 세나가 갈 데가 없어서 말이에요. 그때 잠깐 우리 집에 머물렀어요. 그런데 상희랑 단둘이 쓰기에는 짧은 기간이 아니었어서······. 같은 방 쓰라고 하는 것이 미안해서요. 괜찮다면 내 방 쓰라고 했어요. 저야 거의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가끔 서울 올라오면 거의 소희 씨랑 같이 있었으니까요.”
“오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상진 씨 방인데요, 뭐······.”
“제 방이긴 하지만 세나도 동생이기 이전에 다 큰 여자 아니에요. 내가 미처 소희 씨를 생각하지 못했네요.”
한소희가 씨익 웃었다.
“아무튼 상진 씨를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요.”
“······.”
“사실 저 알고 있었어요.”
“네? 어떻게요?”
“나, 아가씨랑 친하다니까요.”
어쩐지 오상희가 한소희에게 너무 편하게 대한다고 생각했더니 비밀도 없이 온갖 얘기를 다하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오상희는 아무 생각없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세나가 오빠 방을 사용한다고 말을 했다. 그걸 들은 한소희는 약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소희는 단 한 번도 이 집에서 잠을 자고 간 적이 없었다. 아무리 가족들과 친하고 신순애 여사가 좋아한다고 해도 다 큰 처녀가 결혼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고 가는 건 이미지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일을 아예 안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잠깐씩 들르는 오상진의 방에 세나가 한동안 살았다고 하니 솔직히 신경이 좀 쓰였다. 그래서 방에 들어온 김에 생각이 나서 살짝 떠봤던 것이다. 오상진이 바로 실토를 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실은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가려고 했어요.”
“오늘요? 괜찮겠어요?”
“뭐 어때요. 그리고 엄마가 상진 씨 만나러 간다고 하면 오늘 안 들어와도 된다고 해요.”
“아버님은 신경 쓰실 텐데요.”
“아빠요? 전혀요. 아빠는 상진 씨 또 언제 오냐고 그러는데요.”
“아······. 혹시 아버님 양주 떨어졌어요?”
“아니요. 그런 것이 아니라 아빠는 상진 씨 좋대요.”
“아이고 아버님이 좋아해 주시니 고마운데요.”
“내가 지난번에 말했잖아요. 우리 아빠 상진 씨 좋아한다고요. 그런데 왜 내가 여기서 자고 가려고 했는 줄 알아요?”
“왜요?”
“웃기긴 한데요. 세나에게 질투가 안 났다면 거짓말이죠. 난 한 번도 여기서 자본 적이 없는데······.”
“아, 그랬구나. 그럼 오늘 우리 여기서 잘까요?”
“상진 씨 어디 가게요?”
“아니······. 나는 소희 씨랑 서울 우리집에 가려고 했죠.”
“됐어요. 시간도 늦었잖아요. 상진 씨 많이 피곤하잖아요. 난 괜찮아요. 여기서 자고 가요.”
“그래도 될까요?”
그러고 있다가 오상진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여기 방음이 잘 될까요?”
“어이구. 꿈도 꾸지 마요.”
오상진이 바로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면요. 설마 우리 손만 잡고 잘 거예요?”
“손도 잡지 말라고 하려다가 상진씨 삐질 것 같아서 손까지만 허락할게요.”
오상진이 씨익 웃었다.
“그래요. 일단은 손만 잡아요.”
“안 된다니까요.”
“저 소희 씨 엄청 보고 싶었다니까요.”
“칫! 상진 씨는 나만 보면 그런 생각밖에 안 해요?”
“그러면 이렇게 예쁜 여자 친구를 옆에 두고 손만 잡고 자면 소희 씨 기분은 어떨 것 같아요?”
“뭐, 그건······ 그렇긴 하지만. 아무튼 오늘은 안 돼요. 좀 참아봐요.”
오상진이 씨익 웃었다.
“알았어요. 오늘은 진짜 손만 잡고 잘게요.”
한소희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으구······. 진짜 못 말린다니까.”
그러다 한소희는 아까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근데 상진 씨. 아까 세나 보고 왜 웃은 거예요?”
“아, 그거요?”
“뭔데요오~”
“별건 아니고요. 참, 소희 씨도 세나 고등학생 때 봤었죠?”
“봤었죠. 그때 좀 충격 먹었잖아요. 무슨 이렇게 예쁘게 생긴 애가 다 있나 해서요.”
“에이. 세나는 소희 씨 보고 충격 먹었던데요? 태어나서 형수보다 더 예쁜 여자는 처음 본다면서요.”
“어머, 세나가 그랬어요?”
“그때 말 해 줬던 거 같은데?”
“그래요? 왜 난 기억이 안 나지?”
한소희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런 한소희의 어깨를 감싸며 오상진이 말을 이었다.
“그냥 그땐 정말 철없는 고등학생이었거든요. 연예인 하고 싶어서 공부도 뒷전이었고요. 형수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랬어요?”
“지금 딱 상희 같았다니까요? 그런데 아이돌 되겠다고 밖에서 몇 년 고생하더니 철이 좀 들었나 봐요. 소희 씨 돕는 모습을 보니까 대견하기도 하고. 그래서 웃었어요.”
“칫. 근데 나도 상진 씨 만나기 전엔 요리도 할 줄 몰랐는데요?”
“예전이 뭐가 중요해요. 지금이 중요하지.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그럼 지금은 완벽하다는 이야기에요?”
한소희가 고개를 돌려 오상진을 바라봤다. 그러자 오상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저한테 과분하죠.”
“아니거든요? 상진 씨하고 딱 맞거든요?”
“그럼 어디 얼마나 딱 맞나 볼까요?”
“아 정말······. 손만 잡고 자자면서요오~”
그렇게 두 사람이 오상진의 방에서 처음으로 함께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낮에 한소희와 오상진이 한중만을 만나러 움직였다. 소중픽처스에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을 했다. 그런데 한중만이 없었다. 그리고 사무실 안에서는 김우진이 조예령과 열심히 꽁냥 중이었다.
“어이구 김 실장님. 바쁘신가 봅니다.”
김우진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주, 중대장님 언제 오셨어요?”
“나, 방금. 그런데 뭐야? 둘이 뭐 하고 있었어?”
오상진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김우진이 당황하며 말했다.
“뭐, 뭐 하고 있긴요. 업무지시 중이었죠.”
김우진은 근엄한 얼굴로 조예령에게 말했다.
“알겠죠. 예령 씨!”
“네. 실장님.”
“그리고 손님 왔으니 차 좀 부탁해요.”
“네.”
조예령이 후다닥 탕비실로 뛰어 들어갔다. 오상진이 슬쩍 김우진에게 말했다.
“야! 언제는 너 싫다며. 아니라며!”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그래서 뭐? 사귀는 중이야?”
“아직은 아니고요. 그냥 좀 알아가는 단계입니다.”
“알아가기는 무슨······. 아까 우리 밖에서 다 봤거든.”
한소희가 한중만이 있는 사무실을 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오빠는 어디 갔어요?”
“대표님 잠깐 미팅이 있다고 나가셨거든요. 안 그래도 전화가 와서 약속장소로 바로 가신다고 했어요.”
“뭐야. 언제는 태워가라고 하더니······.”
“시간이······. 좀 일찍 오셨네요. 일단 앉아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세요.”
김우진이 슬쩍 자리를 권했다.
“그래. 소희 씨 좀 있다가 움직여요.”
“네.”
오상진과 한소희가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조예령이 커피를 내왔다. 두 사람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고 하는데 갑자기 김우진이 테이블 위로 시나리오를 잔뜩 쌓아 올렸다.
오상진은 커피를 입에 데려다가 멈칫하며 물었다.
“이거 뭐냐?”
“네?”
“이게 뭐냐고!”
“아, 시나리오 들어와서 여기다가 뒀어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너 이러려고 차 마시고 가라고 했구나.”
“아닙니다. 저를 왜 나쁜놈으로 만드세요. 원래 이 자리에 시나리오 두고 그랬습니다.”
“시나리오 원래 저기 회의실에 두는 거 모를 줄 알았냐.”
“크흠······. 그냥 좀 봐주세요. 저희도 먹고 살아야죠.”
김우진의 말에 한소희가 끼어들었다.
“김 실장님. 이거 오빠가 시킨 거죠.”
“어어······. 아, 아닙니다. 대표님은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김우진은 완전 어색하게 로봇처럼 말을 했다. 그것을 본 한소희가 바로 팔짱을 꼈다.
“오빠가 시켰네. 시켰어. 아 진짜 만날 이상한 데 투자해서 돈 다 까먹고. 돈은 만날 우리 상진 씨에게 벌어오라고 해.”
김우진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우리 대표님이시지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한소희가 바로 김우진을 째려봤다.
“김 실장님. 뭐예요? 방금 우리 오빠 욕했어요?”
“네? 아······.”
김우진은 놀란 눈으로 한소희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렇죠. 저희 대표님 동생분이셨죠. 그렇구나······.”
김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오늘따라 유독 날씨가 좋죠.”
김우진이 멋쩍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함소희가 웃었다.
“호호호, 농담이에요.”
그러다가 한소희가 시나리오 맨 위에 있는 것을 들었다.
“상진씨. 이왕 온 김에 우리 몇 개 좀 볼까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오상진 앞으로 시나리오 몇 개를 내려놨다. 오상진도 대수롭지 않게 시나리오를 집어 들었다.
가장 먼저 본 대본은 ‘돈 싸움’이었다.
“돈 싸움? 도박인가?”
그래서 페이지를 넘겨봤는데 초반의 시놉시스를 훑어보던 오상진이 바로 떠오르던 영화가 있었다. 바로 11억이었다. 갑작스럽게 무인도로 초대된 인물들 중 최종생존자에게 11억을 주는 상금.
‘그래. 이제 기억난다. 영화 11억!’
오상진의 표정을 보던 한소희가 바로 물었다.
“왜 그래요?”
“네?”
“상진 씨 방금 표정이 무척 밝았거든요.”
“아······. 아니에요. 여기 대본에 11억이라고 나와서요.”
“그래요.”
한소희는 대답을 하고는 다시 대본을 훑었다. 오상진의 시선이 다시 대본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대본이 어떤 것인지 대충 기억이 떠올랐다.
‘나도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오상진은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어디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