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16)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29화
04. 그 나물에 그 밥(16)
“응? 그런 것도 있고. 중대장님께 따로 조언 좀 구할 것도 있고 해서 그래.”
“아, 섭섭합니다. 술 고프시면 저랑 한잔하시지 말입니다.”
윤태민 소위의 말에 김진수 1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말해서 윤태민 소위가 예전에 독불장군처럼 지낼 때는 김진수 1소대장이랑 따로 술을 마신 적이 없었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았고 항상 이민식 대위랑 단둘이 술 마시고 다니기 바빴다.
만날 이 약속 저 약속이 많았으면서, 이제 와 뜬금없이 서운하다는 둥 술 한잔하자는 말이 좀 어이가 없었다.
‘뭐지? 이번 일은 잘 풀렸다고 생각을 하는 건가?’
물론 헌병대 조사가 윤태민 소위에게 유리한 쪽으로 진행되었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래서 김진수 1소대장도 걱정이 되어서 오상진을 찾아가 물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중대장이 잘 해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 한마디에 김진수 1소대장은 오상진을 믿었다. 지금까지 오상진이 해왔던 일들을 알기 때문이었다. 오상진이 저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였다. 윤태민 소위에게 전화가 울렸다.
“아, 뭐지? 요새 왜 이렇게 전화를 하시지.”
윤태민 소위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 인물은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었다.
“네. 할아버지.”
-너 어디냐?
“어디긴요. 여기 부대죠.”
-너 일과 끝났으면 바로 서울로 올라와.
“네? 서울로요? 할아버지, 저 약속 있는데요.”
-약속은 무슨······. 그리고 할아버지가 그랬지. 너 한 번만 더 부대에서 사고 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네? 무슨 말씀이세요?”
-이놈이, 내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어!
“할아버지 그게 아니라······.”
-잔말 말고 올라와!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버럭 고함을 지르며 전화를 끊었다. 이에 윤태민 소위가 짜증을 냈다.
“아이씨, 왜 또 전화로 성질을 내시지.”
옆에 있던 김진수 1소대장이 물었다.
“누구?”
“있습니다.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윤태민 소위가 가방을 챙겨서 나갔다. 복도를 걸어가며 인상을 찡그렸다.
“에이 진짜로······. 오랜만에 술 먹나 했더니. 할아버지가 도와주질 않네.”
그런데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엄마였다.
“어, 엄마. 왜?”
-이놈아. 너 또 무슨 사고를 쳤어.
“무슨 사고! 엄마까지 왜 이래.”
윤태민 소위가 울상이 된 채로 말했다.
-지금 할아버지가 너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이번에는 절대 용서치 않겠다고 하셨어.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뭔 짓을 해.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
-정말이야?
“그래.”
-만에 하나 너 때문에 엄마 가게 투자금 회수하신다고 하면 넌 진짜 각오해.
“아, 진짜! 아니라니까. 끊어!”
갑자기 윤태민 소위가 숨을 골랐다.
“뭐지? 할아버지가 다 알았나? 아니 알았다고 해도 헌병대 조사도 잘 끝났는데. 뭐야!”
괜히 불안해진 윤태민 소위였다. 그리고 곧장 휴대폰을 열어 최영도 소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신호음만 끊임없이 들려올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세 번이나 걸었지만 여전했다.
“진짜 왜 이래, 불안하게······.”
이에 어쩔 수 없이 박태진 중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받지 않던 그가 두 번째에 전화를 받았다.
-통신보안 박태진 중위입니다.
“충성. 박 중위님 저 윤 소위입니다.”
-윤태민 소위?
“네네.”
-무슨 일이지?
“다름이 아니라 저와 관련된 조사 다 끝난 거죠?”
박태진 중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윤 소위. 아직 몰라?
“무슨······.”
-지금 자네 때문에 헌병대가 발칵 뒤집어진 거 말이야.
“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그건 자네가 직접 알아보고. 아무튼 자네 때문에 우리만 곤란해졌어. 이제 앞으로 전화하지 마.
박태진 중위가 바로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바라보는 윤태민 소위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 시발! 뭐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윤태민 소위의 얼굴로 불안감이 가득 번졌다.
“차가 많이 밀리네.”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서울로 올라가는 차량들이 많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차가 움직이지 않자 휴대폰을 꺼내 한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길게 갔다.
“혹시 자나?”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찰나 통화가 연결이 되었다.
-어, 상진 씨.
“소희 씨. 바빠요?”
-아뇨. 지금 요리 좀 하고 있었어요.
“요리요?”
-네. 그런데 상진 씨는 지금 어디예요?
“저 지금 서울에 들어오긴 했는데요. 차가 좀 많이 밀리네요.”
-그럼 언제쯤 도착할 것 같아요?
“글쎄요.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이 상태라면 한 시간 정도?”
-아아······. 그렇구나. 알았어요, 얼른 와요.
한소희가 전화를 빨리 끊으려고 했다. 목소리도 좀 이상한 것 같고 말이다. 이에 오상진이 급히 물었다.
“소희 씨 지금 어디에요?”
-어디긴 어디에요. 어머니 댁이죠.
“엄마 집요?”
-네. 상진 씨에게 맛있는 거 만들어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 그 요리가 나 먹는 거예요?”
-그럼요. 내가 이 시간에 누구에게 주려고 할까요.
“그건 그러네요. 제가 가는 길에 뭐 사 갈까요?”
-아뇨. 괜찮아요. 그냥 조심히 오세요.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네.
전화를 끊은 오상진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마치 갓 결혼을 한 신혼부부의 일상인 것처럼 느꼈다. 집에서 아내가 맛있는 요리를 준비해 놓고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기분 말이다.
“기분이 참······.”
오상진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그런 오상진의 심정을 알아서일까? 막혔던 길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오상진은 부지런히 달려서 예정보다 20분 일찍 아파트에 도착했다.
지하주차장에 도착을 한 후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현관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고 현관 벨을 눌렀다.
오상진의 생각에 한소희가 환한 미소로 반겨줄 것만 같았다.
“이거 갑자기 떨리는데.”
오상진은 한소희가 반겨줄 거란 생각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데 정작 문이 열리고 맞이해 준 사람은 세나였다.
“어? 세나야!”
“오빠 오셨어요.”
“어어······.”
오상진이 현관에 들어가고 세나가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달라고 했다.
“가방 이리 주세요.”
“어, 그래······.”
오상진은 전투화를 풀며 세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세나야. 너는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그것이요. 대표님께서 맛있는 거 해준다고 해서요.”
“그래?”
오상진이 전투화를 거의 다 풀 때쯤 한소희가 나타났다.
“상진 씨 왔어요?”
오상진이 고개를 돌리자 앞치마를 한 한소희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줬다.
“네.”
“요리 거의 다 되었거든요. 이제 뜸만 들이면 돼요.”
“그래요.”
한소희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오상진도 자신의 방에 올라갔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내려왔다.
한쪽에서 한소희와 세나가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세나와 눈이 마주쳤다.
“왜요, 오빠? 뭐 좀 드려요?”
“아니. 세나도 같이 준비해?”
“네.”
한소희가 바로 말했다.
“세나가 아니었다면 이거 다 준비 못했을 거예요.”
“아니에요. 대표님께서 다 하셨죠.”
오상진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상희는?”
“아가씨? 아가씨는 방에 있는데.”
“이 녀석은 오빠가 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고.”
오상진이 오상희가 있는 방으로 가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뭐야. 이 녀석······. 뭐 하고 있는 거야.”
오상진이 오상희 방문 앞에 서 있자 바로 한소희가 다가왔다.
“상진 씨. 이리 와요. 다 되었어요.”
오상진이 다시 주방으로 가서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때부터 달달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식탁 위에 놓인 것을 보니 갈비찜이었다.
궁중갈비는 아니지만 딱 봐도 제대로 된 갈비찜이었다. 아니, 요리 프로에 나올 그런 갈비찜이었다.
“와, 이거 소희 씨가 한 거예요?”
“아뇨. 이거 세나가 한 거예요.”
“아니에요. 이거 대표님께서 다 만드신 거예요. 저는 진짜 잔심부름밖에 아직 않았어요.”
오상진은 감탄하며 말했다.
“이야.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먹지?”
“괜찮은 것 같아요?”
한소희가 물었다. 오상진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냄새도 괜찮고······. 아무래도 오늘 입이 호강하겠는데요.”
오상진이 막 젓가락으로 갈비 한 점을 집으려는데 문이 딸깍하고 열리며 오상희가 나타났다.
“어? 언니 이제 다 된 거예요?”
“네. 이제 막 다 되었어요.”
한소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오상희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와, 갈비찜 먹기 참 힘들다.”
오상진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그는 오상희를 노려보며 차갑게 불렀다.
“야, 오상희! 너는 말이야. 소희 씨가 큰맘 먹고 만들어줬는데 말이 왜 그따위야.”
“내가 뭘······.”
“그것보다 너는 오빠가 왔는데 내다보지도 않냐?”
“어? 그러네. 오빠 언제 왔어?”
“이 녀석을 진짜······. 정말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그런 오상진을 무시하고 오상희는 젓가락으로 갈비 한 점을 집어 들었다. 오상진은 그런 오상희가 꼴불견이었던지 냉큼 젓가락을 집어서 상희가 집어 든 갈비를 툭 쳐서 떨어트렸다.
“아, 오빠! 왜 그래!”
“너는 양심도 없냐. 고기도 다 같이 앉아서 먹어야지 너 혼자 날름날름 집어 먹고 어디서 배운 버릇이야.”
“나 원래 이랬거든.”
“원래 이랬던 것이 자랑이세요. 아이돌 준비한다는 애가 왜 이렇게 철이 없지?”
“아, 진짜······. 오빠는 나만 보면 잔소리야.”
오상희가 투덜거렸다. 오상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오빠도 잔소리를 하고 싶겠니. 네가 잔소리를 하게 만들잖아.”
그러자 한소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두 분 싸우지 마시고. 자자, 얼른 먹어요. 상진 씨도 먹어요.”
한소희가 말을 했고, 세나가 어느덧 공깃밥을 퍼서 식탁에 놓았다.
“오빠도 어서 드세요.”
그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오상희는 큼지막한 갈비를 벌써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동생이지만······.’
오상진은 오랜만에 보는 여동생이지만 저런 모습을 보면 진짜 얄미웠다. 특히나 한소희와 세나가 있음에도 저러니 더욱 그랬다.
“야, 오상희. 적당히 해라.”
“아! 뭘······.”
“너 진짜······. 용돈 다 끊는다.”
“오빠, 그러기만 해.”
“너 진짜 오빠가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소희 씨 앞에서 예의를 갖춰달라고 했지. 이게 뭐야, 지금!”
“알았어. 알았어! 안 먹으면 되잖아.”
오상희는 투덜거리면서도 손에 든 갈빗대는 절대 놓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오상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내가 너에게 뭘 바라니.”
오상진은 그저 피식 웃고 말았다. 그사이 세나가 자리에 앉았다. 한소희가 오상진 옆에 앉아서 갈비를 건넸다.
“상진 씨도 어서 먹어요.”
“네.”
오상진이 갈비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맛이 완전 기대 이상이었다. 너무 맛있었다. 적절한 달콤함과 부드러운 식감. 무엇보다 살살 입에 녹는 그 맛이 완전 일품이었다.
“소희 씨 어떻게 이런 맛이 나죠?”
“괜찮아요?”
“네. 완전요. 이거 진짜 소희 씨가 한 거 맞아요?”
세나가 바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