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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898화 (898/1,018)

< 04. 그 나물에 그 밥(1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28화

04. 그 나물에 그 밥(15)

‘이 녀석은 진짜······.’

이미 다 끝났다는 생각에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할애비 속도 모르고 사고나 치고 말이야.’

그런 신범규 예비역 준장의 타들어가는 속내를 보며 임규태 중령이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존경하는 선배님도······. 외손자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할아버지였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자네. 저녁은 먹었나?”

“아뇨. 퇴근하자마자 바로 달려오는 길입니다.”

사실 오면서 간단히 요기는 했지만 오늘 같은 날 그냥 간다면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쓸쓸할 것 같았다.

“그래? 나랑 저녁이라도 할 텐가?”

“술도 가능합니까?”

“술? 자네 차는 안 가지고 왔나?”

“여기 방 많지 않습니까. 자고 가죠, 뭐.”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너무하십니다. 제가 여기까지 왔는데요.”

“그래. 그래. 알았네. 자고 가게.”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임규태 중령도 그를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규태 중령과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거실에서 바둑을 두는 사이 그의 아내가 저녁을 차렸다.

“식사해요. 준비 다 되었어요.”

“저녁 준비 다 되었다는군. 일어나지.”

“네.”

바둑을 그대로 두고 주방으로 갔더니 많은 것이 차려져 있었다.

“아이고 사모님 뭘 이렇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임 중령님이신데. 당연히 이 정도는 준비해야죠. 그리고 그냥 우리 먹던 것에 수저 하나 더 놓은 것뿐이에요. 부담 갖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사모님. 그래도 저 때문에······.”

그러자 옆에 있던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말했다.

“어허. 이 사람아.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그래. 어서 자리에나 앉게.”

“네.”

임규태 중령이 자리에서 앉았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먼저 수저를 들자 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찌개도 국도 각종 반찬들도 다 맛이 있었다.

“어떻게 입에 좀 맞아요?”

“너무 맛있습니다. 사모님 죄송한 말씀인데······. 저희 아내를 여기에 좀 데려와도 되겠습니까?”

“네? 안사람은 왜?”

“저희 아내보고 사모님 요리를 배우게 하려고요.”

“아이고 참······. 농담도 잘해요. 호호호.”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바로 말했다.

“이 사람. 임 중령 말이야. 저거 입담으로 중령까지 달았어.”

“그래요?”

“어? 선배님께서 그러시면 저는 정말 서운합니다.”

“사실이지 않는가.”

그렇게 두 사람이 껄껄 웃으며 저녁을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거실로 나와 두던 바둑을 마저 뒀다.

배가 불러서일까? 방금 전까지 유리했던 전세가 확 바뀌었다.

“어? 이거 왜 이러지?”

“이 사람아. 배가 좀 불렀다고 그렇게 정신 줄을 놓으면 어떻게 하나.”

“좀 봐주면서 하십시오.”

“바둑에 봐주는 것이 어디 있어. 아니면 시작할 때 몇 점 깔고 하든지.”

“그것도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바둑을 좀 더 두던 임규태 중령이 먼저 돌을 던졌다.

“제가 졌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자네는 정말 바둑이 안 늘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가 선배님 이겨보려고 기원도 다니고 그랬는데 말입니다.”

“바둑을 기원 다닌다고 금세 느나. 바둑은 말이야. 심리야, 심리!”

“아, 그렇습니까.”

“어떻게 한 판 더 할 텐가?”

임규태 중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때 마침 사모님이 차와 과일을 가지고 나왔다.

“두 분 얘기 나누세요. 저는 들어가 있을게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씀하시고요.”

그렇게 사모님이 들어가고 잠시 후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입을 열었다.

“흐흠······. 그 뭐냐. 태민이가 있는 중대에 새로운 중대장이 왔다고 하던데.”

“예, 오상진 대위라고 아십니까?”

“이름은 들어봤어. 태민이가 못된 짓을 하는 것을 잡았다고.”

“맞습니다.”

“이번에도 그 친구가······.”

“워낙에 군 생활을 잘하는 친구라서 말입니다. 부소대장이 곧바로 중대장에게 알렸던 모양입니다. 중대장이 본인 선에서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했는데······.”

“태민이 이놈이 일을 키웠구만.”

“네. 제가 확인한 것으로는 그렇습니다.”

“아이고······.”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차를 들고 마셨다. 임규태 중령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윤 소위 입장도 이해가 가긴 합니다. 지난번 그 일도 있고 이제 자신이 뭔 일을 해도 다들 선입견으로 바라볼 테니까 억하심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가 저지른 일이 있는데!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진정하십시오.”

“내가 외손자를 너무 오냐오냐했어.”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오 대위 말이야. 그 친구는 육사 출신인가?”

“네. 맞습니다.”

“성적은 어때?”

“제가 알기론 상당히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 어쩌다가 그곳으로 간 것인가?”

“아. 원래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임규태 중령은 자신이 아는 것을 쭉 설명해 줬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도 오상진에 대해서 따로 들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임규태 중령에게 들으니 또 새로웠다.

“혹시 자네하고는 친한 사이인가?”

“친하 것도 있고요. 제가 몇 차례 도움을 받긴 했습니다. 그 친구가 워낙에 올곧은 친구입니다.”

“그렇지. 자네 얘기하는 것만 들어도 그런 친구인 것 같군.”

“정말 흠잡을 게 없는 친구입니다.”

“태민이가 오 대위 반의반만 닮았어도······.”

신범규 예비역 준장의 말을 듣고 임규태 중령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왜? 왜 그렇게 웃나.”

“아닙니다.”

“태민이는 영 답이 없는 것 같아?”

“그보다 기대치가 높으신 것 같아서요.”

“음?”

“오 대위가 보통이 아닙니다.”

“보통이 아니야?”

“네. 제가 군 생활을 몇 년을 했다고 감히 선배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군 생활 하면서 그 친구만큼 군 생활 열심히 하는 친구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

“네.”

“자네가 자꾸 그러니까 그 친구를 한번 만나보고 싶군.”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한번 데리고 오겠습니다.”

“아니지. 아니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고. 그냥 그 친구 얼굴이 보고 싶어서 그래.”

“그럼 사진을 보시겠습니까?”

“사진? 자네 가지고 있나?”

“네.”

임규태 중령이 바로 휴대폰에서 오상진의 사진을 찾아서 보여줬다. 누가 봐도 전형적인 군인의 얼굴이었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은 오상진의 눈이 참 맑다고 생각했다.

“좋네. 좋아. 이런 친구가 오래해야 하는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한참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태민이도 어디 가서 인물하나는 빠지지 않는데 어쩌다가······.”

씁쓸해진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다시 바둑알을 들었다.

“바둑이나 한 판 더 두세.”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밤늦도록 바둑을 두었다.

다음 날 오상진은 임규태 중령의 전화를 받았다.

“네. 헌병대장님.”

-다른 것은 아니고 그 사건 말이야. 우리가 조사관을 다시 보내야 할 것 같아.

“네.”

-다음 주에 가야 할 것 같아. 이번 주 안으로 빨리 처리해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어떻게 하지?

“아닙니다. 제대로 조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럼 지난번에 왔던 분들은······.”

-최 소령과 박 중위는 징계 절차를 밟고 있어.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야.

“네. 알겠습니다.”

-그래.

전화를 끊은 오상진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임규태 중령이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하기는 했다. 물론 임규태 중령 성격상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알고 있었다.

사실 헌병대는 군대에서 가장 폐쇄적인 곳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헌병대 내에서 헌병대가 사고를 쳤다? 헌병대는 군 기강을 잡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은 훨씬 더 비하가 될 것이다. 단지 헌병대라는 이름이 붙는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래서 오상진도 좀 힘들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깔끔하게 정리를 하셨다.

“역시 임 중령님이야. 임 중령님이 사단헌병대로 오셔서 참 다행이야.”

오상진은 든든한 아군에 절로 힘이 났다. 그리고 다시 업무를 보려는데 전화가 왔다. 한소희였다. 오상진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네. 소희 씨.”

-상진 씨 오늘 금요일인데. 어떻게 할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서울 올라갈 생각이었어요.”

-정말요? 상진 씨 안 오면 내가 내려가려고 했는데. 잘됐다.

“그런데요. 저 내일 형님 만나기로 했어요.”

-형님? 누구요? 큰오빠요, 작은 오빠요?

“작은 형님요.”

-아, 왜요! 작은 오빠가 뭐라고 그랬는데요. 나 대표시켰다고 징징거리고 그랬어요?

확실히 한소희는 한중만에 대해서 잘 알았다. 그렇다고 체면이 있는데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아니요. 미팅이 있습니다.”

-미팅요? 무슨 미팅요?

“내가 예전에 말했던 영화 있잖아요.”

-스캔들 메이커요?

“네. 영화감독님의 생각이 좀 다른 것 같아서요. 그래서 내 조언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 그래서 만나기로 했어요.”

-아, 그래요? 그럼 나도 같이 만날까요?

“소희 씨는 약속 없어요?”

-저는 평일 내내 일하고 주말에 상진 씨 보는 걸로 위로를 받고 있는데요. 상진 씨가 주말에 딴 약속을 잡으면 어떻게 해요.

다른 여자친구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철없다고 말하겠지만 자기 일 똑부러지게 잘하는 한소희가 말을 하니 이해가 되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소희 씨는 그렇게 내가 보고 싶어요?”

-당연하죠! 우리 잘난 남친! 또 그렇게 연예인들 만나고, 잘난 사람 만나고 그러다가 딴 여자가 낚아채고 그러면 어떻게 해요.

“아이고 절대 그런 일 없어요.”

-그걸 어떻게 장담해요. 나는 내 남친 내가 관리해요.

“네네. 그렇게 하십시오.”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할 거예요?

“오늘 저녁은 집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럼 내가 어머니 댁으로 갈까요?

“소희 씨가요?”

-어때요. 어머니가 날 모르는 것도 아니고. 가족들 다 아는데. 게다가 결혼할 사이인데요.

한소희 말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괜찮겠어요. 집에서 뭐라고 하지 않아요?”

-제가 어디 한두 번 외박해요. 그리고 요새는 아버지가 언제 시집 가냐고 막 그래요.

“알았어요. 그럼 저녁에 서울 집에서 봐요.”

-네.

전화를 끊은 오상진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일과를 마친 오상진은 서둘러 중대장실을 나섰다. 곧바로 행정실에 들렸다.

“다들 오늘도 수고했어. 다음 주 월요일에 보자고.”

오상진이 손을 흔들고는 가려는데 김진수 1소대장이 불렀다.

“중대장님.”

“응?”

“오늘 어디 가십니까?”

“서울 올라가는데 왜?”

“아닙니다.”

김진수 1소대장 멋쩍게 웃었다. 지난번에 술 한잔하자고 했는데 못 했었다. 그래서 내일 주말이고 해서 한잔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오상진이 서울 올라간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오상진도 김진수 1소대장이 왜 자기를 불렀는지 바로 깨달았다.

“아! 맞다. 그렇지. 1소대장 다음 주에는 꼭 한잔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김진수 1소대장이 웃었다. 오상진이 손을 흔들고는 행정실을 나왔다. 행정실에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윤태민 2소대장이 물었다.

“1소대장님. 혹시 술 고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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