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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897화 (897/1,018)

< 04. 그 나물에 그 밥(1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27화

04. 그 나물에 그 밥(14)

박해준 병장이 자신에게 살갑게 굴어서일까? 윤태민 소위도 박해준 병장에게 홍일동 4소대장을 깠다.

하지만 박해준 병장이 윤태민 소위에게 친한 척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홍일동 4소대장이 부탁을 했다.

“야. 박 병장아. 너 오늘 당직사병이라며.”

“네.”

“너 만약에 말이야. 윤 소위랑 같이 있을 때 이상한 소리를 하는지 잘 체크해 봐.”

“이상한 소리 말입니까? 뭘 찾으라고 하시는지······.”

“뭐든지. 전부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면 다!”

“네. 알겠습니다.”

이것이 오늘 오후에 홍일동 4소대장으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박해준 병장이 그런 윤태민 소위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진짜 내가 정말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아나. 뭔 저딴 말을 하고 지랄이야. 지난번 일 하나로 지랄 염병을 떨더니.’

박해준 병장도 윤태민 소위를 통해 물건을 몇 번 들인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 아쉬운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윤태민 소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을 하니 정말 얄미웠다.

그런 줄도 모르고 윤태민 소위가 기지개를 폈다.

“어후. 피곤하다야. 하암······.”

하품까지 하던 그는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더니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자는 윤태민 소위를 보며 박해준 병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후.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한다니까.’

그 시각 신범규 준장은 서재에 앉아서 한참 동안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 허허, 이 녀석은 도대체 지 할아버지를 뭐로 아는 거지.”

그때 밖에서 아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보. 손님이 찾아왔어요.”

“손님? 아, 임 중령이 찾아왔나 보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현관에서 임규태 중령이 들어왔다.

“충성.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됐어! 예편한 사람에게 무슨 경례야. 어서 들어오게.”

“한 번 선배님이면 영원한 선배님이시죠.”

“하하하. 거 참······. 이래서 내가 자네를 좋아한다니까. 들어오게.”

“넵!”

신범규 예비역 준장과 임규태 중령은 예전에 알고 지냈던 사이였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대령 시절 중대장으로 임규태 중령이 왔었다. 그때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되어서 함께 하게 됐다.

“일단 자리에 앉지.”

“네.”

자리에 앉고 잠시 후 차를 가져왔다. 그리고 차를 내온 아내가 조용히 자리를 비켜줬다.

“들지.”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아까 자네 전화를 받고 생각이 많았네.”

“그렇습니까.”

사실 임규태 중령은 신범규 예비역 준장에게 전화를 했다. 최영도 소령의 일과 윤태민 소위의 일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다고 찾아뵙고 말씀드리겠다고 말이다.

“무슨 급한 일이기에 직접 자네가 왔나. 전화로 해도 될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헌병대가 조사했던 일을 함부로 발설하고 그러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그럼 뭐? 이렇듯 찾아오는 것은 괜찮고?”

“저야 오랜만에 선배님 얼굴 보러 온 것이죠. 전혀 헌병대 일하고는 관련이 없습니다.”

“하하하. 그리 되는가? 어쨌든 오느라 고생했네.”

“고생은요. 싸놓은 똥 치우느라 고생 좀 했죠.”

“누구? 최 소령?”

“그런데 최 소령을 아십니까?”

임규태 중령이 의문을 가지자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씨익 웃었다.

“최 소령이 얘기를 안 했나?”

“네.”

“오늘 아침에 나에게 전화를 했더라고. 점심을 같이하자고 말이야.”

“아. 그럼 그때······.”

임규태 중령이 아침에 통화했던 것을 떠올렸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말했다.

“그래, 자네가 전화했을 때 말이야.”

“어떻게 아십니까?”

“슬쩍 봤어. 휴대폰을 말이야. 왠지 자네였을 것 같더군.”

“아, 그러셨습니까.”

“그건 그렇고. 좀 서운해.”

“네?”

“아니, 우리 태민이 일이 관련되었다면 나에게도 좀 귀띔이라도 해주지. 내가 얼굴도 모르는 후배님에게 불려 나가서 그런 소리를 들어야겠어.”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임규태 중령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제가 일찍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저도 보고를 좀 늦게 받아서 말입니다.”

“됐어. 됐어. 그냥 해본 말이야.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그게 중요한가? 솔직히 말해서 자네 다른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헌병대에 있는데 자네 전화를 안 받으면 안 받을수록 더 좋은 거 아닌가.”

“네. 그건 사실이죠. 그래서 업무적으로 연락을 잘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건 핑계고 이 친구야. 내가 자네랑 한두 해 알고 지낸 것도 아니고.”

“죄송합니다. 그보다 요새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어떻게 지내긴 그냥 강연 다니고 그 외 몇 가지 부탁 들어오면 해주고 있지.”

“아, 그렇습니까? 그때 예편하고 나면 농사지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말도 마. 안 그래도 그걸 알아봤는데 말이 많더라고. 요새는 내 땅에서 농사를 지어도 어디 허락을 받아야 하고, 또 어디를 가서 허가를 받아야 하고 복잡해.”

“그렇습니까?”

“그래. 아무튼 좀 골치가 아프더라고. 거기다가 이장이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양반은 마을 공동 발전기금 어쩌고 하던데 말이야. 어후······.”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임규태 중령이 말했다.

“아직도 그러는 사람이 있습니까? 따끔하게 한마디 하시죠.”

“한마디 하려고 했지. 곰곰이 보니까. 나 예전 예뻐해 주던 옆집 아저씨더라고.”

“아이고, 그분이 아직도 계셨습니까?”

“이 친구가 우리 시골에서 내 나이면 청년이야.”

“그렇습니까.”

“그건 그렇고 얘기를 해봐. 내가 대충 최 소령에게서는 얘기를 들었네.”

“그게 말입니다. 이 상황이 좀 심각합니다.”

“심각해? 뭐가 어떻게?”

“이 일이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죠.”

임규태 중령은 모든 상황을 전달할 수는 없었고, 대략적인 부분만 전달했다.

윤태민 소위가 새로 부임한 부소대장을 추행한 건으로 조사를 했는데, 처음에는 증거가 없어서 윤태민 소위가 헌병대와 함께 부인하고 잡아뗐다. 그래서 최종 보고까지 올라왔는데 때마침 CCTV가 올라와 발칵 뒤집어졌다.

“그 CCTV에는 태민이가 그 여자 부사관을 추행하는 장면이 찍혀 있다는 말이지?”

“네.”

“혹시 괜찮다면 날 좀 보여줄 수 있나?”

“네. 안 그래도 챙겨 왔습니다. 어차피 정식루트로 들어온 게 아니라서요.”

임규태 중령이 노트북을 꺼냈다. 원래는 보여주면 안 되지만 임규태 중령도 익명을 통해서 증거를 받았다. 그래서 슬쩍 복사본을 건넸다.

“여기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불편하시면 나중에 보셔도 됩니다.”

“아니지. 아니야. 자네가 먼 걸음을 했는데······.”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USB를 꽉 움켜쥐었다. 뭔가 고민을 많이 하는 눈치였다.

“선배님. 굳이 안 보셔도 됩니다.”

“아니야. 아니야.”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 위에 있던 노트북을 가져왔다.

“이걸로 보지.”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가지고 온 노트북을 본 임규태 중령이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나?”

“이거 요즘 나오는 최신형 노트북 아닙니까.”

“왜? 나 같은 늙은이는 최신형 노트북을 사용하면 안 되는 건가?”

“그것이 아니라······.”

“우리 큰아들놈이 사다 준 것이네.”

“큰아들이라면 혹시 대기업 다닌다는······.”

“맞네.”

“부럽습니다.”

“부럽기는······. 자식들 중에서 한 놈이라도 내 뒤를 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그렇게 얘기를 해도 한 놈도 들은 척도 하지 않더군. 다들 먹고살기 바쁘다고 하면서 말이야.”

신범규 예비역 준장의 얼굴로 씁쓸함이 내비쳤다. 임규태 중령이 슬쩍 말했다.

“그래도 아드님들이 선배님께는 잘한다고 들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그 녀석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게다가 그놈들 장가 갈 때 아무것도 안 해줬을 것 같아? 그런 것에 비하면 최신형 노트북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네. 맞습니다.”

임규태 중령이 바로 호응을 해줬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노트북을 열고 전원 켰다. 그리고 받아 든 USB를 들고 말했다.

“이걸 어디다가 꽂아야 하지?”

“아. 이쪽에 있습니다. 주십시오.”

USB를 건네받은 임규태 중령이 노트북 옆 USB 단자에 꽂았다.

“재생은 어떻게 하는 거야? 이것 참 문서만 작성을 해봤지.”

신범규 예비역 준장은 살짝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임규태 중령이 노트북을 자신 앞으로 가져왔다.

“이렇게 USB 폴더로 들어가서 나와 있는 동영상을 더블클릭하면 됩니다. 자! 보십시오.”

이제 막 재생되는 동영상을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잘 볼 수 있도록 방향을 틀었다.

“어디를 보면 되는 거지.”

“이쪽을 보면 됩니다.”

임규태 중령이 좌측 상단 부분을 가리켰다. 잠시 후 신범규 예비역 준장의 눈으로 어떤 영상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긴가민가했다.

“미안하데. 다시 한번 틀어주면 안 되겠나?”

“네. 여기서부터 보시면 됩니다.”

임규태 중령이 다시 영상을 재생시켰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몇 번을 재생시켜서 확인했다. 그러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건 뭐 의심의 여지가 없겠군.”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CCTV 동영상 화질이 별로 좋지 않았다. 만약에 아니라고 하면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군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범규 예비역 준장은 그렇게까지 썩어빠진 군인은 아니었다.

물론 윤태민 소위가 자신의 뒤를 이을 아이여서 숨기고 싶은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자꾸 선을 넘고 한 것은 가족으로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보통 군인 가족들은 더 물불을 안 가리고 덤벼든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 정도는 양호했다. 그렇다고 이렇듯 순순히 인정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이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아시겠지만 지난번의 불미스러운 일도 있습니다. 자숙하고 있는 와중에 이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임규태 중령이 그 뒷말은 잇지 않았다. 하지만 신범규 예비역 준장은 그 뒷말이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더 이상 군 생활은 힘들겠지?”

“뭐, 처벌을 다 받고 나온다면 군 생활은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추행한 당사자인 그 여하사관하고는 합의가 먼저 이루어져야겠지만 말입니다. 여러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그럼 옷 벗는 것까지는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한다고 해도 진급은 어려운 것이 아닌가.”

“네. 맞습니다. 잘해야 대위······ 정도겠죠.”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윤태민 소위였다. 그런데 소령에서 더 이상 진급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수치 중의 수치일 것이다.

아니, 원래 소령까지 하고 나온다며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더 이상의 진급이 어렵다고 하면 힘들다는 말이었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최소한 자신은 준장까지 달고 예편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외손자인 윤태민은 소장, 어쩌면 우리 가문 최초로 대장까지 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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