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1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26화
04. 그 나물에 그 밥(13)
물론 박태진 중위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있다. 하지만 최영도 소령은 이 상황에서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한다면 응당 박태진 중위가 뒤집어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 중위.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고 있어.”
“가능합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 나만 믿어!”
최영도 소령이 대답을 한 후 사무실로 가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로부터 30분이 흐른 후 임규태 중령의 부름을 받았다.
“통신보안 헌병과장 최영도 소령입니다.”
-나다. 최 소령. 내 방으로 와.
“충성. 네, 알겠습니다.”
다시 임규태 중령이 최영도 소령을 호출했다. 최영도 소령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헌병대장실로 향했다. 문을 두드린 후 죄지은 얼굴로 들어갔다.
“부르셨습니까.”
“어, 그래. 내가 이 보고서를 읽어봤는데 말이야.”
“네.”
“이 보고서 맞는 거지?”
“어, 그것이······.”
“여기 있는 내용들 말이야. 확실히 사실조사가 다 끝난 거 맞냐고 묻잖아.”
최영도 소령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것이 죄송합니다. 제가 박 중위에게 일을 맡겨서······.”
“박 중위에게 일을 맡겼다고? 그래도 자네가 상관 아닌가. 박 중위에게 일을 맡기고 자네는 확인도 안 했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조사를 하려고 했던 것인데······.”
임규태 중령이 한숨을 푹 내쉬며 불렀다.
“하아, 최 소령.”
“예!”
“자네 말이야. 이런 식으로 일 처리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예?”
“내가 대충 알고 있는 것만 해도 대 여섯 건 정도 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그 정도인데 밝혀지지 않은 것은 수십 건, 어쩌면 수백 건일 수도 있겠네.”
“아닙니다.”
“아니야? 정말 아니야?”
“네.”
“정말 아닌 사람이 증거가 없다고 조사를 이따위로 해!”
“죄송합니다. 좀 더 철저히 조사를 했어야 했는데······.”
최영도 소령은 이런 식으로 하면 그냥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임규태 중령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헌병과장.”
“네.”
“만약 이 일이 나중에 밝혀지면 어쩔 뻔했지?”
“네?”
“어떻게 될 뻔했냐고, 이 사건이 말이야.”
“그것이······.”
“헌병대에서 말도 안 되는 조사를 했다는 것을 다 발표 난 다음에 밖에 나가서 기사들이 알아내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그건 절대로 외부로 유출이······.”
“왜 유출이 안 될 것이라 생각하지?”
“여긴 군대고 군대 내부는······.”
“최 소령!”
임규태 중령이 버럭 했다. 최영도 소령이 움찔하며 임규태 중령의 위압에 저도 모르게 관등성명을 댔다.
“소령 최영도.”
“지금 이 사실이 끝까지 숨겨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
“확신할 수 있느냔 말이야.”
최영도 소령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지면 자네는 무사할 것 같아? 자네 덕분에 우리 사단 헌병대는 아주 작살이 날 거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 와 부하 장교를 탓해?”
“어, 그게······.”
“최 소령. 너 이번에 각오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대대장님······.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제가 정말 큰 실수를 했습니다.”
“자네 말이야.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 자네 내가 여기 처음 부임했을 때 분명 경고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알아들었어야지. 내 말이 얼마나 우스우면 그런 식으로 해? 아니면 나는 중령이고 자네는 소령이라 한 끗 차이는 무시해도 된다는 거야?”
“아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임규태 중령은 계급이 현재 중령이긴 하지만 대령 진급 심사를 통과했다. 워낙에 실적이 좋고 잘나가기 때문에 진급이 빠른 편이었다. 아니, 조만간 자리가 나면 대령 진급이 확실시되는 사람이었다.
최영도 소령은 대위 생활을 오래하다가 어렵게 간신히 소령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계급 하나 차이지만 그 차이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아무튼 최 소령은 손 떼. 내가 조사관을 보내서 조사할 테니까. 만약 이 조사 내용하고 하나라도 틀린 것이 나오면 자네 군 생활 아주 버라어티하게 만들어주지.”
“대대장님······.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나가!”
“대대장님!”
“나가라고 했다. 지금 명령에 불복종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그럼 당장 나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네에.”
최영도 소령이 헌병대대장실을 나왔다. 나오는 그의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밖에 나오니 박태진 중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다.
“과, 과장님······.”
최영도 소령을 불렀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터벅터벅 자신의 사무실로 걸어갔다. 박태진 중위도 그의 뒤를 따라 가려는데 헌병대대장실 문이 열리며 임규태 중령이 나왔다. 박태진 중위가 깜짝 놀라며 경례했다.
“추, 충성!”
“박 중위.”
“중위 박태진.”
“너 줄 똑바로 서!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임규태 중령이 그런 박태진 중위를 노려보고는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박태진 중위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최영도 소령은 자신의 사무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감싸쥐었다.
“하아, 시발······. 하필 그 증거가 지금 이때 나오고 지랄이야.”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는데 사무실 문이 열리며 박태진 중위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를 보자 최영도 소령이 눈을 부라렸다.
“야, 박 중위.”
“네.”
“너는 새끼야. 그 증거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하고 뭐 했어.”
“네?”
“너 그렇게 중요한 증거 하나 찾지 못하고 뭐 했냔 말이야!”
“······.”
“내가 증거 찾으라고 했지. 하나도 놓치지 말고 찾으라고 했지! 이 새끼가 조사도 대충대충하고······. 너도 각오해. 내가 옷 벗으면 나만 벗을 것 같아. 너도 같이 벗을 줄 알아.”
괜히 박태진 중위에게 지랄을 하는 최영도 소령이었다. 그런 최영도 소령을 보며 박태진 중위가 울상을 지었다.
그날 저녁 4중대 당직사령은 윤태민 소위였다.
윤태민 소위는 각 소대를 돌며 일석점호를 했다.
“충성!”
“충성.”
“4중대 1소대 일석점호 인원보고 총원 ○○명, 사고 무, 열외 ○명 열외 이유 근무자, 현 ○○ 번호!”
“하나, 둘, 셋, 넷 다섯······ 번호 끝!”
“······이상 일석점호 인원보고 끝. 충성.”
“충성.”
보고를 받은 윤태민 소위는 잔뜩 인상을 구리며 일석점호 보고자에게 갔다.
“야. 너는 새끼야. 점호 보고를 하는데 복장이 왜 이래. 제대로 갖추지 못해?”
보고자의 전투복 상의가 살짝 빠져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보고자는 오늘 처음 일석점호 보고자로 올라온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인마. 죄송하면 끝나냐.”
“아닙니다.”
윤태민 소위는 보고자를 한번 쓰윽 보고는 말했다.
“오늘 점호에서 볼 것은 청소 상태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청소 제대로 했나?”
“네. 그렇습니다.”
“만날 말만 그렇지······.”
윤태민 소위는 대충 청소 상태를 훑어보고는 보고를 마쳤다. 그렇게 모든 내무실의 일석점호를 마치고 행정반으로 왔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았다.
“현재 시각 21시 55분. 22시 전까지 모든 일과 마무리 소등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 이상 점호 끝!”
마이크를 끈 윤태민 소위가 자리로 가서 앉았다. 당직사병인 1소대 박해준 병장이 와서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좀 쉬시지 말입니다.”
“됐어, 인마. 왜? 내가 쉬면 다른 사람에게 또 뭐라고 하려고.”
“저는 아무 말 안 했습니다.”
“됐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네 일나 해.”
“알겠습니다.”
윤태민 소위는 전투모를 벗어서 책상에 내려놨다. 그러다가 잠시 후 휴대폰이 울렸다.
“아, 진짜······. 왜 자꾸 전화를 하지?”
발신자는 외할아버지인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었다. 원래는 안 받으려고 했다. 그래서 확인 후 도로 내려놨다. 당직사병인 박해준 병장이 물었다.
“무슨 전화이신데 그럽니까?”
“왜? 네가 알아서 뭐 하게.”
“그게 아니라······.”
“인마,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해.”
“죄송합니다.”
그러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하아······.”
윤태민 소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번에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할아버지.”
-그래. 바쁘냐?
“저 오늘 당직이라서 방금 점호 마치고 들어왔습니다.”
-그래? 너도 당직을 서?
“할아버지 저도 간부입니다. 당연히 당직은 서야죠.”
-그렇구나.
신범규 예비역 준장은 윤태민 소위가 근신 중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오상진은 윤태민 소위가 아무리 근신 중이라고 해도 편안하게 쉬게 해줄 생각은 없었다.
만약 그런 이유로 윤태민 소위의 근무를 다 빼버리면 그로 인해 모두가 피해를 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번 사안은 헌병대 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헌병대 조사 결과 확실한 답이 나오지 않았으니 아직은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윤태민 소위는 평소처럼 업무를 보고 있었다.
“왜 전화 하셨어요?”
-부대에서 별일 없니?
“아무 일 없는데요.”
-그러니? 으음······. 알았다.
뚝!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긴 휴대폰을 보며 윤태민 소위가 중얼거렸다.
“뭐야. 스읍······. 혹시 누구에게 뭐라도 들었나? 아니야, 아니야. 그 노친네가 여기까지 안테나를 세울 일이 없지. 그나저나 이 지긋지긋한 4중대를 벗어나야 하는데 시간 정말 안 간다.”
그러다가 박해준 병장이 다시 슬쩍 물었다.
“2소대장님. 혹시 어디 가십니까?”
“야! 박 병장. 너 왜 이렇게 나에게 관심이 많아.”
“아. 그냥 궁금해서 말입니다.”
“그 궁금증을 끊어. 너 말이야. 내가 예전이었다면······.”
“죄송합니다.”
박해준 병장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는 윤태민 소위는 신경이 쓰였다. 안 그래도 내일 아침까지 당직근무를 서야 했다. 그런데 저렇듯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그 또한 꼴보기 싫었다.
“그래서 뭐? 뭐가 궁금한데.”
“그냥 저는 모처럼 2소대장님하고 당직이고 하니까······.”
“너랑 나랑 뭐라도 되는 줄 알겠다. 그래서 뭐? 너 지금 나랑 맞먹고 싶은 거냐?”
“그게 아닙니다. 그냥 어디 가신다고 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후우······. 나, 내년이면 다른 부대로 전출 가.”
“정말입니까?”
“어라? 너 이 새끼. 표정 바라 은근히 좋아한다.”
“제가 뭘 좋아합니까. 저도 한달있으면 제대지 말입니다.”
“그래? 아니면 내가 다른 부대로 전출 가서 꼬시냐?”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서운하지 말입니다. 저는 나름 2소대장님을 좋아했지 말입니다.”
그 말을 듣자 윤태민 소위가 화들짝 놀랐다.
“야. 박 병장······ 너 설마······ 게이냐?”
“에이! 아니지 말입니다.”
“그런데 새끼야. 나를 왜 좋아해.”
“그게 아니라 장교로서 좋아했다는 말입니다.”
“아, 깜짝 놀랐네. 인마, 똑바로 말해. 사람 당황하게 만들지 말고. 에효······. 나라고 이 지긋지긋한 곳에 있고 싶겠냐. 원래 장교들은 주기적으로 옮겨 다녀야 해. 그래야 진급도 하고 그렇지. 아니면 너 말뚝 박으려고 그래?”
“그건 아닙니다.”
“그보다 너희 소대장 요새 뭐 하냐?”
“저희 4소대장님 말씀이십니까?”
“어.”
“잘 모르겠지 말입니다.”
“너희 소대장 어디서 뭔 사고를 치는지 잘 찾아봐. 너희 소대장도 말이지. 꼴통 기질이 있어서 어디서 뭔 사고를 칠지 모른다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