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1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25화
04. 그 나물에 그 밥(12)
“아. 그래요?”
“네네. 거기 홍민우 소령이라고 제 동기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말하길 윤 소위가 지난번에 본의 아니게 실수한 부분이 있다. 그 잘못을 가지고 색안경을 끼고 보면 윤 소위가 어떻게 군 생활을 하겠냐며 저보고 선입견 같지 말고 철저하게 헌병대에서 조사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고집스럽게 파봤더니 그러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이구, 홍 소령에게도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모두 준장님 후배들이고 준장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다 서로 돕고 돕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서로 웃고 얘기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끝나면서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계산을 했다.
식당을 나온 세 사람.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최영도 소령을 봤다.
“앞으로 따로 이 늙은이에게 해줄 말이 있거나, 늙은이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드리리다.”
“괜찮습니다. 꼭 그런 것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 오히려 저희가 대접을 해드려야 하는데 얻어먹어서 어떻게 합니까.”
“군인 월급이 얼마나 한다고······. 나도 소령 시절 다 겪었습니다. 그런데 최 소령은 결혼했습니까?”
“네. 결혼했습니다.”
“부인에게 용돈 얻어 쓰죠?”
“하하하. 제가 알게 모르게 조금씩 모으고 있지만······.”
“그러니까요. 그런 비자금들은 나중에 후배들에게 쓰도록 해요. 나한테 쓸 필요가 없어요. 아까 말하지 않았나요. 후배들한테 밥 한 끼 사 주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요.”
“감사합니다.”
“그래요. 아무튼 이번 일 고마워요.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보도록 하죠.”
“네. 준장님. 들어가십시오.”
“들어가십시오.”
박태진 중위도 인사를 했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고개를 끄덕인 후 차를 타고 떠났다.
떠나는 그를 보며 최영도 소령과 박태진 중위가 한마디씩 했다.
“이야. 듣던 것보다 더 멋있습니다.”
“그래? 너도 그렇게 느꼈어?”
“네.”
최영도 소령이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그러면서 홍민우 소령의 얘기를 떠올렸다.
“신 준장님 만만치 않은 사람이야. 신범규 예비역 준장을 세간의 평가만 믿고 쉽게 생각하지 마라. 능구렁이가 따로 없다.”
그 말이 딱 맞았다. 분명 윤태민 소위의 일로 만나자고 했을 때는 자신의 외손자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그것이 먼저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시종일관 여유롭게 굴다가 잠깐 박태진 중위를 내보내니 가볍게 물어봤다.
본인이 그렇게 얘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대해 관련하거나 간섭, 또는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최영도 소령은 자신도 모르게 윤태민 소위를 돕겠다는 식으로 열심히 말을 했다.
“뭐에 홀린 것도 아니고 말이지. 역시 장군을 괜히 따는 것이 아니야.”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대단한 것은 어느 파벌에 들지도 않았다. 중립적으로 움직였다.
물론 이곳저곳에서 신범규 예비역 준장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며 오롯이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그런 신범규 예비역 준장을 따르는 이들도 많았다.
만약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두 라인 중 하나를 선택했더라면 아마도 최소한 대장은 아니더라도 중장까지는 달고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신범규 예비역 준장은 고집스러웠고, 한 번 두 번 진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진급 가지고 앓는 소리를 하기 싫은 그는 과감하게 옷을 벗고 나왔다.
그런 신범규 예비역 준장을 보며 모든 사람들이 멋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최영도 소령도 그 소문만 듣고 그를 소탈한 사람,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오늘 직접 만나보니 고단수,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영도 소령이 생각할 때 박태진 중위가 슬쩍 입을 열었다.
“과장님.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은 신범규 준장을 만나려고 서울까지 왔다. 지금부터 열심히 차를 타고 달려도 한 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았다.
“그러네. 지금 빨리 움직여야겠네.”
“타십시오.”
박태진 중위는 운전대를 잡고 부지런히 달려 평택 사단으로 내려왔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사단 헌병대에 도착을 했다. 최영도 소령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임규태 중령이 있는 헌병대장실로 들어갔다. 이미 식사를 마친 그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충성. 볼일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어, 그래. 갔던 일은 잘되었고?”
“네, 그렇습니다.”
“어딜 다녀왔는데?”
“서울에 잠깐······.”
“음, 서울? 그렇군.”
임규태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뭔가를 알고 있을 것 같았던 최영도 소령은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런데 임규태 중령은 그냥 서울 갔다는 것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뭐지? 그냥 전화한 건가? 아이씨, 사람 헷갈리게.’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는 임규태 중령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런 임규태 중령을 보는 최영도 소령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뭐라고 말을 하든가 지시를 내리든가 해야 하는데 불러놓고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으니 궁금증이 커져갔다.
‘뭐야. 사람 불러놓고······. 뭘 보고 있는 거야.’
그러면서 슬쩍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임규태 중령이 무슨 영상을 보고 있었다.
‘뭔 영상이지?’
임규태 중령이 힐끔 고개를 돌려 최영도 소령을 봤다. 최영도 소령이 깜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아아. 그래. 내가 사람을 불러놓고 딴짓을 했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최 소령. 자네 이것 좀 봐.”
“이게 뭡니까?”
“일단 한번 봐봐.”
임규태 중령은 최영도 소령이 잘 보이게 모니터를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주었다. 그 영상은 CCTV처럼 보였다.
‘응?’
잠시 후 도로 반대편에서 차량 한 대가 도착을 했다. 잠시 후 군인 하나가 다른 술 취한 군인을 어깨에 걸치고 길가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차량이 도착을 했다. 뭔가 얘기를 하더니 술 취한 여자가 차에 올라탔다.
‘뭐지?’
최영도 소령은 처음에는 이것이 뭔지 몰랐다. 그런데 영상을 계속 보니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차는 출발은 하지 않고 멈춰 서 있었고,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의 손이 조수석에 앉은 여자의 가슴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가, 가만 이건······.’
순간 최영도 소령은 그 영상 속 남자와 여자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최영도 소령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아무런 증거가 없을 거라고 해서 자기들 멋대로 조작한 사건의 증거가 이렇듯 있을 거라고는 정말 몰랐다.
놀란 최영도 소령의 시선이 임규태 중령에게 향했다. 임규태 중령이 티 내지 않고 말했다.
“어때? 자네가 보기에.”
“네?”
“어떠냐고.”
“어, 그게······.”
“내 눈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면 남자가 여자의 가슴을 만지려고 하는 것 같은데······. 맞지?”
“······그것이 확실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 확실하지는 않지. 하지만 딱 봐도 남자의 손이 여자의 가슴으로 향하는 것은 확인할 수 있잖아. 안 그래?”
“네, 그게······.”
최영도 소령은 적잖히 당황했다. 임규태 중령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니, 갑자기 이런 영상이 익명으로 왔어. 이게 뭔가 싶어서 틀었는데. 이 영상이 그냥 온 것은 아니겠지. 뭔가 사건과 연관이 있으니 왔을 것 같은데 말이야. 안 그런가?”
“네네······.”
“아무튼 이 영상이 와서 자네에게 물어보려고 한 거야. 뭐, 아무것도 아니면 상관이 없고······. 그건 그렇고 자네가 올린 보고서를 볼까?”
임규태 중령이 보고서를 들려고 했다. 그런데 최영도 소령이 바로 보고서를 딱 하고 잡았다. 임규태 중령이 의아해하며 바라봤다.
“왜 그러는가?”
“대대장님. 이 보고서 부족한 것이 있을 것 같아서 다시 확인 후 올려도 되겠습니까?”
임규태 중령이 씨익 하고 웃었다.
“최 소령, 왜? 부족한 것이 따로 추가해서 보내면 되는 거지. 이걸 왜 가져간다고 그러는 거야? 왜? 조사가 잘못되었어?”
“그게 아니라······.”
“설마 증거가 없다고 이리 뭉개고, 저리 뭉개서 말도 안 되게 조서를 작성해서 올린 것은 아니지?”
“어어······ 그것이······.”
최영도 소령은 심히 당황했다. 하지만 임규태 중령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말했을 거야. 헌병대는 헌병대답게 철저한 조사를 통해 조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이야. 그럴 거면 군대에 왜 있어. 제대하고 소설가로 살라고. 내가 처음에 얘기를 했을 거야. 그렇지?”
“아, 네에······.”
“그런데 말이야. 아직도 조서를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 명색이 헌병대 조사관이라는 사람들이 말이야. 그래 가지고 군인들이 헌병대를 믿겠어? 안 그래?”
“아, 네에······.”
최영도 소령은 대답을 하면서 땀을 뻘뻘 흘렸다.
“아무튼 나는 앞으로 그런 사람들은 사람 취급 안 하려고 해.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아야겠어.”
임규태 중령이 자연스럽게 말을 하는데 듣는 최영도 소령은 꾹 찔렸다. 임규태 중령이 하는 말이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저 보고서를 빼앗아서 다시 조서를 작성하고 싶었다.
그때 임규태 중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그만 나가봐.”
“보고서는 제가 다시 작성해서······.”
“됐어. 이건 내가 다시 볼 테니까. 추가적인 게 있다면 따로 올려.”
“······네에.”
최영도 소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몸을 돌려 헌병대대장실을 나왔다. 최영도 소령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박태진 중위가 때마침 지나가다가 최영도 소령을 봤다.
“과장님. 왜 그러십니까? 깨지셨습니까?”
최영도 소령이 박태진 중위를 보며 말했다.
“박 중위. 우리 좆됐다.”
“네?”
“일단 따라 나와봐.”
최영도 소령이 박태진 중위를 데리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휴게실로 간 그는 급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아, 시발······.”
“왜 그러십니까? 진짜 대대장님께 깨졌습니까?”
최영도 소령이 잔뜩 굳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윤태민 이 개 새끼······.”
“왜, 왜 그러십니까?”
“박 중위······.”
“네. 과장님.”
“윤 소위 그 새끼······ 가슴 만진 거 맞아.”
“네? 그걸 어떻게······.”
“CCTV에 찍혔다.”
“네에?”
박태진 중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최영도 소령이 담배를 뻐끔뻐끔 급히 피며 말했다.
“누가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헌병대장님이 그 CCTV를 보고 있어.”
그 얘기를 들은 박태진 중위의 얼굴 표정도 하얗게 변했다.
‘하아, 제기랄······.’
그 역시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냥 자기들의 생각대로 전부 다 잘될 줄 알았다. 또 여태까지 그렇게 흘러왔고 말이다. 그런데······.
‘CCTV라니······.’
박태진 중위는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과장님. 그럼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최영도 소령 역시 당황한 듯 박태진 중위를 바라봤다.
물론 박태진 중위는 공범이었다. 같이 이 짓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뒤집어쓸 필요는 없었다. 한 사람만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건 박태진 중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