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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894화 (894/1,018)

< 04. 그 나물에 그 밥(1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24화

04. 그 나물에 그 밥(11)

“제가 따라드리겠습니다.”

“어허. 괜찮아. 자네가 한 잔 받아.”

“네. 그럼······.”

오상진이 소주잔을 내밀었다. 그 잔에 소주를 따라주면서 홍민우 소령이 입을 열었다.

“헌병대에서 얘기는 들었지?”

“네. 들었습니다.”

“조사는 마음에 드나?”

오상진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오상진을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홍민우 소령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네 입장은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중대장으로서 성 군기에 관해서 민감할 수밖에 없지. 게다가 자네 중대에서 일어난 일이지 않나. 또 윤 소위는 전력이 화려하고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헌병대 조사 결과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니지?”

“그런 건 아닙니다.”

“그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헌병대도 나름 조사를 한 건데 우리도 그걸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어.”

홍민우 소령의 말에 오상진은 장단을 맞춰줬다.

“네네.”

“그래, 그래. 그렇지 않아도 최 소령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하더라고. 4중대장이 확실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부대 입장에서도 사실 이만큼 했는데 자네가 또 이의신청을 해서 일이 커지면 서로 불편해하고 그러지 않겠나.”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고맙고.”

오상진이 만에 하나 더 일이 키울 것 같아 걱정이었던 홍민우 소령은 홀가분하게 얘기를 하자 안도하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자, 마시자고.”

서로 술을 주고받았다. 홍민우 소령도 술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홍민우 소령은 오상진과 술을 몇 차례 마셔봤지만 오늘은 술이 참 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홍민우 소령은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을 한 것이었다. 오상진도 그런 홍민우 소령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춰줬다.

그렇게 술자리가 무르익어갔다.

다음 날 헌병대장 임규태 중령의 자리에 보고서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이건가?”

겉옷을 벗어 걸어놓고 자리에 앉은 그는 보고서를 확인했다. 보고서 내용은 예상한대로 평택 17연대 3대대 4중대에서 벌어진 성 군기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찬찬히 보던 임규태 중령이 피식 웃었다.

“아주 소설을 썼구만.”

조사를 하라고 보냈더니 이 일을 덮으려고 오히려 유선영 하사를 별것도 아닌 일로 장교의 옷을 벗기려는 천하의 나쁜 년으로 만들고 있었다.

“진짜 이게 없었으면 어쩔 뻔 했는지······.”

임규태 중령이 오상진이 복사해서 보내 준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다시 동영상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이것이 뭔가 싶었다.

저 만치 차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확실히 윤태민 소위가 추행한 것이 맞았다.

“이걸 보고 과연 무슨 생각이 들까?”

임규태 중령이 최영도 소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다, 헌병과장.”

-충성. 네, 대대장님. 보고서를 보셨습니까?

“방금 봤다. 올라와서 자세히 보고 해야지.”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외근 나와 있어서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임규태 중령이 피식 웃었다. 보나마나 어제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있을 것이다.

“그럼 급한 것은 아니야. 천천히 들어와도 돼. 점심 먹고는 들어오지?”

-네. 아마 그럴 겁니다.

“그래. 점심 먹고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충성!

임규태 중령이 들고 있던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어이구 귀신이네.”

전화를 끊은 최영도 소령은 혀를 내둘렀다. 설마 이 타이밍에 임규태 중령에게 전화가 올 줄은 몰랐다.

“설마 눈치챈 것은 아니겠지.”

그러고 있는데 뒤에서 박태진 중위가 손을 들었다.

“과장님.”

“어! 왜 나왔어?”

“지금 대장님 전화 받고 나가신 거 아닙니까?”

“어떻게 알았어?”

“척 보면 척이죠. 뭐라고 하십니까? 들어오라고 합니까?”

“아니. 전화가 오긴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점심 먹고 천천히 들어오라는데.”

“네? 정말 그래도 됩니까?”

“뭐 어때. 우리가 어디 가서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자, 들어가자.”

최영도 소령이 박태진 중위를 밀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룸 안 맞은편에는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앉아 있었다.

“바쁜 일이라도 있나?”

“아, 아닙니다.”

“아니긴 딱 봐도 부대에서 복귀하라는 전화 아니야?”

“제가 잘 처리했습니다.”

최영도 소령이 바로 얘기를 했다.

“그래도 괜찮나?”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웃으며 물었다. 자신도 군 생활을 하루 이틀 해본 것도 아니고 이렇듯 사적으로 윗선에서 전화가 오면 부대 복귀하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최영도 소령도 어렵게 잡은 신범규 예비역 준장과의 자리를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요리가 하나씩 들어왔다.

“자, 다들 식사들 하지.”

“네.”

사실 오늘 아침 홍민우 소령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홍민우 소령이 하는 말이 신범규 예비역 준장을 만나서 부대에서 이만큼 고생을 했다는 것을 어필해 달라고 했다. 최영도 소령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최영도 소령은 일심회 라인을 잘 타고 가고 있는 중이다. 어쨌거나 덕망 높은 신범규 예비역 준장과 식사를 한 끼 하는 것 역시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함부로 식사를 하자고 할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윤태민 소위 핑계로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다.

한참 만에 전화를 받은 신범규 예비역 준장.

-네. 신범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준장님. 최영도 소령이라고 합니다.”

-최영도 소령?

“사단 헌병대에서 헌병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헌병과장이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윤태민 소위가 외손자분 맞으시죠.”

-태민이? 우리 태민이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벌였습니까?

“약간 불미스러운 일에 엮일 뻔했는데 저희가 조사를 통해서 잘 처리하고 있습니다.”

-어허, 그래요?

“네.”

최영도 소령이 잠깐 기다렸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 신범규 예비역 준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흐음······. 그렇다면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우리 태민이를 위해서 고생을 하는데.

“아닙니다. 당연히 저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사람 예의가 그게 아니지. 혹시 시간 괜찮습니까. 이른 시간이지만 점심이나 하지요.

“네. 가능합니다.”

-그럼 약속 장소를 보내드리도록 하죠.

“네. 준장님.”

이렇게 해서 성사된 지금의 만남이었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마련한 한식집이었다. 음식도 맛이 있고 최영도 소령도 헌병과장으로서 이리저리 많이 얻어 먹어봤지만 이렇듯 깔끔하고 정갈한 음식은 또 오랜만이었다.

“어떻게 입에는 좀 맞습니까.”

“아, 예예.”

최영도 소령이 바로 대답했다.

“선배님 말씀 편히 하십시오.”

“그건 차차 하도록 하죠. 그리고······.”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박태진 중위에게 시선이 갔다.

“박 중위는 임관한 지 얼마나 됐어요.”

“네. 3년 차입니다.”

“3년 차라······. 곧 있음 대위를 달겠네요.”

박태진 중위가 미소를 지었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최영도 소령이 거들었다.

“우리 박 중위 잘 하고 있습니다. 아마 동기들 중에서 제일 빨리 1차로 진급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이구. 내가 앞으로 잘 보여야겠네.”

“아닙니다. 부끄럽습니다.”

박태진 중위가 말했다. 그때 최영도 소령이 상 아래로 박태진 중위를 툭 쳤다. 박태진 중위는 바로 깨닫고는 사기 주전자를 들었다.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약술로 따라 나온 술잔을 들었다.

“그럼 어디 한 잔 받아 볼까요.”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받았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는데 최영도 소령은 적당한 때에 윤태민 소위 얘기를 할까했다. 그런데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보통이 아니었다.

“허허허, 그때는 내가 어떻게 했냐면······.”

식사를 하는 내내 신범규 예비역 준장은 자신의 군 생활에 대해서 얘기를 늘어놓았다. 박태진 중위는 그 얘기에 푹 빠져서 열심히 듣고 있다.

“어후, 그렇습니까?”

박태진 중위가 고개를 심하게 끄덕였다. 최영도 소령도 이 얘기를 듣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 역시도 별들을 한두 번 만나본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때마다 나 때는 말이야. 이렇듯 늘어놓는 영웅담에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췄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만나는 목적이 이런 얘기를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최영도 소령이 언제쯤 자신의 얘기를 꺼내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박태진 중위의 무릎을 손으로 툭 쳤다.

그러더니 박태진 중위가 슬쩍 최영도 소령을 봤다. 최영도 소령이 눈짓으로 나가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박태진 중위가 바로 인지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잠시 화장실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박태진 중위가 조심스럽게 일어나 룸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 룸 안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도 물을 한 모금 한 후 가글을 하듯 입 안을 헹궜다. 그것을 꿀꺽 삼킨 후 최영도 소령을 바라봤다.

“자, 최 소령. 이제 얘기를 해보세요.”

최영도 소령이 이야기를 쭉 풀었다. 조사를 어떻게 했고 아무리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현역에 있다고 해도 이 사실을 그대로 얘기할 수는 없었다. 또 얘기하면 안 되었다.

그러나 최영도 소령은 외조부로서 이 사건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설명을 해줬다. 얘기를 듣는 신범규 예비역 준장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까. 그 여군 하사가 우리 애한테 해코지를 했단 이말이죠.”

“네. 제가 좀 알아보니 윤 소위가 인물도 잘생겼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름 여군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마 윤 소위를 흠모했다가 안 풀리니까. 이런 식으로 몰아간 것 같습니다.”

물론 유선영 하사가 윤태민 소위를 좋아했다는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영도 소령은 일부러 대충 그런 식으로 둘러댔다.

그렇다고 신범규 예비역 준장에게 당신의 외손자가 여자에게 환장해서 이런 사달이 났다. 그래서 우리가 잘 수습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인 채 잘 알아서 필터링 해서 들었다. 그 누구보다 윤태민 소위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번 일에 대해서 보고 받은 것이 없어서 화가 나긴 했다. 하지만 그 일을 알리러 온 최영도 소령에게 언성을 높일 만큼 신범규 예비역 준장은 경우가 없는 사람도 아니었다.

“잘 처리해 줘서 고맙소.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습니까.”

“어휴, 어떻게 해달라니요. 그건 아닙니다. 제가 평소에 신 준장님 흠모하고 있고 그렇다고 해서 이 사실에 대해 보고서를 올리면 어떻게든 알게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혹시나 윤 소위에 대해서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서 따로 뵙자고 청했습니다.”

“어후 고맙소. 보잘것없는 늙은이 신경 써줘서 말이오.”

“아닙니다. 사실 이번에 윤 소위를 대대에서 신경 많이 써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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