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22화
04. 그 나물에 그 밥(9)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오상진의 얼굴에 불쾌한 감정이 치솟았다. 최영도 헌병과장이 모른 척하며 말했다.
“아니, 유 하사하고 뭔가 있는 것도 아니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몰라서 그래. 내가 이해가 안 되어서 물어보는 거야. 이해가 안 되어서.”
만약에 최영도 헌병과장이 했던 말을 부하장교가 그대로 말했다면 발끈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영도 헌병과장은 상급자였다. 그저 약간 불쾌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최영도 헌병과장은 오상진에게 한 방 먹였다고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생각하는 것처럼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야. 마음의 준비를 해 둬. 아니면 유 하사에게도 미리 말해도 좋고.”
“······.”
최영도 헌병과장은 더 이상 말도 듣지 않고 중대장실을 나갔다. 그런 최영도 헌병과장의 뒷모습을 보며 눈매를 굳혔다.
‘진짜 CCTV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지······.’
원래라면 이때쯤 CCTV 자료를 내놔야 했다. 저런 식으로 나오니 도저히 최영도 헌병과장에게 CCTV 자료를 줄 수가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네.”
오상진이 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그곳에서 임규태 중령의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래. 오 대위 무슨 일인가?
“저 좀 도와주십시오. 헌병대장님.”
그렇게 공이 헌병대로 튀었다.
다음 날 오상진은 유선영 하사를 불렀다.
“네. 중대장님.”
“유 하사. 자네에게 특별 휴가를 주려고 생각 중이다.”
“네? 특별 휴가 말씀입니까?”
“그래.”
“갑자기 휴가는 왜······.”
윤선영 하사는 의문을 가졌다. 오상진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유 하사. 그동안 맘고생이 많았잖아. 그리고 유 하사 괜히 부대에 출근을 해 봐야 헌병대에서도 난리를 칠 것 같으니까. 중대장 믿고 일주일 정도 푹 쉬다가 와.”
유선영 하사가 당황했다.
“중대장님······. 혹시 일이 잘못되고 있습니까?”
“아니야. 그런 거. 솔직히 말을 하면 헌병대에서는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어. 그리고 우리 부대 안에서 풀려고 했거든.”
“네.”
“그런데 헌병대가 너무 헛다리를 짚으니까. 내가 여기서 풀 수가 없어.”
“그렇다는 말씀은······.”
“중대장이 여기서 안 될 것 같아서 위로 올려보냈어.”
“위로 올린다니······.”
유선영 하사는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의문만 가중되었다. 그래서 오상진이 입을 열었다.
“중대장이 발이 좀 넓어. 그리고 헌병대장님을 좀 알고 있어.”
그제야 유선영 하사의 얼굴이 펴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네에······.”
유선영 하사는 오상진이 갑자기 휴가를 가라고 해서 뭔가 일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아 오해를 한 것이다. 그런 유선영 하사를 보며 오상진이 말했다.
“왜? 걱정했어?”
“네. 지금까지 별말씀이 없으셨다가 갑자기 휴가를 가라고 해서 말입니다.”
“아, 중대장이 너무 앞뒤 얘기도 없이 가라고 했나? 어쨌든 부대에 남아 있어 봐야 이리저리 안 좋은 소리만 들을 것 같아서. 일단은 유 하사 맘고생 하지 않게 휴가 떠나.”
“하지만 조금 있다가 헌병대 조사를 받기로 했는데 말입니다.”
“그건 중대장이 알아서 할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휴가를······.”
“지금 바로 출발해.”
“지, 지금 바로 말입니까?”
“왜? 가기 싫어?”
“그건 아니지만······. 이대로 가도 되는 겁니까?”
유선영 하사는 오상진이 휴가를 가라고 했음에도 뭔가 불안한 눈치였다.
“괜찮아. 중대장이 특별히 보내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어서 가.”
오상진이 대대장 하던 시절에도 군 내부에서 성 관련 사건들이 종종 일어났다. 그럴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당사자들의 분리였다.
누군가 한 사람은 가해자고 한 사람은 피해자다. 그 사건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단 두 사람을 떨어져 나야 했다. 2차 가해를 막기 위함이다.
물론 이 시절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 미래를 살다 온 입장에서 유선영 하사가 계속 출근을 시키는 것도 올바른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헌병대 조사가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계속 이상한 소문만 났다. 또한 헌병대에서도 고의적으로 유선영 하사를 나쁜 사람, 아니,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유선영 하사에게 참고 넘겨보자, 이겨보자고 말을 해도 오상진의 입장에서는 계속 마음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오상진이 이 일에만 매진할 수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유선영 하사에게 휴가를 주기로 한 것이다.
대대에 보고를 올리는 것은 홍민우 소령에게 이미 보고는 올려놓은 상태였다. 게다가 이미 대대장 사인까지 받아둔 상태다. 유선영 하사가 휴가를 가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
“알겠습니다. 충성.”
유선영 하사가 중대장실을 나온 후 행정실로 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짐을 챙겼다. 박윤지 3소대장이 바로 물었다.
“어? 유 하사 왜? 관사 가야 해?”
“중대장님께서 일중일 휴가 다녀오라고 해서 말입니다.”
“휴가? 갑자기? 왜? 유 하사가 휴가 요청했어?”
박윤지 3소대장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나 힘들면 휴가 얘기가 나왔겠는가.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때 정말 힘들었다.
“아뇨. 중대장님께서 가라고 했습니다.”
“중대장님께서?”
“네. 휴가 다녀오면 일이 다 마무리되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
그러고 있는데 윤태민 2소대장이 그 소리를 듣고 피식 웃었다. 왠지 오상진이 뭔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훗. 어제 헌병과장님에게 한 소리 들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일이 잘 안 풀릴 것 같으니까. 유선영을 휴가 보내는 건가?’
윤태민 소위 생각에는 오상진이 일이 잘 안될 것 같으니까. 유선영 하사를 휴가를 보내서 어떻게든 수습을 하려고 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 시각 그 얘기를 들은 헌병과장 최영도 소령도 코웃음을 쳤다.
“뭐야. 유 하사를 갑자기 휴가를 보냈다고?”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훗, 오 대위. 참 재미있네.”
“그런데 과장님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유 하사가 가해자도 아니고 피해자인 상황이고. 유 하사에 대해 조사도 어느 정도 진행되었고. 추가 조사니까. 저렇게 나온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지. 그런데 어처구니는 없다.”
박태진 중위가 바로 말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건 뭐 헌병대를 무시해도 그렇지.”
박태진 중위는 괜히 헌병대 이름까지 거론했다. 그런 식으로 오상진을 압박할 생각인 것이다. 최영도 소령이 박태진 중위에게 말했다.
“박 중위야. 그게 아니지.”
“네? 그럼 뭡니까?”
“오상진 지금까지 잘 나갔잖아. 한 번도 자빠져본 적도 벗고.”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유 하사 말만 믿고 일 벌렸다가 상황이 완전 엿 될 것 같거든. 그래서 유 하사 휴가를 보내는 거 아니야.”
“아······. 그런 겁니까?”
“그럼. 우리끼리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그래야 할 것 아니야. 그런데 유 하사를 그냥 두고 뒷조사를 해봐. 유 하사 입장에서는 뭐가 되겠냐. 좀 배신감? 그런 것이 들지 않겠냐.”
박태진 중위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생각해보니 또 그렇습니다.”
“그래. 오상진도 자기가 생각해보니 이상한 거지.”
“완전히 저희에게 말려든 것 같지 말입니다.”
박태진 중위가 씨익 웃자 최영도 소령이 바로 정색했다.
“박 중위.”
“네. 과장님.”
“우리말은 똑바로 하자. 사건을 막 조작하고 은폐하고 그런 거 아니야.”
“당연하죠. 저희는 나름 합리적인 입장에서 조사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 그렇게 해야지. 어디 가서 괜히 말렸다는 둥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괜히 오해할 수 있으니까.”
“네. 맞습니다.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우리는 헌병대야. 그 점을 잊지 마.”
“네!”
그러고 있는데 최영도 소령의 휴대폰이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응? 누구지?”
휴대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임규태 헌병대대장이었다.
“통신보안. 충성! 소령 최영도입니다.”
-최 과장. 조사는 다 끝났어?
“네. 거의 다 끝나갑니다.”
-중간보고서는 올려야지. 나도 좀 봐야지.
“오늘 중으로 보고서 작성해서 내일 중으로 올리겠습니다.”
-그래? 가능하겠어?
“네. 가능합니다. 바로 작성해서 올리겠습니다.”
-알았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옆에 있던 박태진 중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대장님이십니까?”
“응.”
“대대장님께서 갑자기 왜 전화를 하신 겁니까?”
“왜긴 왜야. 이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시겠지. 내가 알기론 오 대위하고 우리 헌병대대장님하고 알고 지낸 사이더라고.”
“네? 그럼 혹시 오상진이 헌병 대대장님에게······.”
오상진과 임규태 중령이 친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최영도 소령은 헌병과장이라 얼추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아니 알고 지냈다면 혹시라도 헌병대대장님께 이 사건을 무마시켜달라고 얘기를 할 거라 생각합니다.”
“뭐. 전화를 했겠지. 그런데 뭐 어쩌겠어. 결과가 이렇게 나왔는데.”
“스읍. 이러다가 말입니다. 대충 덮는 거 아닙니까?”
박태진 중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최영도 소령이 피식 웃었다.
“박 중위.”
“네.”
“우리 원래의 목적이 그거잖아. 대충 덮는 거. 오상진이 못 덮겠다고 난리를 쳐서 우리가 이 고생을 하고 있잖아. 그런데 헌병대장님까지 나서서 덮어주면 우리야 좋지. 안 그래?”
“아, 또 그렇습니까?”
“자네 말이야. 요새 너무 오 대위를 엿 먹이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아. 그러지 마. 그리고 너 육사 선배고 동기들 중에서도 진급이 제일 빠른데······.”
“아니.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는 행동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나도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럴 때일수록 살갑게 굴고 그래야 해. 군대에서 적 많아봤자 좋을 것 없다.”
“네. 알겠습니다.”
최영도 소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정리 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오늘은 식당말고 밖에서 먹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거 좋지.”
“요 앞에 도가니탕 맛나게 하는 곳이 있습니다.”
“도가니? 괜찮네. 가자!”
최영도 소령과 박태진 중위가 기분 좋게 사무실을 나섰다.
그날 오후 오상진이 일과를 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오상진은 휴대폰을 들어 확인했다. 발신자는 한중만이었다. 오상진은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형님.”
-아이고 매제. 지금 통화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아직 일과시간이고 보고 있던 서류를 마저 봐야 하지만 오랜만에 한중만이 전화를 했는데 나중에 통화를 하자고 하는 것이 좀 그랬다. 자리에서 일어난 오상진이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요새 일이 많은가 봐.
“중대장이 되고 나서 이리저리 신경 쓸 것이 많습니다.”
-자네 바쁜 거 모르는 거 아닌데······. 우리 좀 신경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