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21화
04. 그 나물에 그 밥(8)
“그럼 저번 술자리에서도 황하나 하사랑 술잔을 기울였습니까?”
“네. 뭐······. 솔직히 안 그러려고 했는데 주위에 파리들이 꼬여서요.”
“파리들요? 아! 서로서로 황 하사에게 접근하고 그렇습니까?”
“네네. 솔직히 황 하사 술도 잘 마시고 예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술자리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서로서로 술 먹이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황 하사 옆자리를 좀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문제가 됩니까?”
“아뇨, 아닙니다. 그럼 술자리에서 유선영 하사가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은 눈치챘습니까?”
“유 하사가요? 글쎄요. 눈이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유 하사가 눈이 풀려 있어서 날 보고 있었다는 것은 솔직히 모르겠네요.”
“혹시 유 하사가 김호동 하사에게 호감을 드러내거나 그런 적이 있습니까?”
“글쎄요. 제 기억으로는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 그렇구나.”
박태진 중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김호동 하사의 반응은 유선영 하사에게 반응이 없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었다. 이미 김호동 하사는 황하나 하사를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유선영 하사는 같은 동료,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런 것 때문에 유선영 하사가 회식 때 더 많은 술을 먹었는지도 몰랐다.
“그날 유 하사 어땠습니까? 많이 취해 보였어요?”
“네. 취한 것 같긴 한 것 같았습니다.”
“몸을 많이 가누지 못하고 인사불성이라고 하던데······.”
“글쎄요. 몸을 못 가누는 것까지는 모르겠고요. 중간중간 뻗어서 자긴 했습니다. 그러다가 화장실 가서 토하고 말짱하게 술 마시고 그랬습니다.”
“그래요. 김 하사는 그런 유 하사에게 술을 먹이고 그랬습니까?”
“아니요. 저희 4중대가 회식할 때는 억지로 술 먹이지 않습니다. 회식 때 강요하지 말라며 중대장님께서 신신당부를 하셔서 말이에요. 그래서 절대 술은 강요하지 않아요.”
“그래요? 아까는 황하나 하사에게 다들 술 먹이려고 했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황 하사는 예외적이긴 한데요. 막말로 황 하사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많았어요. 반대로 유 하사에게는 아예 없었죠.”
“왜 그런가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유 하사가 좀 차가운 느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차가운 느낌요?”
“네. 선을 긋는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김호동 하사가 적당히 둘러댔다. 이것도 김태호 상사로부터 말실수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물어보는데 답을 안 하는 것도 웃겼다. 그래서 가능하면 유선영 하사에게 최대한 좋은 말을 해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말이 박태진 중위에게 신뢰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네. 잘 알겠어요. 잘 들었습니다.”
“끝난 겁니까?”
“네. 그만 나가셔도 됩니다.”
“네에.”
김호동 하사가 나가고 그 뒤로 다른 부사관들도 조사를 했다. 4중대 사람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감추려고 노력하는 것이 없지 않아 보였다.
사건을 덮는 것이 아니라 유선영 하사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거나 좋게 포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게 상반된 조사를 가지고 박태진 중위가 휴게실에 있던 최영도 헌병과장에게 다가갔다.
“과장님. 조사는 다 끝났습니다.”
“그래? 어떻게 끝났어?”
“이거 약간 얘기가 갈렸는데요.”
“얘기가 갈려? 어떻게?”
“대대에서 만났던 부사관들은 유 하사가 과하게 취했다고 얘기를 해 주고 있는데 4중대 부사관들은 취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며 두둔하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 어이구야. 4중대장이 부대를 제대로 장악했나 보네.”
“그런 겁니까?”
“그렇지. 4중대 입장에서는 4중대장이 몇 번 중대를 뒤집어엎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모를까. 4중대장이 저렇듯 이 일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거기다가 허튼소리를 하면 4중대장 뒤통수를 치는 격이잖아.”
“아. 그래서 서로 말을 맞춘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고. 그럴 가능성이 없잖아 있다는 것이지.”
“제가 생각해도 왠지 그런 것 같습니다.”
박태진 중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영도 헌병과장이 물었다.
“그래서 자네 결론이 뭔가?”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래도 윤태민 소위가 실수를 했겠거니 하고 생각이 들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정도야?”
“네네.”
“이야. 그러면 이거 조사를 잘해야겠다. 어쩌면 윤 소위가 안 좋았던 이미지 때문에 덤터기를 쓴 것인지도 모르잖아.”
“왠지 그럴 수도 있겠지 말입니다.”
“그런데 4중대 사람들은 왜 윤 소위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아무래도 지난번 사건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지난번 사건?”
“새로 4중대장 오기 전까지는 안하무인으로 전 중대장을 믿고 설치고 다녔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에 미운털이 박혔는지도 모르죠.”
“하긴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겠지.”
최영도 헌병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잠깐 고민을 했다. 그리곤 박태진 중위를 바라봤다.
“박 중위야.”
“네, 과장님.”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이건 이대로 넘겨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럼······.”
박태진 중위가 눈을 반짝였다. 최영도 헌병과장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뗐다.
“유 하사 말이야. 생각해 보니 괘씸한데. 부사관들 증언을 들어 봤을 때 윤 소위가 맘에 들지 않아서 엿 먹이려고 그러는 것 같지 않아.”
“확실히 그런 면이 없잖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주변 조사를 해 보도 그렇고 말이지. 이러면 이 일을 벌인 유선영 하사를 처벌해야 하지 않아?”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어떤 식으로 간에 이걸 이대로 넘어가면 안 되는 거지. 요즘 무고죄로 처벌받는 것도 많은 세상인데. 아니, 막말로 이 일을 우리가 그냥 덮고 넘어가. 그럼 앞으로 여자 부사관들이나 여자 장교들이 남자들에게 불만을 가지면 무조건 성범죄로 걸고넘어질 것이 아니야.”
“네. 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말이. 이번 기회에 확실히 잡아야지. 나는 이대로 그냥 못 넘어간다. 내가 남자라서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판례를 남기면 너도나도 이 판례를 이용할 것이 아니야. 이런 건 나 용납 못 해. 완전히 꽃뱀들이 할 짓이잖아.”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튼 너는 빨리 보고서 정리해. 내가 4중대장을 만나볼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휴게실에서 일어난 최영도 헌병과장은 곧장 오상진을 만나러 중대장실로 갔다.
“오셨습니까.”
“그래. 4중대장.”
최영도 헌병과장은 곧바로 자리로 가서 앉았다. 오상진도 자신의 책상에서 일어나 앞 의자로 가서 앉았다.
“조사는 다 끝난 겁니까?”
“조사는 다 끝나가. 그전에 이것 좀 볼 텐가?”
최영도 헌병과장이 윤태민 소위가 2소대에 한 소원수리를 보여줬다.
“이게 뭡니까?”
“일단 한번 봐봐.”
오상진은 별생각 없이 그것을 봤다. 쭉 읽어보는데 내용의 대부분이 유선영 하사에 대한 안 좋은 얘기들로 가득했다.
-유 하사가 2소대장님을 무시했습니다.
-2소대장님을 못 본 척한 적도 있습니다.
-두 사이가 많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읽은 오상진이 살짝 놀랐다. 이걸 어떤 식으로 작성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내용으로 보아 유 하사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윤 소위를 허위로 신고한 것처럼 느껴졌다.
최영도 헌병과장이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보면 알겠지만 유 하사가 문제가 많네.”
“유 하사가 말입니까.”
“그래. 2소대 병사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고 박 중위가 부사관들 면담도 했어.”
“네.”
“회식에 참여했던 다른 부사관들에게 물어보니까. 유 하사는 거의 인사불성이라고 하던데.”
“그렇습니까?”
“그래! 하지만 4중대 부사관들은 일을 키우기 싫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별일 없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데······. 그럼 왜 잘 놀고 있는 유 하사를 황 하사에게 관사로 데리고 가라고 했겠어. 안 그래?”
“네, 뭐······.”
“여러 조사를 해본 결과 아무래도 유 하사에게 여러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4중대 부사관들이 뭔가를 감추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그러면서 최영도 헌병과장이 빤히 오상진을 바라봤다. 그 중심에 오상진이 있지 않은지 의심을 하는 듯 보였다.
그 눈빛을 본 오상진은 어이가 없었다. 윤태민 소위가 어떤 놈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또 증거까지 확보한 상황에서 저런 식으로 들으니 솔직히 화가 났다.
그렇다고 이해를 못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증거가 없다면, 유 하사가 윤 소위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성추행을 당한 것이라 얘기를 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그럼 진짜 윤태민 소위가 억울하게 당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대장으로서 부하의 억울함 때문에 오상진까지 엮어서 일을 키우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결론이 납니까?”
“결론? 여기서 결론이라고 할 것이 있나. 유 하사의 말에 신빙성이 없고, 증거도 없다. 오히려 다들 유 하사에 대해서 안 좋게 말을 하는데 어떻게 일을 처리하나. 유 하사가 앞으로 군 생활 하기 힘들어질 것 같은데.”
“유 하사가 말입니까?”
“그래. 솔직히 말해서 전입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부사관이 장교를 음해한 것이 아니야. 이게 소문이 나봐. 어떻게 될 것 같나.”
“그래도 안전벨트 매어준 과정에서 몸에 닿을 수 있다고 지난번에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윤 소위도 그렇게 인정을 했고 말입니다.”
“말이 그랬다는 거고. 윤 소위도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한 거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거잖아. 추행의 의도가 있었나. 만약에 닿았다고 해도 윤 소위는 정말 그런 것 없이 순수한 의도로 술에 취한 부사관을 관사에 데려다주기 위해서 안전벨트를 채우기 위해서 그랬다는 건데. 이 일을 키우는 것을 보면 악의적인 의도라고밖에 할 수 없지.”
오상진이 차분하게 말했다.
“과장님. 아실지 모르겠지만 윤 소위가 유 하사에게 합의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최영도 헌병과장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런데?”
“······.”
“생각을 해봐. 윤 소위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이 일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신이 불리하잖아. 어떻게든 마무리 지으려고 했던 거지.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면 안 되는 거지. 밖에 한번 나가서 확인해 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소송 걸리면 귀찮고 복잡하니까. 적당히 합의를 보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윤 소위도 그러려고 그러는 거지. 그걸 가지고 윤 소위가 정말 나쁜 놈이니 뭐니 그렇게 몰아가면 안 되는 거지. 4중대장 너무 생각 없이 말하는 것 같은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내 생각은 그래! 까놓고 말해서 이 사항 자체의 일을 키운 건 자네, 4중대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자네가 중대장으로서 제대로 판단을 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이것 참······. 자네 유 하사하고 뭔가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