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7)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20화
04. 그 나물에 그 밥(7)
“그렇죠.”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술부심 부리는 거죠. 거기다가 나중에 또 술 취했다가 깨다 보면 나 실수한 거 없냐 물어보기도 하고 그렇죠. 그런 것 보면 웃깁니다.”
“그렇긴 하죠.”
박태진 중위가 동의를 하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홍성율 중사가 일반적으로 얘기를 했고, 그에 빗대어보면 유 하사는 만취한 상태였고 그런 사람은 술자리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또한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한 것이다.
윤태민 소위가 진짜 뭔가를 해서가 아니라 유선영 하사가 오해를 해서 성추행을 했다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의도였다.
“그럼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윤 소위랑 유 하사의 관계요? 뭐가 있겠습니까.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렇죠. 그런데 내가 듣기로는······.”
“아, 뭔가 들은 얘기라도 있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하는 얘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요. 유 하사가 좀 윤 소위를 안 좋아했다고 합니다.”
“왜요?”
“윤 소위가 유 하사 오기 전에 사고를 친 것도 있고 2소대 전 부소대장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지 않습니까. 윤 소위가 사고를 쳐서 서로 얼굴 보기 그래서 자리를 옮긴 것인데 그런 일은 부사관들끼리 빠르게 소문이 돌거든요. 새로 부대에 들어왔는데 바로 윗상관이 꼴통인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러니 유 하사도 윤 소위를 데면데면하지 않았을까. 지긋이 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더 물어볼 말은······.”
“아뇨. 끝났습니다. 이제 나가셔도 됩니다.”
“네에. 그럼 수고하세요.”
홍성율 중사가 나갔다. 그 이후 박태진 중위는 두 명의 부사관을 더 만났다. 두 명의 부사관도 사전에 주임원사에게 어느 정도 언질을 받아서일까? 거의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다음 네 번째로 김만식 중사가 들어왔다.
“오, 미남이시네요.”
박태진 중위는 사무실로 들어온 김만식 중사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김만식 중사는 괜히 멋쩍어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뇨. 제가 많은 부대를 가 봤지만 이렇게 잘생긴 군인은 처음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박 중위님도 잘생기셨습니다.”
“하하하. 저도 어디 가서 빠지지는 않지만 김 중사에게는 안될 것 같아요.”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 얼굴로 군인을 합니까?”
“제가 뭐 딱히 재주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가진 거라고는 몸뚱이 하나밖에 없어요. 그런데 작은아버지가 직업군인을 해보라고 해서요. 그래서 하게 되었습니다.”
“오, 그래요. 그보다 군대 생활은 만족합니까?”
“지금까지는 나쁘지 않습니다.”
“다행이네요. 자, 그러면 간단하게 물어볼게요. 윤태민 소위는 잘 모르죠?”
“네. 솔직히 잘 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저야 솔직히 이곳에 전출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말입니다. 윤 소위님은 4중대이지 않습니까. 독립중대로 평소 얼굴 볼 일은 거의 없죠. 가끔 대대훈련 때나 볼까요. 아마 윤 소위님은 제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걸요.”
박태진 중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대에 오래 있었던 홍성율 중사보다는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럼 유선영 하사는 좀 압니까?”
“유 하사는 4중대 가기 전에 대대에서 잠깐 얼굴 본 정도입니다.”
“그래요. 유 하사가 호감을 표현하던가요?”
“그게······. 솔직히 제가 지금까지 어디 가서 얼굴로 꿀린 적은 별로 없거든요.”
“하하하, 그래요.”
“뭐, 제 자랑 같지만 여자 간부님들이 저를 좀 예뻐해 주는 편입니다.”
“뭔지 알겠어요.”
“그런데 유 하사는 저를 봐도 시큰둥하더라고요.”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직접 물어보지 않아서요. 그것보다는 뭐라고 할까요. 제가 웃으면서 얘기도 하고 연락처도 물어보기도 했는데 딱히 반응도 없더라고요.”
“아, 연락처도 물어봤습니까?”
“별거 없어요. 같이 온 황 하사에게도 물어봤으니까요. 지금까지 여자 간부들하고는 연락처 주고받았거든요.”
“그럼 미리미리 번호를 따 놓는 거예요.”
“에이. 그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친분을 위한 것도 있고, 군 생활 하다 보면 협조를 요청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같은 부사관끼리 서로 돕고 그러는 거죠. 그리고 어쩌다가 보면 사무적인 것보다는 미리미리 안면을 익히고 친하게 지내면 좋은 거죠.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황 하사는 잘 가르쳐 주는데 유 하사는 내켜하지 않더라고요. 그럼 다음에 연락처 주시라고 하고 그만뒀습니다.”
“연락처 받지는 못했고요.”
“네. 그래서 그런가 술자리에서도 제가 옆에 앉았는데 딱히 관심도 없고 별 반응도 없고 그랬습니다.”
“유 하사가요?”
“네.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지만 그때 살짝 자존심이 상했어요. 그래도 제가 좀 잘 지내보자는 뜻에서 친근하게 다가간 것인데······. 아, 그때 좀 취했더라고요. 혼자 취해서 헤롱헤롱거리는데 누구 하나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해서 제가 옆에 갔던 것이거든요. 그런데 했던 얘기 또 하고 비몽사몽거리고 또 어떤 사람을 계속 노려보는 것 같고 말이죠.”
“다른 사람 누구요?”
“김호동 하사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김호동 하사요.”
박태진 중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체크를 했다.
“김호동 하사를 왜 그렇게 노려봤을까요?”
“그야 모르죠. 제 생각에는 어쩌면 김호동 하사를 좋아해서 바라봤을 수도 있죠.”
“으음······. 그럼 내가 좀 알아봐야겠네요.”
박태진 중위는 그렇게 몇 가지 더 질문을 한 후 김만식 중사와 얘기를 끝냈다. 그 외 대대 부사관들 몇 명과 더 얘기를 나눴다. 이건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조사였다.
방대철 주임원사를 통해서 홍성율 중사와 김만식 중사를 만나보라는 언질을 미리 받았다. 이 두 사람이 메인이고 나머지는 형식적인 조사였다. 그렇다고 딱 두 사람만 찍어서 만났는데 유 하사에 대해서 안 좋은 소리만 한다면 왠지 표적 수사 같은 느낌이 든다.
공교롭게도 만난 부사관들 대부분이 유선영 하사에 대해서 썩 좋은 얘기는 하지 않았다. 박태진 중위는 4중대로 돌아왔다. 돌아온 그를 보며 최영도 헌병과장이 물었다.
“조사는 다 했어?”
“네. 하긴 했는데······.”
“왜? 뭐 건진 것이 없어?”
“아뇨. 그건 아닌데 주임원사가 미리 얘기를 한 것 같습니다.”
“왜?”
“뭐 거의 비슷한 말을 합니다.”
“주임원사가 만나라고 하는 부사관은?”
“네. 두 사람의 증언은 확실히 땄는데 나머지 부사관들도 다들 비슷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유 하사가 사교성이 좀 부족하다, 술을 좀 과하게 마신다, 자제력이 부족하다 이런 얘기들 말입니다.”
“나쁘지 않네.”
“네.”
“그럼 점심 먹고 4중대 부사관들 조사 시작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부대 밖에서 맛있게 점심을 해결한 후 다시 4중대로 복귀를 했다.
면담실로 가서 바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로 행정보급관인 김태호 상사였다.
“행보관님 몇 가지 질문이 있어서 보자고 했어요.”
“네. 편안하게 얘기하세요.”
“지난번 회식 말이에요. 누가 회식을 하자고 했죠?”
“회식은 제가 하자고 했습니다.”
“행보관님이요. 보통 부사관들이 새로 오면 회식을 하는 편입니까?”
“그렇죠.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들어왔으니까요. 사실 저희 4중대가 인력이 부족했거든요. 그런데 두 명이나 들어오니 기분도 좋고 둘 다 열정적이라서요. 안 챙겨주면 안 챙겨준다는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다 같이 얼굴도 볼 겸 만나자고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그날 유 하사는 어땠습니까?”
“유 하사요? 그냥 술을 과하게 먹은 것이 없잖아 있었지만 별것 없었습니다.”
“그래요? 제가 들은 것과는 다르네요.”
“네? 뭘 어떤 식으로 들었습니까?”
“뭐, 그건 말씀드릴 수 없고. 정말 유 하사는 술만 마셨습니까. 아무것도 없고?”
“그냥 술이 좀 취했다? 그 정도였죠.”
“술이 취했다. 얼마나 취했습니까?”
“글쎄요. 술을 많이 마셨으니 취했겠죠. 얼마나 취했는지는 잘 몰라요.”
김태호 상사가 애써 에둘러 말했다. 오상진이 유선영 하사를 위해 나섰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 와중에 만취했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김태호 상사가 객관적이지 않고 유선영 하사를 감싸듯 말했기 때문에 그의 진술 자체는 신빙성이 없다고 헌병대 입장에서는 판단할 수 있었다.
헌병대에서는 입장에서는 중립적인 얘기를 들어야 하는데 김태호 상사가 대놓고 유 하사가 취하긴 했지만 얼마나 취했는지는 모른다. 별일 없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면 그 이후로 무슨 말을 하든 믿을 수 없다고 판단을 해버린다.
“네. 알겠습니다. 조사에 감사합니다.”
김태호 상사가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태호 상사가 나가고 문제의 김호동 하사를 불렀다. 김호동 하사는 김만식 중사와는 다르게 남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사내였다.
“오, 김 하사 몸 좋네요.”
“아닙니다. 군인들은 다 이 정도 하지 않습니까.”
“일과 끝나고 운동만 해요?”
“제가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운동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몸이 이렇게 되네요.”
김호동 하사는 예전에 몸이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예전 조인범 상병 사건에 곤욕을 치른 후 다시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몸이 상당히 좋아졌다.
그런 김호동 하사를 보며 박태진 중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만약에 김호동 하사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은 몸 좋은 사람을 좋아하나?’
유선영 하사에 대해서 잠깐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김호동 하사에게 질문을 했다.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회식 때 말이죠. 듣기로는 황하나 하사와 유선영 하사를 각별히 챙기신다고 들었습니다.”
“각별히 챙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선배로서 후배들이 왔는데 가만히 있겠어요. 중대 적응을 위해서 팔을 걷어붙인 것뿐입니다.”
박태진 중위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둘 중에 누가 좋으신 겁니까?”
박태진 중위가 아예 대놓고 물었다. 그러자 김호동 하사가 깜짝 놀랐다.
“네?”
“아, 그냥 편안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부담스러우시면 말해주지 않아도 되고요.”
“어, 그것이······.”
김호동 하사가 잠깐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황하나 하사가 좋습니다.”
“그래요. 유선영 하사는요?”
“유 하사도 나쁜 편은 아닌데요. 제가 유 하사 앞에서 농담 삼아 황 하사에게 고백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구나. 황 하사는 뭐라고 해요?”
“부대 안에서는 연애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포기는 하지 않으셨구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있겠습니까.”
김호동 하사의 말에 박태진 중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느낌상 삼각관계라는 것이 느껴졌다. 황하나 하사를 좋아하는 김호동 하사. 김호동 하사를 좋아하는 유선영 하사. 정작 황하나 하사는 연애에 관심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입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