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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888화 (888/1,018)

< 04. 그 나물에 그 밥(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18화

04. 그 나물에 그 밥(5)

그 시각 방대철 주임원사도 나름대로 증거를 모으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봐. 홍 중사.”

“네. 주임원사님.”

“자네 지난번에 4중대 회식 갔다며.”

“아, 예에······. 고기 먹는다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홍 중사가 멋쩍게 웃었다. 4중대는 독립중대고 대대하고는 떨어져 있어서 회식도 따로 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대대 회식 때는 4중대 간부들도 참석을 한다.

게다가 홍 중사는 4중대에 친한 부사관들이 많다. 그래서 슬그머니 끼었다.

“너 솔직히 말해.”

“황 하사 보러 간 거지.”

“아닙니다.”

“아니긴······. 자네 말이야. 여자 부사관이라면 환장해서는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 하고······.”

“주임원사님 왜 그러십니까. 저도 이제 서서히 연애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홍 중사의 변명에 방대철 주임원사가 그를 바라봤다. 모자에 가려져 있지만 홍 중사는 이마가 넓었다. 그래서 대머리 기운이 조금 보였다. 그리고 술 좋아하고, 여자 밝히고 여자들이 정말 싫어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짝이 없다며 푸념하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쯧쯧쯧, 자네는 거울도 안 보나.’

방대철 주임원사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다가 짜증을 삼키며 사람 좋은 얼굴로 물었다.

“홍 중사. 그날 어땠어?”

“네?”

“아니, 그날 어땠냐 말이야.”

“아, 황 하사 말입니까? 이야 황 하사 장난 아닙니다. 애가 예뻐서 이리저리 뺄 줄 알았는데 술도 이리저리 잘 받고. 말도 참 사근사근 잘합니다. 완전 괜찮습니다.”

“누가 황 하사 얘기를 하래.”

“그럼 말입니까?”

홍 중사가 눈을 끔뻑거렸다.

“황 하사 말고. 유 하사 말이야.”

“유 하사? 아! 황 하사랑 같이 왔던 그 여자 하사 말입니까.”

“그래.”

“걔는 좀 그렇던데······.”

유선영 하사에게 관심이 없어서 일까? 홍 중사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뭐가 말이야.”

“아니, 황 하사에게 라이벌 의식이 있는 건지······.”

“라이벌 의식?”

“네. 제가 황 하사에게 술을 한잔 따라줬습니다. 술을 워낙에 잘 마셔서 말입니다.”

“왜? 술 취하면 어떻게 해보려고?”

“아닙니다! 주임원사님도 참······ 저 그렇게 쓰레기 아닙니다.”

“그럼 자네가 그동안 건드렸던 부사관들은 뭔데?”

“와······. 주임원사님. 그건 서로 합의하에 그런 것이죠. 제가 무슨······. 하하하.”

“인마. 네가 그렇게 해서 옷 벗긴 애들이 어디 한둘이야.”

“저 그런 적 없습니다.”

홍 중사는 바로 모르쇠로 일관했다. 물론 방대철 주임원사가 과장되게 말했지만 홍 중사가 예전에 잠깐 만났던 여자 부사관이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던 적은 있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방대철 주임원사가 홍 중사를 놀렸다.

“아무튼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아, 황 하나에게 술을 먹였는데 갑자기 유 하사가 붉어진 얼굴로 씩씩 거리며 저를 바라봤습니다.”

“유 하사가?”

“네. 그러면서 자기는 왜 술을 안 주냐며 따지지 뭡니까.”

“그래서?”

“그래서 뭐 어떻게 합니까. 술을 따라줬죠. 그런데 술을 또 다 주면 취할 것 같았지 말입니다. 취하면 또 골치 아프지 않습니까.”

“왜? 황 하사는 취하면 되고, 유 하사는 취하면 안 되는 건가?”

“에이. 유 하사 딱 봐도 한 성격 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괜히 건드렸다가 엿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애에게 뭐 하러 술을 먹입니까. 저 똥오줌 못 가리는 놈 아닙니다.”

“자랑이다. 그래서 유 하사에게는 술을 다 따라줬어?”

“아닙니다. 반만 따라줬습니다. 그런데 또 그걸 가지고 성질을 내지 뭡니까.”

“성질을 냈어?”

“네. 왜 자신은 꽉꽉 안 채워주냐며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취한 것 같으니까 이쯤에서 그만 마시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안 취했다고 왜 자기를 차별하냐며 또 화를 내지 뭡니까. 그때 분위가 갑자기 싸해졌지 말입니다. 4중대 회식에 참석했는데 괜히 저 때문에 분위기 망칠 것 같아서 다 채워줬죠.”

“그걸 다 마셨고?”

“네. 그냥 꾸역꾸역 다 마시더란 말입니다. 옆에 있던 황 하사가 괜찮냐며 챙겨줬는데 오히려 성질을 부렸습니다.”

“오호라. 그랬단 말이지.”

“네.”

“너 말고 누가 또 갔냐?”

“저하고 만식이가 갔습니다.”

“김만식 중사? 와 그 새끼는 아무튼 어디든 잘 끼네. 거기가 어디라고 껴.”

“김 중사에게 뭐라고 하지 마십시오.”

“왜? 네가 데리고 갔냐?”

“저 혼자 가면 뻘쭘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김 중사 얼굴이 반반하니 가서 분위기 좀 띄울려고 그랬어?”

“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짬이 몇 년인데······. 가서 김 중사나 불러와.”

“네. 알겠습니다.”

홍 중사가 나가고 잠시 후 김만식 중사가 주임원사실로 들어왔다.

“충성. 주임원사님 저 찾으셨습니까.”

“만식아.”

“네.”

“너 지난번에 말이야. 4중대 회식에 참여했다며.”

“어어······ 그것이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김만식 중사가 바로 고개를 푹 숙였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인마. 너는······. 죄송하면 끝나?”

“아닙니다.”

“너 이 새끼야. 내가 뭐라고 했어. 낄 데 안 낄 데 구분하고 대대 분위기 익힐 때까지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 너 부대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죄송합니다.”

“아무리 홍 중사가 가자고 했다고 해도 말이지. 너는 내 앞에서 홍 중사 말만 들을 거야?”

“아닙니다.”

“어후, 일단 앉아!”

김만식 중사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물었다.

“자네 그날 있었던 일 하나도 빠짐없이 내게 보고해 봐.”

“네?”

김만식 중사의 눈이 커졌다. 아무리 최근이라고 해도 그날 일을 완벽하게 기억할 수는 없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얘기를 하라고!”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라는 것입니까?”

“그날 유선영 하사 봤어, 안 봤어?”

“유 하사 말입니까? 봤죠.”

“그래. 그날 유 하사를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5분 단위로 빠짐없이 얘기해 보란 말이야.”

“아, 네에······.”

김만식 중사는 난감한 얼굴로 그날의 기억을 억지로 떠올렸다. 사실 홍 중사와 김만식 중사는 처음부터 회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4중대 회식이었다. 남의 회식이라 중간에 슬그머니 끼는 것이 그들만의 룰이었다.

회식을 하고 1시간쯤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술자리가 열리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때도 이미 유선영 하사는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유 하사가 그때부터 취해 있었단 말이지.”

“네. 홍 중사와 같이 인사를 했는데 그냥 황 하사는 제대로 받아 줬는데 유 하사는 고개가 거의 땅에 닿을 지경이었습니다.”

“너 거기 얼마나 있었어.”

“저희는 끝까지 다 있었습니다.”

“그래? 유 하사는?”

“저희 가고 나서 2시간쯤 더 있다가 완전히 뻗고서야 나갔습니다.”

“그렇게 취했는데 2시간이나 더 있었다고?”

“아니, 유 하사 장난 아닙니다. 황 하사가 한 잔 받으면 자신도 받아야 한다며 옆에서 꾸역꾸역 다 받아 마셨습니다.”

“유 하사가 그렇게 술을 잘해?”

“아닙니다. 중간에 몇 번이나 토하고 그랬는데 그때마다 술 마시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중간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는데 그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일?”

“누가 그랬더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유 하사 두고 2차 가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유 하사가 그 얘기를 들었는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저 안 취했습니다 하면서 화장실을 다녀오더란 말입니다.”

“와, 독종이네. 왜 그랬데?”

“그건 저도 잘 모르지 말입니다.”

“그럼 뭐 하나 물어보자. 너에게 집적거렸어, 안 그랬어?”

“유 하사가 저에게 말입니까?”

김만식 중사는 자타공인 남자 부사관들 중에서는 잘생긴 편이었다. 게다가 몸도 근육질이고 배에 왕자도 선명하게 찍혀 있다. 무엇보다 여자들에게 엄청 잘했다. 그래서 대대 여자 장교와 여자 부사관들 중에서 김만식 중사를 싫어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당연히 유선영 하사도 여자였다. 자연스럽게 김만식 중사에게 슬쩍 다가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김만식 중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진짜?”

“네.”

“너 있는 줄 모르는 것 아니야?”

“아닙니다. 홍 중사님이 때문에 유 하사 옆 자리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말에 방대철 주임원사가 피식 웃었다.

“설마 너보고 폭탄제거하래?”

“어······. 네에.”

“와, 홍 중사 그 새끼도 참 대단하다. 대단해. 그렇게까지 해서 여자를 만나고 싶을까. 그래서?”

“유 하사 옆에 가서 좋게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제 얘기는 거의 듣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계속 딴 곳만 봤습니다.”

“딴 곳? 누구?”

“김호동 하사를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호동? 김호동이? 설마 김호동 하사를 좋아하는 거야?”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쪽을 계속 바라봤습니다.”

“한마디로 너의 매력이 먹히지 않았단 말이네.”

방대철 주임원사의 말에 김만식 중사가 자존심이 좀 상했다.

“그렇다기 보다는 저를 제대로 못 알아보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래? 그 정도로 인사불성이었단 말이지.”

“네. 뭐······. 거의 그런 것 같습니다.”

“확실해?”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제대로 못 알아듣고 계속 딴 얘기만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술 한 잔 주십시오. 그랬습니다. 저는 저러다가 죽는 거 아니야. 그 정도까지 생각했습니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술을 먹었을까?”

“제 생각에는 황 하사를 견제한 것 같습니다.”

“황 하사를 견제해?”

“네. 아, 황 하사 진짜 대박입니다. 완전 말술입니다.”

“그래?”

“네.”

“소주는 잘 못 마신다고 해서 맥주를 주는데 완전 잘 마십니다. 주는 것마다 다 마셨습니다. 아! 화장실도 한 번도 안 갔습니다.”

“오오, 그 정도야?”

“얘기를 들어보니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부사관 학교에서 남자 5명이랑 술을 마셨는데 자신이 이겼다고 합니다.”

“하긴 그렇게 예쁜데 홍 중사 같은 새끼가 없었을까.”

“그렇죠.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김태호 상사님이 술 적당히 주라며 눈치를 줘서 말입니다. 그때부터는 좀 편안하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김태호 그 자식도 분위기 파악 어지간히 못해.”

방대철 주임원사가 이랬다저랬다 했다. 홍 중사가 쓰레기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와중에 황 하사를 챙기는 김태호 상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미 김태호 상사는 방대철 주임원사에게 찍혀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유 하사가 완전 뻗어버린 겁니다. 결국 김태호 상사가 황 하사보고 데려다주라고 했습니다.”

“황 하사에게? 황 하사 술 잘마시고 잘 놀았다며.”

“그렇죠.”

“그때 분위기 진짜 싸늘해졌습니다. 다들 왜 황 하사를 보내냐고 남자 부사관 보내도 되는데, 김호동 하사를 보내면 안 되냐며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김태호 상사가 어떻게 만취한 여자 부사관을 남자 부사관에게 맡기냐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황 하사가 유 하사를 데리고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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