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17화
04. 그 나물에 그 밥(4)
“그런데 갑자기 왜 저러는 겁니까?”
“그걸 모르니까 내가 이러는 거지.”
그렇게 말을 하는데 윤태민 소위와 눈이 마주쳤다. 예전 같으면 윤태민 소위의 눈을 피했을 거다. 그 당시는 거의 하늘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은 말년병장이고 굳이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 그 건은 이미 서로 얘기가 끝난 상태였다.
윤태민 소위도 처벌을 받지 않았는데 소대원들을 처벌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한 상태였다.
그때 윤태민 소위가 이민균 병장을 보며 말했다.
“이 병장.”
“병장 이민균.”
“너 제대 안 하냐.”
“그렇지 않아도 저 모레 말년휴가 나가지 말입니다.”
“말년휴가 며칠이냐.”
“그래도 5일 남았습니다.”
“그러게 내가 예전에 그랬지. 휴가 적당히 쓰라고. 야금야금 쓰더니 5일밖에 안 남았냐.”
윤태민 소위의 핀잔에 이민균 병장이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5일이나 남은 것이 어디야. 그리고 지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얘기를 하며 길다. 이민균 병장이 윤태민 소위에게 까이고 황익호 병장이 실세가 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황익호 병장이 자신의 성질을 건드리는데 가끔이 살의가 치솟고 이러다가 살인을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휴가를 당겨쓰고 그랬다.
윤태민 소위는 그것에 대해서 딱히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자신에게 와야 할 휴가도 다른 애들에게 줘버렸다. 그런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서 이제 와 말년휴가 얼마 안 남았다고 말을 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이민균 병장이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자 윤태민 소위가 말했다.
“왜, 왜. 뭐가 또 불만인데. 소대장이 모처럼 큰맘 먹고 쏘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먹어야지. 뭐가 또 세상 불만 많은 것처럼 보고 있냐.”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른 애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자자. 다들 요즘 짬밥이 시원찮아서 밥을 제대로 못 먹지? 지금 소대장이 보는 앞에서 다 먹어라. 소대장이 쓰레기까지 다 가져갈 테니까. 어여 먹어라.”
최헌일 상병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소대장님 제가 지금 배가 아파서 그러는데 조금 있다가 먹으면 안 됩니까?”
“헌일아.”
“상병 최헌일.”
“너 말이야. 군대에서 나중이라는 말 들어봤냐?”
“······.”
“나중이란 없어. 그리고 네가 나중에 먹으면 다른 애들도 또 먹고 싶지 않을까.”
“아, 네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먹자. 너는 곧 병장 달 놈이 그러면 어떻게 해.”
“알겠습니다.”
최헌일 상병이 쭈뼛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애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냉동만두를 뜯었다. 그렇게 하나씩 먹는데 윤태민 소위가 애들을 한 명씩 봤다. 모두 입에 만두를 넣고 있는지 확인을 했다.
이등병 일병들은 아무 생각없이 마구 먹고 있고 상병과 병장들은 서로서로 눈치를 보며 먹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윤태민 소위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서 먹어라. 그래야 나도 얘기를 하지.’
다들 냉동만두를 먹고 있다. 그 중에서 황익호 병장만 냉동만두를 뜯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민균 병장도 먹고 있는데 말이다.
“황익호.”
“병장 황익호.”
“너는 왜 안 먹어.”
“저는 저녁을 많이 먹어서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도 먹어. 소대장이 생각해서 사왔는데.”
“아닙니다.”
단호박을 삶아먹었는지 황익호 병장이 딱 잘라서 말했다. 하지만 황익호 병장은 눈치가 빨랐다. 이걸 먹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황익호 병장을 보며 윤태민 소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이 새끼가 문제야.’
솔직한 마음으로는 황익호 병장 주댕이에 뭔가 들어가는 것이 싫다. 그런데 황익호 병장을 안 먹이면 불안해서 살 수가 없었다.
“황익호.”
“병장 황익호.”
“너 정말 안 먹냐.”
“네. 안 먹습니다.”
윤태민 소위가 황익호 병장에게 다가가 낮게 중얼거렸다.
“익호야. 너 지난번에 주려고 했던 외박 말이야. 먹지 않으면 없는데······. 그래도 안 먹을래?”
“······.”
황익호 병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군인들에게 있어서 휴가와 외박은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이 없다. 그걸 가지고 딜을 한다는 것이 화가 났다.
하물며 예전에 외박을 보내준다며 몇 번 말을 했었다. 그런데 이 사간이 터지면서 외박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 윤태민 소위가 저런 식으로 딜을 하니 할 말이 없었다.
“정말입니까?”
“닥치고 빨리 먹어. 너 때문에 소대 분위기가 이게 뭐야. 병장이 분위가 파악도 제대로 안 돼?”
황익호 병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냉동만두를 뜯어 하나씩 꾸역꾸역 입으로 가져갔다. 다 먹을 때쯤 윤태민 소위가 입을 열었다.
“막내.”
“이병 임태준.”
“다 먹은 봉지 수거해서 여기 박스에 버려라.”
“네. 알겠습니다.”
윤태민 소위가 소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맛있게 잘 먹었냐.”
“네. 그렇습니다.”
“그래. 맛있게 먹었으면 이제부터 간단한 설문을 하겠다.”
윤태민 소위는 그들에게 A4용지를 줬다. 그것을 받아 든 병사가 물었다.
“소대장님 이게 뭡니까? 소원수리입니까?”
“소원수리는 아니고 소대장이 너희들에게 뭔가 도움을 받을 것이 있어서 이러는 거야.”
“도움 말입니까?”
“그래.”
그러자 소대원들 대부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긴, 뭔가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에이 젠장할.’
“어려운 것은 아니야.”
말을 하면서 슬쩍 입구를 봤다.
“문은 닫았지?”
“네.”
“내가 누군가에게 제보를 받은 것이 있거든. 부소대장 말이야.”
“유 하사 말씀입니까?”
“그래. 유 하사가 솔직히 소대장을 좀 우습게 알고 무시한다는 제보가 있어.”
그러자 소대원들 중 몇 몇은 고개를 갸웃하고, 다른 몇몇은 살짝 당황하고 있었다.
‘야. 누가 말했냐?’
서로 눈짓으로 범인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소대원들을 보며 윤태민 소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소대장도 어떤 문제인지는 알아야지. 물론 소대장이 예전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 꼴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소대장은 소대장 아니냐. 소대장이 면이 서야 소대가 제대로 돌아가는데 이런 식이면 소대가 잘 굴러가겠냐고. 야, 병장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등병들 너희들은 앞으로 군 생활 어떻게 할래? 이렇게 우리 소대가 무시당하고 개판이 되면? 다 너희들에게 돌아가는 거야, 알아! 다 너희들이 봤던 것들을 편안하게 쓰기 바란다. 물론 이 소대장에게 불만이었던 것도 써도 돼.”
“그러면 소원수리지 말입니다.”
“그래! 소원수리다. 대신 우리 2소대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을 적는다.”
“그러면 다른 얘기도 써도 됩니까?”
최진철 일병이 슬그머니 손을 들어서 말했다. 윤태민 소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누가 널 괴롭히냐?”
“아, 아닙니다.”
“야! 고참들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편안하게 써! 소대장도 까는 마당에······. 대신에 억지로 까지 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도 하지 말고. 알았어?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 싶으면 소대장이 적당히 구두 경고로 넘어 갈 거야. 물론 상황이 심각하면 처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됐지!”
“네. 알겠습니다.”
그러자 각자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윤태민 소위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야야. 이게 뭐 옆에 사람을 보고 적냐! 시험 보는 것도 아닌데. 소신 있게 써! 소신 있게!”
윤태민 소위는 여기서 몇이나 유선영 하사에 대해서 쓸까 생각했다.
하지만 소대원들도 눈치는 있었다. 윤태민 소위의 독재가 사라지고 2소대 내에서도 실세였던 황익호 병장이 무너졌다.
이민균 병장이 약간 목소리가 커진 상황에서 장태진 병장이 분대장이 되었다. 장태진 병장은 이민균 병장하고 황익호 병장하고 잘 지내면서 후임들을 갈구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후임들이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장태진 병장을 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윤태민 소위에 마음에 들어야 했다.
‘그러니까, 소대장님이 마음에 들어 할 것은 일단 부소대장에 대한 썰을 풀어야겠지.’
후임들이 볼펜놀림이 빨라졌다. 그러다가 옆에 고상태 이병이 최진찬 일병을 보며 말했다.
“최 일병님, 뭐라고 써야 합니까?”
“야이씨! 생각 안 나면 그냥 지어서라도 써.”
“그래도 됩니까?”
“어차피 뭐 대충 맞춰서 쓰면 되는 거지.”
“어떻게 말입니까?”
“부소대장이 소대장님을 꼬나봤다. 뭐 그렇게 쓰든가! 이런 것까지 일일이 알려줘야 하냐. 병신아!”
“아. 맞다. 그렇구나.”
고상태 이병이 히죽 웃으며 볼펜을 놀렸다.
“그리고 부소대장이 소대장님을 까는 소리를 들었다든지. 그런 걸로 부소대장이 뭐라고 할 거야.”
“그렇지 말입니다.”
“그래. 그러니 편안하게 써!”
그렇게 소대원들이 열심히 소원수리를 적기 시작했다. 그걸 나중에 걷어서 행정반에서 읽었을 때는 꽤나 짭짤한 소득이 있었다.
“와. 이놈들 봐라.”
-지나가는 길에 부소대장님이 소대장님을 욕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소대장님께서 고개를 돌렸는데 부소대장이 딴청을 피우며 황급히 다른 말을 했습니다.
“이거 진짜야, 거짓말이야? 그렇지만 내용을 괜찮은데?”
윤태민 소위가 피식 웃으며 다른 것을 봤다.
-PX 앞에 서 있는데 부소대장님이 음료수를 사 줬습니다. 거기 앉아서 부소대장님이 소대장님은 음료수 사 주시니? 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안 사 주십니다. 라고 말을 하니 마치 소대장님을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윤태민 소위는 이것을 읽고 감탄했다.
“와. 이건 문학상감이네. 사실과 허구를 아주 적절하게 넣어놨네. 묘사가 아주 좋아! 그런데 이거 누구야? 필체로 봤을 때는 석호 녀석인 것 같은데······.”
내용을 쭉 읽어 내려가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김진수 1소대장이 행정반에 들어왔다. 아직 퇴근을 하지 않은 윤태민 소위를 보며 깜짝 놀랐다.
“뭐야. 2소대장 아직 퇴근 안 했어?”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서 말입니다.”
“빨리 퇴근하고.”
김진수 1소대장이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정리를 하는데 윤태민 소위 손에 들린 종이를 봤다.
“그건 뭐야?”
“아. 이거 말입니까. 2소대 소원수리를 한번 해봤습니다.”
“소원수리? 중대장님께서 소원수리 하라고 했어?”
“아닙니다. 그냥 제 스스로 소대원들 관리 좀 할 겸 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애들에게 미안한 것도 있고 말이죠. 그리고 말은 소원수리로 했지만 소원수리는 정확히 아닙니다. 그냥 애들 의견을 좀 받은 겁니다.”
“그래? 나도 좀 볼 수 있어?”
“안 됩니다. 이거 저희 소대 것 아닙니까.”
윤태민 소위의 말에 김진수 1소대장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뭐······. 어서 퇴근해.”
“네.”
김진수 1소대장이 행정반을 나가자 윤태민 소위가 바로 중얼거렸다.
“아무튼 중대장님 믿고 어지간히 갑쳐요. 아무튼 이 정도면 유 하사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겠어.”
윤태민 소위가 씨익 웃었다.